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나의 페미니즘> 대학 여성주의자 4인의 대담
<일다> 10주년 기획 “나의 페미니즘”. 경험을 통해 여성주의를 기록하고 대안담론을 만듭니다. 이 연재는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기금의 지원을 받습니다. 이번 기사는 대학에서 여성주의 활동을 하는 파랑, 바탕, ㅃㄱ, 초록 4인의 대담입니다. www.ildaro.com
1. 구분 짓기: 여성? 여성!
파랑: 요새 이슈가 많아서 그런지 유난히 여성, 남성 관련된 얘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바탕: 응 맞아. 툭하면 여-남이 대립 구도가 된다거나, 관련 없는 기사나 내용에도 한쪽 성을 비하하는 댓글들이 달리는 것 같다는…. 여성부 관련된 건 ‘드립’처럼 쓰이기도 하고.
ㅃㄱ: 여성은 어떻고 남성은 어떻고, 뭘 해도 여자라서 이런 거고 남자라서 저런 거고. 한 개인의 특성이 성(性)으로 환원되는 고정관념이 나날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아.
초록: 그러게. 여성이 받는 피해는 남성 탓, 남성이 받는 피해는 여성 탓. 요렇게 여겨지니까 그런 것 같아. 서로를 적으로 상정하는 전제가 깔리다 보니, 진짜 문제는 짚기가 힘들어지고. 결국 성 대결이 되어, 건설적인 해결책으로 이어지는 논의가 되기보다는 주로 다른 쪽 성을 헐뜯고 혐오하는 쪽으로 전개되나 봐. 그런 식으로 계속 소모되고 감정만 상하게 되고….
파랑: 응, 볼 때마다 ‘이게 아닌데’ 생각하면서 아쉬워. ‘남성은 어쩌구 하고 여성는 저쩌구 하고’ 식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대체 거기에서 언급되는 남성 여성은 뭘까? 무슨 존재일까? 의문이 생겨. 세계 인구가 60억을 넘은 지 언젠데, 개인을 무조건 여성 혹은 남성, 이중 택일해서 범주에 차곡차곡 때려 넣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실은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도, 그런 이분법이 참 무성의하고 거친 분류라는 걸 알 수 있는데!
ㅃㄱ: 그렇지. 여-남의 성차가 존재한다 해도, 그것이 그렇게 클까? 두 집단의 차이보다 각 집단 내부에 있는 30억명들 사이의 차이가 훨씬 크겠다.
바탕: 예전에는 심지어 인종이나 피부색이 사람들을 구분 짓는 데 의미가 있다고 여겨졌다잖아. 백인은 우성, 흑인은 열성 뭐 이렇게. 이런 구분 짓기들은 당연히 지금은 의미가 없다고 판명되었고. 그런데 유독 성별로 사람들을 구획하는 건 점점 더 심해져.
ㅃㄱ: 응. 생물학적 특성으로 분류하는 거야 할 수 있는 건데, 단순한 분류에 그치는 게 아니라 사람을 구속하는 틀이 되니까 문제인 것 같아.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을 딱 만들어놓고, 그게 완전 센 규범이 되잖아. 이런 규범 때문에 고통 받지 않는 사람이 없어. 역할 규범에 부합하려고 애쓰거나, 규범에 걸맞지 않아서 사회적으로 매도 당하거나. 또 이 규범들은 고정불변한 것이라 여기고, 계속 순환되고….
초록: 맞아. 나는 원하든 원치 않든 대부분 ‘여성’으로만 존재하는 것 같아. 특히 여-남이 동시에 있는 집단이나 어른들 많이 계시는 곳에 가거나 그럴 때. 요즘엔 “여자는 ~해야 되지”하며 노골적으로 얘기하는 사람들은 좀 줄었지만, 내가 머리는 짧게 자른다거나 여성스럽지 않은 복장을 하거나 밖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할 때, 나는 ‘나’라는 사람이 아니라 ‘여성’이기에 좀 다른 시선을 받지.
파랑: 누구든 처음 만난 사이에 내가 어쩌다 대학생이라고 소개하게 되면, 당장 ‘여대생’ 이미지로 스캔하고 바로 이런 생각들이 꼬리 무는 거지. 쟤는 아마 오빠라고 부르는 남자친구가 있을 테고, 여자친구들이랑 수다 떠는 거 좋아하고, 집에선 애교 있는 딸일 테고, 다이어트하고 있을 거고…. 이런 것들. 내가 여성이라는 정보가 너무나 크게 부풀려서 인식되는 거?
초록: 맞아 맞아. 그러니까 나도 내 실제 모습들을 오픈하기 힘들어져. 남자와 소개팅을 한 적이 있었어. 서로 소개하는데, 각자 성별 규범에 적합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주로 나열되었어. 과연 나도, 그 상대도 자유로웠을까?
ㅃㄱ: 소개팅뿐만 아니라 대부분 관계에서 자유롭기 힘든 것 같아. 여성이기에 혹은 남성이기에 입어야 하는 옷차림, 갖춰야 하는 덕목, 취해야 하는 행동, 맡아야 하는 역할들이 정해져 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참 작위적이야. 이런 얘기가 어떻게 보면 급진적인 생각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데, 그만큼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숨쉬듯 젠더(gender)의 구분에 영향을 받으며 사는 것 같아.
파랑: 이젠 좀 여-남 구도를 벗어났으면 좋겠어. 지금의 성 대결 싸움들은 결국 여-남이 각자의 피해 사례로 맞받아치며 무한 반복될 뿐이잖아. 사실 모두가 피해를 입게 만드는 더 큰 문제들이 있고, 그것들에게 벗어나기 위해 뭘 하면 될지 고민하면 좋을 텐데. 젠더 구분뿐만 아니라 인간을 정상/비정상으로 나누는 모든 구분 짓기들이 조금씩 낙후되면, 우리 모두 좀더 행복하지 않을까.
2. 여성주의: cool과 warm 사이
▲ 정은의 빨강 그림판 "저녁의 연주회" © 일다-
초록: 숨쉬듯 영향 받는다는 게 딱 맞는 표현인 것 같아. 태어나서부터 이십 년 넘게 주욱 그렇게 살았으니까. 나는 십대 때 가정에서는 착한 딸이고 학교에서는 얌전하고 참한 여학생이었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니 그때 나는 내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조차 몰랐던 것 같아. 뭘 하고 싶어하는지,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른 채 주위에서 원하는 역할대로만 살았어.
대학 와서 처음으로 낯선 곳에 혼자 뚝 떨어져있으니, 내 존재가 흐릿하게 느껴졌다고 할까. 부모님, 선생님, 친구들이 쌓아준 역할들에만 맞추며 살았는데 그런 것들이 없어지고, 내가 스스로를 꾸려가야 하는 ‘자유’가 주어지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거지. 내게 주어졌던 역할들을 내면화하다 보니 진짜 나를 쌓지 못한 거지. 그러다 대학에 오고 여성주의를 만났지. 그리고 뭐 이렇게 됐지! (웃음)
파랑: 나도, 나도. 나는 특히 부모님이 내게 딸로서 기대했던 역할이 정말 컸어. 오빠에겐 기대하지 않는 것들을 나에겐 기대하고, 오빠에겐 허용하는 것들을 내게는 허용하지 않고. 딸이니까 자취를 못하고 매일 왕복 네 시간씩 통학하며 4년을 다녔어. (일동: 대박!)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몰라, 지금 하라면 못함.
어릴 때 오빠가 야동 보다가 들켰을 때는 아빠가 소위 ‘남자 대 남자’로 포용해주고, 반면 내가 아주 어릴 때 마스터베이션을 하다 엄마한테 들켰을 때는 그 후로 계속 감시를 받고 그러다 병 난다고 위협받고. 이런 상황이 계속되니까, 부모님의 통제에 반항하다가도 ‘내가 잘못한 게 아닌가’ 자기 검열을 하게 되더라고. 여성주의를 만나고 나서 내가 자유를 원하는 것이 나쁜 게 아니라는 것을, 성적 욕구를 갖는 게 당연하다는 것을 알게 됐지. 주어진 역할이 아닌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돌아볼 수 있게 되었어. 여성주의가 나한테 확신을 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초록: 나도 첫 남자친구랑 연애했을 때가 생각나네. 운 좋게도 그 친구는 감수성이 있는 친구였어. 내게 뭔가를 강요하거나 하지 않았지. 그런데 나는 괜히 사회에서 정해놓는 ‘여친의 덕목’에 나를 맞추려고 애를 썼던 거야. 그 친구가 재수할 때, 손재주도 없으면서 이런 저런 것들을 화려하게 만들어주거나 그런 것들. 실은 나는 심플한 것을 더 좋아하는데 말이야. 괜히 애쓰면서 나답지 않은 행동들을 많이 했던 거지. 그렇게 하면서도 행복하진 않았고. 결국 이런 것들이 나를, 그리고 관계를 망쳤던 것 같아.
파랑: 나도 여자는 조금 튕겨야 된다, 먼저 다가가면 안 된다, 뭐 이런 자잘한 것들에 맞췄던 기억이 나. 여친의 덕목 리스트만큼 남친의 덕목들도 정해져 있고, 결국 각자 규범에 맞추느라 진짜 원하는 것에 대해서 자유롭게 소통은 하지 못했던 것 같아. 특히 이성애 연애에서 역할 규범에 매이게 되기가 쉽잖아. 아쉬워. 물론 동성애라고 해서 그런 문제들이 꼭 다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ㅃㄱ: 맞아. 그래서 여성주의를 접했을 때 뭔가 명쾌해졌던 것 같아. 말 잘 듣고 애교 있는 딸이나 여우 같은 여친과 같은 역할 규범들이 진짜 내가 원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되게 속 시원했어. 여성주의는 개인을 억압하는 것들에 대해 아닌 건 아니라고 확실하게 말해주니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자유롭게 살아. 이렇게 얘기해주니까.
파랑: 응. 그동안 혼자서 어렴풋이 느끼던 문제들에 대해 확실히 따박따박 들었을 때 힘을 받는 느낌이었지. ‘정상적인 가족이란 신화에 불과하다’, ‘나를 위한다는 부모님의 훈계들이 가부장적 통제일 수 있다’,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 좀더 내 감정과 욕구를 잘 알게 되고 솔직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
초록: 여성주의가 cool한 면이 있지. 때로는 그런 면이 따끔거리게 느껴질 때도 있지. 아무리 내가 여성주의를 계속 공부하고 마음에 새기려 해도, 사회가 내게 심는 편견, 고정관념들에서 완전 자유로울 수는 없잖아. 그럴 때는 여성주의가 내겐 아~주 단호하지. 나를 채찍질해서 스스로에 대해 성찰하게 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내가 타인을 폭력적으로 대하지는 않나 거듭해서 고민해보게 되고. 결국 이런 성찰이 타인에 대해, 관계에 대해, 사회에 대해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
바탕: 나는 여성주의가 나를 있는 대로 긍정해준다는 점에서 참 고맙기도 해. 여성주의가 cool할 때도 있지만 또 한없이 warm하지. (웃음) 요즘 대부분 청년들이 한 번쯤 느끼겠지만, 나도 내가 앞으로 뭐해 먹고 살지 모르겠고, 친구들은 알아서 자기 갈 길 가는 것 같고, 연애도 잘 안 되고 막 그럴 때, 한없이 루저 같아서 절망스러울 때 (여성주의는) “네 잘못이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라고 위로해 주는 것 같아. 물론 돈이 나오지는 않지만. (웃음)
ㅃㄱ: 내게 있는 다양한 성향들 중에 뭔가 튀는 것 같고 비주류적인 게 있으면 ‘내가 이상한가?’ 고민하게 되잖아. 그럴 때 (여성주의는) 그렇지 않다고, 너를 있는 그대로 자유롭게 사랑하라고 보듬어주잖아. 이게 자기계발서의 무조건적인 자기긍정 뭐 그런 게 아니라, 내가 가진 소수자성과 비주류적인 면들을 포용할 수 있게끔 더 넓은 시각을 갖게 해주는 것 같아. 이런 시각이 자연스럽게 타인과 사회라는 이슈로 이어지고, 그럼으로써 또다시 나를 새롭게 볼 수 있고.
초록: 나와 타인과 사회를 아우르게 되는? (일동: 오~~)
3. 개인의 취향: 덕후? 느낌 아니까~
초록: 얘기하다 보니, 우리 사회는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편견들은 성별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개인이 가지는 기호와 선호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들었어. 예를 들어, 내가 즐겨 하는 취미인데 사회적으로는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라든지.
파랑: 그 말을 들으니까 생각나는데, 나는 사실 ‘나는 그런 덕후 아냐!’를 외치고 다녔던 사람이야. 덕후가 뭔지는 알지? 그러니까 나는 애니랑 만화를 좋아하고, 하드록하는 일본밴드 좋아하고, 스트릿 패션을 좋아하고, BL(Boys Love)도 좋아하고. 흔히 말하는 비주류 문, 오타쿠 문화에 열광하는 사람이었어. 지금도 일부 그렇지만.
ㅃㄱ: 파랑의 덕후 기질 다들 알고 있지.
파랑: 중학교 때는 그냥 좋아하는 취미에 열광하면서 그럭저럭 지냈어. 그런데 고등학교 와서 내 취향이 그렇게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야. 내가 좋아하는 취미들이 비주류라고 규정되고, 그런 취미를 가진 친구들이 좀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 나는 내 나름대로 조치를 취했던 것 같아.
바탕: 조치라니 어떻게?
파랑: 내가 이런 문화를 좋아한다는 것을 친구들에게 말하고 다녔지만, 그와 동시에 같은 취향을 가진 친구들과 나는 다르다는 것을 어필하고 다녔어. “난 그런 덕후 아냐!” 라고 말하고 다닌 거지. 일반적인 덕후 친구들과는 다르게 오히려 내가 덕질하는 것을 숨기지 않음으로써 다르게 보이려고 했고, 사교성 있게 보이려고 애썼어.
초록: 모든 덕후들이 사교성이 없는 게 아니잖아? 그거야말로 편견 아냐?
파랑: 그래서 내가 사회적 편견을 떨치기 위해 선택했던 방법은, 형성된 편견과는 다르게 행동하는 거였어. 일부러 더 활달하게 친구들과 놀았고, 하지만 동시에 나는 이런 덕후같은 문화도 좋아한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특이한 매력으로 비춰질 수 있게끔. 이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동시에 내가 ‘덕후’라는 어떤 일종의 취향으로 빚어진 편견에서 탈피하고자 꾸준히 노력했던 거야. 분명히 한계는 있었던 거지.
바탕: 파랑 말을 들으니 내 이야기도 하고 싶어지네. 파랑과 달리 나는 내가 좋아하는 애니 만화 덕질들을 철저히 숨기고 살았어. “원피스 그게 뭐니? 나루토 이름은 들어봤어.” 이런 식으로 말이야. 덕후로 보이기 싫었던 것 같아. 덕후가 사회적 약자임을 알고 있었던 거지. 스스로도 덕후에 이미지를 더 덧씌웠던 것 같아. 그래서 점점 덕후임을 숨기고 살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덕질과 멀어졌어.
그런데 작년쯤인가, 초등학교 때 친구였던 덕후 친구가 같이 덕질하자고 나를 꼬셨는데, 갑자기 살아 숨쉬는 느낌인 거야. 4년 동안 죽어 있었구나, 덕질을 안 한 내 인생이. 성별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던 것처럼, 덕후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었던 것 같아.
ㅃㄱ: 덕후가 사회적 약자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그만큼 비주류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거구나. 가져서 좋을 것 없는 취향. 그러고 보면 취미라는 게 개개인마다 다를 수밖에 없음에도, 특정 사람에게 기대되는 취향이 있는 것 같아. 학생, 여자, 남자, 노인, 부모 등 여러 가지 역할에 따라서 말이야.
초록: 그러고 보니 내 취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일반적으로 나는 20대 여성들에게 기대되지 않은 취미들이 꽤 많아. 등산을 즐긴다든지, 혼자 사색하는 일 같은, 20대라기보다는 좀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어울릴 것 같은 취미 말이야. 또 락음악을 즐기는데, 내가 이승환을 진짜 좋아하거든. 그런데 옛날에 학교에서 수업을 듣다가 좋아하는 가수를 얘기할 일이 생겼는데, 이승환을 말하니 다들 벙 찐 얼굴인 거야. 아마 나이 대에 맞지 않는 가수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다들 놀랐던 거 같아.
파랑: 이승환이 뭐 어때서! 초록이 얼마나 이승환을 좋아하는데.
초록: 그러니까 말이야. 나는 운동도 좋아해. 요가나 재즈댄스 같은 여성적인(?) 운동도 좋아하지만, 헬스에서 웨이트 운동 하는 것도 굉장히 좋아하거든. 운동하면서 거친 모습을 뽐낼 때 희열을 느낀다고 할까. (웃음) 이런 것도 일반적으로 20대 여대생에게 기대되는 취미는 아니겠지.
파랑: 요새 취업 준비하면서 느끼는 건데, 이력서에 취미와 특기를 쓸 때도 아무거나 쓰지를 못하겠더라구. ‘사회인이 가지는 올바른 취미생활’이라도 있는 건지, 쓸 수 있는 것 자체가 한정되어 있는 것 같아. 요리나 운동, 영화보기, 독서 등 누구에게 보여도 부끄럽지 않을 정석의 취미들만 기업하게 되더라. 사실 내 취미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초록: 맞아 파랑이 컴퓨터에 즐겨 찾기 진짜 많잖아 (웃음)
파랑: 취업 준비를 하면서 보여줘야 하는 내 모습이 정해져 있다는 것도 그렇고, 사회 내에서는 나의 그대로를 다 드러내는 것도 불가능하고, 내 모습을 스스로 온전히 이해해주는 것도 힘든 것 같아.
ㅃㄱ: 사회구성원 각자의 풍부한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좋을 텐데, 그렇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특정한 선호에 있어서는 편견이 자리하기도 하네. 덧씌워진 이미지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의 진면목을 바라보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
4. 색깔 찾기: 뻗어나가는 정체성을 상상하며
ㅃㄱ: 대담을 진행하면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모습이 있다는 것까지도 알 수 있었어. 동시에 나는 내가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이 내 안의 여성주의 덕분이라고 생각해.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지지해주면서, 동시에 우리가 편견에 갇히지 않도록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해 준 거.
바탕: 응. 나를 더 잘 알게 됨으로써 앞으로 더 나를 알고 발견해나가고 싶다는 욕심이 커졌어. 또, 하고 싶은 것들도 많아진 것 같아. 사실 사회에서는 획일화된 기준들로 사람을 판단하기 때문에, 그냥 사회에 편입하여 흐름에 몸을 맡기고 살 수도 있는 거지만, 그 흐름에 저항하여 자기만의 색깔을 찾아가려고 하는 의지가 생긴 것 같아.
초록: 맞아. 특히 나에게 있어 여성주의란 ‘삶을 살아가는 철학’이라고 생각해. 그 지향점은 언제나 행복에 있어. 자신의 정체성을 존중하고,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해준 것이 바로 여성주의거든. 앞으로의 삶 속에서도 내 정체성을 발굴해 나가는 과정은 평생 계속될 거라 생각해. 이런 것들을 생각하니까 참 설렌다.
해보고 싶은 것들도 늘었어. 배우고 싶은 것들도 많은데, 클라이밍(암벽등반)도 해보고 싶고, 드럼도 배우고 싶어. 내 로망이 나시 하나 입은 채로 드럼을 치는, 섹시한 드러머거든. (웃음) 어쨌거나, 사회가 요구하는 것들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
파랑: 나에게 있어 여성주의란 ‘휴머니즘’이야. 대학시절 나를 알아가는 데 있어 큰 힘이 되어주었고, 큰 지지를 해 주었지. 그리고 사회에서 규정하는 시각에 갇혀 타인을 내 잣대로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되었어. 남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노력하는 새로운 시각이 생긴 것 같아. 이런 시각이 하나하나 모이게 되면, 함께 살아가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그런 의미에서 내게 여성주의는 휴머니즘과 동의어가 된 거 같아.
나는 내가 망설였던 덕질을 멈추지 않을 것 같고. (웃음) 패션, 음악활동 등 무궁무진하게 하고 싶은 것들이 많고, 동시에 나의 연속적인 정체성을 꾸리기 위해 여성주의 공부도 계속 해나가고 싶어. 나중에는 이런 생각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장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초록: 그래, 우리들의 덕질을 위하여! (일동 웃음)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저널리즘 새지평 > 나의 페미니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성 파트너를 하늘 나라로 떠나보내고 (0) | 2013.10.02 |
---|---|
삶의 질감이 담긴 목소리를 기록하고 싶다 (0) | 2013.09.17 |
군대를 전역하고 페미니즘을 만나다 (0) | 2013.09.08 |
여성의 일, 남성의 일 구분하지 않는 세상을 꿈꾸며 (0) | 2013.08.09 |
이면의 진실을 보는 ‘눈’을 준 여성주의 (0) | 2013.07.24 |
군대 대신 교도소에 다녀온 나의 선택 (0) | 2013.07.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