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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이 시대 청년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 언더커버리포트 外
현대문명과 거리를 둔 채, 산골에서 자급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도은님이 <이 시대 청년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 연재를 시작합니다. 도은님은 두 딸과 함께 쓴 “세 모녀 에코페미니스트의 좌충우돌 성장기” <없는 것이 많아서 자유로운>의 저자입니다. www.ildaro.com
정치판의 큰 선거가 끝났다. 그리고 한 해 중 가장 어둡고 밤이 길다는 동짓날도 지나갔다.
종말론이 휩쓴 한 해 성탄절을 맞이하며
▲ 해마다 이 시기가 되면 성탄과 연말의 들뜬 분위기를 위해서 도시의 나무들은 전구에 휘감기는 '고문'을 당한다. © 일다-이옥임
올해 동짓날인 2012년 12월 21일은 마야 달력에 기록돼 있던 마지막 날이라던가. 그래서인지 종말론에 관한 이야기들을 올 한 해 꽤 많이 들었다. 문명 붕괴론, 재앙, 위기, 극심한 기후 변화, 자기장의 변화, 혜성 충돌, 핵폭발, 기술 산업 체제의 붕괴 등등. 나 역시 어떤 책들을 읽다가 ‘으음, 이런 걸 두고 종말이라고 하지 않을까?’ 골똘히 고민한 적이 있을 정도이다.
그윽한 평화로 충만하다는 천상과는 달리 내가 몸담고 사는 이 지상에는 불안과 위기감이 널리 퍼져 있으니 어쩌겠는가. 사실 치밀한 논증과 전복적인 상상력이 한껏 동원된 종말 시나리오를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물론 나는 사이비 종교단체들이나 우주인과 채널링을 한다는 이들이 내세우는 식의 종말론은 믿지 않는다.
어쨌든 지구 종말의 날이라는 그 동짓날도 지나갔고 오늘은 성탄절이다. 여기서는 성탄절 분위기를 크게 느낄 수 없다. 우리가 특정 종교인이 아닐 뿐더러 TV가 없고 인터넷이나 신문 같은 매체들과도 별 관계없이 살고 있어서 그런 모양이다. 그저 별 일 없는 조용한 겨울날일 뿐이다. 얼음 덮인 작은 산골 마을은 여느 날처럼 군불 때는 연기가 추운 하늘로 천천히 올라갔으며, 산까치 몇 마리가 처마 밑에 매달린 곶감을 쪼아 먹으려고 수다스럽게 몰려왔을 뿐이다.
나는 해마다 이 시기가 되면 성탄과 연말의 들뜬 분위기를 위해서 심한 괴롭힘을 당하는 도시의 나무들이 생각난다. 인간들이 점령한 혼잡한 도시 한 귀퉁이에서 근근이 힘겹게 살아가는 나무들이 있다. 교회, 성당, 백화점, 대형 호텔들이 아무 죄 없는 그 불쌍한 나무들의 몸통과 가지에다 번쩍대는 꼬마전구들을 빈틈없이 휘감아 놓고서 전기 고문(!)을 해대는 시기가 바로 크리스마스 시즌이 아니던가. 나무 고문과 예수 탄생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예수는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들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복음)라고 말했다. 박해받는 가장 낮은 존재들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 아주 컸던 사람, 짧은 한 생을 던져서 자기 시대의 부조리에 저항하고 고뇌했던 이천 년 전의 혁명가 예수를 떠올리면서 오늘은 <언더커버 리포트>(귄터 발라프, 프로네시스, 2010)란 책을 소개하려 한다.
흑인, 노숙인, 비정규직의 눈으로 독일사회를 고발하다
▲ 독일의 잠입취재 기자 귄터 발라프가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암행 참여관찰 방식으로 독일 사회를 취재한 일곱 건의 르포르타주를 엮은<언더커버 리포트>(프로네시스, 2010)
이 책은 독일의 잠입취재 기자 귄터 발라프가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암행 참여관찰 방식으로 독일 사회를 취재한 일곱 건의 르포르타주를 엮은 놀랍고, 서글프고, 기가 막힌 보고서이다. ‘세계화가 만들어낸 멋진 신세계 탐험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근래에 나온 어떤 베스트셀러 소설책보다도 잘 쓰인 책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나는 시간을 잊은 듯이 몰입해서 읽었고, 다 읽고 나서도 며칠 동안을 이 책 생각을 많이 했다.
40년 넘게 독일 사회의 가장 어두운 이면들을 고발해온 귄터 발라프는 독일에서는 주류사회와 가장 많은 갈등을 빚는 열정적인 르포 기자라고 한다. 사회 부조리를 본능적으로 감지해내고 밝혀내는 능력과 남다른 용기가 있어 보이는 그는 스스로를 “자유주의자이자 아나키스트이고, 사회 속에서의 훼방꾼”이라고 부른다. 책에는 그가 애를 써가서 변장한 채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찍은 사진들도 간간이 나와 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도움으로 거의 완벽한 흑인으로 위장한 사진 몇 장도 있어서 나는 그걸 오래오래 쳐다보았다.
암행 참여관찰 방식이란 어떤 삶을 가능한 철저하게 직접 살아내면서 자신이 겪은 현실을 값싼 감상주의 없이 밝혀내는 방식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단순한 체험기 이상의 진정성과 깊이가 있다. 백인인 발라프는 흑인으로 변장해서 온갖 굴욕적인 경험을 하고, 한 겨울에 노숙자로, 콜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로, 대형마트에 싸구려 빵을 납품하는 사업체에 임시 고용된 노동자의 삶을 그대로 살아낸다. 그리고 전혀 호들갑피우지 않으면서 그곳의 부조리와 부당함과 모욕과 처연함을 지극히 담담하게 글로 그려낸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100년 전에 빈민가로 들어가 살면서 글을 썼던 잭 런던이란 작가와 80년 전의 조지 오웰을 떠올렸다. 그리고 오웰 이상으로 귄터 발라프가 글을 참 잘 쓴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 ‘멋진 신세계’에서 패배한 사람들의 역할을 맡기로 결정했을 때 나는 어떠한 일들이 다가오게 될지 알지 못했다. 정신적인 압박이 지속적으로 일상화된 콜센터에서 판매 사기꾼이 된다거나, 대기업들이 납품업체들의 노동조건을 다시 초기 자본주의 시대 수준으로 되돌려버렸다는 사실을 생각조차 못했다. 그리고 일상적인 인종차별을 내가 몸소 체험으로 느끼기 전까지는 이것이 우리 세계에 얼마나 깊고 넓게 퍼져 있는지 잘 알지 못했다.”
누가 뽑았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의 목차들은 광고 카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상징적이다. 1. 피부색이 달라서 죄송합니다-유럽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 2. 세상에서 밀려난 이들의 삶-거리의 노숙자 되기 3. 시도 때도 없이 전화벨이 울리고-놀라운 텔레마케팅의 세계 4. 그 빵은 제발 먹지 마세요-대형 마트 납품업체의 비밀 5. 아름답고 행복한 커피 세상-스타벅스를 말한다 6. 거꾸로 달리는 독일철도-누구를 위한 민영화인가 7. 노조 없는 세상 만들기-무서운 변호사들
노숙자로 살아가는 챕터를 읽을 때는 올해 우연히 알게 된 한 청년을 떠올렸다. 그 청년은 꽤 열심히 공부해서 경쟁률 극심한 공무원 필기시험에는 합격했지만 면접에서 일부러(?) 떨어져 버렸다고 한다. 그의 내면에서 뭔가가 저항한 모양이다. 그리하여 주변의 눈총을 받게 된 그는 혼자서 지리산 종주도 하고, 어머니와 함께 열심히 김장도 했다고 내게 편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그 다음 편지에서는 서울역 등에서 며칠 노숙자로 살아볼 계획이라고 써 보냈다. 그 청년의 마음속에서 어떤 것들이 솟아오르고 가라앉을지 궁금하다.
다시 2009년 예순 여덟의 나이에 이 책을 낸 발라프 이야기. “40여 년 전에 내가 이런 일을 시작했을 때는 나뿐만이 아니라 아마도 다수의 사람들이 더욱 인간적이고 더욱 정의로운 방향으로 진보하는 세상이 올 것을 기대했다. 나는 여전히 그런 기대를 갖고서 책이나 기사를 통해 발언하고 있지만, 회의가 점점 커지는 건 사실이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너무 많은 후퇴를 경험했다. 불평등은 점점 더 심화되고 있고, 삶의 형편이 더 인간적으로 된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이다.”
“올더스 헉슬리가 1932년 세계 대공황 초기에 발표한 <멋진 신세계>에서는 ‘알파 플러스 인간’들이 권력을 갖고 나머지 사회 조직원들은 하나의 집단으로 이루어진 계급사회를 그리고 있다. 이 묵시론적인 사회에서는 소비와 쾌락에 대한 강박이 사람들의 개성, 인지 방법, 그리고 저항력을 말살시키는 사슬이다. 오늘날 역시 ‘쾌락사회’와 ‘행복한 사회’에 대한 강박이 너무 깊이 자리 잡고 있어서 미래가 ‘표준에 맞는 인간들’만의 소유가 될 수 있겠다는 두려움이 생길 정도이다.”
“이 여정에서 나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그것을 위해 싸우는 용기를 보여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힘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 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가장 밑바닥’에 떨어질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용기 있는 사람들의 수는 여전히 너무 적다.”
독일 사회는 ‘터키인 알리’를 어떻게 차별했나
▲ 1985년에 출간되어 300만부 이상 판매되며 독일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 것 없이>(귄터 발라프, 알마, 2012).
내친 김에 귄터 발라프의 다른 책도 구해보기로 했다.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그가 별로 알려지지가 않았는지 발라프의 다른 책은 딱 한권 번역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것도 아주 최근에 번역되어 나온 책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 것 없이>(귄터 발라프, 알마, 2012). 사실 이 책은 독일에서는 1985년에 출간되어 300만부 이상이 판매되었으며, 계속 재출간되는 스테디셀러이자 30여 개 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책이라고 한다.
이 한권의 책이 인간착취에 저항하는 아주 효과적인 무기가 되었다니 놀랍다. 그러니까 나름 큰 영향력을 행사해서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켰다는 이야기겠다. 독일 사회에서 많은 변화를 이끌어낸 책이란다. 정치적 파장도 크게 불러일으켰으며, 발라프는 맥도널드나 대형 제철소나 인신매매 비슷한 용역업체로부터 중상모략과 가택수색과 비열한 소송에 수없이 휘말렸고, 통일 이후에는 구동독의 스파이노릇을 했다는 모함까지 받을 정도였다. 우리한테도 아주 친숙한 버전인 빨갱이 사냥이겠다. 물론 대부분의 소송에서 발라프는 승리했다.
어쨌든 한국에서는 이 책이 꽤나 늦게 번역된 셈이다. 누가 나더러 올해 가장 깊은 인상을 준 책 두 권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한 권으로는 이 책을 꼽을 생각이다. 그만큼 이 책은 나한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유명하다는 책들보다 훨씬 수준이 있었으며 가슴 저리지만 풍요로운 책이었다. 지금 시대에도 이토록 진솔하고 끈기 있고 용기가 있으면서 상상력 풍부한 저널리스트가 있다는 사실에 나는 깊이 고무되었고 감탄했다. 다른 한 권은 이 연재를 시작할 때 소개한 <체르노빌의 목소리>(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새잎)를 고를 것 같다.
27년 전의 이야기지만 전혀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의 현실 같다. 발라프는 거의 1년 동안 터키인 알리로 위장해서 온갖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끼면서도 어떻게든 터키인으로 살아가려고 애를 쓴다. 읽으면서 가슴 아픈 부분이 너무 많았다. 알리는 용역 노동자로 고용되어서 현대판 노예생활을 직접 경험한다. 독일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거의 물건처럼 다루어지고 소모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매일 멸시와 적대감과 증오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일도 너무나 지저분하고 힘들다. 건강은 물론이고 마지막 진까지 빨아먹을 정도이니까.
아, 충격적인 보고들이 참 많았다. 터키인 알리에게 세례를 주지 않기 위해 냉소하고 변명하며 쫒아내는 독일인 사제들의 모습, 대기업들에 비정규 노동력을 공급하는 용역업체들의 무시무시한 외국인 혐오, 제약업체들을 위한 실험용 인간(실험용 생쥐가 아니다!)으로 터키인, 인도네시아인, 라틴아메리카나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주로 쓰인다는 것. 그리고 핵발전소에 고장이 생겼을 때나 부품 수리나 교체를 할 때 투입되는 임시 용역 노동자들 이야기도 크게 와 닿았다. 지금 바로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핵발전소를 가동하는 모든 나라에는 이런 떠돌이 임시노동자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10만 명 이상이라는 이야기. 우리나라 사정은 어떨까. 한국에도 지금 네팔이나 중국 등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들어와 있는 상태이다.
하여간 이 책이 나온 뒤의 여러 가지 놀라운 반응들과 영향과 변화들, 소송 사건들, 가톨릭교회나 독자들 그리고 외국에서의 반응들, 다큐멘터리로 기록된 영화,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과 인터뷰 등이 실린 책 뒤의 두툼한 부록들도 꽤나 흥미로웠다.
미국 사회를 꿰뚫은 ‘노동의 배신’에 대한 아쉬움
내가 이 책들을 조금 심각한 얼굴로 읽고 있자 곁에서 작은 아이가 물었다.
“무슨 책인데 그래?”
“응, 좀 쓰라린 책이네. 너도 한번 읽어볼래?”
그리하여 조금씩 들춰보며 몇 부분을 읽던 작은 아이는 “어휴, 독일은 원자력 발전도 그만 한다고 결정했잖아. 그래서 괜찮은 나라인줄 알았는데, 아닌 거야? 유색 인종 혐오증이 정말로 그렇게 심한 거야? <언더커버 리포트>에 나온 ‘피부색이 달라서 죄송합니다’ 부분 읽을 때 난 진짜 슬프더라. 우와, 실망했어.”라고 말했다.
“그렇게 단순히 볼 문제는 아닐 거야.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는 많은 나라들이 대부분 이런 문제들을 겪고 있을 것 같은데. 우리나라도 그렇잖아. 미국은 아마 더 심할 걸. 증오와 폭력의 문화가 굉장히 심한 것 같더라.”
▲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저임금 노동자의 삶을 잠입 취재하여 쓴 워킹푸어 생존기 <노동의 배신>
그러고 보니 미국 상황을 쓴 비슷한 책으로는 <노동의 배신>(바버라 에런라이크, 부키, 2012)이 있다. 원래는 2001년에 미국에서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다. 워킹푸어 생존기로 저임금 노동자의 삶을 잠입 취재한 글이니까 귄터 발라프 책과 상당히 비슷한 종류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1985년에 나온 발라프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 것 없이> 책을 읽었을 지도 모른다.) 아주 잘 쓴 글이고 읽기 흥미로운 책이었다.
하지만 나는 한국 시인이 멋지게 쓴 추천사만큼 이 책이 ‘무섭도록 예리하고 매혹적인 선동’이란 생각은 안 들었다. 어쩌면 내가 귄터 발라프 책을 먼저 읽어버려서 그런 모양이다. 에런라이크의 글이 분명 재미나고 솔직하고 유머도 있으며, 수입과 지출을 맞추려고 고군분투하는 저임금 노동자의 삶을 작가가 충실히 살아보려고 애를 썼다는 점은 인정한다. 근데 뭔가가 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그게 뭘까?
그녀는 미국 경제 호황기인 2000년 전후에 식당 웨이트리스, 청소부, 요양원 보조원, 월마트 판매 직원으로 취업해서, 과연 저임금 노동일을 해서 그 임금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지를 실험한다. 그리고 누가 봐도 상당히 열심히 일을 했다. 눈에 띄는 몇 구절을 인용해보자.
“저임금 일자리에 지원하는 일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구직자는 자신의 에너지, 미소, 진실되거나 허위인 이력을 한데 모아서 그걸 크게 흥미로워하지 않을 고용주에게 선보인다.”
유머도 있다. “내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판타지 속에서 나는 청소 용역 회사에 고용돼서 일하는 게 아니라 가장 천대받는 일을 거의 공짜로 기꺼이 봉헌하는 신비로운 비밀 결사에 가입한 셈이었다. 그래서 복종하고 수고함으로써 은혜 받을 기회를 얻게 된 것에 오히려 감사했다.”
현실을 직시하는 날카로운 눈도 있다. “관리자의 인정을 받은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 내가 보기에 동료들의 ‘애정 결핍’은 만성적인 박탈감 때문에 생긴 듯했다. (...) 일은 우리가 사회에서 ‘왕따’로 전락하지 않도록 구원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 자체가 바로 왕따의 일로 심지어는 역겹기까지 한 일이었다. 이들은 신분제가 존재하지 않는 민주 사회의 불가촉천민들이었다.”
그렇구나.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찜찜했던 것은 이 책에 미묘하게 드러난 계층의식 때문인 것 같다. 귄터 발라프의 책들을 읽을 때에는 그런 생각이 전혀 안 들었고 글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성공했고 자신만만한 중상류층 지식인 여성 작가의 자기애랄까 자의식을 가끔 느낄 때가 있었다. 내가 이러는 건 그냥 책 쓰기 위한 잠시의 프로젝트라는 것, 나는 너희와 결코 같은 계급일 수 없다는 것, 난 곧 본래의 내 자리로 복귀할 거라는 암시가 있었던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자기가 우위에 서서 바라볼 수 있는 이런 시선 때문에 이 책을 좋아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약간 불친절한 듯 무뚝뚝하게 굴면서 자기애라든가 자기 계급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는 귄터 발라프가 훨씬 신뢰가 갔다.
한국사회 속 ‘벼랑에 선 사람들’은 지금
▲ 세명대 저널리즘 대학원 교수와 학생들이 발로 뛰어가며 기성 언론들이 다루지 못한 빈곤 문제를 주제별로 조명한 르포 <벼랑에 선 사람들>(제정임과 단비뉴스 취재팀, 오월의 봄, 2012)
마지막 책으로는 한국 상황이다. <벼랑에 선 사람들>(제정임과 단비뉴스 취재팀, 오월의 봄, 2012)이다. ‘서럽고 눈물 나는 우리 시대 가장 작은 사람들의 삶의 기록’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세명대 저널리즘 대학원의 교수와 학생들이 발로 뛰어가며 기성 언론들이 다루지 못한 빈곤 문제를 주제별로 조명한 르포 기사들이다.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인 근로 빈곤의 현장, 빈곤층의 주거 현실, 애 키우기 전쟁, 의료비 문제, 부채에 시달리는 인생들을 세심하게 기사화했다. 며칠씩 노동 현장에 들어가 잠입취재를 한 것도 있고, 밀착 취재나 심층 취재, 자료 조사를 충실히 한 것들도 있다. 모두 미래에 저널리스트가 되고자 하는 젊은 대학원생들이 열심히 고민하고 공부하며 쓴 글이라서 열정과 현장성이 돋보인다. 각 장마다 기자들끼리 대안 좌담이나 정책 제시까지 해놓고 있어서 애를 많이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충은 짐작했지만 이 나라 가난한 이들의 상황도 참 만만치 않구나 싶다. 특히 쪽방, 만화방, 잠자는 다방을 전전하다가 노숙자가 되어가는 도시 빈민들의 주거 문제가 심각해 보인다. 그리고 등록금으로 대출받은 빚 때문에 창창한 젊음을 저당 잡히고서 우울과 좌절에 빠진 한국 청년들 이야기는 부모로서 읽기 괴로웠다. 다른 길은 없는 건지 궁금하다. 한국이 복지 사회가 되면 이들이 구원받을 수 있으려나? (글쎄요…) 그런데 세계 어디나 도시에서 사는 삶은 이렇듯 비슷한 건가? 한쪽은 중상류층의 극성스런 사치와 허영이 부글부글하고 한쪽은 온갖 모욕을 감수하며 벼랑 끝에서 위태롭게 생존을 줄다리기한다.
여기까지 쓰자. 오늘은 성탄절이니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 것 없이 살아가는 인간들을 기억하고 싶었다. 내 방식의 크리스마스 특집인 셈이다. 세계화된 이 ‘멋들어진 신세계’에서 자기 암시, 자기 최면, 자기 복종을 만들어내다가 결국에는 청년들이 절망과 좌절의 길을 가는 것 말고 다른 길은 없는 지 고민하고 싶었다. 열심히 노동하며 사는 이들이 작은 공간에서나마 따스한 밥을 먹고 두 다리 뻗고 편히 잠잘 수는 있어야 하지 않나. 그렇지 않은 사회는 뭔가가 잘못 돼도 한참 잘못된 거다. (도은)
<언더커버 리포트> 귄터 발라프, 프로네시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 것 없이> 귄터 발라프, 알마
<노동의 배신> 바버라 에렌라이크, 부키
<벼랑에 선 사람들> 제정임과 단비뉴스취재팀, 오월의 봄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독립언론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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