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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되지 않은 노동> 장애인 활동보조인의 노동 이야기

"일다"는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과 공동 기획으로, 지금까지 기록되지 않았던 여성노동자들의 일과 삶을 이야기하는 기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활동보조인의 노동 이야기를 인터뷰한 이지홍씨는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 회원이며, 극작가입니다. - www.ildaro.com

장애인 활동보조인 김정남씨 인터뷰 

‘장애인 자립생활’이라는 개념이 한국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90년대 중반이지만, 사회적 이슈로 주목 받고 제도가 마련되기까지는 10년이란 시간이 더 필요했다. 2000년 들어 장애인 자립생활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나면서, 2005년 시범운영을 거쳐 2007년에 장애인 활동보조인 제도가 만들어졌다. 1급 중증장애인들이 일정 시간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제공받게 되었고, 많은 장애인들이 시설을 벗어나 지역 사회로 들어가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장애인 활동지원 제도는 많은 한계와 허점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이 지역 사회에서 독립적인 존재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제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더불어 우리 사회에는 장애인 활동보조인(이하 ‘활동보조인’이라 칭함)이라는 새로운 직업이 탄생하게 되었다.
 
활동보조인이라는 낯선 직업의 탄생
 
김정남씨(43세)는 2005년 이 서비스 제도가 시범으로 운영될 당시, 동대문종합사회복지관에서 활동보조인 교육을 받고 3개월 간 일한, 활동보조인 노동역사의 원년 멤버이다.
 
“그때는 센터에서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이용자에게 파견하는 형태였어요. 지금처럼 일대 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파트 타임처럼 필요한 시간에만 가서 몇 시간씩 일을 봐주는 형태였죠. 하루 8시간 일을 하는데, 일이 없는 시간에는 센터에서 대기하고. 시급 6천 원에 식비랑 차비 빼면 정말 남는 게 별로 없었어요.”
 
시범운영이라는 말이 품고 있듯, 당시 활동보조 서비스는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실험 무대였다. 활동보조 서비스 인력을 제공하는 장애인자립지원센터(이하 ‘센터’로 칭함)나, 그 서비스를 받는 장애인 그리고 업무담당자인 활동보조인 모두 낯선 제도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3개월 하고 못하겠더라고요. 뭐랄까, 경험도 없고 개념도 없고.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장애인과 살아본 적이 없었거든요, 본 적도 없었어요. (활동보조인) 교육을 받을 때 장애인의 생각(장애인의 선택권과 결정권)을 따르라고 했는데, 그게 힘들었어요. 분명 이렇게 가는 게 빠른 길인데, 이용자는 빙 둘러가겠다고 고집해요. 지금 와서 보면 틀렸다는 것을 통해서 그분들도 배울 수 있는 건데, 그때는 그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더라고요. 이해가 안 가도 ‘네, 네’ 해야 되고. 내가 아닌 이용자에 의해서 움직여야 한다는 데서 스트레스가 컸어요. 게다가 직장이라고 하기엔 급여가 너무 적고. 그러다 보니 가족들도 제 직업을 자원봉사나 아르바이트 정도로 밖에 보지 않더라고요.”
 
광범위하고 모호한 업무 경계
 
활동보조인의 업무는 장애인의 일상 생활을 보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변 처리에서 가사, 이동, 직장에서의 업무 보조, 육아에 이르기까지 일상 생활 자체가 업무에 속한다. 그야말로 이용자가 원한다면, 도덕적으로 나쁜 일만 아니면 다 해야 하는 것이 활동보조인의 일이다. 업무 범위가 너무 넓다 보니, 무리한 요구가 들어와도 제대로 항변하기 쉽지 않을 때가 많다.
 
“간혹 제가 이용자의 소유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어요. 직장을 다니시던 분이었는데, 그분이 업무 볼 때 특별히 일이 없으면 잠깐 쉴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그걸 용납하지 못하더라고요. 할 일이 없어도 자기 옆에 꼼작 없이 붙어 있으라고 해요.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이용자 입장에서 돈을 내고 이용하는 것이니까 고마움보다는 최대한 부려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세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일부러 시키는 경우도 있고요. 한 아가씨는 연극단체에서 일했는데, 극장청소를 하는 분들이 계신데도 굳이 저한테 그 일을 시키는 거예요. 몇 번 하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말한 적도 있어요.”  

▲  보건복지부가 안내하고 있는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 내용    © www.socialservice.or.kr  

업무의 모호한 경계는 활동보조 서비스의 전문성(장애인의 자립생활 지원)을 훼손하고, 활동보조인을 막 부려먹어도 되는 잡부로 전락시키는 한편, 모든 일을 잘 해야만 하는 만능인으로서 과도한 역할을 요구하기도 한다.
 
“모든 걸 잘 할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저희들한테는 모든 것을 잘 하기를 기대하는 것 같아요. 장애인들의 생활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해줄 수 있는, 설리번 선생님 같은 역할을요. 특히 어린 아이들 활동보조인의 경우, 특수교육을 공부한 사람 마냥 서비스해주기를 바라죠, 그 정도로 기대치가 높아요. 하지만 그건 아니잖아요. 엄연히 업무 분야가 다른 건데.”
 
업무의 성격 상 그 시작과 끝이 명확하지 않고 항상 변수가 작용한다는 점 또한 활동보조인들이 겪는 어려움 중 하나다. 제공한 서비스 시간에 따라 시급으로 급여가 지급되는데, 초과된 일에 대해서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정해진 업무 시간이 있지만, 일을 하다 보면 제때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게다가 갑자기 사고가 생기거나 병에 걸리게 되면, 그분들은 돌봐줄 사람이 없잖아요. 내 업무 끝났으면 끝이다, 그럴 수가 없어요. 갑자기 아프기라도 하면 퇴근했다가도 달려가는 경우도 있고. 주말이나 야간에 일하면 추가요금을 받는데, 그 추가요금이 이용자들의 서비스 이용 시간에서 빠지는 거라, 주말에 일하고도 주중에 일한 것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많아요. 어떤 분들은 그래요. ‘퇴근 시간 이후에는 방해 받고 싶지 않다’. 사람이니까 당연하죠. 하지만 이용자들 입장에서는 급하니까 연락을 할 수밖에 없는 거고. 가끔 안 급한데도 연락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친구처럼 느껴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점에서 힘들 때가 있죠.”
 
감정노동, 가족보다 더 긴밀한 관계 형성
 
가족도 아니면서 가족보다 더 긴밀한 것이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의 관계다. 때문에 활동보조인이나 이용자 모두 서로한테 불만이 있어도 쉽게 바꿔달라는 말을 못한다. 서로의 시간에 딱 맞는 파트너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서로 배신했다는 심리적 부담감도 크다. 그런데도 김정남 씨가 이용자를 바꿔달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육체노동의 고통보다 감정노동의 버거움 때문이었다.
 
“24시간 누워있는 분이었는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출근을 하면 하루 종일 저를 바라보고만 있어요. 제 행동 모든 것을 지켜보는데, 감시 받는 것 같기도 하고. 사람이 늘 기분이 좋을 수는 없잖아요. 남편이랑 싸운다든지 기분이 안 좋을 때가 있으면, 나도 모르게 표시가 나요. 그러면 자꾸 물어봐요. 자기 때문에 기분이 안 좋은 줄 알고 눈치 볼 때도 있고. 나밖에 못 만나니까 내가 세상의 전부일 수도 있다는 걸 이해하지만, 어느 순간 숨이 막혀오는 거예요. 그게 1년 정도 계속되다 보니까 힘들더라고요. ‘만약 내가 지금 교통사고라도 나면 어떡하지? 그러면 그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그런 생각들도 하게 되고, 심리적 중압감이 너무 컸어요.”
 
활동보조 서비스는 단순히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고도의 감정노동을 요구한다. 이용자의 결정권과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활동보조인은 최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용자에게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미용실을 가는 문제도 그래요. 처음엔 20만원씩 하는 비싼 매직스트레이트를 꼭 해야 하나? 미용사들도 모두 당황하고, 몇 시간 동안 머리도 몇 번씩 감아야 하고, 몸도 불편한데 그 고생을 왜 하나 싶었어요. 그래도 말은 하지 않고 조용히 따라갔죠. 지금 생각해 보면 잘한 일 같아요. 아가씨가 예쁘고 싶은 건 너무 당연한 건데. 사람의 욕구는 다 똑같잖아요.”
 
모든 인간은 다르면서 같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다름’은 기능의 차이에서 오는 것일 뿐,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는 모두가 같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 생기면서 이용자와의 관계도 훨씬 편안해졌다. 장애인이라고 과도하게 도움을 줄 필요도 없고, 무리한 요구는 거절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다.
 
“일을 하다 보면 이용자의 엉덩이에 있는 점까지도 다 아는 게 우리 일이에요. 사생활 깊숙한 부분까지 알게 되는데, 관계가 좋을 땐 괜찮지만 사람 관계가 늘 좋을 수만은 없잖아요. 그리고 관계가 오래되다 보면, 이용인이 활동보조인 위주로 움직이는 경우가 있어요. 대개 활동보조인이 나이도 많고 사회 경험도 많다 보니, 이용자를 가르치게 되는 경우도 많고요. 물론 몇몇 지적장애인의 경우는 교육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아요.”
 
김정남씨는 6개월에 한 번은 활동보조인을 바꿔 이용인과 활동보조인 사이에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평생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면 그것에 익숙해져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하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아요. 저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을 6개월 하면 그만 둬야지 했거든요. 하지만 벌써 2년이 다 되어가요. 서로가 원하는 시간대에 딱 맞는 사람을 만나기가 힘드니까요.”
 
활동보조인을 향한 이중적 시선
 
활동보조인들이 자주 듣는 말이 ‘날개 없는 천사’이다. 하지만 김정남씨는 그 말이 정말 싫다. 그 말을 듣고 있으면 자신이 착해져야만 할 것 같아서다. 착한 성품이 직업선택의 조건이 될 수 없듯이, 그들 역시 적성에 맞고 또 노동에 따른 정당한 대가를 받기 위해 이 직업을 선택했다. 하지만 사회의 시선은 그렇지 않다. 심지어 가족들조차 활동보조인의 일을 정식 직업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원봉사나 아르바이트로 취급한다.
 
“날개 없는 천사라는 말 좀 안 했으면 좋겠어요. ‘착하다’ 이런 말 들으면, 저희 권리를 주장할 수가 없잖아요. 돈 벌려고 하는 일이고 적성에 맞으니까 하는 거지, 착해서 하는 일이 아니에요. 아무리 착해도 적성에 맞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 이 일이고요.”
 
이러한 사회의 시선은 때론 큰 짐으로 다가와 활동보조인들을 옭아맨다. 자신의 가정에서 아픈 사람이 생기게 되면, 마땅히 착한 그들이 그 짐을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어머니가 아프셨는데, 가족들이 당연히 제가 어머니를 모셔야 한다고 얘기하더라고요. 밖에 나가서는 천사처럼 행동하면서 왜 집에서는 그렇지 않냐고. 할 수 없이 일 그만두고 어머니 병수발을 했어요. 저뿐만 아니라 활동보조인들 대부분이 집안에 일이 생길 때마다 그런 요구를 받게 돼요. 하지만 이 일도 남이니까 할 수 있는 거지, 가족이면 더 힘들더라고요. 서로 쌓인 관계가 있기 때문에 쉽지가 않아요.”
 
활동보조인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은 ‘오죽 할 일이 없으면, 그 일을 할까’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의 지위는 매우 낮기 때문에, 그들에게 고용된 활동보조인의 사회적 지위도 함께 낮게 평가되기도 한다.
 
“날개 없는 천사와 장애인 밑에서 일하는 한심한 인간, 참 이중적이죠? 특히 장애인 가족들한테서 오는 스트레스가 커요. 장애인들이 가족서열에서 가장 낮잖아요. 그들 밑에서 일하니까 우리를 한심하게 보고, 함부로 취급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가족들이 많아요. 장애인한테 하듯이, 우리를 쉬운 사람으로 본다고 그럴까?”
 
“센터에서 급여명세서 한 번 못 받아봤어요”
 
활동보조인은 지역의 장애인자립센터에 소속되어 활동한다. 센터는 활동보조인에게 이용자 알선과 급여 지급, 보수 교육 등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시급의 일부를 수수료로 받고 있다. 센터가 활동보조 서비스를 제공하고 관리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장애인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도 활동보조인과 센터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센터와의 관계가 좀 애매해요. 센터 직원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고. 인력소개소랑 크게 다른가? 그렇지 않은 것도 같고. 이 일하면서 월급명세서를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어요. 맞게 줬겠거니 하고 넘어갔죠. 그러다 보니 내 급여에서 국민연금이나 세금이 얼마가 빠져나가는지도 몰라요. 급여에서 일부를 퇴직금으로 적립해 놨다고 하는데, 그것도 어떻게 되는 건지 잘 모르죠. 그냥 주겠거니 하고 믿는 수밖에요.”
 
급여 내역에 대해 안내를 받는 것은 노동자로서 가장 기본적인 알 권리에 해당한다. 5년 동안 제대로 된 월급명세서 한 장 못 받았다는 것은, 현장에서 노동자로서의 기본적 권리가 소홀하게 취급 당해왔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센터가 해주는 게 1년에 한번 4시간 보수 교육이라고 하는데, 서비스 지침 변경 사항이나 요가 등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아요. 사실 저희가 감정노동이 크다 보니까 많은 어려움이 있어요. 그래서 상담이 많이 필요하거든요. 2년 전 성동에서 일할 때는 코디네이터가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의 중재자 역할도 해주고 상담도 해줘서 도움이 많이 됐죠. 하지만 센터마다 다르더라고요. 어떤 분은 산업재해 신청 좀 하게 도와달라고 했다가, 직원한테 ‘알아서 서류 준비하라’는 얘기를 듣고 포기했대요. 직업 특성상 골격계 질환이 많은데, 나이 드신 분들이 많다 보니 서류 준비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그런 문제들이 있다 보니까, 괜히 센터를 끼어서 수수료 떼이지 말고 보건복지부가 활동보조인들을 직접 고용하라는 주장도 나오는 거지요.”
 
그러나 김정남씨뿐 아니라 많은 활동보조인들이 장애인자립지원센터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그들이 벌여왔던 힘겨운 싸움과 노력을 옆에서 지켜봤기에, 차마 말하지 못하고 속앓이만 할 때도 많다. 활동보조 서비스 제도가 도입된 지 7년이 된 지금, 양질의 활동보조 서비스 제공을 위해서라도 활동보조인의 노동권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장애인과 활동보조인의 동행
 
“활동보조인이 최대한 나서지 않는 게 좋은 관계의 시작 같아요. 장애인과 활동보조인이 함께 있으면 비장애인에게 더 집중되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센터 소장님의 활동보조로 일한 적이 있는데, 그분이 언어장애가 심했어요. 직책상 외부 활동이 많다 보니까 제가 통역을 자주 하게 됐는데, 구청 사람들과 회의할 때 보면 소장님의 말씀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도 저를 자꾸 쳐다봐요. 가끔은 제 의견을 듣고 싶어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전 소장님 말씀이 다 끝난 뒤에 말하지, 먼저 나서지 않아요. 그림자 같은 존재, 그림자처럼 함께 있는 거죠.”
 
김정남씨 인터뷰를 통해 활동보조 서비스가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고유한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활동보조인의 노동이 착한 사람들의 자원봉사나 단순 아르바이트처럼 취급되면서,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이라는 업무의 전문성 역시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활동보조인의 노동자성이 인정되고 그들의 정당한 노동권이 실현될 때, 높은 직업적 자존감으로 장애인들에게 꼭 필요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지홍/극작가) 

* 유쾌한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실험!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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