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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여연의 공상밥상 (10) 감자옹심이와 감자샐러드


홈스쿨링과 농사일로 십대를 보낸, 채식하는 청년 여연의 특별한 음식이야기. 갓 상경하여 대도시 서울의 일상 속에서 펼쳐지는 스무살 청년의 음식을 통한 세상 바라보기, 좌충우돌 실험 속에서 터득한 ‘여연표’ 요리법을 소개합니다. www.ildaro.com
 

감자 캐기, 적절한 시기가 중요하다 

▲ 감자는 장마가 오기 전 적절한 시기에 수확하는 것이 중요하다. © Tommy Hemmert Olesen 
 
나는 때때로 오늘이 며칠인지 완전히 잊어버린다. 오직 ‘글 쓰는 주’와 ‘글 안 쓰는 주’로 구분해서 요일만 세면서 살다가, 날짜를 떠올리고 깜짝 놀란다. 올해가 벌써 절반이나 가버렸단 말이야? 봄은 이미 사그라졌고, 장마가 다가온다. 이번 여름에는 감자를 캐러 갈 수 있을까?
 
감자는 보통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수확한다. 다른 많은 일들처럼 적절한 시기가 중요하다. 비가 올까봐 너무 서두르면 미처 여물지 않아 껍질이 온통 보푸라기처럼 일어난 감자를 캐게 된다. 이런 감자는 맛도 없고 저장성도 떨어진다. 그렇다고 미적거리다가 장마철이 거의 다 되서 공기 중에 습기가 가득할 때 감자를 캐는 건 더 위험하다. 감자를 썩게 만드는 온갖 고약한 병들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영양가 많은 감자를 지키기 위해 두더지, 온갖 곤충, 곰팡이 균과 심지어는 바이러스와도 경쟁해야만 했기 때문일까? 매년 감자를 캐면서 힘들었던 일들이 몇 가지 기억난다.
 
엄마를 도와 농사일하는 걸 싫어했던 십대 초반의 어느 해, 밭에 심어놓은 감자들이 돌림병에 걸렸다. 감자알이 온통 땅 속에서 썩어 문드러지는 병이었다. 정확한 이름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 병을 ‘해골병’이라고 불렀다. 썩은 감자에서 먹을 만한 부분을 도려낼 때 풍기는 고약한 썩은 냄새는 곧 내가 가장 싫어하는 냄새가 되었고, 해골병 때문에 물렁하고 시크무래죽죽해진 감자들의 모습은 꿈속까지 나타났다.
 
어느 해에는 밭에 유난히 개미가 많아서, 멋모르고 힘차게 호미질을 하던 중에 몇 번이나 개미굴을 부스러트렸다. 그럴 때마다 작업복 사이로 기어드는 까만 개미들과 새빨간 불개미들에게 인정사정없이 물어뜯기면서 나는 억울하다고, 호미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닌데 너희들의 집이 하필 거기 있는지 어떻게 알았겠느냐고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런 시원찮은 변명이 정성스레 지은 집을 잃고 분노한 일개미들을 진정시키지는 못했나보다. 결국 땅 속에서 감자 몇 알을 최대한 빨리 찾아내서 던져놓은 다음 멀리 도망가서 개미를 털고, 다시 돌아오는 식으로 감자를 캘 수밖에 없었다. 귀찮고 따가웠지만 흙 사이에 섞여 나오는 하얗고 반지르르한 알들을 보면서 개미들에게 꽤나 미안했다.
 
감자는 불길한 식물? 유럽 감자의 수난사

▲ 싹이 난 감자. 감자는 싹이 난 부위나 잎과 줄기를 먹으면 탈이 난다. 이런 이유로 유럽에 감자가 도입된 초기에 '불길한 음식'이 되었던 건 아닐까?     © Mathias Karlsson 
 
스페인에 감자가 들어온 건 1570년 정도라고 한다. 그 뒤 몇 십 년 동안 감자는 유럽 대륙과 영국으로 느릿느릿 퍼져나갔다. 하지만 처음부터 식량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는 못했다. 희귀한 식물로 정원사들이나 식물학자들이 길렀을 뿐이다.
 
감자가 밀보다 더 영양가 있는 식물이라는 걸 인정하는 왕족이나 귀족, 학자들은 감자가 빈민들의 굶주림 해소에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면서도 빵보다 감자가 훨씬 천한 음식이라고 여기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감자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덮어놓고 감자를 불길한 식물이라고 여겼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은 아니다. 감자는 치명적인 독초인 벨라도나와 같은 가지 과식물이고, 생긴 모습도 비슷하다. 바깥에 나와 있는 잎과 줄기는 무심코 먹으면 탈이 나기 때문에 식물 전체에 독이 있다는 인상을 받기 쉽다. 감자가 아직 낮선 식물이었던 16세기 말, 혹시나 이런 일이 있지는 않았을지 상상해보았다.
 
스페인에서 어떤 소작농이 감자를 밭에서 길러 먹어보라는 명령을 받는다. 농부는 땅 속에서 하얗게 빛나는 덩이줄기는 독이 아니라 영양분을 가득 품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미심쩍어하면서 감자를 캐서 먹어볼 결심을 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뭣도 모르고 햇빛에 몇 시간 놓아둔 감자를 삶아먹고 말았다. 윽, 느낌도 이상하고 입이 아릿아릿하다. 몇 시간이 지나자 머리가 아파오면서, 설사가 나와서 화장실에 자꾸 가게 된다. 뭐야 이건 독초잖아! 하여튼 귀족들이란. 어떻게 이런 걸 먹으라고 할 수가 있지?
 
중요한 식량작물이 된 감자,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미심쩍어하던 유럽 사람들에게도 차츰 이 통통한 덩이줄기의 가치가 알려졌다. 특히 유용했던 건 이 식물이 비타민 C와 비타민 B군을 풍부하게 공급해준다는 점이었다. 유제품과 함께 먹으면 가난한 사람들이 생존에 필요한 영양분을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감자는 같은 땅에서 자란 호밀 등의 식량작물보다 더 많은 탄수화물을 생산하고, 가공이나 조리도 빵에 비해서 훨씬 쉬운 편이다.
 
하지만 이런 장점들이 모든 나라에서 좋게 이용된 건 아니었다. 가난한 나라였던 아일랜드는 감자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하지만 식량 사정은 불안정하기 짝이 없었다. 농부들이 죄다 남의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짓는 소작농인데다 돼지고기, 버터, 밀 같은 다른 식량들은 모두 영국에 약탈당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늘어난 인구의 운명은 모두 감자에 달려 있었다.
 
19세기 중반에 감자가 병에 걸려 흉작이 되었을 때 이런 불안정함은 결국 ‘감자 기근’이라는 파국으로 변해서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굶어 죽게 만들었다. 
 
몇 백 년이 지난 지금 감자는 쌀, 밀, 옥수수와 함께 가장 중요한 식량작물이다. 하지만 비난도 많이 받는다. 패스트푸드점의 감자튀김은 몸에 나쁘기로 이미 악명이 높다. 마이클 폴란이 <욕망하는 식물>의 마지막 장에서 자세하게 썼듯이 대량농업을 통한 감자생산은 살충제를 안에 집어넣은 유전자조작 감자와, 농약범벅 감자 사이에서 고민하게 만든다. 어떤 감자가 환경과 몸에 더 나쁠까? 라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반복되는 무의미한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다.
 
감자의 고향, 잉카인들이 고안해낸 감자 보관법

▲ 고고학적으로 감자의 원산지로 추정되는 안데스 산맥의 티티카카 호수   © Anthony Lacoste 
 
지금으로부터 약 7000년 전부터 잉카인들은 야생으로 자라던 감자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토양의 질과 고도가 일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환경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감자를 조금씩 심어서 농사를 망칠 위험을 낮췄다. 지금과는 아주 다른 농사방식이지만, 그 덕분에 지금까지 전해지는 감자의 종류는 약 5000종이나 된다. 지금은 점점 더 획일화되는 추세지만 남미의 시장에서는 여전히 하얗고, 노랗고, 빨갛고, 보라색이고, 길쭉하고, 구부러지고, 울퉁불퉁하고, 미끈한 감자가 팔리고 있다.
 
원래 감자는 고산병에 걸릴 정도로 높은 산에서 자라던 식물이다. 고고학적으로 감자의 원산지로 추정되는 안데스 산맥의 ‘티티카카 호수’는 페루와 볼리비아 사이, 해발 3812m의 높은 고원에 위치한다. 게다가 남미의 토종 감자는 더 높은 곳, 심지어는 4,300m높이에서도 자랄 수 있다고 한다.
 
고도가 높아지면 낮밤의 기온차가 극단적으로 벌어진다. 낮에는 초여름 날씨지만 밤에는 온도가 영하로 내려갈 정도이다. 이렇게 되면 감자를 안정적으로 보관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잉카인들은 오히려 이런 기온차를 이용해 최초의 감자 보관법을 고안해냈다. ‘츄노’, 혹은 ‘툰타’ ‘모라야’라고 불리는 ‘얼려서 말린 감자’이다.
 
감자를 캐서 바깥에 놓아두면 뜨거운 낮과 차가운 밤에 감자가 얼고 녹고를 반복하면서 부드러워지게 된다. 한 달 정도 놓아둔 다음에는 발로 꾹꾹 밟아서 수분을 빼낸다. 생감자보다 훨씬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한데다 우리가 호박말랭이나 무말랭이를 먹듯이 뜨거운 물에 불려서 쓸 수 있으니 꽤나 훌륭한 저장방법이다.
 
강원도 식 감자저장법 ‘감자전분’ 만들기
 
우리나라에서도 감자는 원래 곡물이 귀한 산간 지방에 소중한 탄수화물을 공급해주는 식량이었다. 강원도에는 썩거나 수확 도중 호미에 찍힌 감자에서 녹말 성분만 추출해내는 전통적인 방법이 있다.
 
먼저, 감자를 항아리에 차곡차곡 넣은 다음 물을 부어서 놓아둔다. 그러면 강원도 사람들이 ‘감자 무고리’라고 부르는 살이 썩어서 물렁물렁해지는데, 이때 껍질과 분리된 속살을 고운 채에 걸러서 가라앉힌 다음 윗물을 여러 번 따라내고 깨끗한 물을 다시 부어준다. 이 과정이 끝나면 냄새가 빠지고 무거운 녹말 앙금만 남게 된다. 이 앙금을 손으로 비벼서 말리면 하얀 감자전분으로 탈바꿈한다.
 
강원도 특산물이라고만 알고 있었던 ‘감자떡’이나 ‘감자옹심이’도 사실은 이런 방법으로 만든 녹말을 이용한 음식이었다. 그대로 따라 하기는 어렵지만, 나도 간단한 방법으로 감자옹심이를 한 번 만들어 보기로 했다. 옹심이는 밀가루와는 전혀 다른 쫄깃쫄깃한 감자녹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음식이다. 감자만으로 부족한 단백질과 지방은 버섯과 들깨가루를 이용해서 보충했다.

▲ 감자옹심이(아래)와 허브를 넣어 버무린 감자샐러드(위)     © 여연 
 
 • 버섯들깨감자옹심이 만들기
 
-재료(2인분 기준): 감자 중간 크기 3개, 국물용 다시마, 버섯(느타리, 팽이, 표고), 애호박, 양파 각각 반개씩.  파, 땡초 1개, 들깨가루 적당량. 조선간장.
 
감자를 썰어서 껍질을 벗긴 다음 강판에 간다. 갈아놓은 감자를 올이 고운 천에 싸서, 밑에 그릇을 받치고 물기를 꾹 짠다. 쫀득한 옹심이를 만들려면 손에 힘을 꽉 주고 가능한 많은 물을 짜낸다. 감자 물은 10분 정도 가만히 놓아둔다. 그동안 다시마와 물을 끓여서 밑 국물을 내고, 버섯과 야채를 손질해서 국에 넣기 적당한 크기로 썰어놓는다.

감자 물에서 하얀 앙금이 가라앉으면 윗물을 따라버린다. 남은 녹말은 갈아놓은 감자에 도로 섞어서 반죽을 만든 다음 엄지손톱보다 약간 크게 떼어서 동글동글하게 빚는다. 팔팔 끓는 다시마 국물에 감자옹심이를 하나씩 넣는다. 약간 끓이다가 손질해놓은 땡초, 표고버섯, 호박, 양파, 느타리버섯, 팽이버섯을 순서대로 넣는다. 들깨가루를 좋아하는 만큼 넣고, 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마지막에 파를 뿌린다.
 
영양가 높은 감자 ‘잘 먹는 방법’
 
이른 봄. 넉넉하게 심고 겨울에 아껴먹어도 그때까지 감자가 남아있는 건 꽤나 드물어서, 어쩌다가 남아있는 감자는 왠지 더 소중하게 느껴졌었다. 창고에 놓인, 바닥이 드러난 감자박스에서 마지막 한 알까지 박박 긁어서 부엌으로 돌아와 껍질을 벗긴다. 이 마지막 감자로는 뭘 만들까? 감자전, 감자찌개, 감자카레, 으깬 감자, 볶은 감자, 조린 감자!
   
하지만 껍질을 벗기다가 안 좋은 느낌이 들어서 하나를 들고 쪼개보면 한숨만 나온다. 이 녀석도 썩었고, 저 녀석도 썩었고, 그래도 혹시 이거라면? 하는 기대감을 품고 유난히 크고 튼실해 보이는 감자를 집지만, 역시나 속은 까맣다. 한참동안 솎아내고 나면 바구니 가득 담겨있던 감자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썩은 부분을 도려낸 게 아니라 썩은 부분‘에서’ 도려낸 그나마 먹을 만한 쪼가리 몇 개만이 덩그러니 남는다. 나머지는 모두 속이 시커멓게 변해서 세로로 쩍쩍 갈라져 있다.
 
얄궂게도 몇몇 썩은 감자의 단면에는 마치 누군가 조각해놓은 것처럼 까만 꽃무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이런 감자들도 사과나무 밑에 있는 거름더미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감자는 마당에서 쓸어낸 나뭇잎, 풀과 다른 음식 찌꺼기들과 섞인 다음 봄비를 맞으며 잘게 부스러져 땅 속으로 스며들어간다. 여름이 오면 풍부한 영양분 덕택에 나무에서는 작지만 단단하고 새콤달콤한 사과가 열린다. 그러면 우린 다시 그 사과를, 아니 감자를 먹는다.
 
여러 나라의 사람들을 먹여 살렸던 작물답게 감자에는 탄수화물, 수분, 비타민(B1, B2, C), 단백질, 칼륨 등이 적절하게 들어있다. 특히 비타민 C의 함량은 사과의 몇 배나 된다. 감자를 잘 먹는 방법은 껍질을 깎거나 자르지 않고 그대로 찌는 것이다. 그러면 익힐 때 파괴되거나 물에 녹기 쉬운 비타민이 녹말에 단단히 싸여 보호되기 때문에 영양분의 손실을 줄일 수 있다.
           
 • 삶은 감자에 허브를 넣어 버무린 ‘으깨지 않은 감자샐러드’
 
-재료: 중간 크기 감자 5개 정도, 소금
-드레싱: 참기름 2수저, 식초 1/3수저, 꿀이나 과일 엑기스 한 수저, 잘게 썬 허브(주로 바질, 로즈마리와 라벤더 약간), 후추, 통깨와 쪽파 약간
 
감자를 깨끗하게 씻어서, 가운데를 빙 둘러서 십자 모양으로 껍질에 칼집을 낸다. 바닥이 두꺼운 냄비에 감자를 넣고, 감자가 1/3쯤 잠길 만큼 물을 부어서 삶는다. 물에 소금과 식초를 티스푼으로 반 스푼 정도 넣으면 감자에 짭짤한 기운이 돌게 된다. 감자가 익는 동안 준비한 양념을 섞어서 맑은 드레싱을 만들어 놓는다.

젓가락으로 찔러 봐서 안에서 딱딱한 느낌이 사라지면 불을 끄고 남은 물을 따라낸다. 감자가 식으면 아까 칼집을 냈던 대로 껍질을 벗겨서 4등분한 다음 도톰하고 납작하게 썬다. 드레싱에 버무려서 접시에 담아낸다.  (여연)

*참고 문헌
요네하라 마리 <미식견문록> 2009, 마음산책
래리 주커먼 <감자이야기> 2000, 지호
베르나르트 슬리허 반 바트 <서유럽 농업사> 1999, 까치
조현욱 <감자, 내 몸을 살린다> 2000, 한언출판사
빌 로스 <식물, 역사를 뒤집다> 2011, 예경
마이클 폴란, <욕망하는 식물> 2007, 황소자리
'International Potato Center(IPC)' http://www.cipotato.org/
'International Year of the Potato' http://www.potato2008.org/en/index.html
‘티티카카 호’: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http://ko.wikipedia.org/wiki/%ED%8B%B0%ED%8B%B0%EC%B9%B4%EC%B9%B4_%ED%98%B8
‘Chuño’: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http://en.wikipedia.org/wiki/Chu%C3%B1o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만화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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