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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난 쌀롱’ 이야기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 재밌는 작당을 하는 사람들 

‘길 위의 음악가’가 되어 새로운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이내의 기록이 이어집니다. [편집자 주]

 

 

재밌어 보이는 작당을 찾아서

 

포르투갈에서 지내는 동안 어땠냐고 물어오면 늘 이렇게 대답했다. ‘은퇴한 노인의 휴양 생활 같았죠.’ 8개월간 단순하고 조용한 생활을 하는 동안 바쁘고 빠른 한국의 일상의 때를 벗기는 듯했다. 공원을 걷고 노천 카페에서 책을 읽고 때때로 바다에 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페이스북에서 들려오는 한국의 작고 다양한 작당들이 부러워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늙어버린 유럽의 작은 도시에 정착하기에는 내가 아직 힘이 많이 남아있었나 보다.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는 작심한 듯 찾아 다녔다. 재밌어 보이던 작당들과 그것을 일구는 사람들을. 

 

▲  권나무 1집 앨범 [그림] (2014.11)   © 권나무 페이스북 
 

권나무라는 음악가를 페이스북에서 발견했다. ‘나무’라는 이름만으로도 관심이 갔는데 노래는 더 좋았다. 페이지가 있어 “좋아요”를 눌렀더니 덜컥 친구 신청을 해온다. 아, SNS란 그런 것이었구나, 초심자의 심정으로 하나씩 하나씩 활동 반경을 넓혀갔다.

 

그의 공연이 한 번 보고 싶었던 차였는데 공연 일정이 올라왔다. 김해에서 한다고 했다. 사실 그런걸 발견하고 굳이 찾아가는 성격은 아니다. 그런데 페이스북 안에만 머물 수는 없어서 용기를 내어 한 번 찾아가보았다. 김해라는 도시를 찾아간 것도 처음이었는데, 의외로 부산의 외곽 지역보다 우리 집에서 훨씬 가까운 곳에 있었다.

 

공연장의 이름은 김해 내외동에 있는 ‘재미난 쌀롱’이라는 카페였다. 몇몇의 친구들이 ‘재미난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다양한 작당을 펼치는 곳이었다. 김해 출신인 권나무는 그 곳에서 정기적으로 노래를 불렀고, 다른 지역에서 만난 뮤지션들을 그곳으로 불러 노래할 기회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내가 처음으로 재미난 쌀롱을 찾은 날도 서울, 창원에서 온 밴드들이 함께 무대에 섰다. 다양한 음악을 재미난 장소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즐겼다.

 

재미난 쌀롱의 재미난 사람들

 

그런데 그 날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무대에 있지 않았다. 당시에 카페를 운영하는 듯 보이는 세 사람이 있었는데, 공연 내내 무대의 측면에서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무대에서 눈을 떼지 않는 그들의 얼굴에서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풍경이었다. 저 모습을 마음에 오래 담아 두어야지, 생각했다.

 

공연 전에 주인장들에게 슬쩍 ‘저도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데 언젠가 한번 여기서 노래하고 싶어요’ 라고 말해 두었는데, 그게 그런 결과를 초래할 줄은 몰랐다. 모든 공연이 끝나자 한 명의 주인장이 앞으로 나가 무대를 정리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오늘 꼭 여기서 노래하고 싶다는 분이 있네요. 한 번 들어볼까요?”

 

얼떨결에 무대로 나가서, 급하게 방금 공연을 끝낸 한 음악가의 기타를 빌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수전증>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내가 떨고 있어도 그걸 정당화 시켜줄 것만 같은 노래이기 때문이다.

 

나는 무대공포증이 있다. 그런데 자꾸 무대에 선다고 그 공포증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다만 떨고 있는 내 자신을 그냥 받아들이고 나서는 떨고 있다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무대공포증이 있는 모습도 내 모습이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재미난 쌀롱에서 나의 첫 김해 공연을 했고, 아직도 이 날의 수전증은 그들과 만날 때 농담거리가 된다.

 

<수전증>  이내 작사 작곡

 

떨리는 손가락 떨리는 목소리

나의 노래는 작고 연약한 이야기

눈부신 웃음 반짝이는 눈빛

나의 노래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

 

바람에 실어서 마음을 보내도

가 닿지 못하던 지난 시간들

이제는 떨리는 목소리라도

이 노래로 이야기 할 수 있어요

 

보잘것없는 내 이야기라도

당신이 듣고 있어요

당신이 듣고 있어요

 

네 명의 백수, 월세벌이 원정 공연을 가다

 

이후에 나는 그곳에서 새롭게 알게 된 음악가들의 공연을 보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가인 권나무와 함께 공연도 했다. 되돌아보니 놀라운 일이다. 그게 다 경계 없이 사람을 맞이하는 재미난 사람들 덕분이다. 언제나 “공연 한번 안 해?” 라고 훅, 치고 들어와주신다. 그러다가 재미난 쌀롱에서 진짜 재미난 공연을 하게 되었다. 

 

              ▲  ’재미난 쌀롱’에서 ‘생각다방 산책극장’의 월세벌이 원정 공연을 제안했다.   © 이내  

 

내가 네 명의 백수들과 함께 살고 있는 ‘생각다방 산책극장’은 한 달에 한 번, 월세 마련 프로젝트로 이벤트를 기획한다. 전시, 워크숍, 프리마켓 등등을 하다가 최근에는 집에서 하는 공연인 ‘홈메이드 콘서트’를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그 소식을 들은 재미난 쌀롱에서 월세벌이 원정 공연을 제안한 것이다.

 

소풍 가는 마음으로 들떠서 판매할 물건들과 연주할 악기들을 챙겨 길을 나섰다. 우리는 종종 ‘15분 글쓰기’라는 걸 하는데, 타이머를 15분 맞춰놓고 함께 글을 쓰고 낭독하는 형식이다. 김해의 한 카페에 모여 앉아 네 사람은 ‘생각다방에 산다는 것’, ‘하고 싶은 것’이라는 주제로 함께 글쓰기를 했다. 그리고 한 사람씩 그걸 낭독하고, 또 노래도 하고 연주도 하면서, 그렇게 한 시간 가량의 무대를 채웠다.

 

그들은 처음 보았을 때의 바로 그 얼굴로 부산에서 온 우리를 바라봐주었다. 뿐만 아니라 집에서 챙겨간 다양한 물건들도 사주고 또 모금도 해주어 우리는 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들어 부산으로 돌아왔다.

 

작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목소리

 

재미난 사람들은 재미난 쌀롱에서 ‘수요 쌀롱 음악회’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공연을 만들어왔다. 올 2월이면 100회를 맞이하는 특별한 시간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유명한 누군가를 초청하는 형식이 아니라, 누구라도 자신의 한 가지를 들고 나누는 자리라고 한다. 이야기, 그림, 노래, 연주 등 뭐든 가능하다며 오랜만에 놀러 간 나에게도 “놀러 와~” 하신다. 

 

              ▲   ’재미난 쌀롱’의 81번째 수요 쌀롱 음악회 <노래 짓고 부르는 이내와 친구들>    © 이내  

 

가볍고 따뜻하게 누군가를 부를 수 있는 건, 실은 큰 용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작고 평범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목소리임에 틀림없다.

 

이들은 재미나게 놀았을 뿐인데 일이 점점 커졌다. 동네 작은 가게들이 인테리어 의뢰를 계속해와서 예정에 없던 인테리어 회사가 생긴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재미난 사진관’, ‘돈까스 공업사’, ‘김해여인숙’ 등등 계열사(?)도 만들었다. 매번 찾아오는 관객들이 친구가 되고 결국에는 함께 작당을 꾸며나가다 보니 자연스레 생긴 일들이다.

 

경계 없이 손을 내밀 준비가 된 사람들, 100번의 공연도 매번 새로운 듯 어린아이 같은 얼굴로 들어줄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우주가 손을 내미는 모양이다. 한국에 돌아오길 잘했다.  ▣ 이내 (싱어송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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