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스무살 여연의 공상밥상 (13) 뜨거운 토마토스튜 

홈스쿨링과 농사일로 십대를 보낸, 채식하는 청년 여연의 특별한 음식이야기. 갓 상경하여 대도시 서울의 일상 속에서 펼쳐지는 스무살 청년의 음식을 통한 세상 바라보기, 좌충우돌 실험 속에서 터득한 ‘여연표’ 요리법을 소개합니다. www.ildaro.com 
 
제주에서 나무집을 짓고 사는 가족을 만나다
 

▲ 올 여름, 제주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것에 반대하는 <2013 강정평화대행진>에 참여했다.    © 여연 
 
그 애는 청록색 바다가 시원스레 출렁이는 해변에서 내게 말을 걸었다. 제주도였고, 우리는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걸 반대하는 걷기여행에 참여하는 중이었다. 순하고 어리어리한 외모와는 달리 말을 조목조목 참 잘 하는 애였다. 나이는 열아홉 살, 수도권에 살다가 학교를 그만두고 아빠, 엄마 그리고 동생과 함께 제주도로 이사를 왔다고 했다. 자기는 원래 활발한 성격은 아니라면서, 몇 년 전 어느 공동체에서 나를 본 기억이 나서 말을 걸었다고 했다.
 
집에서 뭘 하면서 지내냐는 내 물음에, 그 애는 올해 제주도에서 가족과 함께 살 집을 지었다고 대답했다. 집에서 뭘 하냐고 물은 건데 집을 지었다는 대답이 돌아온 셈이라서, 나는 살짝 놀랐다. 중학교를 다니다가 그만뒀을 때 가족과 함께 전국을 여행했는데, 제주도가 너무 좋아서 눌러앉게 되었다고 했다. 묘한 안정감을 풍기는 아이였다. 단순히 착하고 얌전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우리는 금세 친구가 되어서, 행진하는 동안 함께 걸었다.
 
행사가 모두 끝나고 그 애는 나와 동행인을 집에 초대했다. 버스에서 내려 마중 나온 부모님의 덜덜거리는 트럭을 타고 숲 속으로 한참 들어가자 가족들과 함께 지었다는 집이 나타났다. 주황색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나무집이었다. 손수 칠해서 올렸다는 알록달록한 나무지붕 덕분에 마치 동화 속에서 쏙 빼내놓은 집처럼 보였다.
 
아직 완성되지 않아 돌무더기에 가까운 돌담과, 크고 순한 개 두 마리, 엄마고양이와 새끼고양이들, 두 아이를 거침없이 놀리는 목수 아버지와, 집안일을 딸들과 나누는데 거리낌이 없는 어머니, 활기찬 이웃집. 거실에 가득 꽂힌 다양한 책들. 밝고 햇빛이 잘 드는 부엌은 열린 공간이었고, 위층 다락방에서 고양이들이 우다다다 움직이면 아래층에서 그 소리를 고스란히 들을 수 있을 만큼 구석구석 연결된 집이었다.
 
그 애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세 살 어린 여동생과 함께 자연스럽게 집안일을 했다. 빨래도 직접 돌리고, 부모님이 쉬는 동안 밥도 차리고, 음식물쓰레기도 버리고, 개밥도 줬다. 손님인 우리가 머무르는 동안 책임감 있게 돌보고 집 주변을 안내했다. 무엇보다 끼니를 직접 차려먹는 일이 무척 자연스러웠다.
 
“밥은 원래 너희가 자주 해?”
“집 지을 때부터 나랑 동생이 밥을 했어. 엄마랑 아빠는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니까….”
그리고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엄마가 만든 밥이 맛있기는 하더라고.”
 
투정도 없고, 잔머리를 굴리지도 않고, 이기주의나 허영심도 없이 자매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묵묵하게 자기 몫을 하고 있었다. 푹 젖어 들어 즐기렴, 이라고 말해주고 싶을 만큼 그 가족의 울타리는 안전해 보였다.
 
엄마와 딸, 순탄치 않았던 우리의 관계
 

▲ 나를 집에 초대해 제주의 멋과 맛을 알려준 자매들.   © 여연 
 
그 집에서 실컷 놀면서 이틀 동안 머물렀다. 그동안 나의 울타리인 엄마 생각을 자주 했다. 엄마와 나의 관계가 평화로웠던 적은 별로 없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조용히 시작할지라도 대부분 싸움으로 끝났다. 거칠고, 잔인하고, 끝을 알 수 없는 싸움이었다. 나는 울고, 엄마는 소리치고, 꺼내선 안 되는 말들이 오갔다. 사소한 실수 하나도 너그러이 덮어주거나 넘어가지 않았다.
 
앙금이 풀리지 않으면 엄마는 우리와 같이 식탁에 앉아 밥을 먹지 않았다. 깊은 분노의 표시였지만, 그런 일을 자주 겪을수록 나와 동생은 점점 더 뻔뻔스럽게 상황에 적응해갔다. 엄마가 우리와 함께하지 않는 날이 며칠씩 계속돼도 아무렇지도 않게 낄낄거리고, 밥을 먹으면서 장난을 쳤다. 껄끄러운 싸움들을 너무 많이 겪어서일까. 우리는 어느새 서로의 분노와 격한 감정에 무감각해져 있었다.
 
엄마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보다는 어떤 ‘딸’인지에 더 관심이 많았다. 딸이 가진 여러 기질들 중 자신의 마음에 드는 부분은 맘껏 지원하고 키워줬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은 가차 없이 자르고 부정했다. 나 역시 엄마가 한 인간으로서 어떤 삶을 추구하면서 살아왔는가 보다는, 지금까지 부모로서 내게 뭘 해줬고 앞으로 어떤 것들을 제공해줄 수 있는가를 따졌다. 그러고는 내게 충분한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엄마를 원망했다.
 
내가 엄마를 원망하는 주제는 늘 비슷비슷했다. 엄마는 두 딸의 존재를 염두에 두긴 했어도 눈치를 보는 일은 없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삶에 나와 동생을 끌고 들어갈 때 우리의 의사를 물어보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여기저기 이사를 다녔고, 주변사람들과 원치 않는 이별을 경험했다. 또래문화 대신 어른들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인간관계를 익혔다. 한창 꾸미고 놀고 싶을 때도 아침마다 밭으로 내몰렸다. 하고 싶은 일들을 포기하는 데 익숙했다.
 
하지만 엄마는 내게 햇살 아래 고양이처럼 느긋하고 게으르게 지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그리고 음식을 만들고 집안일을 하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여길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음악과 문학에 대한 사랑이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걸 몸소 보여주었고, 좋은 책을 고르는 법을 알려주었다.
 
엄마는 시골마을을 떠도는 와중에서도 이사 가는 집마다 과일나무와 꽃을 심었다. 돈이 없어도 책을 사고, 빚을 내서라도 훌쩍 여행을 떠났다. 무더운 여름에도 도서관에서 책을 잔뜩 빌려서 커다랗고 낡아빠진 여행용 배낭에 담아 등에 메고 버스가 다니지 않는 산길을 걸어 올라왔다.
 
엄마는 생태적으로 살면서 농사짓는 모습을 온몸으로 보여줬다. 화학비료도 농약도 없이, 트랙터도 경운기도 없이 우리가 일 년 동안 푸짐하게 먹을 음식을 알뜰하게 키워냈다. 닭똥과 인분을 모으고, 산에서 썩은 낙엽들을 긁어 와서 비닐 대신 감자밭에 깔았다. 어떻게든 외부의 힘을 빌리지 않고 농사지으려고 연구를 거듭하면서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엄마는 실용적이고 편견 없는 요리사이기도 했다. 계절마다 나오는 채소와 허브를 듬뿍 넣은 엄마의 요리는, 동양의 것도 서양의 것도 아니었다. 간식에 굶주린 딸들을 위해서 투박하게 완두콩을 콕콕 박아 넣은 시커먼 찐빵에서부터 피자와 파스타, 찹쌀밥, 온갖 샐러드와 나물로 엄마의 요리는 변신을 거듭했다. 몸이 허하다 싶으면 갖가지 야채들을 큰 솥에 푹푹 끓여 우려낸 물로 영양보충을 시켰다.
 
내가 집을 떠난 뒤로도 엄마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온갖 야채와 곡식, 병조림이 담긴 커다란 박스를 서울로 보냈다. 그런 박스를 받는 건 정말이지 즐겁기도 하고 곤란하기도 한 경험이었다. 사실 나는 집안에서나 집밖에서나 그다지 좋은 딸은 아니었다. 택배를 받고도 집에 전화를 하지 않아서 엄마를 걱정시키고 또 화나게 만들었던 걸 보면 말이다.
 
밤마다 엄마가 들려준 ‘초록별 이야기’
 
제주도를 떠나 푹푹 찌는 듯이 더운 서울로 돌아온 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혹시 ‘초록별 이야기’를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초록별 이야기는 하늘에서 지구를 지켜보는 영혼의 이야기다. 영혼은 초록별 지구에서 두 남녀를 발견하고, 수호천사와 함께 무지개다리를 건너 그들의 아이로 태어나게 된다. 말을 하다 보니 어렸을 때 그 이야기를 무척 좋아해서 밤마다 해달라고 조르고 졸랐던 기억이 희미하게 났다.
 
물론 엄마는 초록별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원래는 발도로프교육에서 생일을 맞은 아이에게 들려주는 거라면서, 자신이 약간 내용을 바꿨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자라게 돼.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날지 정하는 건 결국 아이 자신이라고 말이야.”
 
여기까지 통화했을 때, 엄마는 지금 부엌에서 냄비가 끓고 있어서 가봐야 한다고 말했다. “토마토 병조림을 만드는 중이야. 올해는 채소랑 과일이 무척 풍성하거든.” 그래 알았어, 라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선풍기도 없는 뜨거운 부엌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큰 솥에 토마토와 허브를 넣고 졸이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 엄마가 보내준 토마토 병조림에 볶은 야채와 물을 넣고 걸쭉하게 끓여 만든 토마토스튜.  © 여연 
 
그러고 보니 내게도 엄마가 만들어서 보내준 토마토 병조림이 하나 남아있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빨갛게 빛나는 여름 토마토가 담긴 병. 밀봉된 병뚜껑을 손에 힘을 꽉 줘서 땄다. 맛을 보니 달짝지근하면서도 신선한 기운이 돈다. 집의 맛, 밭의 맛, 가족의 맛이다.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날지 정하는 건 결국 아이 자신”이란 말을 계속 곱씹으면서 냉장고 속에서 시들시들해진 채소들을 마지막 하나까지 찾아내 잘게 다져 볶았다. 볶은 야채에 토마토 병조림과 물을 넣고 스튜처럼 걸쭉하게 끓였다. 금세 부엌이 후덥지근해지고, 땀이 똑똑 떨어졌다.
 
여름에 하는 요리라는 건 정말이지 귀찮고 덥고 힘든 일이다. 가족을 만들어 돌본다는 건 그에 비교할 수도 없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집 밖에서 바라본 엄마는, 내가 지금까지 얄팍하게 평가해 왔던 것보다 훨씬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어떻게든 울타리를 만들어 지켜내고,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우리를 키워냈다.
 
엄마를 선택한 게 정말 나일까, 어쨌든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초록별 이야기’를 들으며 은연중에 그렇게 배워왔다. 막무가내 주입식 교육이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쁘지 않은 방식이었다.
 
<토마토스튜 만들기>
 
재료: 마늘, 애호박, 단호박, 당근, 양파, 감자, 피망, 매운 고추, 양배추 같은 채소들은 있는 대로, 버섯과 콩 한 종류씩(나는 표고버섯과 강낭콩을 썼다), 당면, 토마토 병조림(없으면 생 토마토를 잘라서 끓여 써도 된다), 간장, 후춧가루, 말린 바질.
 
채소들을 잘게 다진다. 냄비에 기름을 부어 뜨겁게 달군 다음 마늘을 먼저 넣어 볶다가, 나머지 채소들도 단단한 순서대로 타지 않게 볶는다. 채소가 좀 익었다 싶으면 토마토 병조림을 넣고 끓인다. 채소와 병조림이 잘 섞이면 물을 충분히 넣고 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토마토스튜를 끓이는 동안 당면은 뜨거운 물에 담가 불려놓는다. 마지막으로 스튜에 당면을 넣고 다시 간을 한 다음, 재료들이 푹 익어 서로 어우러질 때까지 끓인다. 후춧가루와 말린 바질로 향을 낸다. 뜨겁고 매콤하게 땀을 뻘뻘 흘리며 먹는다. (여연)
 
*자연스러운 제주도의 모습을 알려준 두 멋진 자매와 가족들, <2013 강정평화대행진>을 소개해주고 여행 내내 동행해준 분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바로가기 www.ildaro.com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