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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져가는 “따뜻한 시도”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 S와 나의 시도


※ ‘길 위의 음악가’가 되어 새로운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이내의 기록입니다. -편집자 주


 

S와 이야기 나눈 시간들

 

“이제야 돈이 생겨서 이내님 앨범을 살 수 있게 되었어요. 어떻게 구매하면 되나요?”

 

S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가끔 이렇게 앨범을 사고 싶다는 페이스북 메시지를 받으면 보통 우편으로 보내지만, S가 메시지를 보내왔을 때 마침 나는 시간이 많았다. 그녀가 부산의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직접 만나서 드리겠다고 답을 했다.


▲ S가 만든 엽서 시리즈 <얇은 안부> 중에서  ©chaaalk.com


내 앨범의 구매자와 일대일로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는데,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조잘조잘 수다를 엄청 떨었다. S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몸이 안 좋아져서 고향에 내려와 쉬고 있다고 했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씩 해보고 있다며, 혼자서 만든 엽서 세트를 내게 선물해주었다.

 

엽서는 S가 부산의 작은 카페들을 그려서 만든 것이었다. 더욱 놀란 것은 엽서에 딸려있는 “얇은 안부”라는 제목의 아주 작은 책자였다. 그녀가 그린 장소들을 찾아가는 방법과, 자신의 감상, 그리고 이런 저런 글이 실려 있었다. 나는 곧 S의 글 솜씨에 반하게 되었다. 언젠가 무엇이라도 S와 함께 재미난 일들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은 그날 슬쩍 운을 띄워 보았는데, 직장 생활에 질린 그녀는 누군가와 함께 일할 마음이 아직은 없어 보였다.)

 

얼마 후, S는 혼자서 잡지를 만들고 있는데 내 인터뷰를 하고 싶다며 연락을 해왔다. 다시 그녀를 만나 수다를 떨고, 그 내용이 그대로 실려 있는 잡지 “Be More Be Less”를 건네받게 되었다. 언젠가 무엇이라도 그녀와 재미난 일들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커졌다.

 

그리고 마침내! 완월동을 걷고 거기서 나눈 대화를 담는 <주간 불현듯> 프로젝트를 그녀에게 제안했다. 6개월간 우린 거의 매주 만나서 함께 작당을 하게 되었다. <주간 불현듯>은 S의 재능과 도움 없이는 절대 나올 수 없었던 결과물이다.

 

6개월간의 프로젝트가 끝나고, 우린 매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을 그만두기 아쉬워서 그냥 한번 매주 만나보기로 했다. 만나서 나누는 대화는 최근에 겪은 실패담, 도서관에서 빌린 책, 새로 사용하기 시작한 저렴한 만년필 이야기 같은 사소하고 크게 쓸모없는 것들이지만, S와 만나서 수다를 떨고 나면 뭔가 모를 용기가 생겨서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조금 더 자유롭게 조금 더 힘 있게 


▲  S의 무릎에 앉았던 고양이 '시도'    © 이내


올해는 우리가 나누는 작은 작당들에 “따뜻한 시도”라는 이름을 붙여보기로 했다. 나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하는 공연에 그 이름을 내세우기도 했고, S는 두 번째로 만드는 잡지의 주제로 삼아 보겠다고 했다.

 

“따뜻한 시도”라는 이름은 실은 우리가 또 별일 없이 만나던 어느 날, 카페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S의 무릎에서 낮잠을 자는 걸 보다가 생겨났다. 검은색과 흰색 털을 가진 고양이여서 턱시도가 이름이 되어 ‘시도’라고 불리는 아이였다. 고양이가 무릎을 떠나자 S가 “아, 따뜻한 시도!”라고 말했고, 나는 얼른 그 말을 받아 적었다. 벌써 두 번이나 그렇게 우연히 나온 이름이 내 공연 포스터에 글과 이미지로 그려졌다.

 

“따뜻한 시도”라는 이름의 첫 번째 공연은 제주에서 두 명의 다른 음악가와 함께 한 공연이었다. 두 분 모두 내가 정한 공연 제목에 대해 심사숙고해서 공연을 준비해왔다. 공연 중에 서로를 인터뷰하기도 하고, 서로의 노래를 바꿔 부르기도 하고, 즉흥으로 노래를 셋이서 같이 불러보기도 했는데, 그 모든 일은 뭐라도 시도해 봐야 할 것 같은 공연 제목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결과 “따뜻한 시도”는 다채롭고 풍성해졌고 모두가 즐거운 공연이 되었다. 그리고 봄이 오면 세 사람이 함께 다니는 기획 공연을 하기로 의기투합했다.

 

‘모든 시도는 따뜻할 수밖에 없구나!’ 두 번째 “따뜻한 시도” 공연을 하기 전에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라도 무언가를 시작할 때 그것이 처음 해보는 것이라면 당연히 부족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 부족함을 채우는 데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그러므로 모든 시도에는 마음과 마음이 오가는 따뜻함이 전제되어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돌이켜 보면 S와 내가 매주 만나서 한 일은, 하고 싶은 일을 이야기하고 작은 시도라도 격려하고 모자란 부분을 고백하고 서로를 칭찬해주며 각자 할 수 있는 일들을 나눈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생성된 온기가 우리에게 작은 용기를 계속해서 더해 준 것 같다.

 

최근에 우리는 우리의 시도를 가까운 친구들과 나누고 있다. 뜬금없이 재활용 재료를 이용해 손으로 무언가 만들어낼 꿈에 부풀어 매주 기술 연마를 독려하기도 한다. 우리의 수다를 통해 올 해의 “따뜻한 시도”가 어느 장르까지 번져나가게 될 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같은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더 늘어나서 그 따뜻함의 덩어리가 조금씩 커지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  제주도에서 열린  <따뜻한 시도> 공연 중 뮤지션들 서로의 인터뷰 모습.    © 이내

 

덧> S가 새해 인사로 전해준 책의 한 구절에서 우리에게 딱 맞는 구호를 발견하게 되었다. ‘다시, 시작해보자!’

 

“그래서 저항군이 되는 것은 중요해. 저항군들의 구호는 하나야. ‘다시, 시작해보자!’ 그 구호는 필사적이고 절실해야만 해. 그리고 그 구호 아래서 우린 각자에게 별로 존재하는 거야. 우리는 서로에게 미래가 되자. 미래가 되기 위해서 현재에 같이 있는 거야. (…) 해마다 우린 다시 시작하자고 다짐을 하지. 다시 시작하자는 말은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난 것처럼 그런 결단으로 다시 듣고 보고 행해보자는 말이야. ‘다시’라는 말 아름답지? 아름다움의 역사에 가장 먼저 포함시킬 만한 단어야. 우린 몇 번이고 번복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는 거야. 조금 더 자유롭게 조금 더 힘 있게.

 

우리가 맺는 관계가 바뀐다면, 혹은 관계를 맺는 방식을 바꾼다면 세상도 바뀌어, 이건 진리야. (…) 우리 모두가 서로서로 눈을 뜨게 하는 관계로, 서로 쉼터가 되는 관계로, 서로 안고 있는, 서로 팔베개를 해주는 관계로 존재한다면 그 미래는 단지 미래뿐이 아니라 현재와 과거까지도 바꿔놓을 거야. 우리는 손에 손을 잡고 미래를 가리키는 화살표, 이정표가 될 거야. 정말 그런 관계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하나의 관계라기보다는 사건이라고 불러야 할 거야.” -정혜윤 <사생활의 천재들> 중에서


*엽서 시리즈 “얇은 안부” http://chaaalk.com/thingreetings

*잡지 “Be More Be Less” http://chaaalk.com/belessbe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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