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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페 버스정류장] (26) 연탄난로와 대추차 
 
※ 경북 상주시 함창읍 함창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카페 버스정류장”.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무는 이 까페의 문을 연 박계해 선생님은 “학교를 떠나 산골로 들어간 한 여자의 귀촌일기” <빈집에 깃들다>의 저자입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  까페 버스정류장 2층에서 내다본 풍경. 이제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는 시기이다.   © 일다 
 
오소소 소름을 돋게 하는 찬바람과 함께 추적추적 내리는 비.
이는 분명, 겨울이 코앞에 다가옴을 예고하는 예의 바른 노크 소리다.
 
....... 추적추적...... 당신이 이 카페에서 맞는 세 번째 겨울이 곧 도착할 예정입니다. 자,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십시오........
 
지은 지 반백 년이 넘어 단열 처리가 되어있지 않은 우리 카페는 가랑비의 습기마저 이기지 못하고 냉기를 뿜어낸다.
 
그래서 노후한 건물의 신경통을 가라앉히기 위해 일찌감치 연탄난로를 놓을 참이다. 지난해에 난로를 구입했으니 올해는 연통만 설치하면 된다.
 
첫 해에는 이웃의 권유로 산 석유난방기구로 겨울을 났다. 난방기 구입비도 많이 들어서 한 번의 겨울만 보내고 다른 난방을 생각하기엔 너무 억울했지만, 유지비가 워낙 만만치 않아 과감하게(?) 바꾸기로 한 것이 연탄난로였다.
 
화목난로가 가장 운치도 있고 좋기는 하지만 시골에서 살아본 깜냥으로 그것이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필요로 하는지 잘 알고 있으며, 우리 카페는 공간이 세 군데이므로 안전 관리에도 어려움이 따를 것이었다.
 
결국 고려대상에 들지도 않았던 연탄난로로 결정하게 된 것은 비용 대비 열효율을 고려했을 때 그보다 나은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연탄난로는 비교적 싼 편이라 중간에 포기해도 큰 손해는 나지 않을 터였다.
 
연탄에서 나오는 일산화탄소는 생명을 잃을 만큼 유독한 가스지만 난로에 배기통을 달아 밖으로 빼고 난로 뚜껑을 잘 닫으면 실내에 가스가 나오지 않는다. 읍내에 있는 식당이며 상점들도 거의 모두 연탄난로를 쓰고 있는데 관리만 잘하면 문제가 될 게 없다고 했다.
 
그래도 명색이 ‘카페’인만큼 효율에 못지않게 고려해야 할 것이 정서적인 부분인지라 마음이 썩 개운하지는 않았던 것인데,
난로를 설치하고 처음 연탄불을 피운 날은 꼭 작년 이맘때였다.
 
가뜩이나 염려스러운데 연탄불이 붙고 난로가 따뜻해지면서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악취가 풍기더니 점점 실내를 가득 채웠다.
 
난로를 설치해 주는 분에게 실례가 될까 봐 참으려고 했지만 기어이 신음 소리(?)를 내고 말았다.
“으, 연탄 냄새가 이렇게 지독해서야........ 아무래도 이건 안 되겠어요.”
“아, 이건 새 난로에 붙어 있는 기름이 타는 냄샙니다. 쇠붙이가 달아올라 표면의 기름이 다 타고나면 괜찮아집니다.”
 
창을 활짝 열고 연탄을 계속 피워대자 몇 시간 후, 냄새는 더 이상 나지 않았다. 다행이긴 했지만 그 사이, 냄새로 인해, 들어서던 한 무리의 손님들이 되돌아나갔다. 그들은 내게 이 냄새의 정체가 뭐냐고 묻는 대신 도망치듯 가버리는 걸로 의사 전달을 했기에 나는 아무런 해명도 할 수 없었다. 만약 이렇게 악취가 날 줄 알았더라면 마당에서 불을 피워 쇠 난로에 들러붙은 기름을 다 태운 뒤 갖고 들어왔을 것이다. 어쨌든 기껏 찾아온 분들을 실망시킨 일은 참 죄송하다.
 
다행히 그 일을 빼고는 연탄난로로 인한 별다른 문제는 없었고 따뜻하고 정겹다는 평이 많았다. 그러기 위해서 나의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긴 했지만.
 
공기구멍을 중간으로 했을 때 연탄 한 장이 타는 시간은 약 8시간, 연탄을 갈 때는 뚜껑을 열 수 밖에 없고 그 때는 냄새를 안 풍길 수가 없기 때문에 아침 7시에 연탄을 간다. 그러면 카페 문을 여는 열한 시 경에는 실내가 적당히 따뜻해진다.
 
8시간 후인 오후 3시경에는 연탄을 갈아야 하는데 그 주변 시간에, 위 아래층 중에 손님이 안 계시는 방을 먼저, 그리고 양쪽 다 계실 때는 최대한 방이 비기를 기다리다가 너무 늦기 전에 양해를 구하고 방을 옮기게 한 다음 연탄을 간다. 연탄을 가느라 뚜껑을 연만큼 환기를 오분 정도 시킨다.
 
그리고 카페 문을 닫자마자 11시에 또 연탄을 간다. 그리고 밤새 난로 위에 대추를 가득 담은 찜통을 얹어 대추를 달인다. (연탄난로 덕분에 지난겨울 우리 카페의 대표 메뉴는 대추차가 되었다.) 뒷정리를 마치면 자정이 훌쩍 넘어서 잠자리에 드는데 연탄을 갈기 위해 아침 일곱 시를 넘기기 전에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방마다 다 난로를 때지는 못하고 한군데는 온풍기로 난방을 하지만 생활공간인 집의 난방도 연탄으로 하니 하루에 세 번, 세 군데의 연탄불을 갈아야 한다. 생 연탄도 연탄재도 깨뜨렸다간 수습하기가 만만치 않으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지난해에는 11월 중순부터 5월 초까지 딱 이천 장의 연탄을, 마지막 한 장까지 다 때고서야 연탄난로를 철거하였다. 그런데 올 겨울은 더 춥고 길 거라는 보도가 있었으니 우리 카페는 일 년의 반 이상이 겨울인 셈이다.
 
엄살이 길었다. 그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는 자영업자가 되는 일이 그리 쉬운가. 게다가 연탄이 없다면 가난한 나는, 우리는, 이 겨울의 노크 소리가 얼마나 두려우랴.
 
천 장의 연탄을 들여놓았고 좋은 대추도 수소문해 두었으니 이제 겨울을 맞는 일만 남았다.  ▣ 박계해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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