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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동성혼 소송’의 의미와 쟁점을 짚다  

 

 

5월 21일 한국에서 제기된 첫 동성혼 소송의 법적 쟁점에 대해,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장서연 변호사가 짚어봅니다. 이 기사는 공감 뉴스레터 2014년 6월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40년 인생의 동반자 관계, 법적으론 무의미?  

 

▲  동거 중인 성소수자 커플들은 파트너와의 결혼이나, 동거 관계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2013년 10월 31일, 매우 안타깝고 슬픈 사연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40년 동안 동거해온 두 여성의 삶과 죽음에 대한 기사(연합뉴스 “40년 동거한 여고동창생의 비극적인 죽음(종합)”, 2013년 10월 31일자)였다.

 

두 여성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40년간 동거한 사이였다. 그런데 한 사람이 암으로 병원에 입원하고 치료를 받게 되었을 때, 법률상 가족이 아닌 동거인은 상대방 조카와의 갈등으로 인해 파트너를 간병도 할 수 없게 되었고, 함께 살던 아파트에서 쫓겨났으며, 절도죄로 고발당하는 등 온갖 수모를 당했다. 결국, 60대 여성은 평생 함께해 온 상대방의 임종도 지켜보지 못한 채 지내다가 뒤늦게 상대방의 사망 소식을 접했고, 자신이 살던 아파트로 돌아가 목숨을 끊었다.

 

기사에서 그녀들은 ‘여고 동창’ 관계라고 언급되었지만, 그 내용을 보면 단순한 동창 관계를 넘어 훨씬 깊은 인생의 동반자 관계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아무런 인정도, 보호도 받지 못했다.

 

‘파트너의 수술 동의, 부양 관계 인정해달라’

 

한국에서 동성 커플은 이성 커플과 달리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 관계를 인정받지 못해서 여러 가지 차별과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파트너가 갑자기 아프거나 다쳤을 때, 병원에서 보호자로 인정되지 않아서 응급 상황에서조차 상대방의 혈연 가족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파트너가 사망하면 법정 상속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함께 살던 집에서 쫓겨나거나 장례 절차에서 유가족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배제 당하기도 한다.

 

일상적으로도, 파트너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해야 하는 자리에서 그 관계를 설명해주는 적합한 언어가 없어 매 순간 고민하게 된다. 우리 사회는 성소수자들에게 철저히 제도 바깥에서, 보이지 않는 삶으로 남아있으라는 암묵적인 강요를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성애 관계와 이성 간의 결혼만을 정상적이라고 간주하고, 동성애와 동성애자를 ‘비정상’이라고 낙인 찍는 편견이 강화되고 있다.

 

올해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가 공동으로 실시한 LGBTI(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간성 등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용어)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 조사 설문 결과에 의하면, 한국에도 동거하고 있는 성소수자들이 많다. 3천158명의 응답자 중에서 현재 연애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은 45.3%였다. 연애 중인 사람들의 25.5%가 동거 중이라고 답했는데, 동거 중인 사람들 중 33.8%가 5년 이상 관계를 지속하고 있었다.

 

이들은 파트너와의 결혼이나, 동거 관계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제도로 ‘수술 동의 등 의료 과정에서 가족으로서 권리 행사’를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국민건강보험 부양-피부양 관계 인정’을 꼽았다.

 

이처럼 성소수자들이 우리 법과 제도에서 완전히 배제됨으로써 겪고 있는 고통과 박탈감을 고려한다면, 지난 5월 21일 한국에서 제기된 첫 동성혼 소송은 오히려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부부의 날’을 맞아 김조광수, 김승환 부부와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가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제기한 이번 소송은, 이들 커플의 혼인 신고를 서대문구청장이 불수리 처분한 것에 대한 불복 신청이다.

 

‘동성’ 혼인 신고를 접수하지 않을 근거가 있나?  

 

▲  우리 민법은 동성혼에 대해서는 근친혼이나 중혼과 달리 직접적인 금지 또는 제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김조광수, 김승환 부부는, 2013년 9월 7일 청계천 광통교에서 많은 사람들의 축하와 지지 속에 성황리에 공개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 기념일을 즈음하여 서대문구청에 혼인 신고서를 제출하였다.

 

하지만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이들의 혼인 신고서를 접수하지 않았고, 언론에 직접 기고를 통해 “동성이 혼인까지 하겠다는 것은 전체 문화와 사회질서 법 테두리 이전에 사회적인 규범으로도 사람의 질서와 공동체의 정체성에 있어 위험한 생각”(동아일보 “[독자투고/문석진] 동성결혼 반대한다”, 2013년 12월 27일자)이라며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우리 민법은 혼인을 민법 친족․상속 편에서 규율하고 있는데, 동성혼에 대해서는 근친혼이나 중혼과 달리 직접적인 금지 또는 제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일부 국가의 혼인법에서 “혼인은 남성과 여성 사이에 한다(Marriage is between men and women)”라는 규정을 두고 있는 것과는 분명히 구분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대문구청은 민법 조항들을 근거로 대며, 동성 간의 혼인 신고를 접수하지 않았다.

 

서대문구청이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근거로 든 민법 제815조 제1호는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이므로, 동성혼과는 무관한 조항이다. 이 조항을 근거로 삼는다는 것은, 그저 ‘동성 혼인은 혼인이 아니니까 혼인이 아니다’라는 순환오류적인 주장을 펴는 것에 불과하다.

 

불수리 사유로 들고 있는 나머지 조항은 혼인의 성립이나 효력 요건에 관한 것이 아니라, 혼인의 효과와 이혼에 관한 규정이므로, 혼인 신고를 접수하지 않는 정당한 사유가 되기 어렵다. 아마 이들 조항에서 “부부”라는 용어를 근거로 든 것으로 보인다.

 

‘부부’라는 용어는 한자의 어원적으로는 여성, 남성이라는 성별을 구분하는 말로 볼 수도 있겠으나, 혼인법을 헌법에 기초해서 가부장제와 성차별을 철폐하려는 방향으로 해석한다면 혼인과 관련한 표현들을 구시대의 언어적 기원으로 제한할 이유가 없다. 이미 사회적으로, 언론들도 김조광수, 김승환 같은 동성 커플에게 ‘배우자’라는 의미로 “부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 받지 않을 권리

 

이전에는 제기되지 않았던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 법을 어떻게 적용하고 해석하는가와 관련하여, 참고할 만한 사례가 있다.

 

2006년 대법원은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 사건에서 “(구)호적법이 성전환자의 호적상 성별란 기재를 수정하는 절차 규정을 두지 않은 이유는 입법자가 이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입법 당시에는 미처 그 가능성과 필요성을 상정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나아가 “호적 기재가 진정한 신분 관계를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입법 취지에 합치되는 합리적인 해석”이라고 밝히며, 성별 정정을 허용하였다.

 

대법관 김지형은 보충 의견에서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에 관한 절차적 규정을 입법적으로 신설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아직까지 어떠한 형태로든 그에 관한 가시적인 입법 조치를 예상하기 힘든 현재의 시점에서” 사법부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언급하였다.

 

“입법 공백에 따른 위헌적인 상황이 계속되는 것보다는, 법원이 구체적.개별적 사안의 심리를 거쳐 성전환자로 확인된 사람에 대해서는 호적법상 정정의 의미에 대한 헌법 합치적 법률 해석을 통하여 성별 정정을 허용하는 사법적 구제 수단의 길을 터놓는 것이, 미흡하나마 성전환자의 고통을 덜어 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판시한 것이다.

 

“성적 지향”은 인간의 정체성의 한 깊은 부분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93년 동성애를 비롯한 성적 지향 자체는 정신적 장애와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를 동등한 입장에서 가치중립적인 성격으로 진단, 분류하고 있다.

 

또 대부분의 국제연합(UN) 국제인권조약 감시 기구들은 유권 해석인 일반 논평(General Comments)을 통해, 차별 금지 조항의 ‘차별 받지 않을 권리’에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이 포함된다고 해석하고 있다.

 

현대의 규범적 관점에서도, 동성애자를 이성애자와 달리 취급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법에 있어서 정의란 무엇인가를 심사하고 선언하는 사법부로서, 법원은 성소수자의 인권을 둘러싼 과거의 오류와 편견에서 벗어나야 할 시대적 책무가 있다. 성소수자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차별을 시정하는 한편, 마땅히 받아야 할 법적 보호 영역을 발견해고 해석해내야 할 때인 것이다.

 

헌법은 인간의 존엄과 혼인의 자유를 보장한다

 

우리 헌법 제36조 1항은 ‘혼인과 가족 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때 ‘양성의 평등’이라는 문언을 근거로 헌법적으로 보았을 때 동성혼이 배제된다는 주장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 조항에서 ‘양성의 평등’은 ‘혼인’뿐만 아니라 ‘가족 생활’ 전반에 기초되는 가치를 공통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성 간의 혼인만 전제하고 있다고 해석될 수는 없다. 헌법 제정자는 동성 간의 혼인에 대해 어떠한 가치 판단도 하지 않았으며, 결국 동성혼은 헌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라는 견해도 있다.

 

한국의 가족법 제도는 더디기는 하지만 1997년에 동성동본 금혼제를 폐지하였고, 2005년에는 호주제가 폐지되는 등 꾸준히 혼인 당사자의 자유 의사와 개인의 인격권, 행복추구권을 전제로 혼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오고 있다.

 

특히 헌법재판소는 1997년 동성동본 금혼제도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하면서 “혼인 제도와 가족 제도의 헌법 원리는 인간의 존엄성 존중과 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라 규정되어야 함을 천명한 것”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

 

또 2005년 호주제에 관한 헌법 불합치 결정에서는 “헌법에서 말하는 전통문화란 역사성과 시대성을 띤 개념으로서 헌법의 가치 질서, 인류의 보편 가치, 정의와 인도 정신을 고려하여 오늘날의 의미로 포착하여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다.

 

“혼인과 가족 생활은 인간 생활의 가장 본원적이고 사적인 영역이므로, 혼인.가족 생활을 국가가 결정한 이념이나 목표에 따라 일방적으로 형성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민주주의 원리와 문화국가 원리에 터 잡고 있는 우리 헌법상 용납되지 않고, 국가는 개인의 생활 양식, 가족 형태의 선택의 자유를 널리 존중하고, 인격적.애정적 인간 관계에 터 잡은 현대 가족 관계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계적으로 동성혼에 대한 인식과 제도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동성혼을 인정하는 국가는 2001년 네덜란드를 비롯하여 2013년 한 해에만 브라질, 프랑스, 우루과이, 뉴질랜드가 가세하여 16개국에 이른다. 동성 간에도 혼인이나 ‘생활동반자’ 관계를 인정하여 제도화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추세이다.

 

또한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평등권 위반’으로 위헌적이라고 한 세계 각국의 최고법원 판결들 -미국 하와이 주(1993), 버몬트 주(1999), 매사추세츠 주(2003), 캘리포니아 주(2008), 코네티컷 주(2008), 아이오와 주(2009), 그리고 캐나다(2003), 남아프리카공화국(2005) 등–을 통해 평등권, 차별 금지, 혼인에 대한 보편적인 해석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법원은 법의 정의와 평등에 관한 시대적 질문에 성실하게 응답해야 한다.  ▣ 장서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www.ildaro.com  

 

<여성주의 저널 일다> http://www.ildaro.com <영문 사이트> http://ildaro.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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