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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습자 아홉 명을 찾는 것이 ‘인양’입니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한 시간(5) 
 

 

이제 더위가 한 풀 꺾인 줄 알았는데, 서울 청운동주민센터 앞 사거리의 아스팔트가 뿜어내는 열기에 숨이 턱턱 막혀옵니다. 그래도 사거리 네 모퉁이에서 피켓을 들고 서 있는 우리는 그나마 나무그늘에라도 숨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윤이 부모님이 계신 효자동 삼거리의 분수대 앞에는 손바닥만 한 그늘 하나 없습니다.

 

매일 효자동 삼거리에 피켓을 들고있는 다윤 부모님


▲ 고된 일정으로 건강이 악화된 다윤이 어머니가 서 있을 힘이 없어 벤치에 앉아계신 모습.   © 화사 
 

세월호 인양업체가 선정되었고 준비 작업이 시작되었지만, 정작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에게는 제대로 된 정보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양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고, 인양 과정을 희생자 가족들이 지켜볼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하기 위해 인천으로, 팽목항으로 다니시느라 다윤이 어머니는 건강이 더 악화되었습니다.

 

다윤이 어머니의 몸이 괜찮은지 뵈러 가기 위해서는 몇 겹으로 서 있는 경찰에게 다윤이 부모님을 잠깐 뵙고만 올 거라고 설명하고, 또 약속하고 나서도 사복경찰과 동행해야 합니다.

 

효자동 삼거리 분수대 앞에는 다윤이 아버지가 홀로 피켓을 들고 서 계셨습니다. 다윤이 어머니는 몸이 너무 안 좋아서 벤치에 앉으셨답니다. 관광객들 옆에서 쓰러지기 직전의 모습으로 힘겹게 앉아 계신 다윤이 어머니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곳은 민간인이 청와대에 가장 가깝게 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귀한 막내딸을 시커먼 바다 속에 두고 하루하루 사는 것이 고통인 어머니는 대통령께 호소하기 위해 지난 2월말부터 매일같이 그 불편한 몸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다윤이 어머니는 신경섬유종이라는 병을 앓고 계십니다. 병원에서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태이지만, 가만히 누워있을 수 없어서 약으로 연명하며 거리에 나와 계시는 겁니다. 가끔씩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하지만, 어떻게든 다윤이를 만나기 위해 피켓을 들고 이곳으로 오십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인 관광객들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그 곳에 우리는 다윤이 부모님을 응원하러 갈 수 없습니다. 경찰이 유가족과 만나는 걸 막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린 다윤이 부모님과 가장 가까운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라도 법으로 보장받는 일인시위를 하기 위해 거리를 두고 한명씩 섭니다.

 

유가족과 몇몇의 시민들이 함께해주지만, 어떤 날은 아무도 없이 경찰에 둘러싸인 청와대 앞 분수대에 다윤이 부모님만 계실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청운동과 홍대 앞에서 병든 부모가 구할 수 없었던 자녀의 사진을 앞에 두고 벌을 서고 계십니다.

 

“아이들이 아직도 세월호에 있습니다”

 

또 다른 미수습자인 은화의 부모님은 간담회를 하러 전국을 돌아다닙니다. “세월호가 아니었으면 몰랐어도 되었을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울고불고 우리 아이들 찾아달라고 부르짖기를 수도 없이” 하신 은화 부모님의 마음은 상처로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가장 힘든 고통을 겪고 있는 피해자인데, 사죄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자식을 찾아달라고 빌러 다녀야 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비참합니다. 세월호에서 똑같이 아이를 잃었지만, 미수습자 가족들은 진상 규명을 주장할 수도 없었습니다. 아이가 영영 올라오지 못할까봐 두려워서, 아이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국가권력에 빌고 또 빌어야 하는 심정을 누가 알 수 있을까요.

 

▲  2015년 8월 16일 마포 민중의집에서 열린 미수습자 가족 간담회.   © 사진: 너굴뽕너굴 
  

지난 8월 16일에 마포 민중의 집에서 미수습자 가족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매달 16일마다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모임을 이어왔는데, 8월에는 미수습자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마련한 것입니다. 두 시간 동안 다윤이 부모님, 은화 부모님과 416연대의 ‘미수습자 수습과 선체인양 위원회’의 양한웅 위원장님이 함께했습니다.

 

먼저 입을 연 다윤이 아버지의 얼굴엔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광화문에 있는 세월호 광장에서 뵈어온 다윤이 아버지는 힘들어도 절대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필요한 일들을 챙겼습니다. 무더웠던 한여름, 다윤이와 미수습자들의 얼굴이 인쇄된 피켓을 들고 몇 시간을 앉지도 않고 서계시던 다윤이 아버지는 어떤 일이든 항상 웃음으로 넘기는 분입니다.

 

“아직 세월호에는 아홉 명의 미수습자, 가족,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아무 이유 없이 죽어갔고, 세상은 외면했습니다. 살려달라고, 엄마, 아빠. 그 한마디 울부짖으며 죽어간 우리의 아이들, 가족들이 아직도 세월호에 있습니다. 잘못한 것을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고 산다면, 그 누군가는 또 아파해야 하고 또 울게 될 것입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외쳐주시기를 바랍니다.”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 한 번 안 하고 약한 모습 보이지 않았을 것 같은 다윤이 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준비하기까지 얼마나 고심하셨을지 조금 알 것 같아 마음이 더 아팠습니다.

 

‘유가족이 되고 싶다’는 미수습자 가족들

 

다윤이 어머니가 말씀을 시작하자, 간담회장 안이 울음바다가 되었습니다. 한 마디 한 마디에서 깊은 고통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성치 못한 몸으로 거리에 나왔던 수많은 시간동안 얼마나 답답하고 원통했을 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 이 현실에 너무나 힘이 듭니다. 그냥 죽었으면… 미쳐버렸으면 좋겠지만…. 세월호 안에 있는 딸이 나올 것만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버티며 살고 있습니다. 아직 그 곳에 있는 제 딸을 빨리 만나고 싶습니다. 그곳에 아이를 두고 저희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아이를 잃은 유가족들, 얼마나 큰 고통 속에 있는지 잘 압니다. 근데도 저는 아프고 고통 속에 있는 그 부모님들이 너무 부럽습니다. 우리 미수습자 가족의 꿈은 우리도 유가족이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정부에서 인양 발표는 했지만, 우리가 바라는 인양은 세월호 배가 온전하게 뭍으로 올라오고, 거기서 아홉 명의 미수습자들이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세월호 속에 우리 가족들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계십니다. 우리가 유가족이 될 수 있도록 여러분이 도와주세요.”

 

세월호 304명의 희생자 가족 중 누구하나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겠지만, 그중에서도 미수습자 가족들은 ‘유가족’이 되는 게 꿈이라고 말하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있습니다. 국가가 제 할 일을 안 해서 국민이 바다 속에서 16개월 동안 유기되어 있고,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미안해야 하는 이 이상한 형국은 어떤 말로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   2015년 8월 24일 효자동 삼거리 앞 피켓을 들고 계신 다윤이 아버지.   © 화사 
  

딸이 나올 것만 생각하며 하루하루 버텨 온 시간

 

전국을 다니며 미수습자 인양을 호소해 온 은화 아버지도 어렵게 입을 여셨습니다.

 

“은화가 보고 싶습니다. 곧 500일이라고 하는데, 우리에게는 500일도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도 우리 아이가 왜 죽었는지 알고 싶고, 아쉽고 힘든 것도 많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아이가 올라오지 못할까봐 이렇게 전국을 다니며 사정할 뿐입니다. 내 자식이 진도 앞바다에 있는데, 어떻게 인양을 안 하고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놓고는 이 나라에서 살 수 없습니다. 너무 힘이 들지만, 우리 미수습자 아홉 명만 올라오면 이렇게까지 힘겹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께서 힘들더라도 끝까지 같이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해수부 장관 앞에서도 무릎 꿇어봤고, 해경청장 앞에서도 무릎 꿇어봤고, 잠수사들 앞에서도 사정”해가며 1년 4개월을 어디서든 애원하고 빌며, 마음이 많이 다쳐서 건강에까지 문제가 생긴 은화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세월호 속이 어떤지 아십니까? 한 달만 작업을 안 해도 뻘이 1~2미터가 쌓이는 곳입니다. 세월호 그 곳에 어떤 냄새가 나는지 아세요? 시궁창 냄새가 납니다. 지난 9월에 수습 작업할 때 가져온 캐리어를 열었을 때, 그 냄새가 너무 지독해서 맡지를 못해서 바로 고개를 돌렸는데. 그런 데에 아홉 명이 있습니다. 거기에 내 딸이 있다고요, 지금. 정확히 있다 없다 확답도 못합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전국을 헤매야 될지 모르구요, 얼마나 더 울고 다녀야 되는지 모릅니다.”

 

은화 어머니는 여태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온전한 인양이 이루어질지 불안과 걱정을 토로하셨습니다.

 

“배가 안 올라올까봐, 은화가 안 올라올까봐 두려워서…. 이 현실이, 정말 언제까지, 언제까지 아파해야 하는지… 오백일이 아니라 천일을 넘길까봐 정말 무서워 죽겠습니다. 불치병을 앓고 있는 다윤이 엄마가 왜 길바닥을 헤매고 다니고, 왜 우리가 전국을 다니며 빌고 빌어야 하는 건지… 자식을 살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죽은 자식을 살려내라는 것도 아니고, 내 자식 볼 수 있게 꺼내달라는 것뿐인데….

 

그냥 죽고 싶은데… 내 딸을 꺼내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죽지도 못하고 살고 있다구요. 살고 싶지도 않은데… 이런 세상에 살고 싶지도 않은데… 우리 딸이 엄마보다 더 아프고 힘들기 때문에, 우리 딸이 살려달라고 했을 때 아무것도 못했기 때문에… 겁도 많고, 엄마라고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던 아이인데, 얼마나 무서워서 바들바들 떨었겠냐구요. 얼마나 공포스러웠겠냐구요.”

 

인양 과정에 관심을 가져주세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합니다. 이제 그만 하라고, 세월호 얘기 지겹다고, 유가족들 보상도 많이 받는데 그만 좀 하라고. 하지만 눈앞에서 죽어가는 가족을 보는 애통함과, 세상의 계속된 외면과, 진심을 왜곡하고 공격받아 상처받은 마음은 돈으로, 그 무엇으로도 치유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미수습자 가족들은 유가족도 못 되어서 가족의 죽음을 스스로 ‘증명’해내야 합니다. 마포에서 간담회가 열린 16일에 방송인 김제동씨가 안산에서 유가족과 함께 하는 식사 자리를 마련했을 때에도, 미수습자 가족은 ‘유가족’이 아니라서 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가장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는 사람들이 바로 미수습자 가족들인 것입니다.

 

‘수사 과정을 유족들과 철저하게 모두 공유하여 유족들의 뜻이 반영되게 하겠다’, ‘시신 유실이 안 되게 하는 것에 최대한 관심을 갖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인양을 비롯한 문제는 유족 여러분과 의논하겠다’라고 대통령은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약속했습니다. 지난 11월 수습 작업을 마치기로 하면서 해수부 역시 세월호 유실방지 대책을 약속했지만, 대다수의 창문을 막아놓지도 않아 오히려 유실을 방치했습니다.

 

세월호 인양도 희생자 가족들의 호소와 국민 여론으로 간신히 결정되었지만, 인양업체 선정 과정에서도 희생자 가족들은 배제되었습니다. 해수부는 수중조사 첫날부터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와 일정을 공유하지 않았고, 요구한 서류도 부실하게 제출했습니다. 게다가 인양에 문제가 생겨도 정부는 책임이 없고 인양을 맡은 중국 상하이샐비지가 인양과 관련된 모든 책임을 진다고 하니, 미수습자 가족들의 불안과 걱정은 정당한 것이 아닐까요?

 

▲  홍대입구 앞,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며 피켓팅을 함께해주신 분들. (2015년 8월 24일)    © 화사 
  

요즘 카카오톡 친구 12명에게 보내라는 이상한 메시지가 떠돌고 있습니다. 특조위의 예산에서 ‘공무원봉급표’에 정해진 대로 책정한 부분을 두고 꼬투리를 잡아 ‘세월호 조사를 핑계로 국민혈세 흥청망청 쓰겠다는 것’이라고 매도하는 내용입니다.

 

몇 주 전부터 특조위 예산을 문제 삼는 왜곡 보도가 종편을 중심으로 계속되었고,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특조위 예산을 반토막 냈습니다. 이제는 ‘국민의 혈세 낭비를 막자’며 ‘무슨 애도를 일 년 넘게 한다고, 정말 기가 막힌다’라는 메시지가 퍼져가는 걸 보면, 지난 대선에 있었던 국정원의 댓글조작 사건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은화 어머니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우리 딸을 수학여행 보낸 거지 세월호 속으로 보낸 게 아닙니다. 거기, 그 어둡고 지저분하고 뻘 많은 데서, 몇 개월 동안 있었을 그 아이 아픔을 생각하면 살 수가 없습니다. 세월호 하루라도 빨리 올릴 수 있도록, 만나는 많은 분들께 ‘인양 결정했어’, ‘업체 들어갔어’가 아니라, ‘들어가서 아홉 명을 찾는 게 인양’이라고, ‘그 사람들 그렇게 되리라고 상상 안 했다가 그렇게 됐듯이, 나 또한 언제든지 그렇게 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해주세요. 세월호 빨리 인양될 수 있도록 힘을 주시기 바랍니다.”

 

아직 바다 속에는 단원고 학생 조은화, 허다윤, 남현철, 박영인과 단원고 교사 양승진 선생님, 고창석 선생님, 그리고 일반인 승객인 이영숙씨, 권재근씨와 그의 아들 혁규가 있습니다.

 

“도와주세요.”

 

다윤 어머니의 그 한 마디에 실린 간절함의 무게가 제 가슴 속에 먹먹함으로 남아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고,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사람들에게 미수습자들과 그 가족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그리고 인양 과정에 관심 가져 주세요. 미수습자를 인양하지 못하고 진실을 인양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국민들이 떠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사는 나라가 될 것 같습니다. 세월호가 가라앉는 것은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이 나라가 계속 가라앉는 것은 보고만 있지 말아주세요!

 

* 다윤이 부모님은 월~토요일 오전 11시 30분~오후 12시 30분까지 효자동 삼거리, 오후 2시~3시 30분(토요일은 4시)까지 홍대입구역에서 피켓팅을 하십니다. 다윤이 부모님 곁에서 함께 해주실 분들은 오전 11시 30분 청운동주민센터, 오후 2시 홍대입구역 8번 출구로 오시면 됩니다.   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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