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공백의 발견> POP 광고를 만드는 H님 


경력단절이라는 꼬리표는 왜 여성에게만 붙을까? 여성들은 왜 노동시장으로부터 단절을 겪게 된 것일까? 출산과 양육만이 경력단절의 이유일까?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에서 여성들의 공백(경력 단절)의 문제와 현실을 알아내기 위해 ‘일하는 여성’들과 만나, 여성노동의 핵심적인 문제들을 짚어보는 인터뷰를 일다와 공동 연재합니다. www.ildaro.com  

POP자격증은 땄는데 일은 어떻게 구하지? 
 
서울을 비롯해 철원, 제천, 동해, 군산, 양양 등 지역의 여성회관이나 여성센터에서 개설하고 있는 ‘예쁜 글씨 POP자격증 과정’. 식당이나 마트 같은 매장에서 손으로 직접 쓴 색색의 메뉴 판이나 홍보 문구들을 볼 수 있는데, 이게 바로 POP이라고 한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연예인이 POP자격증을 취득하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사람들에게 더 알려진 듯하다.
 
▲ H님은 POP자격증을 취득하고 일을 구하고 있다. 

POP자격증에 대해 찾아보니, 방과 후 교실이나 문화센터 등에서 ‘전망 있는 일’이라고 소개된 글을 여러 개 확인할 수 있었다. 비용도 크게 들지 않고 경력이 쌓이면 프리랜서로 ‘능력껏’ 고수익을 낼 수 있다고도 하니 눈길이 갈 수밖에. 그러나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 H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현실은 달랐다.
 
“애들 재워놓고 밤 10시부터 일을 시작해서 꼬박 밤 새워서 마무리한 거야. 그게 종이에다 해야 되는 것도 있고, 우드락에 해서 자르고 해야 했어요. 애들 선거홍보 피켓이었는데 크기가 전지사이즈 4개, 4절지 6장, 우드락 4개. 시간이 꽤 들더라고요.”
 
자격증을 따고 처음으로 맡은 일인지라, H님은 만삭의 몸으로 급하게 주문 받은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밤을 새워가며 POP를 만들었다.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었단다.
 
그러나 일이 그냥 들어오지는 않는 법, 일을 구하는 것부터 일이었다. H님은 POP에 이어 초크아트도 배우면서, 현재 창업반에 들어갈지 말지 고민 중이다. 2백만원 가까이 비용이 드는데, 일이 그만큼 들어올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각종 자격증이나 창업 시장은 나날이 확장되는데, 정작 일자리나 일거리를 구하는 건 오롯이 본인의 몫으로 남는다.
 
“어떻게 일을 구할 것인가 고민했지만, 어떻게 보면 이게 영업이잖아요. 커피숍이든 어린이집이든 내가 직접 발로 뛰면서 일을 달라고 명함이랑 내가 했던 샘플작업들을 보여주면서. 한 번도 그런 일을 안 해봤으니까 조금 겁도 나는 거에요. 어떻게 이야기해야 되는 거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내가 갔다가 상처받아서 오면 어떡하지? 그런 것들이 두렵더라고요.”
 
집 근처 방과 후 교실 POP강사 구인 광고를 보고 이력서를 냈지만 연락이 오진 않았단다. 일을 구하려면 어쨌든 영업을 뛰어야 하는데, 어떻게 일을 달라고 말하고 해야 할지 구직 과정에서 상처받을까 봐 겁이 나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고 더구나 이해관계 속에서 ‘을’로서 일을 얻어내야 하는 건 분명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의 경험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닌데다 일을 거의 끊임없이 지속해왔던 H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구직에 겁을 내는 마음의 문제가 단순히 스스로 마음을 바꿔먹으면 해결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아버지 간병으로 첫 단절을 겪고서
 
살아왔던 과거를 되돌아보면, 지금의 경험을 구성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순간이 불현듯 떠오를 때가 있다. H님에게도 중요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을 통해, H님의 경험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노동자로서, 그리고 어머니로서 어떤 고민을 하며 일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인테리어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아버지가 암 투병을 하셔서 아버지 곁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그만두고 집에서 오로지 간호만 했어요. 직장을 다니다 보니까 더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건축과로 편입을 했어요. 집에서는 학비 때문에 반대를 했어요. 학비를 대야 했는데 마침 전문대 다니던 교수가 잘 봐줘서 계약직 조교를 1년 단위로 2년 정도 했어요.”
 
학비 때문에 집에서는 반대했지만, H님은 계약직 조교 일도 하고 구두 가게, 옷 가게에서 물건을 팔며 주경야독했단다. 비록 아버지 병간호로 일의 ‘공백’을 가지긴 했지만, 보다 나은 다음을 도모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즉, 일의 공백이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건축업이 호황이던 시대적 흐름에 따라 건축 일에 전망을 가지고 공부했는데, 졸업할 즈음 IMF 금융위기 사태가 터졌다. 국민 차원에서 금 모으기 이벤트도 해가며 경제 위기로부터 벗어나려 했지만 금방 풀리는 문제가 아니라는 건 이미 다 아는 사실. 위기의 파도는 우리 사회 전 영역으로 확산되었고 건축업계도 피할 수 없었다. 취업을 준비하던 H님도 마찬가지로 힘든 시간이 되었다. 그러던 중 친구로부터 일을 도와달라는 제안을 받았단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으니까 미술학원을 하던 친구가 도와달라고 해서 친구 일을 도왔어요. 처음에는 그냥 도와주는 일로 한 거였는데, 한 달하고 나니까 친구가 봉투를 주더라고요. 친구가 결혼을 하면서 학원을 누구한테 넘길까 고민을 하고 있길래 ‘그래, 그럼 내가 할게’ 하고 학원을 갖게 되었어요. IMF 사태로 일자리가 잘 안 나니까 일 찾을 때까지 친구를 도와주자고 결정한 거였는데 일이 그렇게 풀린 거예요. 서울로 이사 오기 전까지 했으니까 햇수로는 거의 10년 가까이 한 거죠.”
 
그 사이 결혼을 했고, 서울에서 근무하는 남편과 ‘주말 부부’로 각자 일하며 지내왔다. 어머니가 도와주셨다고는 하지만 거의 혼자 아이 둘을 낳고 키우면서 학원 운영까지 했던 H님. 그 시기에 얼마나 힘드셨을까.
 
“첫째 낳고 나서 친정엄마랑 같이 살았으니까 엄마한테 맡기고. 그때가 1월이었는데 옷을 아주 두껍게 입고 일을 하러 나갔거든요. 웬만한 일은 다 혼자서 해야 했어요. 누구를 불러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운전해주시는 분 말고는 없었어요. 그리고 아르바이트생을 하루에 3시간 정도 바쁜 시간에 두었는데, 그것도 운이 좋아야 둘 수 있는 거지, 지방이다 보니까 미대생을 구하기가 힘들어요. 어렵게 구해서 그 학생 시간에 맞춰서 일을 하는 거에요. 남들은 어떻게 혼자서 그렇게 하냐고 그러는데, 누구한테 맡길 수 없는 상황이라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어요. 몸조리를 잘 못하게 되고…. 주위의 다른 미술학원 선생님들도 똑같았어요. 다들 그냥 나와서 일을 하는 거에요.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되니까 하는 거지 여유가 있으면 그렇게 하겠어요?”
 
전일제 일자리 제안을 거절한 이유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되니까 했던 학원 운영의 시간 10년이 지나고 펼쳐진 국면은, 공간적 변화로부터 만들어진 ‘단절’과 낯설기까지 한 새로운 ‘시작’이었다. 남편과 살림을 합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게 된 것.
 
“일을 계속했던 사람이다 보니까 집에 혼자 못 있겠고 뭘 해도 해야 되겠는 거야.”
 
10년 동안 계속 일해왔다면 잠깐이라도 재충전을 하고 싶을 법한데, 일을 계속해왔던 H님에게 갑자기 벌어진 ‘공백’은 휴식의 시간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간의 일 경험을 잇는 일을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지역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자금과 서울에서 드는 비용은 비교할 수 없었단다.
 
“서울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건 자금 때문에 힘들고. 그래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애들을 돌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막 찾아봤어요. 인터넷으로 문화센터 쪽을 알아봤어요. 셔틀버스를 운영하는 센터에서 POP강좌를 들었어요. 셋째 낳기 전에 지방에서 취미 반으로 배웠던 상황이라 기본기가 있었죠. 선생님이 저를 보고 연습하면 자격증 딸 수 있겠다고 해서 준비했어요. 자격증 관련 자료를 주셔서 실기 보고 시험을 쳐서 자격증을 따게 되었죠.”
 
POP자격증을 취득하려고 했던 이유는, 방과 후 교실에서 강사를 하게 되면 아이 돌봄과 병행하여 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공동육아라든지 어린이집을 통해 아이들을 맡기고 다시 일을 시작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사실 서울에 올라왔을 당시 형부가 H님에게 사무직 일자리를 제안한 적이 있었는데 거절했다. 그 이유는 바로 육아 때문.
 
“셋째를 어린이집에 보냈더니, 형부가 출근해서 하는 일을 할 수 있겠냐고 물어서 할 수 있다고 생각 없이 그냥 (하겠다고) 대답했었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침 9까지 출근해야 되는데, 그럼 어린이집에 8시까지는 애들을 맡기고 일하다 오후 6시에 맞춰서 애들 찾으러 가야 하는 게 피곤한 것보다, 아이들 정서상 긴 시간 동안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게 좀 아닌 것 같은 거야. 완전히 성인이 되어서 나가기 전까지 부모의 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집에 딱 들어와서 '엄마'하고 불렀을 때 엄마가 있는 거랑 없는 거랑 정서적 편안함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더라구요. 내가 직장을 다니게 되면 아무래도 대화 시간이 줄어들 텐데, 개인적인 프리랜서 일을 하면 아이와 대화 시간이 좀 더 많아지지 않을까.”
 
H님에게는 좋은 기회였지만, 10시간 가까이 엄마의 품에서 떨어져 있어야 하는 아이들의 정서적 문제를 생각해서 전일제 노동 기회는 날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선호하게 된 것이 프리랜서로서 ‘시간에 구애 없이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집안일을 어떻게 할지 몰라서 안 한다는 남편
 
하지만 프리랜서 일도 아이 셋을 돌보며 집안일까지 병행하려면 24시간도 부족할 것 같다.
 
“제가 애보고 집안일에 아등바등 이러고 있는데 신랑은 몰라서 그런 건지 내가 ‘이거 해줘’ 그러면 하기는 하는데 말을 안 하면 안 하는 거예요.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줬으면 하는데 안 하는 거예요. 그래서 왜 안 하냐고 물으면 해달라고 말을 하라는 거지. 신랑을 보면 집안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못한다고 하는데…. 제가 너무 힘들어요. 맞벌이는 남편이 도와주지 않으면 진짜 너무 힘들어요.”
 

▲ 조주은의 <기획된 가족: 맞벌이 화이트칼라 여성은 어떻게 중산층을 기획하는가?> 표지 이미지 
 
어떤 일을 직접 행동으로 하는 것뿐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 할지 기획하고 분배하는 것도 에너지가 쓰이는 ‘일’이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노동자, 어머니, 아내의 정체성을 가진 ‘맞벌이여성의 시간 갈등’ 문제에 주목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찾을 수 있다.
 
“남성들은 가사노동을 주로 특식 요리, 아이들과 놀기, 청소 등에 한정해 주말에 집중적으로 수행한다는 특징이 있다. 여성들은 평일에도 남성이 부재할 때 혼자서 가사노동을 수행하지만, 남성들은 가사노동을 ‘훈련’받고 ‘가르침’을 도움 받을 수 있는 여성들이 존재할 때 한다.” (조주은 <기획된 가족> 서해문집, 2013)
 
H님의 남편 역시 ‘주문’에 따라 집안일을 ‘분담’하고 있었다. 아내를 도와주는 차원이 아니라 남편 스스로 집안일을 알아서 한다면 H님이 공백을 채우는 데 큰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최근 재취업을 하기 위해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력단절 여성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재취업 후 가장 걱정되는 것으로 ‘가사와 육아’가 1위였고, 재취업 시 남편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도 60% 가까이 되었다.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일과 가정이 실질적으로 양립할 수 있도록 물적, 심리적 자원이 기반 되어야 한다.
 
‘나는 나를 위한 일을 하고 싶었어요’
 
재취업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을 때 드는 ‘두려움’은 성격이나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조건의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가사 분담이나 돌봄 역할이 잘 나누어져서 집안 일에 대한 부담을 줄여나간다면, 노동시장으로 얼마든지 뛰어들 수 있다고 하는 ‘생기’를 H님에게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H님은 앞으로 방과 후 교실을 운영해보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내 아이 돌보듯이 과제 봐주고 놀아주고 간식 챙겨주고 내가 할 줄 아는 미술활동을 같이 해주면서. 나도 기분 좋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술학원하고 다르게 방과 후 교실은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아이들 봐주면서 나하고 맞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시간 할애도 아이들이 1시 조금 안 되어 와서 6~7시까지 있다가 가면 저도 부담이 없고.”
 
이렇게 계획하고 준비하고 있는 것 자체로도 이미 공백은 채워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를 위한 일을 하고 싶었다’던 H님의 바람처럼, 전일제든 프리랜서 일이든 앞으로 하게 될 일의 경험을 통해 점점 자신감을 채워갈 수 있길 바란다.▣ 강선미

※ 이 기사는 한국여성민우회 블로그(womenlink1987.tistory.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