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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고객’ 문제인데 왜 사업장을 규제하냐고?

감정노동의 해법은 기업의 시스템 변화에 있다



‘고객 갑질’, ‘진상고객’ 등이 이슈가 되면서 주로 고객을 응대하는 노동자들의 ‘감정노동’이 사회 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다. 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감정노동자는 8백만 명에 다다르며 전체 임금노동자의 30~40%를 차지한다. 이들 중 다수는 주로 서비스 업종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이고 저임금 직종, 비정규직이 많다.

 

감정노동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소비자 단체들에서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감정노동자를 배려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TV에는 공익광고도 등장했다. 일부 지자체나 공공기관은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이나 매뉴얼을 제작했다.


▶ 녹색소비자연대에서 진행한 “여성감정노동자 인권 개선 캠페인”    ⓒ 녹색소비자연대

 

정부도 작년, 감정노동자 보호법안을 ‘우선 정책 입법 과제’로 삼으면서 19대 국회에 입법안을 제출했지만, 19대 국회 임기 종료를 앞두고 폐기될 운명에 처해 있다.

 

감정노동 문제는 일부 ‘진상고객’의 문제 아냐

 

지난 달 29일과 30일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2016 노동자 건강권 포럼>의 “감정노동과 사회적 합의” 세션에서 감정노동 문제의 해법을 찾는 논의가 진행되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은 “19대 국회에서 고용노동부가 제시한 감정노동 보호 입법안에 대해 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등이 노골적으로 반대했다”고 전했다. 경총과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등 재계는 “감정노동의 문제는 일부 ‘진상고객’의 문제인데 왜 사업장에 규제를 강화하느냐”고 하면서 반발했다는 것.

 

그러나 감정노동은 일부 진상고객과 감정노동자 간의 문제만은 아니다. 감정노동자가 고객으로부터 받는 컴플레인은 바로 ‘기업’이 만들어낸 구조 속에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 ‘감정노동자 보호 입법을 위한 전국네트워크’(이하 감정노동네트워크)가 실시한 “감정노동자, 소비자, 기업 조사 결과”를 살펴보자. 고객이 불만을 갖는 이유에 대해 감정노동자 2천244명 중 24.9%가 ‘고객을 기다리게 해서’, 24.8%가 ‘내가 직접 해결할 권한이 없어 상급자나 타부서로 계속 돌려서’, 22.4%가 ‘고객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제대로 주지 못해서’라고 답했다.

 

‘일어서서 고객을 응대하지 않아서’는 3.8%, ‘고객 응대를 하면서 웃지 않아서’는 8.5%에 불과했다. 감정노동자들도 진상고객은 소수에 불과하며 고객들의 컴플레인이 대부분 정당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일과건강’ 한인임 사무처장은 “감정노동 문제의 해법이 소수의 악성 고객 대응에 맞춰져 있지만, 사실 감정노동자들이 고객으로부터 받는 다수의 컴플레인은 정당한 것이며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는 ‘기업의 시스템’ 문제”라고 말했다.

 

고객의 폭력으로부터도 보호해주지 않는 기업


▶ 2016 공익광고 新놀부전_감정노동자 편   ⓒ공익광고협의회


감정노동자들은 고객 서비스를 제대로 못하는 이유로 ‘일손이 모자라 바빠서’, ‘직무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아서’, ‘너무 다양한 요구를 들어줘야 해서’ 등을 꼽았다. 이는 감정노동이 고객으로부터 유발되기도 하지만, 감정노동자들이 문제 해결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노동 환경 또한 그 요인이라는 것을 뜻한다.

 

또한 조사 결과, 감정노동자들이 고객으로부터 컴플레인을 받을 때 자신을 보호해 주지 않고 그 책임을 노동자 개인에게 떠넘기는 기업의 조치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일부 고객이 욕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할 때 상급자가 오히려 고객 앞에서 모욕을 주거나(41.4%) 고객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사과하게 하는 조치(22.6%) 등이 그것이다. 고객으로부터 컴플레인이 들어왔다는 이유로 인사고과나 임금에 불이익을 주거나(28.8%) 근무 외 시간에 추가로 교육을 시키는(23%) 등의 불이익 조치도 감내하고 있었다.

 

이렇듯 ‘고객 감동’을 우선으로 내세우며 친절 서비스 교육만 강화하는 지금 기업들의 방식으로는 고객의 불만을 제대로 처리할 수도, 감정노동자들을 보호할 수도 없는 셈이다.

 

‘감정노동자 보호는 기업의 책임’ 분명히 해야

 

한편으로 많은 감정노동자들이 ‘노동자 보호를 위해 필요한 사항’으로 ‘악성고객 전담자나 전담 부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인임 사무처장은 “고객의 불만 사항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경력을 가진 사람,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사람이 악성 고객을 응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포럼에서는 감정노동자들에게 ‘악성 고객이 욕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할 때, 피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주로 제조업 노동자들에게만 적용돼 온 ‘작업중지권’이 감정노동자들에게도 필요하다는 것.

 

이미 서울시는 120 다산콜센터 상담원 노동자의 감정노동과 관련해 ‘폭언이나 성희롱이 포함된 전화는 즉시 끊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고대의료원도 <외부인에 의한 병원 폭력에 대한 매뉴얼>에서 “피해자 주변의 직원들은 피해자가 피신할 수 있도록 협조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감정노동자들은 ‘고객을 대하는 중간 중간 쉴 수 있는 짬이 있으면 좋겠다’, ‘정신적으로 힘들 때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고객 컴플레인이 내 인사고과에 반영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등의 의견도 제시하였다. 결국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고 고객의 불만 사항을 처리하기 위한 제대로 된 해법은 기업의 책임 의식과 시스템의 변화인 셈이다.

 

고대의료원의 경우 <외부인에 의한 병원 폭력에 대한 매뉴얼>에서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병원 측의 책임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병원은 외부인에 의한 병원 폭력이 발생되지 않도록 (…) 환자나 환자 보호자가 병원에 대해 과도한 불만을 갖는 상황 (과도한 대기 시간, 설명 부족, 안내 부족, 위험시설 등)을 피하도록 노력해야 하고 (…)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은 환자나 환자 보호자가 방문하는 경우, 해당 직원에게 미리 알리도록 한다.”

 

민주노총은 2014년부터 사업장의 단체협약에 감정노동 관련한 내용이 들어갈 수 있도록 활동하고 있다. 여기에는 ‘회사는 고객대응을 하는 조합원이 긴박한 상황(폭력, 욕설, 성희롱)에 처한 경우에 이를 보호하고, 정상적인 업무에 복귀할 수 있도록 4시간 이상의 휴게 시간을 부여한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

 

또한 ‘회사는 감정노동으로 인한 직무스트레스에 대해 정기적인 검진을 실시하고, 유급 검진 시간을 보장하며 검진에 필요한 비용을 부담한다. 검진 결과는 당사자와 합의 없이 공개할 수 없고, 해당 노동자에 대해 불이익한 처분을 할 수 없다’ 등의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정부가 제출한 ‘감정노동자 보호 입법안’이 빠뜨린 것

 

포럼에서는 한편, 19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계류 중인 고용노동부의 ‘감정노동자 보호 입법안’은 실효성 면에서 미흡한 점이 많다는 지적이 나왔다.

 

고용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법 24조의 2 입법안은 ‘사업주는 근로자가 주로 고객, 환자, 승객 등을 직접 대면하거나 음성 대화 매체 등을 통하여 상대하면서 상품을 판매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업무 관련 스트레스, 고객 등에 의한 폭언, 폭력, 괴롭힘 등을 예방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또 ‘고객 등의 폭언, 폭력, 괴롭힘 등으로 인하여 건강장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업무의 전환, 휴식 시간의 연장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입법안에는 위 사항을 지키지 않았을 경우 기업주에게 벌칙을 주는 조항이 빠져있다. 흔한 과태료 조항마저도 없이 그저 ‘권고’에 그치고 있는 것.

 

이뿐 아니라 감정노동자들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항인 ‘악성고객이 욕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할 때 피할 수 있는 권리’도 명시되지 않았다. 적용 대상의 범위도 문제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이 법안대로 가면 공무원, 공공기관 노동자나 교사는 적용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적용 대상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다.

 

법의 적용 대상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 이성종 감정노동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현재 정부의 입법안대로라면 감정노동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유통서비스 업종의 하청(협력업체, 입점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적용,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도급, 하청, 용역, 위탁 등의 계약 내용과는 별개로 한 사업장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이 적용될 수 있도록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나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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