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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페미니스트가 아니어도 좋아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를 읽고
※ 필자 김혜림 님은 땡땡책협동조합과 교육공동체 벗 조합원입니다. -편집자 주
해방감을 주는 ‘나쁜 페미니스트’ 선언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알기도 전에 나는 꼬마 페미니스트였다. 어쩌면 그건 부모님 말씀을 너무 열심히 듣고 책을 너무 진지하게 읽은 탓일지도 모르겠다. 세 자매 중 첫째인 나에게 부모님은 남자애들보다 더 뛰어나기를, 대학에 진학하여 훌륭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바라셨다. 학교에서도, 책에서도 남녀는 평등하며 여자도 남자만큼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열렬하게 그 말들을 믿었기 때문에, 여자아이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남자아이들보다 공부를 잘하지 못할 거라는 말에 –심지어 그 이유라고 내세운 게 여자는 생리를 한다는 거였다- 분개하며, 그 말이 틀리단 걸 증명해보이겠다며 기를 쓰고 공부했다.
교과서 속에 남자들만 등장하거나 권위 있는 직업을 가진 것으로 묘사된 이들이 다 남자들이라는 사실에 분개했고, 딸 아들 차별하는 부모가 나오는 드라마에 분개했고, 순종적인 여자친구가 되겠다는 노래 가사에 분개했고… 아무튼 세상에 화낼 일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내가 그런 화제를 꺼내면 사람들은 나를 이상하게 보았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지칭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바로 그 반응이었다. 그러나 열렬한 꼬마 페미니스트였던 내가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지칭하는 데 망설임을 느끼게 된 건 그 이유만은 아니다. 페미니즘이라는 학문에 대해 잘 몰라서, ‘젠더 플루이드’(Genderfluid, 성정체성과 젠더가 고정되지 않고 유동적인 사람을 지칭함)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작년에야 겨우 알았을 정도니 이렇게 무식해서야 페미니스트라는 명함을 내밀 입장이 못 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어린 시절의 열렬함과 달리 지금의 나는 페미니스트로 자처하기에는 부끄러운 구석이 많다. 여성의 종속을 부추긴다는 로맨스 소설을 즐겨 읽고,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며, 불편하지만 예쁘다며 하이힐과 미니스커트를 사랑하고, 때로는 귀찮은 마음에 일상 속의 차별 발언을 눈 감고 넘어갈 때도 있다. 이래서야 페미니스트 이름에 먹칠할까 두려울 따름이다.
▶ 록산 게이 <나쁜 페미니스트>(사이행성, 2016)
미국의 소설가이자 문화비평가인 록산 게이(Roxane Gay)의 책 <나쁜 페미니스트>(부제: 불편하고 두려워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못하는 당신에게)가 반갑고 좋았던 가장 큰 이유는 이렇게 부족하고 모자란 나이지만 그냥 나 자신으로 충분히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록산 게이는 자신에 대해 “쿨한 척 하려고 블랙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녔지만 실은 핑크색을 가장 좋아하고, 가끔은 여성을 끔찍하게 표현한 노래에 엉덩이를 흔들기도 하고 때로는 정비공이나 수리 기사에게 마초 대접을 해주면 내게 이익이라는 것을 알기에 일부러 더 멍청한 척을 하는 그런 여자”라고 말한다.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나쁜 페미니스트’(Bad Feminist)라고 말한다. 즉, 이 ‘나쁜’은 ‘도덕적으로 잘못된’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은, 부족한’의 의미이다.
우리들 다수는 이렇게 인간적인 약점과 모순을 지닌 ‘나쁜’ 페미니스트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 선언은 커다란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페미니즘을 학문적으로 상세하게 모른다 해도, 매사에 논리정연하게 여성주의적 사고에 입각하여 살지 못해도 남녀의 평등을 믿고 그렇게 살고자 하면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
아이티계 이민자, 중산층 흑인여성으로서
<나쁜 페미니스트>(사이행성, 2016)는 록산 게이가 ‘나쁜 페미니스트’로서 바라본 미국사회와 문화에 대한 비평서이다. 로빈 씨크의 히트곡 <블러드 라인>의 노래 가사부터 한국에서도 성공을 거둔 <헬프>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등의 영화, 남자들의 악몽일 듯한 희대의 여성캐릭터 에이미가 등장하는 <나를 찾아줘> 등의 소설, 해나 로진의 <남자의 종말>과 케이틀린 모란의 <진짜 여자가 되는 법> 등의 페미니즘 관련 서적 등등 다양한 텍스트를 분석한다.
또한, 여성의 재생산의 자유부터 비만, 리얼리티 쇼, 인종차별, 성소수자의 커밍아웃 등 미국사회에서 화제가 된 사건들, 록산 게이가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진 사건들에 대한 견해를 제시한다. 크리스 브라운이 여자친구였던 리한나를 폭행한 사건처럼 한국에 알려진 것도 있고, 펜실베니아 주립대 코치 제리 샌더스키의 성폭행 사건처럼 처음 접하는 사건도 있다.
책을 읽을수록 우울한 기시감에 빠졌다. 여성을 비하하거나 ‘성의 도구’로만 보는 노래가사, 집단성폭력 가해자들을 동정 어린 시선으로 보도하는 신문기사, 여성을 학대하고도 제대로 된 벌을 받지 않거나 여전히 인기를 누리는 남성유명인들, 강간을 유머로 삼고 여성혐오적인 행동을 부추기는 코미디언. 이름만 바꾸면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여자로 살기에 팍팍한 현실과 문화적 풍토가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구나 하는 서글픔이 밀려온다.
하지만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재치와 유머가 넘친다. 록산 게이는 여성혐오와 억압, 부당한 차별로 가득 찬 현실에 대해 풍자하며 고발하고, 주의를 환기시키며,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몇 년 전 여름을 달궜던 로빈 씨크의 히트곡 <블러드 라인>이 교묘하게 남성의 욕망을 여성의 욕망인 양 가장하며 이 모든 걸 가볍게 받아들이라고 하는 가사였을 줄이야. 수많은 나라에서 아기를 낳지도 않는 남자들과 정치가들이 낙태의 범위와 방법, 임신 출산의 자유 등 여성의 생식권을 자기들 맘대로 통제하고 있지만, 남자들에게는 몸의 권리에 대한 제약이 있던가. 아직까지도 여성은 ‘인간’으로서 제대로 인정조차 받지 못한다는 구절도 뼈아프게 다가왔다. 남성에게 학대를 당해도, 집단성폭력을 당해도, 피해자인 여성의 목소리는 지워져 있고 가해자만 감싸는 현실에 대한 비판 역시 예리하다.
▶ <나쁜 페미니스트>의 저자 록산 게이.
이 책이 주는 재미와 매력의 상당 부분은 작가의 날카로운 논리, 영리한 재치와 더불어 솔직함에 있다. “자신의 의도는 숨기고 객관성이라는 가면 뒤에 숨고자 하는 비평”과 달리, 록산 게이는 숨겨진 의도나 자기방어 없이 자신의 모습을 솔직히 보여준다. 청소년 시절 겪은 고통스러운 성폭력의 기억과 그 그림자를 담담하게 서술하는 것부터, TV의 온갖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푹 빠져 모조리 챙겨보며 여성혐오적인 가사지만 신난다고 랩 음악을 듣다가 자신의 취향을 부끄러워하는 등, 지적 과시나 위선적인 체면 차리기 따윈 없다. 어찌나 친근하게 느껴지는지 때때로 이 언니가 실은 엄청나게 똑똑한 고학력자 교수님이라는 걸 잊을 지경이다.
이런 솔직함은 페미니스트로 부족한 자신을 드러내고, 아이티계 이민자인 흑인여성이라는 약자로서 살아온 경험을 밝히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안정적인 중산층 가정에서 부모님의 경제적, 정서적 지원 아래에서 성장해 온 스스로의 특권 역시 직시한다. 인간이 복잡하고 모순에 찬 존재라는 사실을 알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건
책을 읽다가 신기하게 느껴진 것이 있는데, 록산 게이에게 있어서 ‘인간’은 정말 모든 인간이라는 점이다. 여성, 흑인, 성소수자, 장애인 등 조금만 달라도 ‘인간’의 틀 밖으로 밀려나가는 존재들이 얼마나 많은가. 당연하게도 이들 모두는 ‘인간’이기에 스스로의 삶을 살 권리를 지닌다.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삶이 나아지기를 바라고, 더 많은 것을 바랄 수도 있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고, 빼앗기거나 침범당하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는 메시지가 책 속에서 일관되게 전해진다. 록산 게이에게 있어 페미니즘이란 이런 것이다.
페미니스트가 되는 일은 어려운 듯 쉽고 쉬운 듯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사방에 걸려 넘어질 수 있는 함정이 너무 많다. “페미나치” 운운하는 지독하게 부당한 비난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진영 안에도 생각의 차이와 서로에 대한 편견으로 이견이 분분하다. 게다가 페미니스트들이 실수하기를 호시탐탐 기다리는 듯한 외부의 시선은 또 어떻고! 오죽하면 얼마 전 미국의 쇼프로그램 SNL에서는 여성을 위한 찬가를 만들면서 ‘이건 페미니즘 노래가 아니야’라고 노래하는 코미디를 했을까.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건 이렇게 사방의 공격과 높은 기대치를 견디어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그러나 한편으로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건 자신의 몸과 삶에 대해 권리를 갖는다는 것,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쁜 페미니스트’, 불완전하고 부족하지만 페미니스트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바로 여기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 안경 쓴 젊은 여자란 이유로 택시에 승차거부를 당한 일, 혼자 여행을 가거나 밤길을 걸을 때 두려워하며 주위를 살필 수밖에 없는 마음. 이런 크고 작은 일상의 경험들이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고 우리를, 그리고 사회를 바꾸어나가기를 꿈꾸며, “페미니스트가 아예 아닌 것보다는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는 편이 훨씬 낫다고 믿으며” 우리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자. ▣ 김혜림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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