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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럭의 한곡 들여다보기] 민채 “Qui a tué grand-maman”
블럭(bluc)님은 음악평론가이자 음악웹진 웨이브(weiv) 운영진입니다. www.ildaro.com
선동을 자제하라?
여러모로 살기 힘든 시기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런 저런 공방이 벌어지면서, 세월호 참사는 각자의 마음 속에 파편이 되어 부유하고 있는 듯하다. 세월호 참사가 낳은 비극은 단순히 그 사건 자체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KBS 파업과 광화문에서의 집회 등 크고 작은 규모로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다. 누군가는 이러한 상황을 두고 소음을 키우는 일, 혹은 사회를 흐리는 행동이라고 비난하지만, 소수의 비리와 부정부패 아래 가만히 있을수록 당하는 건 다수의 사람들이다.
▲ 사회 저항적인 가사로 세계적인 주목과 사랑을 받은 샹송 가수 미쉘 폴나레프(Michel Polnareff)
때문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이성이 결핍된 존재’ 취급하며 나무라듯 ‘선동을 자제하라’고 하는 것은, 결국 권력 유지에 걸림돌이 되는 목소리를 제어하고 줄이기 위해서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럴수록 더욱 꾸준히, 열심히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그렇지 않으면 가시적 존재로 생각하지 않으니까.
연이어 강압적인 공권력의 진압과 감시가 이어지고 있다. 물론 하루 이틀 일어난 일은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 이후 ‘명박산성’, ‘물대포’에 이어 ‘최루액’까지 등장하면서 경찰은 더욱 강력한 방법으로 시민들을 압박해왔다.
그러나 시민들의 비폭력 시위와 행동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비록 뜻이 꺾이고 무산될지언정 의사를 조금이라도 표현하는 것, 그렇게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는 중요하다. 정부가 잘못된 관행과 부정부패를 바로잡겠다며 내건 “비정상의 정상화”는 정부가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민들이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
“Qui a tué grand-maman”(누가 할머니를 죽였나)은 프랑스의 미쉘 폴나레프(Michel Polnareff)가 만든 1971년 곡이다. 그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독특한 패션과 여성의 목소리에 가까운 미성은 그 자체로도 주목을 끌 수 밖에 없었지만, 샹송에 팝 요소를 가미하는 실험적인 태도와 사회 저항적인 가사가 사람들의 관심을 더욱 끌어 모았다.
이 곡은 프랑스의 어느 재개발 지역에서 한 할머니가 자신의 정원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다 목숨을 잃은 사건을 두고, 할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할머니가 할머니가 사셨던 시절 / 정원엔 꽃들이 피어올랐지 / 세월은 흐르고. 기억들만 남았네 / 그리고 당신 손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았네.” 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곡은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 세월인가, 아니면 무심한 사람들인가?”라는 후렴구로 이어진다. 또, 직접적으로 할머니의 정원이 뺏기는 모습을 묘사하고 그것이 최선이었는지 묻고 있다.
개발독재에 저항하는 상징적인 노래가 된 이 곡은, 한국에서 “오월의 노래”로 번안되기도 하였다. 이 민중가요는 1980년대 광주 민주화 운동의 대표적인 곡 중 하나이다. 곡이 가지고 있는 빠른 템포와 분위기는 묘한 느낌을 주며, 가사가 가진 비장함과 약간은 결을 달리 하면서도 동시에 그 간극으로부터 오는 어두운 느낌이 크게 다가온다.
재즈 보컬리스트 민채의 편곡으로 다시 듣다
▲ 재즈 보컬리스트 민채 1집 <Shine On Me>
“Qui a tué grand-maman”를 자신의 앨범에 두 번이나 실은 가수가 있다. 재즈팝 보컬리스트 민채(Minchae)이다. 민채는 2013년에 발표한 자신의 첫 EP와 올해 발표한 첫 정규 앨범 <Shine On Me>에 이 곡을 수록하였는데, EP에는 첫 트랙으로 실렸다.
재즈 보컬리스트이면서 싱어송라이터인 민채는 약간 늦게 데뷔한 감이 있지만, 각종 매체에서 주목하며 빛을 받고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깊은 감정을 담아내는 듯한 저음과 표현력은 그녀가 가진 최고의 매력이다.
민채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 곡이 어떤 의미인지 알았기에 첫 트랙으로 실었다’고 하면서, 자신에게는 운명처럼 다가온 노래라고 덧붙였다. 민채 버전의 편곡은 원곡이 가지고 있는 가사와 정서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차분하고 우울한 느낌을 준다. 동시에 굉장히 세련되고 아름다운 곡이라 듣는 이를 감탄하게 만든다.
어쩌면 세월호 참사는 조금씩 잊혀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주 잊혀질 수는 없을 것이다. 다시금 상기하는 시기가 찾아올 것이다. 변한 것은 없기에, 무심한 시간에 맞서 지금의 분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삶에 쫓겨 지금의 분노를 하얗게 잊고 싶지는 않다. 이 곡처럼 멋지게, 또 세련되게 그 감정을 살려내는 일은 어려운 작업일 테지만, 이렇게나마 글을 쓰면서 한 번 더 되새기고자 한다. ▣ 블럭 www.ildaro.com
*민채 “Qui a tué grand-maman” 영상 www.youtube.com/watch?v=EaCmw_6Qq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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