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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연습] 9.
과연 죽음을 예감할 수 있을까? 
 
<철학하는 일상>의 저자 이경신님의 새 연재 ‘죽음연습’. 필자는 의료화된 사회에서 '좋은 죽음'이 가능한지 탐색 중이며, 잘 늙고 잘 죽는 것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죽음을 알리는 '앙꾸'(Ankou)의 수레바퀴 소리
 
예로부터 프랑스 서북부 해안지방의 사람들은 밤에 수레바퀴 구르는 소리가 나면 집에 꼭 틀어박혀 꼼짝하지 않았다고 한다. 끔찍한 해골모습을 한 죽음의 일꾼, ‘앙꾸(Ankou)’가 수레를 타고 누군가의 목숨을 거두러 다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에게 밤의 수레바퀴 소리는 다름 아닌 ‘죽음의 전조’였다.
 
수레바퀴는 마땅히 낮에 굴러야 하는데, 밤에 구르고 있으니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처럼 평소 일어나지 않는 특별한 일, 드문 일은 죽음의 전조일 수 있다고 믿었다. 까치가 지붕에 앉아 있을 때도, 수탉이 밤에 울 때도 ‘앙꾸’가 찾아온다. 갑자기 한기가 느껴지거나 코피가 터진다면, 한밤중에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거나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면, 바로 ‘앙꾸’가 일할 때다.
 
이해하기 어렵고 생소하며 낯선 현상, 불길하고 불안을 안겨주는 기운을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예고로 받아들이곤 했던 것은 비단 켈트문화의 전유물은 아니다. 우리 문화 속에서 별똥별의 추락을 죽음과 연결시켜온 것을 떠올려 보자.
 
항상 죽음이 우리 곁을 맴돌지만 낯설기만 하고,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죽음은 언제나 두려움을 안겨준다. 그래서 낯설고 불길해 보이는 현상을 죽음과 연관시켜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같은 ‘죽음의 전조’에 대한 믿음은 헛웃음을 웃게 할 만큼 황당하고 근거가 없어 보이지만, 일상 속에서 죽음이 멀리 있지 않다는 느낌만은 놓지 않도록 한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 대한 예감
 
그렇지만, 믿기 어려운 ‘죽음의 전조’를 그냥 송두리째 포기해 버릴 수 없다. 적어도 부모나 형제, 자매, 친구처럼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것은 미리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부모와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전조를 체험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의 죽음을 미리 예감한 것에 대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언어로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내가 정말로 죽음의 전조를 경험한 것인지 아직도 의심하고 있긴 하다.
 
병을 오랫동안 앓아온 어머니의 경우, 그 죽음이 갑작스러울 것도 없었다. 이미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할머니의 죽음은 불시에 다가왔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한 지 채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사고로 이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는 미처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갖지 못했었다.
 
고향을 떠나와서 객지에서 대학생활을 하던 나는 집에 자주 전화를 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 내가 문득 집에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부터 특별한 일로 봐야 할 것이다. 알고 보니, 내가 전화를 걸기 직전에 아버지께서 운명하셨다. 할머니가 사고를 당한 그날도, 불현 듯 이유 없이 고향에 내려가고 싶었다. 기차를 타고 집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할머니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전화를 걸기 전에도,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기차를 타고 가는 중에도 나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불쾌감을 느꼈었다. 불쾌감이란 표현은 적당하지 않은 것인지 모른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심리적 변화가 있었고, 즐겁고 유쾌한 기분이 아니라 무겁고 불편한 감정에 짓눌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주 연락하며 지냈던 것도 아니고 가까이서 함께 살지도 않았지만 부모님과 할머니의 죽음을 예감했다는 것은 나 스스로도 이해하기가 어렵다. 정말로 죽음의 전조를 경험한 것일까?
 
만약 내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예감한 것이라면 그것은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은 미리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니 말이다.  죽음의 전조를 받아 죽음이 임박한 사람을 만나러 달려갈 수 있으면, 그래서 그 사람의 죽음의 순간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면 분명 감사할 일이다. 그래서 나는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예감했다고 그냥 믿고 싶은 것이다.
 
‘사람이 변하면 삼 년을 못 산다’는 말
 
죽음의 전조와 달리, 타인의 급격한 변화를 포착하면서 그 사람의 ‘죽음의 징후’를 읽어내려 하는 것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사람이 변하면 삼 년을 살지 못 한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갑작스럽게 변하면, 즉 가치관을 전면적으로 바꾸거나 평소와는 다른 성격을 내보이거나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하면, 그 사람의 죽음이 가까이 왔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성격, 생각, 태도의 급격한 변화를 놓고 그 사람의 임박한 죽음을 생각하는 데는 한 개인이 자신을 근본적으로 바꾸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죽음과 같은 극적인 사건이 도래하지 않는 한, 우리는 우매할 정도로 살아온 대로 살기를 고집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나는 어떤 사람이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 ‘그 사람이 죽으려나’하는 생각이 들어 불안해진다. 나의 이런 불안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이었다. 어느 날 문득, 아버지가 세 딸을 동반해 여행길에 올랐다. 그때까지 아버지는 자식들과 함께 여러 날 여행을 다닌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버지는 직접 운전해서 우리를 태우고 이곳저곳 흥미로운 곳을 구경시켜 주셨다. 여행 내내 우리는 신이 났다. 긴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그때의 기억만은 생생하다. 그 여행으로부터 거의 3년이 흐른 시점에 아버지는 이 세상을 떠나셨다.
 
티벳의 승려 달라이 라마가 ‘죽음의 징후’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이 생각난다. 갑자기 자신의 집이나 친구들을 혐오하면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질 수도 있고, 독불장군이던 사람이 갑작스레 다른 사람들에게 협조적으로 바뀔 수도 있고, 열정이 눈에 띄게 늘어나거나 줄어들기도 한다고.
 
그렇다면, 아버지가 우리를 데리고 여행을 떠난 것이 바로 그 죽음의 징후였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경험이 내게 ‘사람이 변하면 삼 년을 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품게 만든 것 같다. 이런 믿음은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좀 더 강화되었다. 자녀들을 자유로이 내버려두면서 단 한 번도 조정자로 나선 적이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몇 달 전, 평소의 어머니답지 않게도 내 인생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고 했던 것이다.
 
타인의 죽음을 예감하는 신비로운, 비이성적 경험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질 않지만, 사람이 죽기에 앞서 어떤 징후를 내보인다는 생각에는 공감할 수 있다. 그 사람을 가까이서 대해왔다면, 충분히 그 죽음의 징후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이 임박한 사람과   함께 서로 용서하고 감사하고 사랑을 표현하면서 마지막 이별인사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죽기 전 집을 떠나는 고양이처럼
 
가까운 사람의 죽음의 징후를 포착할 수 있다면, 나 자신의 죽음은 미리 알 수 없을까?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불교승려들에 대한 이야기는 무수하다. 마치 고양이가 죽을 때가 되어 살던 집을 떠나듯이 승려들도 자신의 죽음을 예감할 때 절을 떠나 깊은 숲으로 들어가 홀로 죽음을 맞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또 평범한 사람이 자기 죽음을 예감한 이야기도 적지 않다. 병석에 누워 있던 노인이 죽기 전날 머리를 감고 몸을 닦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는 이야기는 흔히 들어왔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죽음이 교통사고처럼 외부로부터 가해진 폭력적인 것이 아니라면 자신의 죽음은 예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아차리고 담담하게 삶을 정리하고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겠는가.
 
삶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눈이 어두워지지 않는다면, 우리 집을 찾은 ‘앙꾸’를 따돌리지 않고 순순히 따라나설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을 향해 가만히 귀를 열어, 저 멀리서부터 ‘앙꾸’의 수레가 굴러오는 미미한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기를. (이경신)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만화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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