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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수행에서 만난 나 “나는 아귀였다”

<여자가 쓰는 집과 밥 이야기> 집에 이르기까지②



※ <학교종이 땡땡땡>, <남자의 결혼 여자의 이혼>을 집필한 김혜련 작가의 새 연재가 시작됩니다. 여자가 쓰는 일상의 이야기, 삶의 근원적 의미를 찾는 여정과 깨달음, 즐거움에 대한 칼럼입니다. -편집자 주

  

‘나는 아름답고 고귀한 사람이 될 거야’

 

세상 것들을 놓아버리고 세상보다 더 높고 위대한 그 무엇, 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어떤 정신의 세계를 찾아서 지리산으로 들어갔던 나는 만 사 년의 수행 끝에서 그만 자신과 ‘딱’ 마주쳐 버렸다.

 

그토록 간절하게 수행을 원하는 나. ‘스스로 충만한 자’가 되고 싶은 나. 매일 명상을 하고 산을 오르며 기도하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나. 수련원 사람들에게 보살 같은 행위를 하며 만면에 자비의 미소를 짓는 나. 깨달음에 이르겠다고 그렇게 열심인 내가 ‘누구인지’ 딱 드러나 버렸다.


▶ 지리산 벽소령에 있던 수련원의 암자   ⓒ김혜련

 

그건 다름 아닌 한 마리 ‘아귀’(餓鬼)였다.

 

그 ‘아귀’가 때로는 울며, 때로는 평화로이 미소 지으며 그 모든 짓을 하고 있었다. 사랑을 구걸하며 두려움에 떨던 내면의 ‘거지’가 아름다운 ‘보살’쯤 되어 있을 거라고 믿었던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거대한 아귀’였다. 아무리 먹어도 배가 고파 계속 먹어대는 아귀. 세상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도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입가에 피를 가득 묻히고서도 “배고파~”를 연발하는 아귀 말이다.

 

이 깨달음의 충격은 너무도 깊고 전격적인 것이라서 피해갈 수 없었다. 내면에 지진이 일어나듯 내 안에서 튀어나온 결핍의 짐승을 난 마주해야했다. 위대하고 고귀한 인간이고 싶었던 내 욕망은 다름 아닌 아귀의 욕망이었던 것이다. 믿어지지 않는 참담한 진실을 속수무책 바라봐야만 했다.

 

매 맞던 아이가 자신과 한 약속, ‘나는 아름답고 고귀한 사람이 될 거야’ 라고 흐느끼며 땅 위에 그리던 작은 천사의 그림 대신 한 마리 아귀가 땅을 가르고 튀어나왔다. ‘거지’에서 ‘보살’로의 존재 전환이 아니라 ‘거지’에서 ‘깡패’가 된 모습. 매 맞던 아이가 때리는 남편(어른)이 되는 것을 그토록 혐오했건만, 내가 바로 그러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한 푼 줍쇼~” 사랑을 구걸하던 거지가 힘을 가지자 세상을 향해 “야, 내 놔!” 거침없이 뺏고, 가장 그럴듯한 자리를 차지하려는 뻔뻔한 깡패가 되어 있었다.

 

‘스스로 온전한 자’가 되어서 세상의 아픈 사람들을 함께 껴안겠다는 그럴듯한 이상주의와 인간다움의 옷을 입고, 세상 것으로는 모자라 ‘세상 아닌 것’을 향해 갔던 나의 실체가 태양 아래 훤히 발가벗겨져 드러났다. 세상의 욕망을 버린 줄 알았으나 더 큰 욕망을 움켜쥐었고, 성공이라는 세상의 사다리를 거부한 줄 알았으나 더 대단한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려고 했던, 뻔뻔하고 어리석은 아귀의 맨 얼굴이 드러났다.

 

갈 곳 없는 막다른 길목에 서다

 

사실, 이 아귀를 만난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삶의 도처에서 문득문득 난 그 아귀를 만났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얼굴 없는 존재,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정체성 없는 존재 ‘가오나시’를 보면서도 저 귀신이 바로 내가 아닐까 의심했다.

 

▶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중에서 끊임없이 허기진 존재 ‘가오나시’

 

수행 초기에도 또한 그 아귀를 얼핏 보았다. 그러나 그때 만났던 아귀는 그저 관념이었을 뿐이었다. 어쩌면 스스로가 아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 때문에 오히려 아귀를 직면하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스스로를 속이는 일은 참으로 다양하고 교묘하다. 자기성찰을 한다는 이유로 자기를 비껴가기도 한다. 자신을 속일 수 없이, 관념이 머리가 아니라 온 몸으로 드러나는 시간, 아귀가 스스로 자신을 다 살아야 하는 시간이 그토록 오래 걸린 건지도 모른다.

 

수련원에서 나는 가장 오랜 수행자가 되어 있었다. 스승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 명상수행이나 ‘의식 정화’와 같은 프로그램을 하러 온 초심자들의 눈에 나는 영락없이 아름다운 영성을 지닌 자비로운 보살 같은 존재였다. 우아하게 명상을 했고, 프로그램의 뛰어난 길잡이였다. 또한 나는 내가 꿈꾸던 영성 공동체의 운영자가 되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나는 내가 원하던 것을 다 이룬 것도 같았다.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서 달라진 것이 없었다. 명상을 통해 잠시 어떤 ‘고요한 깊은 차원’에 이르는 것 같지만 내가 원했던 ‘충만함’이나 ‘평화’는 없었다. ‘흔들리지 않는 고요한 마음의 중심’을 일상 속에서 유지할 수도 없었다. 여전히 나는 외부에 의해 자주 흔들렸다. 삶에 대한 목마름과 두려움도 여전했다. 사람들 앞에서는 “나는 여러분과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수행하는 겁니다” 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안에서는 칼날 같은 자존심이 서 있었다. 조금만 누가 건드려도 파르르 떨었다. 거대해진 것은 ‘자아’였다. 그것도 결핍된 자아.

 

깨달음을 얻겠다는 욕망이 ‘아귀의 욕망’임이 드러나자 수행의 욕망 또한 사라졌다. 아무도 날 내쫓지 않는 지리산을 스스로 쫓기듯이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갈 곳이 없었다. 비로소 이 길에 한 번 들어오면 다시는 못 나간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수행이라는 길이 결코 완성되기 힘든 길이라는 의미뿐만이 아니었다. 세상의 삶에서 실패했든, 스스로 놓아버렸든 ‘입산 수행’이라는 길을 택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퇴로를 차단(당)한 사람들이었다. 세상에 남겨 놓은 끈이 없었다. 갈 곳 없는 막다른 길목이 여기였다. 그래서 많은 수행자들이 신비한 능력 하나 잡고서 ‘괴물’이 되어가거나 아니면 ‘폐물’이 되어가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직장도 버리고, 사람도 버린(?) 내가 갈 곳은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 김혜련.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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