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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많은 ‘혜리피터’들에게 축복을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 홈메이드 콘서트 

 

 

‘길 위의 음악가’가 되어 새로운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이내의 기록 [편집자 주]

 

▲  피터아저씨. 그들이 사는 ‘아현동 쓰리룸’   © 이내 
 

노래여행을 시작했을 때 많은 ‘초심자의 운’을 경험했다. 거기엔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 첫 번째는 느낌을 믿고 먼저 문을 두드리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불러주는 곳엔 다 간다는 것이었고(물론 스케줄이 맞으면), 세 번째는 잘 곳을 미리 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작년 봄, 페이스북에서 “목요일엔 집밥”이라는 신기한 포스팅을 발견했다. 집에서 밥을 함께 먹고 공연을 보는 컨셉이었다. 느낌이 왔다. 서울 가는 길에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이미 마감이 된 행사에 혹 남는 자리가 있는지 물었는데, 그곳에서 흔쾌히 오라고 했다. 또, 내가 노래를 부른다는 사실을 알고는 ‘노래 한 곡 부를 수 있겠냐’고 먼저 제안을 해왔다.

 

밥을 먹고 공연을 보고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일어난 장소인 그 집 거실에서 처음으로 묵어가는 객이 되었다. 나의 규칙들이 다 완성되는 많은 경험 중 하나였다.

 

‘아현동 쓰리룸’에서 시작된 작당

 

서울에 올라와 돈을 벌며 함께 밴드를 하던 세 사람이 아현동에 집을 구했다. 밴드 이름은 피터아저씨. 그들이 사는 집은 ‘아현동 쓰리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홍대 앞 공연의 한계를 느낀 피터아저씨의 보컬 ‘피터’는 새로운 방식의 공연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침 서울시는 청년들에게 여러 작당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었다. 영리한 피터는 이를 활용하여 자신이 그리던 작당을 시작했다.

 

8개월정도 매주 “목요일엔 집밥” 행사를 열었다. 직장에 다니면서 시간을 쪼개어 행사를 진행했는데, 그 과정에서 함께 하는 친구들도 생겨나고 자주 찾아오는 사람들도 생겼다. 대부분 서울에 올라와서 고군분투하는, 혼자 밥 먹기 싫은 자취생들이었다.

 

피터는 ‘아현동 쓰리룸’에서 만난 혜리와 팀을 이루어 일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함께, 꿈을 조금씩 더 그려갔다. ‘홈메이드 콘서트’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기존의 공연장을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공연들을 실험했다. 아현동 오래된 쌀집 자리에 ‘언뜻 가게’라는 작은 카페도 만들었다. 그동안 자연스레 확장된 사람들의 공동 투자로 공간을 임대했고, 손수 가구를 짜고 장소를 꾸몄다.  

 

         ▲  혜리와 피터는 아현동 오래된 쌀집 자리에 ‘언뜻 가게’라는 작은 카페도 만들었다.  © 이내 
  

작은 생각들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혜리와 피터에게 나는 점점 더 빠져들었다. 혜리피터(내가 만들고 스스로 즐거워한 그들의 별명)를 보며 팍팍한 서울 생활을 견디고 있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겹쳐 보였다. 또한 그들의 삶은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남으려 애쓰는 내 곁의 친구들을 잊지 않게 만들었다.

 

집이 무대가 되는 공연, 홈메이드 콘서트

 

그러던 어느 날, 혜리피터가 먼저 제안을 해왔다. 내가 네 명의 집사람들과 살고 있는 ‘생각다방 산책극장’에서 ‘홈메이드 콘서트’를 여는 것이 어떻겠냐고. 그동안 월세를 좀 재밌는 방식으로 마련해보려고 ‘매달 무사히’라는 행사를 열며 새로운 작당을 기획하던 우리는, 이 참에 콘서트 형식의 월세벌이를 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지난해 9월부터 지금까지 다섯 번의 홈메이드 콘서트를 열었다.

 

생각다방의 집사람들에게는 한 달에 한 번씩 큰 일을 함께 준비하고 해치워(?)나가며 단단해지는 기회가 되었다. 동시에 월세에 어느 정도 보탬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무언가 계속 해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재미를 빼앗아갈까 봐, 단 6회 공연만 진행하기로 처음부터 합의를 했었다. 

 

         ▲  내 노래 속 이야기의 주인공들과 내 삶의 일부들이 조용히 내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 이내 
 

이번 달에 생각다방에서 마지막 홈메이드 콘서트가 열린다. 그간 뮤지션들을 초청해 노래를 들어오다가 마지막은 좀 실험적인 시도로 마무리 짓고 싶던 차에, (언제나처럼) 우연히 한 현대무용가를 소개받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행사로 무용 공연을 기획 중이다.

 

집으로 초대해 음식을 먹고 공연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새로운 시도지만, 집이 무대가 되어 펼쳐지는 무용 공연이라니 무척 기대가 된다. 집이라는 장소가 무대가 되어 노래가, 연극이, 무용이, 전시가 펼쳐지는 상상만으로도 뭔가 자유로워지는 마음이다.

 

처음 혜리피터가 홈메이드 콘서트를 기획했을 때, 동네마다 그런 집들이 생기는 상상을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상상하는 그 자유로운 마음이 동네마다 번지는 그림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바쁘게 움직이던 그들도 지금은 잠시 숨을 고르고 ‘아현동 쓰리룸’ 공연만 당분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치지 않을 만큼 움직이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그들도 우리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나 보다.

 

세상의 틈새를 살아가는 사람들

 

다섯 달 동안 ‘집’에서 공연을 만들면서 큰 일을 함께 치른 우리 집사람들의 고군분투 덕에, 새로운 환경(어쩌면 불편한 장소)을 즐거워해준 뮤지션들과, 무엇보다 다닥다닥 불편하게 붙어 앉아 낯선 이들과 밥을 나누고 노래를 들었던 관객들이 남았다. 돌아보니 웃음이 나는 따뜻하고 재밌는 풍경이다. 

 

          ▲  집이라는 장소를 무대로 공연을 한다는 건, 뭔가 자유로워지는 마음이 든다.  © 이내 
 
부족함은 상상력이 될 수도 있고, 불편함은 재미가 될 수도 있다고 나는 믿는다. 물론 그것은 스스로 선택할 때만 가능해지는 현실이기에, 타인에게는 제안조차 하기 어렵다. 다만 어쩔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어쩔 수 없음의 틈새를 스스로 선택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면, 우리는 서로 알아볼 수 있다. 세상의 숨어 있는 혜리피터들과 내 곁의 친구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덧) 2015년의 첫 홈메이드 콘서트는 나의 2집 앨범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를 처음 선보인 자리였다. (사람들이 때로 나에게 어디서 노래하냐고 물으면 ‘집에서요’ 라고 대답했었는데, 실은 내가 집에서 하는 공연의 원조 격이었던 것!) 처음 노래를 만들고 부르기 시작했던 ‘생각다방 산책극장’에서, 그간 늘 응원해주고 힘을 실어주던 친구들이 관객의 반 정도 되었나 보다. 내 노래 속 이야기의 주인공들과 내 삶의 일부들이 조용히 내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평생 잊지 못할 장면으로 남았다. ▣ 이내 (싱어송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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