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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입양 다시 보기] ①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입양특례법 논란 
 
아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개정된 입양특례법이 오히려 ‘아동 유기를 조장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일다>는 ‘입양’을 둘러싼 문제들을 ‘여성의 양육권’와 ‘아동의 인권’ 차원에서 바라볼 것을 제안하며,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기사를 연재한다. 필자 권희정씨는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했으며, 현재 미혼모와 입양에 관한 논문을 준비 중이다 www.ildaro.com
 
입양을 둘러싼 문제들, 깊이 들여다보자
 
우리는 흔히 입양은 ‘가슴으로 낳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사랑이 실천되는 과정 이전에, 먼저 ‘엄마와 아기의 분리’라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가 전제되어있다는 사실에 대해선 잘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 사회는 왜 전쟁과 기아가 없는 이 시대에 와서도 입양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가, 왜 여성들은 자신이 낳은 아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나, 또 그 여성들은 정말 모든 것을 잊고 잘 살아가고 있는가, 아이는 입양이 되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 진지한 물음을 던져보아야 한다.
 
“입양 다시 보기” 연재를 통해 가장 먼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입양특례법이 아동 유기를 조장한다’는 주장에 대해 비판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아울러 서구 사회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지금 우리의 현실을 반추해보려 한다. 서구에선 ‘혼외’ 임신과 출산을 어떻게 바라보고 정책적으로 통제해왔는지, 그러한 사회 시스템 속에서 아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의 증언도 소개할 예정이다.
 
그리고 입양 제도와 정책을 모성권과 아동의 인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변화시켜 나간 서구 입양의 역사를 살펴보며, 우리 사회의 ‘입양’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혼인관계 밖’에서 출산한 여성, 태어난 아이
 
난 입양인이 아니다. 그리고 혈연가족의 소중함을 운운하며 일인가족, 입양가족, 재혼가족 등 오늘날 등장하고 있는 다양한 가족의 행복을 부정할 생각은 더구나 없다. 모든 가족은 소중하다.
 
하지만 원초적으로 가족을 구성할 권리 자체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있다. 혼인관계 밖에서 출산 한, 세상에서 “미혼모”(최근 ‘비혼모’라는 긍정적 용어를 사용하는 흐름이 있으나, 기사에서는 한국의 현실을 드러내기 위해 그대로 사용하였음)라 부르는 여성들이다. 그리고 결혼제도 밖에서 태어나는 “혼외자”라 불리는 아이들이다.
 
세상의 논리는 이들 아동의 행복을 위해 ‘정상가족으로 입양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 아이들이 버려질 수밖에 없었던, 친모에게서 포기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맥락은 사라진 채, ‘비정한 모정’과 ‘가여운 고아’라는 결과만 부각된다.
 
하지만 진정 비정하고 가여운 건, 이들이 함께 살 수 있는 권리를 사회가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들의 이산(離散)을 정당한 것으로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 사회가 아닌가 싶다.

▲ 입양아동 발생 요인에 대한 통계 (‘기아’란 부모를 알 수 없는 ‘버려진 아이’라는 의미이다.)      
 
나의 출생에 대해 알 수 없다는 것
 
길을 걷다 우연히 생각에 빠져 ‘나를 낳아준 부모가 누구인지, 엄마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내가 진짜 태어난 날이 언제인지 모른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상상해보았다.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까지 핑 돈다.
 
내가 도무지 누군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리고 나를 낳아준 엄마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고 죽을 때까지 만나지 못할 가능성이 더 많은 상황에서, 배불리 먹고 깨끗한 옷을 입고 따뜻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는 사실은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해줄까.
 
입양가족의 사랑 속에서 물론 별탈 없이 자랄 수도 있겠지만, 출생에 대해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은 그 행복과는 별개로 치유될 수 없는 상처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오래 전 해외로 입양 보내졌던 한국의 아동들이 커서 고국에 돌아와 자신의 출생기록을 찾으려 했으나 남아있지 않거나, 뒤바뀌어있거나, 사실이 아니었다는 것을 발견한 사례는 신파 속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현실에 존재하는 이야기이다.
 
미국에 입양된 한 입양인이 부모를 만나리라는 기대를 품고 평생 자신이 입양되었을 당시의 성을 계속 사용했던 사례가 있다. 그녀는 한국에 올 때마다 접촉할 수 있는 모든 입양기관을 돌며 친부모를 찾고자 했으나, 자신의 출생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그러다 몇 년 전 그녀의 사연을 담은 기사가 사진과 함께 신문에 실렸다. 그녀의 얼굴을 알아본 엄마가 기자에게 연락을 해, 그녀는 그토록 찾고자 했던 엄마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성은 ‘권’씨가 아니라 ‘이’씨였던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입양인이 친모를 만나게 되는 건, ‘기록’이나 ‘자료’가 아닌 ‘우연’과 ‘운’에 온전히 달려 있는 것이 오늘날 한국의 입양인과 미혼모 인권이 놓여있는 현실이다.

▲ 입양아동 중 미혼모 자녀 증가 비율을 알 수 있는 도표 (2002년 2004년 해외입양의 경우 100% 미혼모 자녀였음을 알 수 있다.>      
 
입양특례법이 ‘아동 유기’의 원흉인가?
 
다행히 몇 년 전부터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서서히 시작되었다. 입양에 있어 ‘아동의 이익이 최우선 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대된 것이다.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는 <입양인 권익증진추진방안>에서 입양대상 아동의 각종 기록 등록을 의무화할 것 등을 권고 하였다.
 
그리고 ‘아동은 자신이 태어난 가정과 국가에서 우선 양육되고 보호되어야 한다’는 국제 규약에 발맞추어, 2011년 그간 적용되어온 ‘입양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이 ‘입양특례법’으로 개정되었다.
 
입양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최소화하고, 아동이 ‘자기 출신에 대해 알 권리’를 존중한다는 취지에서 그동안 민간 차원에서 이루어지던 입양을 가정법원 허가제로 바뀌었다. 또 입양 허가를 위해 아동 출생신고 증빙서류를 제출하도록 하고, 입양 동의는 아동의 출생일로부터 1주일 후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양숙려제’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포함하였다. 이 법은 ‘아동 인권 보호’에 진일보한 개정으로 평가되었다.
 
하지만 작년 8월부터 시행된 이 법이, 오히려 ‘아동 유기의 원흉’으로 지목되며 벌써부터 재개정해야 한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높아지고 있다. 입양을 보내려는 친모가 출생신고를 꺼리기 때문에 일명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담아버리는 일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출생 후 1주일간 아이가 방치될 수 있기 때문에 ‘입양숙려제’도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현재 입양특례법을 다시 개정하자는 논의의 골자를 살펴보면, 24세 이하 청소년 한부모의 경우에는 입양숙려기간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청소년 한부모가 출산한 아동의 가족관계 등록 창설은 부모 대신 입양기관의 장이 할 수 있게 하고, 이 경우에 아동은 ‘부모를 알 수 없는 아동으로 한다’는 내용이다.
 
부모가 있는 아이를 부모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고아의 신분으로 바꾸는, 즉 아동이 출생에 대해 알 권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법이 지금 아동의 복지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는 실상이다.
 
미혼모와 아기를 떼어놓은 입양, 서구국가들 ‘사죄’
 
이러한 상황은 입양아동의 알 권리와 미혼모의 양육권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일보 후퇴하는 것일 뿐 아니라, 서구 입양의 역사 흐름에 비추어 보았을 때도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거꾸로 되돌리는 것이다.
 
과거 서구 사회에서도 “미혼모”에 대한 낙인과 차별이 매우 심했다. 194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미국,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등에서는 선(先)주민의 자녀들은 열등하다는 인종적 이유에서, 그리고 혼외 관계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부도덕하다는 이유에서 그들을 친생부모와 분리시켜 백인 중산층 가정으로 대거 입양 보냈다.
 
마치 한 덩어리의 아이스크림을 듬뿍 떠내듯 친생가족으로부터 아기들을 집단적으로 분리시켜 다른 곳에 배치시킨 이 시대를 서구의 역사는 ‘베이비 스쿱 시대(Baby Scoop Era)'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일은 주로 서구 자본주의 핵가족이 강화되던 시대에 발생하였다. 1950년대 전후 영국에서 수천 명의 미혼모가 출산한 아이들이 호주로 추방되었는데, 이 역사적 사실은 <추방된 아이들>(Orange and Sunshine, 2010)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현재 호주를 비롯해 영국, 캐나다 등은 과거 잘못된 입양정책으로 인해 헤어져야 했던 미혼모와 그들 자녀에 대해 국가적 배상과 사과를 하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 다시금 부모가 있는 아이를 부모를 알 수 없는 아이로 만드는 것. 이러한 방식이 아니고는 정말 ‘아동 유기’를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단 말인가? _권희정
 
 참고 정보
* 베이비 스쿱 시대 ‘Baby Scoop Era’ 관련 사이트
http://en.wikipedia.org/wiki/Baby_Scoop_Era
http://www.originsnsw.com/id43.html
http://www.originscanada.org/homes-for-unwed-mothers
http://www.exiledmothers.com/index.html
* 호주의 입양 사죄 관련 기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57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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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프로필사진 독자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정책이 근시안적으로 가면 안되겠죠. 저출산이 문제된다면서 아직도 해외입양을 보내는 국가라는게.. 외국에서 손가락질받을 만한 일이란 걸 모르고 있죠. 미혼모라고 해서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것은 한국이 그만큼 후진국이라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2013.02.26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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