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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에서 보낸 편지>4. 렌의 작은 시장

‘교육일기’와 ‘하늘을 나는 교실’의 필자 정인진님이 프랑스의 서북부 브르타뉴 지방에서 머물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한 ‘브르타뉴에서 온 편지’ 연재 www.ildaro.com


렌의 도심에서는 매주 토요일마다 장이 선다. 프랑스의 어느 지역에서도 시내 한복판에 이렇게 큰 규모의 장이 서는 것은 본 적이 없어서 정말 놀랐다. 프랑스에서 첫 번째로 큰 장이 어디서 열리는지는 모르지만, 렌의 관광안내 책자에 소개된 바로는 이 토요시장이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장이라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장의 규모와 크기가 엄청나기는 하니, 몇 번째로는 꼽힐 만하겠다.
 
맛있는 유기농음식들이 가득한 렌의 토요시장

▲ 렌 시내에서 열리는 토요시장 풍경     © 정인진 
 
렌의 토요시장은 규모보다 농업과 목축으로 유명한 브르타뉴답게 먹음직스러운 신선한 채소와 과일, 유제품들이 한가득 쌓여 있다는 게 매력이다. 무엇보다 이 장에는 가까운 주변 마을에서 생산된 싱싱한 농산물로 가득하다. 근처 농장에서 생산된 치즈나 요구르트 같은 유제품은 물론, 생선들조차 근해에서 잡아 온 것들이다. 또 사과로 유명한 지역답게 이름도 생소한 품종의 다양한 사과들이 광주리마다 매우 싼 값에 판매되고 있다. 또 농장에서 만든 사과주와 사과주스들도 가판대마다 가득 담겨 있다.
 
브르타뉴는 프랑스에서 농업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프랑스에서 품질 높다고 평가되는 고기와 우유, 야채들이 이 지역에서 생산된다. 농업에 기반을 둔 지역인 만큼 옛날에는 가난을 면치 못하고 근근이 살았던 지역이기도 하다. 그러나 1960년대 농업혁명 이후, 농업 시스템을 근대화하면서 생산력의 놀라운 성장을 이룩했다. 특히, 가금류와 돼지의 집중적인 사육은 브르타뉴를 프랑스에서 첫 번째 농업지역으로 만들어 놓았다. 돼지고기는 프랑스에서 55%가 생산되고 있고, 가금류의 45%, 우유의 25%가 이 지역에서 제공된다. 그러나 이런 집중적인 가축사육은 물을 심각하게 오염시켰고 화학비료의 지나친 사용으로 토양도 심하게 오염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브르타뉴에서는 몇 년 전부터 자연농업을 지향하는 농부들에 의해 유기농업에 관심을 기울이는 추세이다. 옛날 방식으로 초원에서 가축을 사육하거나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야채를 키우는 것들이 대표적이다. 특히, 유기농산물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점점 늘면서 유기농업은 더욱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런 만큼, 렌의 토요시장에서는 유기농산물을 파는 상인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 렌의 토요시장에 가면 꼭 들르는 유기농 빵가게, 앞에 놓인 것이 호밀빵이다.  © 정인진 
 
내가 렌의 토요장을 가면 지나치지 않고 꼭 들르는 곳도 유기농 빵가게다. 나는 프랑스 사람들이 이렇게 맛있는 빵을 먹고 사는 줄은 이번에야 알았다. 지금까지 만난 프랑스인들은 슈퍼나 동네 빵집에서 ‘바게트’ 같은 걸 사서 먹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저렇게 맛없는 걸 매일 어떻게 먹고 사는지 이해가 안 갈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 빵가게에서 파는 빵들은 맛이 참 좋다.
 
특히, 이 빵가게의 호밀(seigle) 빵은 일품이다. 빵가게 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이 빵은 잘 딱딱해지지 않으며, 날이 지날수록 계속 발효가 되어 풍미를 더한다고 한다. 나는 이곳에서 호밀 빵과 함께, 통밀 빵이나 ‘시골 빵’이라고 부르는 빵도 가끔 사는데, 이런 빵들도 맛이 좋아 만족스럽다. 또 들르는 곳은 ‘카망베르’를 전문으로 파는, 역시 유기농 치즈가게다. 이 치즈들은 렌 근교 농장에서 생산된 것으로, 한 페스티벌에서 금상을 탔다는 플래카드도 내걸고 있다. 상을 탄 것이 뭐 대단할까? 하면서 하나를 사 맛을 보았는데, 치즈 맛이 정말 좋았다. 나는 아주머니께 당신의 치즈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는 찬사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북부 프랑스 릴 지역 ‘동네 시장’의 추억
 
집을 나섰을 때 맑았던 하늘이 금세 어두워지더니, 장을 보는 동안에는 굵은 소나기가 뿌려졌다. 나는 시장 처마 밑에 잠시 서서 비가 멈추기를 기다렸다. 옆에서 커다란 솥에서 김을 무럭무럭 내고 있는 ‘빠엘라’와 석쇠에서 구워지고 있는 소시지들이 식욕을 자극했다.
 
옛날 북부 프랑스에서 유학을 할 때, 릴에도 일요일마다 이런 장이 섰다. 그곳은 시내 외곽에 있는 ‘레 알’(les halles: 중앙시장)과 그 둘레에 커다란 장이 열린다. 그때는 며칠째 계속 내리던 비가 멈추고 잠시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파란 하늘을 드러내기만 해도 산책을 나갔다. 게다가 그런 날이 일요일이라면, 늘 장을 갔다. 그 장에서는 먹을거리는 물론, 꽃이나 싸구려 물건 등, 온갖 것들을 팔았다. 게다가 시장 곁에는 아시아 식품점들까지 줄지어있어, 그 장에 가면 라면이나 된장 같은 한국 식자재도 사올 수 있었다.
 
특히, 이 시장에서 내가 늘 빼놓지 않고 사먹었던 것은 ‘냄’이라고 부르는 베트남식 튀김이었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갓 튀긴 튀김을 민트 잎과 잎이 큰 샐러드에 싸서 베트남식 젓갈로 만든 소소에 찍어 먹으면, 맛이 정말 좋았다. 그런데 요즘 렌의 토요시장에선 소시지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이곳에서는 숯을 이용해 석쇠에 소시지를 굽는다. 그것을 메밀가루로 넓게 부친 ‘갈레트’라고 부르는 전병에 둘둘 말아 먹는데, 숯불 냄새가 밴 뜨거운 소시지 맛은 일품이다.
 
그럼에도 옛날 릴 시내에서 열리는 장은 소풍 삼아, 산책 삼아 가는 곳이었다. 그런 것처럼 렌의 토요시장도 매주 가는 건 아니다. 릴에서 장을 보기 위해서는 바로 집 옆에 있는 광장에서 일요일마다 펼쳐지는 장을 갔다. 물 좋은 생선들을 매주 사는 곳은 바로 이 장에서였다. 나는 여기서 대구나 가자미 같은 생선을 사와, 한국식으로 탕을 끓이거나 조려 먹는 걸 좋아했다. 

▲ 우리 동네 화요시장의 한산한 모습, 야채를 판매하는 할머니가 이날은 수선화를 한다발 들고 나오셨다.  ©정인진  
 
당시, 흔하지 않은 유기농 채소도 이 장에서 구입했다. 고집스럽게 생긴 농부가 들고 나온 유기농 야채들은 모양은 예쁘지 않아도 맛이 정말 좋았다. 그곳에선 유기농 배추도 살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중국배추’라고 불리는 배추는 찾는 사람이 적어서 그런지, 상점주인은 나를 기억했다. 그는 내가 배추를 사간 다음 주에는 ‘지난주에 사간 배추는 맛있게 먹었냐’고 상냥하게 묻곤 했다. 또 이 장에서 파는 치즈 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거기서 브리치즈가 얼마나 고소한지 알았고, 거기서 파는 체더치즈보다 더 맛있는 체더치즈는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
 
그렇게 장을 봐 돌아오다가도, 늦가을만 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들르는 곳은, 바로 집 앞 아랍인이 운영하는 야채 가게였다. 그곳은 근처에서 유일하게 감을 살 수 있는 곳이었다. 아직은 떫고 딱딱한, 주먹만 한 감들을 부엌의 찬장 선반에 줄 세워놓고 홍시가 될 때마다 하나씩 먹는 건 정말 행복했다.
 
옛날에 빈 계란 통을 버리지 않고 모았다가 가져다드렸던 분도 동네 장의 한 상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엇이든 함부로 버리지 않고 다시 사용하는 작은 실천에 내가 참여할 수 있었던 것도 그들 덕분이라고 생각하니, 그 일은 그들에게보다 내게 더 소중한 일이었던 것 같다.
 
골목까지 파고 든 대형 상점, 황폐화되는 작은 시장 

▲ 우리 동네 ‘까르프시티’ 매장 입구, 일요일에도 아침 9시부터 낮 1시까지 연다는 표시가 되어 있다.     © 정인진 
 
그러나 10년 만에 프랑스에 다시 와서 가장 놀란 건 동네 골목 깊숙이까지 대형매장의 슈퍼마켓들이 자리를 차지한 모습이었다. 골목에는 더 이상 작은 상점이나 야채가게들은 찾을 수가 없다. 도시 중앙이나 외곽에 큰 규모로 있던 초대형마트인 까르푸는 그 사이, 시내 곳곳에 ‘까르푸 마켓’이라는 이름의 중간 규모의 슈퍼마켓을 만들었고, 또 주택가 골목에는 ‘까르푸 시티’라는 소규모의 슈퍼마켓들을 들여놓았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만 해도 이 시티 매장이 두 개나 있다.
 
작다고 해도, 개인 상점과 비교도 안 되는 넓은 장소에 다양한 물건을 갖추고 있기도 하지만, 매일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영업을 하고, 다들 쉬는 일요일까지 여니 경쟁이 될 리가 없다. 현재, 우리 동네엔 옛날에 있었을 법한 야채가게는 찾아볼 수 없고, 매주 화요일마다 열리는 동네의 장은 초라하기만 하다. 이제는 누구나 한두 가지 급하게 물건이 필요할 때면, ‘까르푸 시티’ 로 달려가야 할 형편이다.
 
물론, 동네에 까르푸시티 같은 작은 슈퍼마켓만 있는 건 아니다. 아주 조금만 더 시간을 들여 걸어가면, 대규모 쇼핑센터가 있고 그 쇼핑센터 안에는 ‘르클레흐’(Leclerc)라는 초대형마트가 있다. 여기 살면서 가장 자주 가는 슈퍼마켓은 바로 이 ‘르클레흐’다. 야채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집 근처에 있는 유기농 협동조합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스페인과 같은 외국에서 생산되는 유기농채소들과 공산품들은 주로 르클레흐에서 산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값이 싸기 때문이다.

특히 공산품의 경우, 이런 대형마트에서는 하나나 두 개를 사면, 하나를 더 끼워주는 식으로 늘 할인 행사를 한다. 매주 월요일, 우편함에는 여러 대형매장에서 보내는 광고지가 가득 쌓인다. 광고지에는 갖가지 할인 행사가 소개되어 있고, 이런 판매 전략은 우리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나 또한 이번 주에는 어디서 무엇을 싸게 파나 연구한다. 페이지를 접어가며 빨간 볼펜으로 표시를 하고, 마감 날짜를 확인해 가며, 조금이라도 경제적인 혜택을 보기 위해 쇼핑을 서두르곤 한다. 그러니, 식구가 많은 사람들은 이런 대형슈퍼에서 다량 구입할 때 주는 할인 혜택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옛날 릴의 동네 장에서 만난 상인들이나 동네 가게주인들은 모두 이웃 같은 사람들이었다. 몇 년 동안 꾸준히 이용한 터라, 단골 상인들은 얼굴을 알아보며 즐겁게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한참 세월이 지나서는 장에서 샀던 맛난 먹을거리뿐 아니라, 인사를 나누며 근황을 묻곤 했던 상인들의 얼굴도 떠오른다. 그러나 지금은 그저 필요한 걸 사기 위해 슈퍼에 가서 시장바구니에 담아 줄을 서 계산을 한다. 계산원들과 상투적인 인사말을 나눌 뿐, 눈길을 주고받는 일조차 드물다.
 
요즘 프랑스에서의 이런 생활은 귀국 후 우리나라에서 경험할 앞으로의 삶을 미리 당겨서 경험하는 기분이라 마음이 착잡하다. 실제로 한국에서 내가 살던 동네도 작년에 아파트 단지 내에 있던 작은 슈퍼마켓이 문을 닿고 그 자리에 24시간 편의점이 들어섰다. 또 길 건너에 있는 슈퍼마켓도 근처에 생긴 대형마트에 밀려, 여러 해 째 판매가 부진한 형편이다. 대기업들은 초대형마트도 부족해, 골목 깊숙이 슈퍼마켓을 들여놓으려 한다. 대기업의 이런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인해, 우리들의 생활이 어떻게 황폐화될지 프랑스에 와서 경험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에 더욱 좌절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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