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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장 문을 열어, 광장으로!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공동행동’ 문화제에 가다 

 

 

어디선가 찬송가 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그리고 확성기를 통해 전해지는 거친 외침이, 그 차분한 노래 소리를 방해했다. 노란 폴리스 라인 안, 그 작은 공간 안에서 모든 소리가 뒤섞이는 듯했다. 5월 16일 오후 3시, 부스 행사가 시작한 지 한 시간쯤 지나 도착한 서울역 광장은 조금 어수선했다. 내가 처음으로 마주한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아이다호 데이’ 행사 모습이다.
 

▲  5월 16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공동행동’ 문화제    © 김예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아이다호(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 transphobia. IDAHO) 데이는 1990년 5월 17일 세계보건기구(WHO)가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한 것을 기억하기 위해 시작됐다. 첫 테이프를 끊은 건 2003년 5월 17일, 캐나다의 한 성소수자 단체다. 한국에선2007년부터 온라인 시위, 캠페인, 거리 공연 등을 통해 이날을 기념해왔다.

 

올해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공동행동’ 행사는 특별히 서울역 광장으로 나왔고, 대구와 부산, 전주 등 지역에서 ‘무지개 버스’를 타고 올라온 사람들과 함께했다. 지난해 겨울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 논란이 일었던 시기에, 인권헌장을 선포하라고 요구하며 서울시청 로비에서 무지개농성을 벌인 것이 계기가 됐다. 그때 모인 지지와 연대, 후원금이 이번 행사의 밑바탕이 됐다.

 

"혐오를 멈춰라, 광장을 열어라"

 

내게는 ‘아이다호 데이’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처음인 데다가, 예년보다 더 큰 규모로 진행된다고 하니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설렘 반, 괜한 두려움 반. 행사장에 도착하기 전부터 스마트폰으로 상황 정보를 살펴보았다.

 

행사장 근처에 일부 보수 기독교 측 혐오 세력이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들이 내지르는 혐오의 소리가 얼마나 지독한지 아는 터라, 행사가 엉망이 되진 않을까 걱정됐다. 지하철 출구에서 나와 점점 광장에 가까워질 때, 잔잔한 찬송가와 확성기 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그때 생각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구나.

  

▲  2015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공동행동’ 행사 주제는 "혐오를 멈춰라, 광장을 열어라"였다.  © 김예지  

 

그런데 광장에 들어서고 나서, 찬송가와 확성기 소리가 정반대 방향에서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의 찬송가 소리라고 짐작했던 그 노래는, 게이코러스 ‘지보이스’의 리허설 무대에서 나는 소리였다. 한창 “벽장 문을 열어”라는 노래를 연습하는 중이었다. 물론, 거친 확성기 소리는 내가 짐작한 ‘그들’이 내는 것이 맞았다.

 

주최 측에서는 “혐오를 멈춰라” 라는 문구가 적힌 커다란 플랜카드로 혐오집단의 모습을 가렸지만, 소리까지 막을 순 없었다. 하지만 ‘지보이스’의 노래를 망칠 만큼의 영향력은 없었다. 처음엔 조금 거슬렸지만, 나중엔 그저 생활 소음처럼 느껴졌다고 할까. 혐오집단의 맥락 없는 외침은 광장을 넘어 무대에까지 닿지 못했다.

 

노래 소리의 정체를 확인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광장에 펼쳐져 있는 행사 부스들이 눈에 들어왔다. 비온뒤무지개재단, 녹색당, 차별없는 세상을 위한 기독인연대 등. 서울역 광장 양 옆에 나란히 자리 잡은 스물 한 개의 부스를 꾸린 단체들 중엔 눈에 익은 이름도 있었고, 낯선 이름도 있었다. 저마다 부스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위한 서명을 받거나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단체별로 부스를 꾸민 방식도, 분위기도 달랐지만 하나같이 무지개 깃발을 달았다는 점은 같았다. 정당도 예외는 없었다. 이날만큼은 당을 상징하는 색이 아닌, 무지개 색으로 부스를 꾸몄다. 행사장을 찬찬히 돌며 구경했다. 작지만 활기찬 분위기가 좋았다. 서울 성북구의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똥’에서 만든 치킨 스낵랩도 먹고, 서명을 하거나 엽서를 쓰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아이다호 데이’ 문화제의 무대 행사.  © 김예지  

 

우리가 가면을 벗고 춤출 수 있을 때까지…

 

드디어 오후 4시, 대구, 부산, 전주 등에서 무지개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이 합류해 ‘무지개버스한마당’이 시작됐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 광장다운 분위기가 났다. ‘지보이스’의 리허설 이후에 비워져 있었던 무대에 연대의 발언과 공연이 이어졌다.


유독 기억에 남은 건, 대구에서 올라온 한 남성의 발언이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사장에게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라는 말을 들었고, 5개월분 임금까지 받지 못했다고 한다. ‘성소수자라고 일을 못하나? 성소수자면 살아갈 수 없나?’ 하고 되묻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발언 시간이 끝나고 낙시스와 권민, 전주시스터즈가 공연을 이어갔다. 당당하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도, 발언을 들으며 떠올랐던 생각과 고민이 이어졌다.

 

전주시스터즈는 가면을 쓰고 나와 춤을 췄다. 공연을 끝내고 마이크를 건네 받은 전주시스터즈는 “가면 쓰고 춤을 추니 힘들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면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대 맞은편에 있는 ‘혐오세력’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성소수자다’ 라는 구호”라며, “성소수자의 투쟁은 ‘내가 인간이다’ 라고 외치는 모든 사람의 보편적인 투쟁과 맞닿아 있다”고 했다. 가면을 벗을 수 있을 때까지 함께 싸워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전주시스터즈의 말 때문일까. 한 시간의 휴식 시간을 가지고 오후 6시부터 시작된 문화제에선, 유독 ‘함께하는 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첫 연대 발언을 한 ‘상상행동 장애와 여성 마실’의 김광이님,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자던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박래군님, 그리고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님과 길찾는교회 자캐오 신부님….
 

▲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의 노래패 ‘함께 꾸는 꿈’의 연대 공연.   © 김예지  

 

그 중에서도 정리해고에 맞서 싸운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의 노래패 ‘함께 꾸는 꿈’의 연대 공연을 볼 땐 울컥했다. 무뚝뚝한 표정, 까맣게 탄 피부, 남색 조끼. 어떻게 보면 축제 분위기의 이 공간과 가장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함께 꾸는 꿈’이 부르는 노래는 참 따뜻했다. 어딘가에서 ‘소수자’로서,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무엇이라도 함께 하려는 그 마음이 전해졌다.

 

경계 밖의 사람들도 언젠가는 함께하는 날이 오길

 

주변이 어스름해질 때쯤 촛불을 들었다. 이름, 닉네임, 혹은 OOO. 차별과 혐오에 부딪혀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부르는 말들이 무대 위 영상에 나타났다. 이들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들이 흐를 땐, 누구도 쉽게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성소수자 부모 모임’의 지인님이 담담히 자녀의 커밍아웃 이후 삶을 이야기할 땐 박수로 격려했다. 행사 틈틈이, 현실의 벽은 꾸준히 그 존재를 드러냈다. 하지만 노래와 춤 그리고 연대 공연을 통해 우리는 다시 ‘희망’을 말했다.

 

문화제는 낮에 들었던 지보이스의 “벽장 문을 열어”라는 합창 공연으로 마무리 됐다. 내내 울고 웃었지만, 끝내 웃으며 헤어졌다. 그게 참 다행이었다. 벽장 안에서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광장에 나왔다는 것이. 그리고 그저 울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씩씩하게 웃는다는 사실이.
 

▲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공동행동’ 문화제.  © 김예지 
 

비록 올해 ‘아이다호 데이’는 경찰의 노란 폴리스 라인과 함께했지만, 언젠가는 이 경계 또한 사라질 것이라 믿는다. 폴리스 라인 밖에 있는 계단에 서서 광장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있었다. 노랫소리에 이끌려 바라봤을 수도 있고, 그저 호기심에 눈길이 간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시선을 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경계 밖에 있는 그들도, 언젠가는 경계를 넘어 이곳에 함께하는 날이 올 거라고 나는 믿는다. 아니, 함께 경계를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오늘 이 자리에서 성소수자, 그리고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끝내 웃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시선으로나마 우리와 함께했으니까.

 

성소수자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라고 본다. 다양한 성적 지향과 삶의 방식이 존중되는,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 광장을 기대해본다. 어디든 발 닿는 데까지 가능한 그런 공간. 그곳으로 향하는 모든 이들에게 기회와 가능성이 열려있는 그런 공간. 나는 원한다. 변화를, 사랑을, 권리를, 그리고 한계 없는 광장을.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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