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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다, 딸 같아서 그랬다, 그게 왜 성추행이냐’
<초딩아들, 영어보다 성교육> 5.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아들 키우는 엄마’가 쓰는 초등학생 성교육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필자 김서화 씨는 초딩아들의 정신세계와 생태를 관찰, 탐구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편집자 주]

 

 

성범죄, 단속해야 할 사람은 아이가 아니라 어른들

 

엄밀한 의미에서 성폭력 예방교육은 아동이 받을게 아니라 어른이 받아야 할 일이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그딴 짓을 한 가해자에게 비난이 가해져야 하고, 엄격한 법 집행이 이뤄져야 한다. 동시에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고 다른 어른들도 더 단속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애들 단속만 한다. 흔한 말로 애들이 무슨 죄인가.

 

“무슨 소리에요, 요새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요. 우리 애 무슨 일 나면 책임질 거에요?”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별수 없이 애들 보고 조심하라고, 피해 당하면 안 된다고 할 수밖에 없는 현실,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정말이지 애들에게 무엇을 조심하고, 누구를 의심하라고 말해야 하는지, 성폭력 문제만큼 곤혹스러운 것이 없다.

 

아이가 어릴수록 성적 행위가 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애매모호하게 우회해가면서, 네가 ‘그런 일’, ‘안 좋은 일’을 당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것도 대부분 여아에게만. 그런데 ‘그 일’은 매우 심각하고 위험하니 정말 조심해야 한다고.

 

아이 입장이 되어보자. 대체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건 무엇일지. 왜 애들이 쉽게 성폭력의 대상이 되겠는가.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런 일’이 뭔지를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당하는 아이들

 

아동성폭력 피해자들은 처음에 ‘그런 일’인지도 모르고 당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피해가 반복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피해자는 단지 흐릿하게, 무언가 잘못되었다고만 느낄 뿐이다. 피해를 당함과 동시에 본인이 겪은 일을 ‘아동성폭력’이라는 단어로서 말하고, 설명하는 아이는 흔치 않다.

 

하지만 어른인 가해자는 명백히 알고 행한다. 알기 때문에 더욱 친밀한 가면을 쓰는 이들도 있다. 아이를 어르고 달래고, 유혹한다. 사탕 혹은 장난감 하나, 친절한 미소, 따뜻한 말씨. 엄마아빠에게 이르지 말라는 말은 협박이라기보다 지켜야만 하는 비밀약속처럼 속삭인다. 가해자는 자신이 무엇을 행하는지 알고 있고, 아이들의 몸과 마음, 순수함과 순진함을 죄다 취약함의 조건으로 보고 이를 이용하는 거다.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의심’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들 한다. ‘모르는 어른은 다 따라가지 말라고 해야 해. 지켜야 하는 비밀이 있고 지키지 않아도 되는 비밀이 있다고 가르쳐야 해.’ 아이들은 초롱한 눈빛으로 질문을 던질 것이다. “엄마엄마, 그럼 누구는 돼? 누구는 어때? 왜 누구는 안 돼? 이건 비밀이야, 아니야? 비밀인데도 진짜 말해도 돼? 정말 돼? 왜 그건 돼?”

 

성범죄와 관련해서는 세 살, 네 살 아이에게 삶의 모순을 이해하라 하고, 인간 존재의 양면성을 가르쳐야 할 판이다. 가르쳐야겠지, 그게 세상의 모습이라면 알아야겠지만 근데 이게 쉽냔 말이다. 유아는 물론, 초딩 아이들이 성폭력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는 일은 사건의 해결만큼이나 녹록치 않은 일 같다. 아이에게 말하고 있을 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당혹스럽다. 그래서 부모들이 이를 더 회피하는지도 모른다.

 

다시 한 번, 성인이 주의하고 더 배우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게 쉽고 옳다. 타인을 성적 대상으로 취급하지 말 것, 특히 아동을 성적 대상으로 삼지 말 것, 성적 행위에 있어서 기본적인 에티켓과 폭력의 기준에 대해 더 엄밀하게 인지하고 행동할 것을 끊임없이 알려야 한다. 그런데 정말이지 어른들에게 이를 강조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다.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에 대한 남성들의 반감
 

▲ 많은 남성들이 성희롱 예방교육에 반감을 가지지만, 많은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의 단골 멘트는 '몰라서 그랬다, 그게 왜 성추행이냐?'이다.  © 일러스트-정은 
 

모 대학 성희롱성폭력 상담소에서 일한 적이 있다. 지금도 생생한, 전화 한 통을 받았었다. 교수들과 교직원 대상으로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으라는 홍보를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였다. “야, 이 빨갱이년아.” 생뚱맞지만 징후적이던 첫 마디. 난 ‘여보세요. 성희롱성폭력 상담소입니다’라고 밖에 한 말이 없었는데.

 

전화기를 통해 전해져 온 격앙된 그의 말은, 왜 교수인 자신이 가해자 취급 받으며 이따위 예방교육을 받아야 하느냐는 게 요지. 부차적으로는 저렇게 큰 플래카드를 걸어서 감히 교수더러 교육을 받으라 말라 하니 버릇이 없다는 생떼. 왜 남자만 성범죄자 취급하냐, 여자들이 요새는 더 폭력적이다, 일전에 ‘자네들이’ 성문화 행사에서 진행한 프로그램들이 너무 낯 뜨거워 오히려 당신이 성폭력을 당한 꼴이니 그것부터 해결해달라는 얼토당토 않은 우김.

 

30여분 실컷 욕인 듯, 욕 아닌 듯, 욕 같은 내용을 듣다 생각했다.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신고 받은 것도 아니고, 그냥 성희롱 예방교육 한 30분 받으라는 게 이토록 거북스런 일일 줄이야. 그것도 그냥 혼자서 온라인으로만 받는 건데, 너무하시네. 그리고 ‘남성’교육 아니거든요. 여성도 다 받아요.

 

그분처럼 ‘적극적 대응’을 하시는 분이 많지는 않지만 적지도 않다. 무엇보다 꼭 그런 분만이 아니더라도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 기간이 다가오면 모든 사업장에서 기본적으로 이와 유사한 감성이 공유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성희롱 예방교육도 이토록 거부감이 높은데, 아동성폭력 예방교육을 받으라고 한다면 길길이 날뛸 사람들이 지천일 것을 의심치 않는다. ‘나를 뭘로 보고, 이딴 걸 배우래?’라는 마음들이 발에 차이고도 넘치는 모습이 그려진다. ‘왜 내가 가해자 취급 받아야 하느냐’고 언성을 높일 분들도 꽤 될 것 같다.

 

정말로 성 문제만큼은 ‘예비가해자’ 취급 당하는 게 싫은가 보다. 실제 우리 사회에서 성범죄자들은 그 이미지가 지나치리만치 극악하니까. 성범죄자는 골방에서 야동이나 보는 사회낙오자, 변태성욕자로 그려진다. 그 중 아동성폭행자는 정신병자, 괴물의 이미지가 추가된다. 가해자에 대한 이미지가 가차 없기 때문에 더욱 성범죄는 ‘나’와는 분리되어야 하는 일로만 남는다.

 

그러니 제 아들의 가해 가능성을 차마 상상도 하지 않고 있는 엄마들을 나무랄 일도 아니다. 남성들이 스스로를 그런 교육 대상자의 범주에 넣지 않는데 아들은 그렇게 보라고? 엄마 입장에서는 아버지, 시아버지, 남편, 옆집 남자들, 직장동료… 모든 남자들 중에서 아들이 그나마 제일 믿음직할 텐데.

 

‘나한테 지금 잔소리하냐’

 

남성들이 성폭력 가해자 이미지에 스스로를 동일시하기 싫어서 예방교육을 거부한다고 생각하기에는, 그래도 그 거부감이 너무 과하다.

 

사실 우리가 뉴스에서 자주 접하는 성적 스캔들의 주인공들은 사회 낙오자라기보다는 사회 명망가이다. 다만 그들은 처벌받지 않을 뿐이다. 사회 낙오자는 성범죄자로 형이라도 받지만 유명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이 성폭력을 하면 그건 ‘강간’이라는 단어 대신 ‘상납’이라는 단어로 중화된다. 권력 있는 자가 성폭력의 죄값을 치른 사례는 본 적이 거의 없을 정도다. 그들의 폭력은 그저 스캔들로만 다뤄질 뿐.

 

여하간 우리는 낙오자나 변태여서 성범죄를 저지르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는 있다. 다만 성범죄자를 그렇게 이미지화하는 게 여러모로 속 편할 뿐일 테다.

 

기껏 성희롱 예방교육 받으라는 말에 마치 가해자 교도교정 교육을 받으라고 한 것처럼 울분을 토하고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좀 다르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런 사람들 대부분 일명 성교육이라고 부를 만한 ‘잔소리’를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어려서부터 성교육을 좀 받았거나,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해본 사람들은 아무리 가해자 취급해도 기분 나빠하지 않는다. 예방교육 그거 좀 귀찮아도 길어야 일 년에 한 시간인데 별로 부담스러워하지도 않는다.

 

‘나를 뭘로 보고’라고 말할 때, ‘나를 감히 가해자로 보다니’라는 심성과 더불어 ‘나한테 지금 잔소리하냐’하는 마음이 같이 있다. 그런데 항상 ‘그 말씀 성희롱입니다, 성차별입니다, 추행입니다’ 논란이 되면, ‘몰라서 그랬다, 딸 같아서 그랬을 뿐 몰랐다. 그게 왜 성추행이냐?’ 단골 멘트이지 않은가. 그러니 예방교육, 잔소리 맞습니다. 다만 이제 와서, 그것도 성적인 사안에 대해 잔소리를 들어야 한다니 어처구니가 없으시겠지. 나름 이룰 만큼 이룬 인생이라고 생각했는데 누구한테 지적질 당하는 것 같은 위치에 서고 싶지 않겠지.

 

나이 먹을 만큼 먹고 사회 생활하는 어른에게 살인예방교육, 폭력예방교실 이런 교육 하는 것 본 적 있는가? 그 나이 되도록 그걸 모르면 안 된다. 어릴 때부터 주구장창 지루하도록 짜증나도록 듣던 도덕, 윤리 아니던가. 인간으로서 알고, 행동해야 하는 최소 지침 말이다.

 

교육하는 입장에서도 성인에게, 다른 사안도 아니고 성적 문제에 대해 잔소리를 하는 것은 얼마나 곤란한가. 어떤 면에서 이는 주제넘은 짓이 될 수도 있고, 무리하게 일반화해서 남성들을 비난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거부감이 안 들 수가 없다. 그냥 성적 에티켓에 대해 배우는 것일 뿐이라고 아무리 수위를 낮추고 가볍게 교육 내용을 변경해도, 이걸 다 커서 배운다는 자체가 웃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예방교육 없애자고 이해하는 유아적인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

 

남아들이 ‘어른’으로 자립하기 위해 필요한 교육

 

여자들은 어릴 때부터 피해자가 될 거라는 지나친 염려로 인하여 엄청난 성적 잔소리에 둘러싸여 살아온 반면, 아직도 성적 사안에 대해 ‘잔소리’를 듣는 남성들은 흔치 않다. 이 불균형이 성폭력을 가능케 하는지도 모른다.

 

‘피해자 되지 않기’가 핵심인 아동 대상의 성폭력 예방교육, ‘가해 행동이 무엇인지’ 알리는 성인 대상의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 뭔가 대구가 되는 듯하지만 상당히 뒤틀려 있다. 한쪽에서는 아이에게 이해시키기도 어려운 ‘성폭력’을 설명하면서 여성을 잠재적 피해자로 두고 규율한다. 다른 쪽에선 피해 대상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줄곧 제대로 성교육을 받은 적 없는 남성에게 뒤늦게야 당신들의 ‘행동’이 ‘가해’ 목록에 포함될 수 있다고 지적하는 꼴이다.

 

잔소리는 해서는 안 될 행동을 가르치기 위한 야단, 꾸중, 설교다. 금지를 가르치는 것이기에 기본적으로 듣는 이를 가해의 위치에 두고 시작한다. 남자아이건 여자아이건 해서는 안 될 성적 행동에 대해 어릴 때부터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어릴 때 들으면 잔소리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행동의 기준을 익히지 못해 허튼 짓을 한다면, 그땐 잔소리가 아니라 법적,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성추행을 일삼는 권력자들이 ‘나는 몰랐네, 그렇게 느꼈나?’ 이러시니 ‘당신의 행동이 이러고 이래서 성추행이고 성폭력입니다’ 라고 친절히 가르쳐드리고 나서야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형국이다. 제대로 된 죄값을 요구하기가 어렵다. 좋은 직업을 가지고 명망가가 되었으니 특히나 누군가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위치는 아니라고 생각할 터이다. 하물며 잔소리야.

 

아이들은 그런 현실을 곁에서 보고 듣고 자란다. 부모들은 아들이 교수되고 선생님 되고, 유명인도 되기를 원하겠지만 혹여 아들이 나중에 가서 그런 헛소리하고 있을 상상은 해보셨는지 묻고 싶다.

 

물론 그 양반들 진심으로 몰라서 그랬다는 말, 믿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성폭력 문제를 오로지 ‘피해’라는 이름 아래서만 써내려 갈 때 누구라도 그런 핑계에 대해 무뎌질 수 있다. 아들을 일찍부터 ‘가해’라는 자장 안에서 가르치겠다는 것은 그런 무뎌짐을 거부할 ‘어른’으로 자립하길 바라는 의지에서 나온 것이다.  김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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