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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파괴가 낳은 신종 전염병의 위협
[죽음연습] 메르스(MERS)가 이끄는 사색
<철학하는 일상>의 저자 이경신님의 연재 ‘죽음연습’. 필자는 의료화된 사회에서 '좋은 죽음'이 가능한지 탐색 중이며, 잘 늙고 잘 죽는 것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오전에 한 통의 문자가 받았다. 우리 시의 메르스(MERS, 중동 호흡기 증후군) 확진환자 ‘제로’를 알리는, 시장 이름으로 보내온 문자였다.
지난 5월 말 중동에서 메르스에 감염된 환자가 입국해 병원 치료를 받은 이래, 병원 내에 바이러스가 전파되어 감염환자가 하나둘 늘어났다. 사람들은 낯선 전염병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나만 해도, 죽은 사람은 있는지, 확진환자는 얼마나 늘어났는지, 격리된 사람의 수는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마스크는 착용하지 않았지만 외출하고 돌아와서는 열심히 손을 닦았다. 그리고 사람이 과도하게 모이는 장소는 피했다. 한 달이 넘도록 영화관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거리에서건, 버스나 전철 안에서건, 입을 가리지 않은 채 기침, 재채기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비난의 눈초리가 쏟아졌다. 정부와 병원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시민의식의 부재까지 더해져서 바이러스가 세계 그 어느 곳보다 쉽게 전파되었다는 소식에 분통을 터트렸다. 격리로 발목이 붙들린 사람들은 생활 속의 불편함, 갑갑함을 넘어 경제활동의 중단까지도 감수해야 했다. 지난 40여 일 동안 개개인의 일상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전염병으로 인해 크고 작은 변화를 겪었다.
메르스가 완전히 종식되었다는 이야기는 아직 없다. 메르스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 현재 치료중인 사람, 격리된 채 지내는 사람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으로 복귀하는 모습이다.
메르스가 떠났건 아니건, 이후 우리가 메르스를 잊건 말건, 전염병은 우리 곁으로 되돌아올 것이 분명하다. 메르스처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신종 전염병으로 소스라치게 놀랄 수도 있고, 생각보다 자주 전염병이 들이닥칠지도 모르겠다. 한꺼번에 떼로 몰려올 수도 있다고 상상하니 아찔하다. 인류가 전염병의 위협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근거 없는 것만도 아니다. 클라이브 폰팅이 <녹색 세계사>(그물코, 2007)에서 짚어주는 인류 질병사의 교훈이 그렇다.
인간, 동물로부터 병을 얻다
▲ 클라이브 폰팅 저, 이진아·김정민 역 <녹색세계사>
뉴스에 의하면, 메르스는 낙타에서 전파된 병이라고 한다. 이렇게 동물에게서 인간이 병을 얻은 것이 역사 속에서는 낯설지 않다.
“천연두는 우두와 매우 비슷하며, 홍역은 우역이나 강아지 전염병과 비슷하다. 결핵과 디프테리아는 소에게서 나왔다. 인플루엔자는 인간과 돼지, 조류에게서 흔히 나타나며, 보통 감기라고 부르는 것도 말에게서 나온 것이다. 나병은 물소에게서 나왔다. 거의 1 만년을 동물과 가까이 하며 살아온 사람들은 개와는 65종의 병을 공유하고 소와는 50종, 양과 염소와는 46종, 돼지와는 42종, 말과는 35종, 가금류와는 26종의 병을 공유하고 있다.” -클라이브 폰팅 <녹색세계사> “10장 병과 죽음” 중에서
클라이브 폰팅에 의하면, 인간이 수렵생활에서 농경생활로 전환하고 정착생활로 들어가면서 가축화한 동물로부터 다양한 질병을 얻게 된다. 도시화가 진행되고 인구 밀도가 높아짐에 따라 인간이 동물로부터 병을 얻을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천연두와 홍역과 같은 병은 일정 수의 인간만 있으면 다른 매개숙주 없이도 전염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교역, 여행과 같이 인간들 간의 교류가 늘어나면서 전염병은 확산되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설치류와 쥐벼룩에 감염된 박테리아로 생긴 ‘흑사병’을 들 수 있다. 흑사병은 14세기 중반에 시작해서 350년 동안 유럽을 혼란과 고통으로 몰아넣고 17세기 중반에야 사라졌다.
흑사병만이 아니라 천연두, 홍역, 발진티푸스 같은 유라시아 병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서 그곳 원주민을 거의 몰살시키는 대재앙이 되었다. 가축이 없이 살았던 아즈텍 문명의 테노치티틀란 도시인들에게 천연두가 얼마나 치명적인 병이었는지 역사가 똑똑히 알려준다.
풍토병도 세계적인 전염병이 되다
한때지만, 인류가 전염병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듯이 자신만만했던 때도 있었다. 19세기 후반을 지나 20세기에 들어오면서 공중보건과 개인위생이 나아지고 항생제가 발견되고, 의학과 의술이 발달하자 전염병이 제압되는 듯했다. 1977년 소말리아를 마지막으로 천연두를 지구상에서 완전히 몰아냈을 때, 대다수 의사들은 인간이 전염병을 극복했다고 흥분했다고 한다.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어느 누구도 전염병에서 해방되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예방법, 백신과 항생제, 공중보건, 발달된 의학과 의술이 질병 예방과 치료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전염병으로부터의 완전 해방을 호언장담하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지난 40여 년 동안 확인해왔다.
클라이브 폰팅은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자가 줄어들면서 인간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지만, 20세기 후반부터는 병의 유형이 달라져 새로운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분석한다. 전 지구적 차원의 교역이 쉼 없이 이루어지고 항공 발달로 전 세계가 이웃처럼 연결되어 있는 21세기에는 전염병도 쉽게 세계화된다. 풍토병도 전염병이 되어 세계로 퍼진다.
인도의 갠지즈강 하류 지역의 풍토병이었던 ‘콜레라’가 세계적인 전염병이 된 것을 생각해 보라. 교통수단이 발달하자 콜레라는 인도의 다른 지역으로, 이어서 선박을 통해 영국뿐만 아니라 서유럽 전역으로 번졌다. 급기야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 일본에까지 퍼졌다.
생태계 보존 없이 신종 전염병 벗어날 수 없어
▲ 마크 제롬 월터스, 이한음 역 <에코데믹, 새로운 전염병이 몰려온다> 북갤럽, 2004
클라이브 폰팅은 인류 역사에 있어 농경생활, 도시의 발달로 인한 인구 증가, 교류의 확대가 전염병의 창궐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 바 있다. 그렇다면, 자연개발을 표방한 인류문명이 야기한 자연 파괴가 전염병이 등장하고 전파, 확산되는 데 있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결론지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의사들은 그녀가 걸린 라임병의 의미를 진드기에게 물렸을 때부터 항생제 치료가 끝났을 때까지로 축소했다. 하지만 이런 임상적 정의는 그녀의 병에 담긴 더 넓은 생태학적 의미들, 즉 그것의 완전한 의미를 배제하는 것이다. 그녀의 병은 그녀의 몸에 들어간 세균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미국 동부의 숲들이 겪었던 불행한 역사의 연장선상에 있었으며, 가을의 참나무와 히코리, 사라진 포식자들, 지나치게 많아진 사슴 및 생쥐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녀의 병은 그녀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너무나 커서 전체를 거의 볼 수 없는 그림의 세부적인 한 부분이었다.” -마크 제롬 월터스 <에코데믹, 새로운 전염볍이 몰려온다> “오래된 숲과 관절염” 중에서
전염병 관련 강의와 집필 활동을 활발히 펼치는 수의학자 마크 제롬 월터스는 자신의 저서 <에코데믹, 새로운 전염병이 몰려온다>(북갤럽 2004)에서 오늘날 출현한 6가지 전염병(광우병, 에이즈, 살모넬라 DT104, 라임병, 한타바이러스, 웨스트나일뇌염)을 소개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인간이 집약농경, 삼림벌채, 기후변화, 포식자 제거 등으로 자연을 변화, 파괴시켜 빚어진 결과인 ‘에코데믹’(생태병, ecodemic)이라 주장한다.
월터스에 의하면, 지난 1970년대 이후 등장하는 인간의 신종 질병 75%가 야생동물이나 가축에서 전파된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병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다른 종 사이의 경계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문제는 생태병이 인간에게만 위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과도한 개입으로 자연생태계의 균형이 깨어짐으로서 다른 동물들도 심각한 병을 얻어 죽어간다. 에볼라 출혈열로 고릴라의 개체수가 감소하고, 바다거북이 바이러스로 인해 생긴 암 때문에 멸종 위기에 내몰렸다. 사례들을 열거한다면 끝도 없다.
월터스는 인간이 전염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위생 개선, 약의 개발이나 의술의 발전에 의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분석한다. 자연 파괴로 인한 인간숙주와 병원체, 그리고 환경 사이의 균형이 깨어진 것이니, 자연생태계 보존 없이는 신종 전염병의 위협에서 놓여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말라리아’라는 병만 해도 그렇다. 말라리아는 기원전 2700년 중국에서 생겼다고 할 정도로 오래된 병이다. 이 병은 모기가 매개체인데, 사람들은 1940년대에 등장한 살충제 DDT로 모기를 죽여 말라리아를 퇴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하지만 1960년대에 이르러 DDT의 독성 때문에 사용이 금지되고, 그 사이 내성이 생긴 변종 모기들이 등장해서 치료제까지 무색하게 되어 상황은 예전보다 더 나빠졌다. 말라리아가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자연 파괴를 가져온 인류 문명이 전염병을 더욱더 확산시키고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그동안 망각되었던 전염병이 변형되어 되돌아오고, 생소한 전염병이 창궐하는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세계화된 전염병은 무엇보다도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을 고통으로,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 오늘날 빈곤국 인구의 43%가 전염병으로 사망한다. 현대의 가장 위협적인 병 가운데 하나인 에이즈만 해도 가난의 병으로, 21세기 초 감염자 2천5백만 명이 아프리카에 집중되어 있다. 또 말라리아는 가난한 나라의 주요 사망 원인이다. 가난이 전염병을 더욱 무서운 병으로 만드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전염병을 피해서 안전한 장소를 찾아 떠나기도 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당장 메르스를 피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세계 어느 곳도 전염병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으니, 오히려 낯선 곳을 찾음으로써 또 다른 전염병에 노출될 가능성을 높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흑사병을 피해 달아난 사람들 때문에 흑사병이 더 널리 전파될 수 있었다는 것도 기억해두면 좋을 것 같다. 한 프랑스 의사의 조언대로, 비상 식량을 준비해두고 자신의 집에 틀어박히는 것이 더 나은 처신인지도 모른다.
오늘날 전 세계 인구의 사망 원인 1위가 바로 전염병이다. 매년 1천4백만 명이 전염병으로 죽는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의 생활 방식-도시과밀화, 잦은 이동과 운송, 항생제 남용, 기업식 축산, 다른 생명체의 서식지 파괴 등-을 바꿀 생각이 없고 자연 파괴를 멈출 의지가 없는 한, 전염병의 위협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더 강력하고 무서운 전염병이 도래할 수도 있는, 전염병에 취약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언제든 전염병으로 갑자기 죽을 수도 있겠다 싶다. 메르스가 건넨 각성과 각오를 되새겨 본다. ▣ 이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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