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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나의 페미니즘>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곽이경  


<일다> 10주년 기획 “나의 페미니즘”. 경험을 통해 여성주의를 기록하고 대안담론을 만듭니다. 이 연재는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기금의 지원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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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페미니즘이 어렵고 불편하기만 하던 내게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페미니즘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고 나서였다. ‘관점’으로서의 페미니즘은 나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사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여기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몇 번의 부딪힘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웃으면서 회고할만한 기억은 아니라서 내가 이 글에 그것을 정리해야 할지 지금도 망설여지지만 에라, 모르겠다. 그것도 나니까. 게다가 이러한 자기 고백 없이 ‘나의 페미니즘’이 시작될 수 있을까 싶어서, 쓴다.
 
‘페미니즘은 나하고 안 맞아’
 
고등학교 시절 내내 동성애자로 살게 될까 봐 무서웠던 나는 정기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의 죄를 뉘우치다가, 대학에 들어가서도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도 “나는 남자랑 결혼할 것임”을 다짐하곤 했다.
 
‘정상적인’ 삶에 대한 간절함이 너무 컸던 탓에, 당시 유행하던 PC통신의 성소수자 동호회를 기웃거리면서도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널까 무서워서 차마 가입은 못했다. 대개 그렇듯 자기 혐오에 찌든 동성애자에게는 어떤 계기가 필요했다. 내 경우에는 맑시즘이었다.
 
나는 여성운동에 큰 관심이 없었다. 페미니즘에 대해 알고 있는 선배나 동료도 없었다. 아니, 한 명 있었는데 레즈비언이라고 해서 관심이 갔다고 하는 편이 오히려 솔직하다. 그만큼 내가 여자라는 것을 굳이 자각하지 않고 지냈다.
 
하루는 레즈비언 후배를 따라 다른 학교 레즈비언들을 만나러 갔다. 그때만해도 다른 성소수자들과 만날 기회가 많이 없었기 때문에 괜히 멋지게 보이고 싶기도 하고 관심도 끌고 싶었기 때문에 조금 폼도 잡아봤다. 그리고 그날 많은 것을 느끼고 돌아왔다. ‘레즈비언이라고 다 같은 레즈비언이 아니구나.’
 
레즈비언이면서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언니들은 무서웠다. 어려웠고, 불편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를 환대하지 않는 듯했다. 남성과 성폭력에 대한 공통된 분노를 표현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몹시 똑똑해서 어려운 단어도 많이 알아야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인가 싶었고, 무엇보다 남자같이 꾸미고 다니는 내 모습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나는 내가 느낀 이질감을 자세히 바라보려 하지 않은 채, 그 불편한 느낌과 페미니즘을 뭉뚱그려서 일찌감치 방구석에 밀어놓았다. ‘페미니즘은 나하고 안 맞아.’
 
구조조정으로 거리에 내몰린 노동자들
 
고등학교 졸업 즈음을 규정하는 한 단어는 ‘IMF’였다. 아버지들이 ‘명퇴’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홈리스가 되었다. 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여겨지던 당시에 내 관심은 거리의 노동자들을 향했다. 믿을 수 없는 부의 불평등함과 인간이 결국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잔인함이 자본주의라는 괴물에서 비롯한다는 것이 내가 느끼는 현실이었다.
 
가장 커 보이는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 사회 변화를 위해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아버지들이 해고되던 시절에 수많은 여성들이 더 먼저 잘려나갔다는 것은 모르는 사실이었다. 알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다. 어쩌면 나는 ‘아버지가 좀더 질기게 살아남아야 하지 않느냐’ 하는 논리에 동의를 보냈기 때문이 아닐까? 차별은 그렇게 유지되는 것 아니던가.
 
그런 이유로 내게 맑시즘은 보다 구체적인 지향점이었다. 운이 좋았는지 내가 활동하던 맑스주의 단체의 활동가들은 ‘동성애자가 비정상으로 여겨지는 것은 편견과 차별을 만들어내는 사회 때문’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내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만해도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 것과 같았다.
 
처음으로 개신교 신앙이 아닌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행복했다.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는 싸울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같은 길을 걷고 있었고 우리, 노동 계급을 갈라놓으려는 세상에 맞서 연대하고 단결하는 것이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운동이라는 확신이 섰다.
 
‘남성으로 정체화된 레즈비언’이라는 오명
 
대학을 졸업하면서 성소수자 단체 활동을 시작했다. 집회에서 무지개 깃발을 본 적이 있다. 그것이 성소수자들의 상징이라는 것은 알았기 때문에 몹시 반가우면서도 근처에 가자니 걸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막상 그 속으로 들어가보니 생각보다 편안하고 용기도 솟았다.
  

 

▲ 2009년 11월 전국노동자대회 유인물 <성소수자 차별 없는 일터 함께 만들어갑시다!>   ©동성애자인권연대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성소수자들을 모집해 집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많은 성소수자들이 거리로 나섰다. 누군가 무지개 깃발을 들고 거리를 달릴 때 해방감을 맛보았다고 했고, 한 남성동성애자 사이트 게시판에는 ‘당신들이 자랑스럽다’는 메시지도 올라왔다.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며 나선다는 것, 그것이 여전히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인 것은 물론이다.
 
나는 바로 결론을 내렸다. ‘계급’이 모든 문제를 포괄한다고 생각하고는 전쟁도, 가난도, 차별도 모든 문제들이 계급 투쟁을 통해 해소될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공개적으로 토론에 임했다. 노동 계급이 세상을 멈출 수 있는 힘을 지녔다고 인식하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계급 안에 모든 것을 녹여버릴 수 있다고 믿어버린 것이다.
 
여러 성명서와 입장들을 통해 나는 모든 문제를 계급 문제로 치환하는 ‘계급환원론자’가 되었고, 때로 ‘남성으로 정체화된 레즈비언’이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억울하고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내가 가진 정치적 신념을 공개적으로 토론하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인가 싶어 여러모로 반박도 해봤지만 결국 상처가 더 많이 남았다. 한동안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성소수자 운동을 하는 나에게 운동의 동지들이 붙인 수치스러운 딱지 같아서, 페미니스트를 만나면 움츠러들었다.
 
성소수자 운동이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될 때
 
미뤄두었던 상처를 다시 돌아보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서였다. 어느 날 함께 활동하던 친구로부터 ‘노동(조합)운동을 하면 성소수자 운동도 다 잘 된다’는 조언(?)을 들었다. ‘정말? 그러면 다 돼?’ 강한 반발심이 올라왔다. 누군가가 수고하여 성소수자의 목소리를 모아오지 않았는가, 선전물을 쓰고 붙이고, 사람들을 만나고 발로 뛰며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은 사람들이 이 운동을 만들어오지 않았나.
 
그날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에 잠겼다. 구겨서 처박아 놓았던 갈등을 끄집어내어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현실에 존재하는 갈등과 이미 형성된 권력 관계를 무시해왔다. 계급 해방이라는 목표만 제시하였지, 거기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헤쳐나가야 할 수많은 어려움은 머릿속에서 간단히 해결해 버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현실에서 여성의 노동이 얼마나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지는지, 얼마나 빈번한 성희롱과 성폭력이 발생하는지, 그로 인해 남성과 연대감을 형성하기조차 어려운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내가 하는 운동이 대체로 중요하지 않게 여겨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실망을 안기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실의 노동(조합)운동과 계급 투쟁을 뒤섞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내 상처는 그대로다. 하지만 그제서야 내가 지금껏 굳게 믿어온 것들의 이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페미니즘’임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동성 파트너를 하늘 나라로 떠나 보내다
 
그래도, 나는 정말 누군가가 죽도록 미웠던 적은 없었다. 동성애자로 사는 것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나는 4년전 동성 파트너를 하늘 나라로 떠나 보냈다.
 
그녀를 간병했던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는 다시금 자기 혐오에 빠져 들었다. 그녀의 가족들로부터 무시당했던 경험, 병원에서, 그녀와 함께 하는 모든 곳에서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무 설명도 듣지 못하고 어떤 결정도 할 수 없을 때 느껴지는 무력감과 위축되는 내 모습, 역시나 가난한 지하철 행상이었던 그녀의 어머니를 향한 적개심, 모든 것들이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실천하던 세상과는 아무 상관도 없어 보였다.
 
결국 그녀가 묻힌 곳조차 알지 못한 채 버려졌을 때, 그녀의 죽음이 내 탓이라고 수근대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조차 진짜라고 믿게 되었을 때, 나는 이성애자들이 죽도록 미워졌다. ‘나는 아무 것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왜 나를 미워해?’ 내가 믿었던 세상은 둘로 갈라져 버렸다.
 
나는 갈라져버린 세상을 어쩌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아팠다.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를 돌보느라 몸은 구석구석 돌아가며 병이 났고, 누군가를 탓하고 싶었다. 가난했던 그녀의 어머니와, 평범한 노동자였던 그녀의 언니와 오빠들과 계속되는 적대 관계는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적대해서는 안 될 사람들을 미워한다는 생각이 나를 더 괴롭혔다. 내가 왜 아픈지, 내가 왜 미운지,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정리할 수 없었다.
 
다시 만난 페미니즘은 따뜻했다
 
듣는 사람이 있어야 말할 수 있다. 응답의 가능성이 있을 때 버려졌다는 생각을 접을 수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된 페미니즘은 따뜻했다. 페미니즘은 응답에 대한 희망을 상실했던 나와의 ‘대화’로서 다시 돌아왔다. 차별을 분석하거나 판단하기 이전에 충분히 당신에게 젖어들 수 있는 은근함, 두 개로 갈라진 세상을 서둘러 봉합하려 하지 않는 차분함이 오히려 현실에 직면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재촉 당하지 않았고 서둘러 결론 내리지 않았다.
 
그 무렵, 페미니즘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함께 대화하는 사람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차별 받는 사람의 눈으로 보는 세상, 내가 발 딛고 선 곳에서 보는 세상이 새롭게 보였다. 추상적으로 뭉뚱그려져 있던 세상에서 경험을 길어 올리자, 드디어 세세한 결의 감촉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동성 파트너에게 의료 결정권이 없는 것은 차별’ 맞다. 동시에 그 권리가 없어서 무시당했다고 느끼고 세상에서 뿌리 뽑혔다고 생각했던 나도 함께 보아주길 원한다. 나는 그런 과정을 거쳐 안정감을 가지고 다시 땅에 뿌리를 박기 시작했고, 다시 뭐라도 해볼 수 있는 힘을 얻었다.
 
페미니즘은 권력 없는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에,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힘을 북돋는 운동이다. 세상의 지배 질서가 외면한 사람들의 얼굴을 바로 보고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다. 덕분에 나는 조금씩 굳건해져 가고 있다.
 
노동계급과 무지개를 함께 비춰주는 창
 

 

▲ 2010년 3월 5일 서울 여성플라자에서 <성소수자와 노동 토론회> “우리들의 일터에 PINK를 허하라”가 열렸다.   © 동성애자인권연대
  
 
얼마 전 민주노총과 ‘성소수자 노동권’과 관련하여 간단한 면담을 진행했다.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민주노총이 공식적으로 캠페인을 펼치는 순간, 조합원들로부터 엄청난 항의 전화를 받을 것이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다. 노동자들은, 그리고 노동조합은 갑자기 점프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사회에 뿌리 깊은 차별과 고정관념, 편견의 효과 때문에 언제까지고 남성/ 비장애인/ 이성애자/ 한국인/ 정규직 노동자만으로 노동 계급이 대표되는 것을 방관할 수도 없다.
 
나는 ‘성소수자 노동권’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전과는 다른 관점으로 다시 계급과 ‘무지개’를 연결해보고 싶어진 것이다. 처음에는 막연했던 것이 이제는 조금씩 구체화되고 있다. 노동운동의 실천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도, 이 관점에서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문제가 아니었던 것을 문제로 만드는 힘, 그 힘은 ‘성소수자 노동자’의 얼굴을 드러내는 것으로, 그 모습 그대로 ‘참여’하게 하는 것으로 북돋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잃어버렸던 연결 고리가 아니었을까? 그런 과정을 통해 노동자 스스로를 새롭게 인식하고 세상을 바꿀 힘을 가진 주체들로 변화할 가능성이 열리는 것 아닐까? 나는 지금의 노동운동이 자본주의 사회가 차별과 편견을 이용하여 무디게 만든 ‘타인에 대한 감각’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그러한 가능성을 열어 젖히기란 몹시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나는 구체적 관계들 속에서 이미 그렇게 변화하는 노동자들을 만나고 있다.
 
내게 페미니즘은 노동 계급과 무지개를 함께 발견하게 해주는 또 다른 창이다. ▣ 곽이경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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