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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고유의 담백한 맛이 일품인 북한음식
<북과 남을 가로지르다>⑨ 지역 특산물과 요리
※ 10여년 전, 한국으로 와서 살고 있는 북한이주여성 효주 씨가 북한의 서민문화와 남한에서 겪은 경험을 전하는 <북과 남을 가로지르다> 칼럼이 연재됩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한번 맛보면 평생 잊지 못할 ‘평양냉면’
북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지방마다 고유의 특산물이 있다. 나는 요리전문가가 아니고 일반주민이었으니,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보려 한다.
한국사람들도 많이 알고 있듯이, 평양의 특산물로는 대동강 숭어를 꼽고 싶다. 북한에 살면서 한 번도 먹어보지는 못했지만 워낙 유명해서 많이 들어보았다. 대동강 숭어는 숭어국, 숭어회, 숭어찜, 숭어조림으로 유명한데 외국인 관광객들이 꼭 먹어보는 음식이라고 한다.
평양냉면은 학창 시절에 평양만경대 천석식당에 가서 그 유명한 냉면을 먹어본 적이 있다. 고기를 먹지 못했던 내 입에도 그 맛은 정말 평생 잊지 못할 맛이었다. 평양냉면이라는 말만 꺼내도, 아직도 그 냄새며 맛이며 그릇에 담긴 모양까지도 눈에 선하고 입안에 침이 고일 정도이다. 죽기 전에 꼭 한번 더 먹어보고 싶은 음식 중의 하나다.
한국에 와서 평양냉면 간판을 보고 들어가서 주문을 한 적이 있는데, 한 젓가락 떠 넣었다가 누린내가 확 나고 조미료 냄새가 나서 먹지 못한 채 그냥 나왔던 적도 있다.
북부의 주식 감자 요리와 농마국수
함경북도 회령에는 백살구가 유명하다. 참살구나 개살구보다 크기도 크고 신맛이 적고 단맛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해마다 7월 중순이면 회령에서는 백살구를 상점에서 파는 것이 아니라 직접 밭에 들어가서 내가 살만큼 따서 저울에 달고 계산을 하고 나온다.
함경남도 신포시나 단천시는 바닷가에 위치해 있어 겨울이면 명태잡이로 유명하다. 지금은 우리나라 바다에 겨울명태가 잡히지 않아 러시아에서 들여온다고 하는데, 현재 북한의 바다는 상황이 어떨지 모르겠다.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할 때만 해도 전국 각지의 직장에서 사람을 몇 명씩 뽑아 명태밸 따러(내장손질) 장기 이동작업을 보내기도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한번 가면 교대 없이 몇 년씩 그곳에 상주하면서 집으로 명태와 고니를 말려 보내주었다. 그러면 부모님은 그것을 장마당에 가지고 나와 팔았다. 북쪽은 워낙 추운 곳이어서 그곳에 가면 고생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서로 가겠다고 신청을 하곤 했다.
북부 내륙지방인 량강도와 북서부 지방인 자강도는 추운 곳이라 배추, 무우가 잘 되지 않아 갓을 많이 심었다. 여름까지 갓으로 짠지(북에서는 짠짠지라고 한다)를 담거나, 갓을 소금물에 담가 봄에 물을 타서 시원하게 먹기도 하였다. 이 지방은 주식이 감자인데, 감자로 못해먹는 것이 없을 정도이다. 이 지역의 감자는 크기가 아이들 머리통만할 정도로 농사가 잘 된다. 그만큼 녹말도 엄청나게 잘 나온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 감자 다음으로 유명한 것이 감자 녹말가루이다.
이곳 사람들은 가정마다 국수분틀(국수 면발을 내리는 틀)이 있다. 감자 녹말가루에 백반가루를 조금 넣고 익반죽하여 물이 끓는 가마솥 위에 국수분틀을 올려놓고 꾹 누르면 하얗고 윤기 나는 국수발이 가마솥에 예쁘게 내려가서 익는다. 다 익으면 찬물에 여러 번 씻어 그릇에 담아 양념을 해서 먹는다. 면발은 한끝은 입안에, 한끝은 위에 들어가 있다 할 정도로 엄청 질기고 잘 끊어지지 않는다. 친정아버지가 딸을 보러 왔다가 집에서 만든 녹말국수(북에서는 농마국수라고 한다)를 드시고 난 후, 두고두고 그 맛을 기억하셨다.
감자 요리는 언감자떡, 언감자국수, 그리고 감자껍질 요리가 있다. 감자껍질을 까리라고 하는데 감자 껍질을 벗긴 것을 버리지 않고 말렸다가 가루 내어 언감자 가루를 섞거나, 옥수수가루를 조금 넣어 국수를 누르면 조금 아린 맛이 있지만 그런대로 한끼 식사가 된다.
이렇게 량강도와 자강도, 함경도에서는 그곳 기후에 맞는 감자와 콩 농사를 지어 식량 공급을 하는 방법을 옛날 화전민 때부터 터득한 대로 살아가고 있다. 그 외에도 북청사과, 들쭉술, 돌배, 가자미식혜 등이 유명한데, 내가 먹어보지 못한 것들이라 자세히 소개하긴 어렵다.
인삼물이 흐른다는 개성 지방의 유기농 인삼술
▲ 개성은 보쌈김치, 찹쌀고추장, 약과, 인삼술, 경단, 팥죽, 추어탕, 설렁탕, 편수 등이 유명하다. ©효주
개성 지방 요리는 내가 훤히 잘 아는 곳이라 어느 정도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개성의 특산물은 알려진 바와 같이 보쌈김치가 대표적인 음식이다. 또 약과, 찹쌀고추장, 인삼술, 홍삼정과 홍삼술, 경단, 팥죽, 설렁탕, 추어탕, 편수(야채로 속을 넣은 만두) 등이 유명하다.
보쌈김치는 김장철에 개성사람들이 꼭 담그는 김치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밥상에만 오르는 귀한 김치이기도 하다. 그만큼 보쌈김치는 배추를 고를 때부터 배추 잎에 꽁꽁 싸서 항아리에 넣을 때까지 온갖 정성이 들어가는 음식이다.
보쌈김치를 대접에 담아 윗잎사귀를 옆으로 동그랗게 살짝 열어놓으면 어른들은 속을 먹게 되는데, 왜 그렇게 예쁜 보쌈김치가 먹고 싶던지…. 어머니는 항상 걷어놓은 잎사귀를 먹으라고 하시면서 죽죽 찢어서 밥 위에 얹어주시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잎사귀가 더 맛있었던 것 같다.
경단은 환갑잔치나 결혼식에 빠지지 않고 올라가는 맛있는 음식이다. 나는 어렸을 때 큰집에 가면 다른 음식은 안 먹어도 경단만은 꼭 먹어야 하는 ‘경단 킬러’였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유명한 것이 인삼술인데, 개성인삼술과 홍삼술은 국외에서도 유명해서 외화벌이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너도나도 인삼을 심고 약을 엄청나게 쳐서 수확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개성의 인삼은 심을 때부터 정성이지만, 물도 아주 깨끗한 물을 주고 거름도 기름을 짠 나머지 콩깻묵을 사용한다.
땅을 집만큼 크게 파고 비닐을 깐 다음 콩깻묵을 쏟아 넣고 물을 붓고, 또 콩깻묵을 쏟아 넣고 물을 붓는 식으로 1년여동안 숙성시킨 다음 그것을 인삼밭에 준다. 개성에서는 흐르는 물 자체가 인삼물이 흐른다고 할 정도인데, 개성의 인삼은 약용 가치도 뛰어나다. 개성인삼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수출량이 떨어져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외화 가치가 있다.
담백한, 할머니의 찹쌀고추장 맛
다음으로 개성약과를 빼놓을 수 없는데, 이곳에선 약과를 사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직접 만들어 제사상에 올리곤 한다. 특히 손맛이 좋은 사람들은 직접 주문을 받아 만들어 주곤 하는데, 우리 외할머니가 솜씨가 좋아 동네 제사나 잔치음식은 도맡아 하셨다. 특히 약과는 동네에서 외할머니를 능가할 사람이 없었다. 결국 집집마다 제사음식을 할 때가 되면 몇 일 전에 미리 할머니에게 재료를 가져다 주고 만들어 달라고 주문을 하였던 기억이 난다.
내가 경단 다음으로 좋아했던 것이 약과였는데, 할머니는 집에서 만들고 모양이 좋지 않은 것은 손녀를 불러 몰래 주시곤 하셨다.
개성은 팥죽도 유명하다 우리 집은 아버지가 쉬는 날에 여름이면 콩국수, 겨울이면 팥죽을 쑤어먹는 것이 습관이 있었다. 사실 먹는 사람이야 맛있다고 먹지만, 나는 맏딸이라 힘들어도 아버지가 드시고 싶다는데 거역할 수 없어 어머니에게 배운 대로 만들어드릴 수밖에 없었다.
참, 할머니집에 가면 찹쌀로 만든 고추장이 정말 맛있었다. 색깔도 예쁘게 빨갛고, 맛 또한 담백해서 외가에 가면 고추장에 밥을 비벼먹거나 고추장을 물에 타서 거기에 밥을 말아먹어도 정말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는 그 맛있는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
북한에서는 경제난으로 어려워진 식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전국 요리축제와 요리경연대회를 열기도 하였다. 고급 요리뿐 아니라 일반주민들이 다양하게 해먹을 수 있는 요리들이 소개되어 많은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가끔 텔레비전에 집에서 해먹을 수 있는 감자나 옥수수로 만든 음식 요리가 나오면, 집에서도 비슷하게 해먹어 보았다. 나뿐만 아니라 북한의 많은 주부들이 한번쯤은 그렇게 해봤을 것이다.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 양념맛 강한 한국음식
한국에 오니 음식이 정말 다양했다. 북한에 살면서 들어보지도 못했던 음식들이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았다. 한국에 와서 처음 접했던 음식들 중에서 삼겹살을 숯불에 구워먹는 것과, 소고기를 마음대로 사먹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무슨 고기든 부위별로 살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또 그 고기로 다양한 요리를 한다는 것도 놀라웠다.
닭을 가지고 튀김(치킨)을 한다는 것도 놀랍다. 아마 한국사람들이 제일 많이 먹는 고기 중의 하나가 닭이지 않을까 싶다. 주위에 치킨 전문점들이 이렇게 많은 것을 보면, 한국인의 치킨 사랑은 세계 1위일 거란 생각이 든다.
북한에서는 소고기를 먹어볼 수가 없었다. 소가 병 들어서 죽으면, 잡아서 동네에서 나눠 먹는 정도이다. 한국에서는 병든 짐승을 잡아먹으면 당장 죽을 것처럼 난리인데, 북한사람들은 병든 짐승의 고기라도 배불리 먹어보고 싶을 정도로 고기에 굶주려있다. 또, 소는 사람과 같은 취급을 하기 때문에 소를 죽이면 사람을 죽인 것으로 보고 사형에 처하도록 되어있다.
북한에서는 명절에만 세대당 500g씩 돼지고기를 공급했다. 그것마저 잘못 받으면, 냉동고기라서 뼈인지 살인지 모르고 받아다가 집에 가서 물을 한 솥 붓고 고기를 끓이다 보면 운 좋으면 살이 조금 붙어 있고, 운 나쁘면 완전히 뼈를 우린 물을 먹게 되는 판국이다. 그럴 때면 정말 억울해서 눈물이 날 때도 있지만 어디 가서 하소연 할 수도 없고, 울며 겨자 먹기로 시래기나 배추 또는 무를 썰어 넣고 푹 끓이면 그런대로 고기냄새가 난다. 아이들은 배가 올챙이 배처럼 되도록 맛있게 폭식하고 만족해하기도 하였다.
북한에서는 쌈채소를 상추나 배추, 시금치 외에는 먹어보지 못했는데, 한국사람들이 깻잎으로 쌈을 싸서 먹는 것을 보고 생소했다. 깻잎은 볶아먹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생으로 쌈을 싸서 먹다니 놀라웠다.
나는 한국에 온지 십 년에 넘었는데도 아직도 한국음식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못 먹는 음식이 더 많다. 한국음식은 단맛과 양념 맛이 강해서 고유의 재료 맛을 못 느끼게 된다. 북한에서는 양념 재료가 부족해서이기도 하지만, 어려서부터 먹었던 음식은 양념 맛과 단맛보다는 기본적인 재료의 맛 때문에 담백하고, 먹고 난 후에도 입안이 개운한 느낌이 있다.
지금도 종종 고향에서 먹었던 경단과 편수(당면을 넣지 않은 야채만두), 순대, 그리고 보쌈김치가 먹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누가 만들어보라고 시키면 모를까, 내가 혼자 먹고 싶어서 만들겠다고 하기엔 과정이 번거로워서 좀처럼 해먹게 되지 않는다.
언젠가 남북이 통일되면 음식 문화의 차이도 무시 못할 것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그러한 차이는 서로를 더 풍요롭게 하는 것일 게다. 무엇보다 고급 요리는 차치하고라도, 배고픔에 허덕이는 북녘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살아갈 수 있는 그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 ▣ 효주
<여성주의 저널 일다> http://www.ildaro.com <영문 사이트> http://ildaro.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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