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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공화국’ 보행자의 위험한 일상
<죽음연습> 교통강자의 주의와 배려가 필요한 때 

 

<철학하는 일상>의 저자 이경신님의 연재 ‘죽음연습’. 필자는 의료화된 사회에서 '좋은 죽음'이 가능한지 탐색 중이며, 잘 늙고 잘 죽는 것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참혹한 교통사고와 관련한 기억 둘

 

한여름의 무덥고 습한 공기를 가로지르는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는 20여 년 전 여름날의 불편한 기억을 되살려놓는다. 1990년대 중반이었을 것이다. 찜통더위로 고통스러웠던 여름 어느 날, 어머니가 앰뷸런스에 실려 도착한 대학병원 응급실. 위급한 환자들로 가득 찬 그곳은 뒤죽박죽 북새통이었고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머니 바로 옆 침상에는 고속도로에서 자가용을 몰던 중 사고를 당한 30대 초반의 여성이 누워 있었다. 어머니 침대와 그 여성의 침대 사이에는 얇은 막이 놓여져 있어 환자의 모습을 볼 순 없었다. 다만, 그녀의 침대 아래 받쳐둔 세수대야에는 피가 쉴 새 없이 떨어져 내렸다. 신경을 거슬리는 피 떨어지는 소리, 역한 피비린내, 견디기 어려운 응급실 열기…. 청각, 후각, 시각, 촉각을 자극하던 그날 응급실에서의 경험은 대부분 잊혔지만, 소름 끼치는 느낌만은 아직도 생생하다. 몇 시간 후, 사고를 당한 여성은 숨을 거두었다.

 

이 날의 기억은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또 다른 기억을 붙들고 온다. 아마 아홉 살이나 열 살 때의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린이날, 놀이공원 근처였다는 것만은 분명히 기억할 수 있다. 할머니와 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택시에 오르자마자 뒷좌석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바로 그때였다. 손수레를 끌고 가던 남자와 대형트럭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남자의 머리가 깨져서 피가 쏟아져 도로에 흘러내렸다. 시각적으로 선명하고도 강렬한, 참혹한 광경 앞에 난 그대로 얼어붙어 시선을 돌리지도 못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머리 속 깊이 각인된 피 튀는 장면을 도저히 잊을 수 없어 괴로웠다. 그 충격으로 한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다. 긴 세월이 흐른 지금, 그 끔찍한 장면을 세세히 떠올릴 수 없어 다행이다. 하지만 지금도 가물가물,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던 광경이 이해하기 어려운 추상화 장면처럼 어른거린다.

 

이 오래된 기억들은 내 속에 교통사고에 대한 뿌리 깊은 공포를 심어주었다. 안타까운 것은 과거에 그랬듯 지금도 여전히 우리 중 누군가는 교통사고의 희생양이 될 수 있는 현실이다.

 

보행자의 부주의 탓?

 

▲  우리나라의 경우, ‘보행 중 교통사고 사망률이 높다’.   ©일다 
 

우리나라 교통사고 실태를 살펴보면, 2000년 1만236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이래 사망자가 꾸준히 줄어들어 2014년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4천762명에서 멈췄다. 최근 발간된 ‘2015년판 교통사고 통계’에 의하면, 인구 10만 명당 9.4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마침내 교통사고 사망자가 5천명 이하로 떨어졌고, 40년 만에 처음으로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10만명 당 한 자릿수에 이르렀다고 기뻐하는 눈치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교통사고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1,2위를 다툴 정도로 여전히 높기만 하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경우, ‘보행 중 교통사고 사망률이 높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OECE 평균을 훨씬 웃도는 수치로 2013년에 약 39%였던 것이 오히려 작년에 40.1%로 증가했다. 보행자의 교통사고 사망률이 높을 뿐만 아니라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CBS 노컷뉴스 2월 11일자 기사가 전하는 올해 초 한 달간 교통사고 분석에 의하면, 보행자의 주거 지역 1km이내 큰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집중되었고, 무엇보다 보행자 부주의로 인한 사망이 55.3%다. 기자는 “주변 지리를 잘 안다는 자만심과 교통신호 및 횡단보도를 무시하고 빨리 가려는 심리 상태가 뒤섞여 무단횡단이 사망사고로 이어진 것”이라는 경찰의 말을 덧붙였다. 교통사고의 여러 원인 가운데 보행자의 부주의를 부각시킨 기사다.

 

또 머니투데이의 2015년 3월 9일자 기사는 서울시가 2015년 교통사고를 줄이는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2014년 12월부터 2015년 1월 사이의 교통사고를 분석한 후, 야간 시간대(18시에서 새벽 6시까지)의 무단횡단으로 인한 사망, 특히 60대 이상의 보행자 사망, 택시에 의한 사망이 두드러진다고 발표한 바를 전한다. 서울시는 무단횡단 단속, 무단횡단 방지 울타리 설치, 노인을 위한 안전 교육, 택시 기사의 안전운행 교육 등을 대책으로 내놓았다고 한다. 언제나 그렇듯, ‘보행자가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결국 보행자가 무단 횡단을 해서 교통사망사고가 주로 발생하니까, 보행자가 교통신호를 지키고 횡단보도를 이용하는 것으로 보행자 교통사고의 높은 사망률을 낮출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해법을 교통약자인 ‘보행자의 주의’에 두는 한 교통사고를 근본적으로 줄이는 데 한계가 있어 보인다.

 

서울시가 전하듯, 보행자 교통사고가 전체 교통사고의 70% 정도이고 그 중 무단 횡단에 의한 것이 절반 정도라면, 무단 횡단으로 인한 교통사망사고는 약 35% 정도가 된다. 그렇다면 나머지 65%는 무단 횡단하지 않은 보행자의 사고와 차량, 오토바이, 자전거 등의 사고임을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교통사망사고를 줄이는 데 보행자가 주의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며, 오히려 차량 운전자가 주의할 때 비로소 전체 교통사망사고를 줄일 수 있다는 결론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

 

“차량 운전자, 교통사고 가해자의 천국”

 

나만해도 횡단보도 앞에 서면 항상 긴장하게 된다. 보행자 신호기가 없는 횡단보도 앞에서는 길 건너기가 두렵다. 도로를 건널 의사가 있건 없건, 횡단보도 앞에만 서면 차들이 당연히 멈추는 곳에서 지내보았던 경험이 이 땅에서 보행자로 사는 삶을 더욱 고달프고 불안하게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는 횡단보도 앞에 서 있어도 보행자 신호기가 없으면 ‘일단 정지’하는 차는 거의 없다. ‘횡단보도 앞 일단 정지’는 운전교습소, 운전시험 때만 유효할 뿐, 현실 속에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길을 건너겠다는 신호를 보내도 차는 슬금슬금 계속 앞으로 나오거나 아니면 아랑곳하지 않고 마구 질주한다. 재빠르게 달리는 차량 속을 성큼성큼 가로지를 용기가 없는 나는 오고 가는 차량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횡단보도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을 때가 많다.

 

심지어 횡단보도를 건너는 중에도 차는 멈추지 않는다. 내 앞에서 오히려 가속페달을 밟는 차들로 인해 횡단보도 중간에 갇힌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신호기 없는 횡단보도를 하루에 최소 두 번은 건너야 하는 일상에서 긴장과 불안, 두려움을 떨칠 수 없어 짜증과 분노가 따라다녔다.

 

내가 매일 건너 다니는 횡단보도 건널목은 스쿨존에 해당된다. 이곳에서 교통사망사고가 일어나자 건널목(보행자 신호기 없는), 보행자 방호 울타리를 설치했다. 그러다가 최근 횡단보도에 보행자 신호기가 설치되었다. 신호 주기를 짧게 조정해서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파란불로 바뀐다. 그동안 횡단보도를 마음 편히 건널 수 없었던 나 같은 보행자는 그나마 파란불 덕분에 도로를 당당히 건널 수 있어 상황이 좀 나아지긴 했다. 하지만 파란불에도 눈치 보며 잽싸게 내달리는 택시, 버스, 자가용 등의 차량 운전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파란불이라고 해서 마냥 주의를 늦출 순 없다.

 

보행자가 교통법규를 지키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보행자는 교통약자다. 특히 “노인, 어린이, 장애인”은 교통약자 중 약자이다. 우리나라에서 보행 중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주로 노인과 어린이다. 교통강자의 주의를 요구하기에 앞서 교통약자에게 주의를 요구하는 일은 앞뒤가 바뀌었다. 또 교통약자에게 주의를 요구하기에 앞서 배려부터 할 일이다.

 

횡단보도 앞에서 모든 차가 정지선을 지켜 ‘일단 정지’를 하는 사회, 육교나 지하도로 보행자를 내몰지 않고 횡단보도 접근성이 높은 안전한 사회라면, (극소수의 무모한 사람은 논외로 하고) 보행자 교통사고는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무단 횡단하지 않는 보행자도 신호기 없는 횡단보도뿐만 아니라 신호기 있는 횡단보도 역시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건너지 않으면 정지선을 예사로 넘어오는 차량에 의해 사고를 당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 보행자의 진짜 현실이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의 숫자가 줄어들었다고 해서 교통사고 피해자가 줄어들었다고 할 수 없다. 우리나라 장애인의 90%는 교통사고로 인해 장애를 갖게 된 것이라고 하니, 그 숫자가 어느 정도인지, 늘어나는 추세인지 줄어드는 추세인지도 한번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누구의 말대로, 우리나라는 “차량 운전자, 교통사고 가해자의 천국”이다. 그래서 도로안전교육, 도로교통정책이 ‘교통강자의 주의와 교통약자에 대한 배려’에서 출발하기보다는 거꾸로 ‘교통강자에 대한 배려와 교통약자의 주의’를 요구하는 것이다.

 

안전교육은 뒷전, 속도만 앞세우는 사회  

 

교통사고를 개개인의 문제만으로 몰아세울 수 없다. 법과 제도, 정책이 교통강자, 교통가해자와 공모하는 사회에서 교통사고는 영원할 것이다. 1999년에 자가용 천만대 시대에 돌입했지만, 차량 운전자, 교통사고 가해자에게 유리한 법과 제도, 정책으로 일관해 왔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서울신문 2014년 5월 26일자 기사에서 “보험이 교통사고의 면죄부” 역할을 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교통사고 처리 특례법의 11가지 중과실 사고를 제외한 다른 사고는 보험회사가 개입해 정리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게다가 교통사고 과태료, 범칙금은 20년 수준에서 거의 동결된 상태라고 한다. 교통사고 벌금이 비싸서 차들이 보행자 위주의 안전운전을 하는 영국과 같은 유럽의 상황과 우리나라의 상황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난다.

 

한심스러운 일은 차량 운전자를 대상으로 한 체계적인 교통안전 교육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너도 나도 도로에 나가면 난폭운전, 무법자로 전락한다. 어릴 때부터 교통안전 교육이 필요하다는 전문가의 지적은 참으로 중요하다. 보행자, 교통약자를 우선적으로 보호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은 어릴 때부터 키워질 필요가 있다. 자가용을 운전하기에 앞서 어린 시절 자전거 교육에서부터 안전교육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어린이의 자전거 타기가 어른의 난폭운전과 꼭 닮아 있다. 나이가 들수록, 교통강자가 될수록, 운전 경력이 쌓일수록 안전운전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현실을 다 함께 직시해야 할 때다.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속도전 분위기까지 더해져 우리나라는 ‘교통사고 공화국’이 되었다. 교통사고 사망 사건의 70% 정도가 안전운전 의무 위반으로 발생하고, ‘과속’으로 인한 교통사고 사망 사건이 25%나 증가했다고 한다. 속도전의 희생자는 보행자만이 아니다. 자동차 운전자, 오토바이 운전자, 자전거 운전자도 예외일 수 없다.

 

유감스럽게도 보행자에게 안전한 곳은 없다. 도로에서는 차량이, 인도에서는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마구 내달리는 곳에서 바짝 긴장해야 한다. 항상 약자가 조심하기를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길거리에서도 변함없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래도 작은 변화가 계속된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 동네 대로를 가로질러 버티고 있던 거대한 육교가 사라졌다. 철거 공사는 막바지에 접어들었고, 육교가 사라진 곳에는 횡단보도가 생겨났다.

 

언젠가 교통사고 공포증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  이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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