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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라는 시간의 깊이를 향유하기
전기흐른 첫 정규 앨범 [우리는 밤에 산다]


※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한다. 주로 음악에 관한 글을 쓰고, 가끔 영화 이야기도 한다. [weiv]를 포함한 몇 웹진에서 일하고 있다. [필자 소개: 블럭]

 

 

30-40대를 겨냥한 ‘밤과 음악 사이’라는 클럽이 있고, 아이돌 그룹 B.I.G의 곡 중에도 ‘밤과 음악 사이’라는 곡이 있다. 밤과 음악 사이에 무엇이 존재할까 생각해보면 밝은 것부터 떠오르지는 않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앞의 두 이름은 꽤나 밝고 기운차기까지 하다. 클럽은 1990년대 댄스곡을 틀며 추억과 함께 흥을 돋우고, 아이돌 그룹의 곡은 밤과 음악 사이는 너와 나처럼 애매한 사이라고 하면서 밤에 춤을 추자고 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밤은 존재론적 불안을 마주하거나 지난 사랑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안, 고독함 등을 느끼기도 한다. 누구에게는 하루 전부인 시간, 다른 누구에게는 연민과 자학을 반복하는 시간이 밤이다.

 

“밤은 이야기들을 열어요”
 

▲ 전기흐른의 첫 정규 앨범 [우리는 밤에 산다] 
 

신스팝(Synthpop) 듀오 전기흐른의 첫 정규 앨범 [우리는 밤에 산다]는 1949년에 나온 영화 <그들은 밤에 산다>(They Live by Night)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영화는 한 여성이 우연히 만난 범죄자와 사랑에 빠져 도피 행각을 벌이는 내용으로, 미국 영화사 최고의 데뷔작(니콜라스 레이 감독)으로 꼽힌다. 수많은 로드무비와 멜로영화의 교과서 격이 되었으며, 내용이나 정서뿐만 아니라 전달하는 방식 역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들은 밤에 산다>는 당대 미국 사회를 반영하고 있는데, 큰 키워드 몇 가지가 ‘낙관의 붕괴’, ‘빠른 속도의 문화’, ‘사랑을 향한 열정’이다.

 

영화에서 긍정적이고 젊은 주인공이 무너지는 모습이나 암울하고 날카로운 분위기는 사회상(낙관의 붕괴)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으며,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을 즐기는가 하면 빠른 속도로 결혼식을 올리는 모습(빠른 속도의 문화)을 보여준다. 등장인물은 험난한 상황에서도 사랑을 구축한다.

 

이러한 키워드는 2015년 현재에서도 찾을 수 있으며, 전기흐른의 앨범 [우리는 밤에 산다]에서 만날 수 있다.

 

첫 트랙 “Empty Night”은 건물주에 의해 쫓겨나게 된 친구의 카페에서 쓰기 시작한 곡이라고 하는데, ‘세상은 공허함으로 가득 차있고 너와 나는 공허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면서도 ‘누군가는 살아가기 위해 사랑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두 번째 트랙은 그러한 가사를 확장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인간 관계는 피상적으로 흘러가고 그 안에서 고독은 더해지며, 오늘 밤도 그러한 관계는 온라인상에서 희미하게 흩어져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If It’s Not Love”는 사랑의 불안함을, “우리는 밤에 산다”는 밝고 신나는 느낌을 선사한다.

 

이러한 가사와 분위기는 1970-1980년대의 형태로 표현된다. 때로는 디스코에 가까운 음악으로, 때로는 간결한 구성과 연주로 만들어지는 곡은 현재를 이야기하면서도 과거의 표현 방식을 가져온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앨범은 전자음악과 팝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최근 디스코/펑크 리듬이 다시 유행이라는 점에서 현재와 긴밀하게 맞닿아있기도 하다. 

 

           ▲   신스팝(Synthpop) 듀오 전기흐른.    © 전기흐른의 페이스북 페이지 
  

이런 복잡한 맥락은 “우린 모두”와 “떠나가네”에서 더욱 짙게 드러난다. 세월호에 타서 돌아오지 못하는 아이들과 밀양의 송전탑을 이야기하는 구간은 전혀 뜬금없게 느껴지지 않는다. 앞서 표현했던 정서들이 도시 속 밤을 보여준다면, 두 곡에 담겨있는 모습은 그 표면 아래 있는 깊고 어두운 부분이다. 두 곡은 느릿한 템포로 축축한, 혹은 황량한 분위기를 통해 그 메시지를 전달한다.

 

“Super Moon”은 앞의 두 곡의 아픔을 끌어안는다. 가볍고 귀여운 리듬과 신스 속에 ‘무서워하지 말아요, 우린 모두 이상한 사람이에요’, ‘상처를 숨기려고 하고 소망이라는 벽에 숨죠’, ‘보름달이 되었어요, 밤은 이야기들을 열어요’, ‘솔직해지세요, 이상한 사람들이여 축하해요.’ 라는 가사가 귀에 들어온다.

 

이후 “Swing Me”와 “Berlin”에서는 만남과 이별, 관계에 관한 모습이 펼쳐지더니 “바다가 없는 섬”에서는 이스라엘 가자 지구 공습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이후 인스트루멘탈(instrumental, 연주곡)로만 구성된 “1월 14일”을 듣고 나면 앨범은 끝을 맞이한다.

 

밤의 복잡함과 공허를 직관적으로 표현한 앨범

 

[우리는 밤에 산다] 앨범이 가진 미시적 측면과, 거기서 확장되는 거시적 측면까지 소개했다. 앨범은 단순히 의식을 나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점점 큰 공간과 화두를 던진다. 앨범의 시작이 나, 감정, 관계에서 출발한다면 이후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소재를 던진다.

 

피상적 인간 관계로부터 오는 공허함이나 세상 속 곪은 이야기들, 그리고 나와 먼 곳의 아픔까지 끌어오며 앨범은 긍정과 부정 사이를 희미하게 오간다. 각각의 소재가 가진 문제 의식은 생각보다 강하게 듣는 이를 찌른다. 그리고 그걸 치유해줄 생각은 딱히 없어 보인다. 오히려 그 문제 의식을 함께 공유하자는 듯한 느낌이 든다. 

 

          ▲  신스팝(Synthpop) 듀오 전기흐른.    © 전기흐른의 페이스북 페이지  

 

흐른은 지금까지 솔로 앨범을 통해 불편한 이야기들을 꾸준히 해왔다. 첫 번째 앨범 [흐른]에서는 “어학연수”, “Global Citizen”, “누가 내 빵을 뜯었나”와 같은 곡에서 피부에 맞닿는 소재로부터 불편함을 느끼되, 그 불편함을 훌훌 털어내지 못하게 만든다.

 

특히 “Global Citizen”에서는 케냐 종족 분쟁을 보면서 케냐 산 커피를 마시고, 고기를 먹기 위해 소를 기형적으로 키우는 시스템과 잠비아 기아들을 생각하다가 햄버거를 사먹는 등 일상 생활에서 체감하는 불편함을 두고 ‘당신들 순진한 건지 아니면 득도한 건지’라고 말한다.

 

흐른의 두 번째 앨범 [Leisure Love]은 좀더 전자음악에 가까워지면서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쓴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아무도 모르게(세상이 다 알게)”, “지루해도 돼”와 같이 일상에서 느끼는 사회의 암울함과 불편한 지점들을 자연스럽게 꺼낸다.

 

전기흐른의 [우리는 밤에 산다] 앨범 역시 영화 <그들은 밤에 산다>처럼 낙관의 붕괴, 빠른 속도의 문화, 사랑을 향한 열정을 드러낸다. 그러한 정서와 소재를 통해, 화자가 이야기하는 밤의 복잡한 공허함이 한 장의 앨범 안에 잘 담겨 있다.

 

이 작품은 잘 만들어진 전자음악 앨범이라는 점에서도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유기적으로 연결된 서사와 그것과 잘 맞닿아있는 곡의 분위기, 작법 모두 뛰어나다. 그것은 결코 복잡하거나 화려하지 않고, 간결하며 직관적이다.

 

전기흐른은 말하고자 하는 한 가지가 있으면, 그것을 에둘러 돌아가거나 간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편이다. 이러한 직관적인 면모는 듣는 이들이 주제 의식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장점도 함께 가져온다. 복잡하면서도 간결한, 그래서 밤과 같은 매력을 가지고 있는 앨범을 가사와 함께, 밤에 천천히 들어보기를 권한다.  블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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