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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새지평

안산 땟골 ‘고려인’ 여성노동자의 하루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3. 2. 13. 07:30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기록되지 않은 노동> 3D업종을 채우는 이주여성들 

 
일다는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과 공동 기획으로, 지금까지 기록되지 않았던 여성노동자들의 일과 삶을 이야기하는 기사를 연재합니다. 고려인 여성노동자의 노동현실을 기록한 리온소연 씨는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 회원이며, 수원의 첫 다문화도서관인 지구별상상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편한 일 줄게…’ 성희롱이 일상인 곳
 
오늘도 나타샤(가명, 27세)를 바라보는 직업소개소장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직업소개소장은 일주일 전부터 자기랑 연애하자며 나타샤에게 치근덕대고 툭하면 소개소 안쪽 방으로 나타샤를 불러 댔다.
 
나타샤는 처음에 당황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직업소개소장이 나타샤에게 좋아하거나 사랑 따위의 감정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꼈다. “싫어요.” “남편 있어요.”라고 거절하고 있지만 직업소개소장이 자신을 나쁜 근무지로 보내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
 
공장장, 팀장, 심지어 직업소개소에서 파견 공장으로 데려다 주는 차량 운전기사까지 한국 남자들에게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나타샤는 성희롱의 표적이 되었다. “편한 일 줄게.”라며 손을 쓰다듬는 직업소개소장의 얼굴에 나타샤는 시원하게 주먹을 날리고 싶다. 같이 일하는 고려인 언니들은 “나도 겪었어. 어쩔 수 없잖아.” 하고 대부분 넘어가는 편이다. 지난달, 운전기사는 나탸샤의 거절에 보란 듯이 ‘복수’를 했다. 나타샤가 차에 타기 전에 먼저 출발을 하거나 내려 줄 곳에 안 내려주기 복수였다. 운전기사의 행동이 치사하고 옹졸했지만 나타샤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안산 땟골은 월세가 비싼 원곡동을 떠나 안산에서 제일 월세가 싼 곳으로 흘러들어온 고려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쪽방촌인 이곳에는 직업소개소가 많아 한국어를 못하는 고려인들이 일 찾기가 편하다. 1인용 침대 하나 놓으면 두 명이 겨우 앉을 수 있는 쪽방은 보증금 50만 원에 월세 20~30만 원이다. 집이라기보다는 일하고 와서 잠만 자는 곳이다.
 
‘동포취업비자’를 받는 고려인 이주노동자
 
나타샤는 이주노동자이다. 하지만 코리안이다. 우즈베키스탄 고려인이다. 27살 나타샤는 먼저 한국에서 일하고 있던 친척의 소개로 2011년에 한국에 왔다. 많은 사람이 조선족이나 재일교포라는 말은 익히 들어 알지만 ‘고려인’이라는 말에는 대개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만큼 한국인과 고려인 사이에 교류가 없었다는 말일 것이다.
 
고려인의 역사는 한과 슬픔의 이민사이다. 1860년대, 배고픔을 못 이겨 연해주로 이주한 조선 농민들로부터 시작되는 고려인의 역사는 2013년 올해 150년이 된다.
 
일제강점기에 연해주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근거지이자 피난처 역할을 했다. 그러다 1937~1939년 사이 스탈린에 의해 연해주 거주 조선인들은 일제의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불모지였던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다. 나타샤를 비롯해 땟골에 사는 대부분의 고려인이 러시아 연해주가 아닌 우즈베키스탄이 고향인 이유다.
 
나타샤의 비자는 동포취업비자인 H2비자다. 이 비자는 조선족과 고려인 동포들을 위해 정부가 만든 동포 비자다. 이 비자를 받으면 한국에서 3~5년간 체류가 가능하고 취업처가 정해지지 않아도 입국할 수 있다. 나타샤는 고려인들이 흔히 그러듯 한국에 올 때 2천 불을 가져왔다. 1천 불은 비자와 비행기값으로 쓰고, 1천 불은 직장을 구할 때까지 쓸 생활비와 보증금이다. 이 돈이 떨어지기 전 한두 달 안에 직장을 구해야 하는데 땟골은 일할 곳이 많아 대개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
 
유해물질 노출된 노동환경, 언어장벽으로 교육도 못받아
 
나타샤가 땟골에 들어와서 제일 먼저 소개받은 공장은 도금업체였다. 황산, 니켈, 염산 등의 화학약품이 담긴 통에 도금할 물건을 넣었다 빼는 일이었다. 나타샤는 처음 보는 화학약품들이 무서웠다. 일도 손에 익지 않아 힘들었다. 그러나 바로 일을 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했다. 공장장은 생각만큼 위험한 일이 아니라며 약품이 몸에 튀어도 일주일이 지나면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약품이 얼굴이나 목에 튀면 빨갛게 부어올랐다.
 
땟골에서 고려인들이 구할 수 있는 일은 한국인들이 피하는 3D업종이다. 대부분 안산 지역의 도금업체와 염색업체로, 직업소개소 소속 파견인력으로 근무한다. 인력난에 허덕이는 대표적 3D업종인 안산 도금업체들의 빈자리를 고려인 이주 노동자들이 채우고 있지만 어느 곳에서도 근로자로 대우받지 못한다.
 
안산 땟골에는 주로 휴대전화 내, 외장용 부품을 도금하는 전자제품 도금업체와 자동차부품 도금 업체, 액세서리 도금업체들이 자리해있다. 이러한 업체 대부분이 직원 수 5-10명 규모의 작은 영세 업체로 일의 특성상 늘 유해물질에 노출되어 있어 작업장 환경이 좋지 않다. 재해위험이 크지만 언어 장벽으로 인해 기계의 사용법이나 사용물질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관리자의 시연을 보고 작업을 배우는 실정이다.
 
나타샤는 지금 염색업체에 다니고 있다. 아침 7시부터 일이 시작하기에 한 시간 전인 6시까지는 직업소개소에 나가야 한다. 다른 고려인들과 모여 있으면 소장이 작업을 배치한다. 고려인들은 최저임금 시급으로 일당을 받는다. 일당제라 조금이라도 더 일하려 하다 보니 보통 밤 9시에 퇴근을 하고 10시에 땟골로 돌아온다.
 
아침 7시에서 저녁 9시까지 꼬박 14시간을 일하고 오면 일당의 최저 10%에서 20%까지는 소개비로 소장이 떼어 간다. ‘소개비’라는 이름은 쓰지 않고 근무지까지 데려다 주는 교통비, 장비대여비 등으로 떼어 간다. 결국, 14시간 일하고 손에 쥐는 것은 5만원 남짓이다. 그래도 나타샤는 도금, 염색 공장 일은 계속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땟골에는 수많은 ‘나타샤’가 산다
 
나타샤는 5살 아들을 고향 친정 부모님에게 맡기고 한국에 왔다. 어린 아들은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 동안 엄마 나타샤와 떨어져 지내야 한다.
 
땟골에는 고향에 아이를 두고 온 비슷한 처지의 고려인 언니들이 많다. 한 번이라도 아이를 한국에 데려와 며칠이라도 같이 있고 싶은 것이 이들의 소망이지만 비행기값이 비싸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은 마음에 한국에 오게 된 나타샤와 언니들에게는 아이와 떨어져 지내는 3년 혹은 5년이 몇십 년, 몇백 년만 같다. 아니, 어느 날은 하루가 그처럼 길게 느껴질 것이다.
 
1980년대 노동현장이 그대로 멈춰 있는, 그래서 성희롱이 일상이 되는 안산 땟골에 오늘도 수많은 나타샤가 산다. (리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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