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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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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와 건강]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 여경 활동가 인터뷰  

 
*여성이 건강할 권리, 여성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위해 ‘건강’을 바라보는 여성주의 시각이 필요합니다. <일다>는 “젠더와 건강”이라는 생소한 분야를 개척해가는 활동가, 연구자, 의료인을 만나, 이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는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필자 박은지님은 사회건강연구소 연구원입니다.
 
산부인과 진료문화, 여성의 시선으로 살펴보면
 
‘산부인과’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어색한 대기실 분위기, 성경험 여부를 묻는 질문, 다리 벌리고 앉는 의자 등 치과나 내과를 떠올릴 때 느껴지는 그런 두려움과는 또 다른 꺼림칙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올 10월,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은 ‘혹시, 산부인과 가봤어?’라는 소책자를 발행했다. ‘산부인과’라고 하면 떠오르는 단어부터 그 안에서의 경험과 여성 질환에 대한 질문과 답변까지 담고 있는 이 책은 <2012 ‘산부인과’ 바꾸기 프로젝트_여자, 몸, 춤추다> 사업의 일환으로 5월부터 7월까지 실시한 ‘산부인과 이용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제작된 것이다.
 
2012년이 끝나가던 날, 민우회 여성건강팀 여경 활동가를 만나 ‘산부인과 바꾸기 프로젝트’를 비롯한 올 한 해 주요했던 여성건강 이슈와 여성건강팀의 내년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성들의 낙태이야기 속 산부인과 경험에 주목하다

▲ 민우회 여성건강팀 여경 활동가   ©박은지  
 
작년에도 민우회에서는 <당신이 생각하는 낙태는 없다>라는 사례집을 발간했다. 낙태 경험이 있는 20∼40대 여성 22명의 심층 인터뷰를 정리한 이 사례집이 나오기까지 여성건강팀의 치열한 고민과 성찰이 있었다.
 
몇 년 전까지도 관련 이슈가 발생했을 때 그것에 대한 대응을 하기에 바빴던 측면이 많았던 여성건강팀은 2010년 ‘낙태고발정국’을 거치면서 대응을 넘어 이슈를 만들어가는 기획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래서 그 다음 해인 2011년에는 ‘낙태, 여성의 경험으로 세상과 공명하다’를 주제로 캠페인을 진행하고, 사례집도 발간했다. 이 사례집의 내용 중에는 인터뷰에 참여한 여성들이 산부인과에서 겪은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것도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낙태는 없다> 사례집 목차 중 하나가 산부인과에서 겪은 이야기들을 묶어놓은 것이에요. 그 내용을 보면 산부인과라는 공간이 그곳을 이용하는 여성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요. 흔히 ‘여성건강’이라고 했을 때 ‘산부인과’를 떠올리는데 이 공간이 가진 이미지는 뭔가 가기 꺼려지는, 싫은 느낌이거든요.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지, 그 공간 안에서 여성의 몸이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 한 번 정리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이전에 비슷한 주제로 이미 조사한 자료는 없는지 찾아봤지만 딱히 없었다고 한다.

“논문이나 전문자료도 공간학적으로 산부인과 인테리어를 어떻게 꾸미면 좋은지에 대한 얘기만 많더라고요. 그래서 ‘언제 처음 산부인과를 이용했는지’, ‘왜 갔었는지’, ‘혹시 망설임은 없었는지’, ‘의사의 설명은 어땠는지’ 등 산부인과 이용에 관한 전반적인 것들을 물어보는 설문지를 만들었어요.”
 
500부 정도만 모아보자고 했던 설문지는 목표치의 두 배가 넘게 모아졌다.
 
“설문지가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최종적으로 1067부가 추려졌어요. 다들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산부인과에 다녀온 경험은 ‘감기 때문에 병원 갔다 왔다’고 얘기하는 것과는 또 다르잖아요. 많은 분들이 자신의 경험을 공식적인 언어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여성들이 거리감 느끼지 않을 진료문화 만들려면 

▲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이 발행한 소책자 ‘혹시, 산부인과 가봤어?'. ‘산부인과’라고 하면 떠오르는 단어부터 그 안에서의 경험과 여성 질환에 대한 질문과 답변까지 담고 있다.  © 민우회 
 
<2012 ‘산부인과’ 바꾸기 프로젝트_여자, 몸, 춤추다>는 산부인과와 여성들의 사이를 멀어지게 한 물리적이거나 심리적인 요인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지식정보차원’, ‘사회경제적 차원’, ‘사회문화적 차원’ 등 세 가지 차원에서의 접근성을 살펴보았다.
 
“출산하지 않은 여성, 성소수자, 비혼여성, 십대 여성은 사회문화적인 접근성이 떨어지는데 이런 그룹들이 접근하기 쉬운 진료문화를 만들어가야 된다는 이야기와 함께 산부인과는 출산하는 여성들만 가는 곳이 아니고, 또 아니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죠.
 
또 실태조사 결과를 보니 산부인과와의 거리감은 사실 성경험 여부보다는 결혼 여부가 더 중요한 요소로 나타나더라고요. 즉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섹스를 하는 존재’이냐, 아니냐에 따라 거리감에 차이가 있었어요.”
 
사업이 한창 진행되던 6월에는 식약청의 피임약 재분류 안 발표라는 큰 사건도 터졌다.
 
“갑자기 사전 피임약이 전문의약품이 되고, 사후 피임약은 일반의약품이 된다니, 처음에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어요. 마치 거래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죠. 이 발표가 있었을 때 마침 ‘산부인과 바꾸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을 때라서 서로 연결이 많이 됐어요.
 
당시 사전 피임약을 전문의약품으로 전환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측에서 ‘의사가 환자와 직접 만나서 그 환자의 몸에 맞는 적당한 피임법을 찾아주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어요. 우리는 과연 ‘적당한 피임법’이라는 것을 마음 놓고 상담할 수 있는 진료문화인지 되물었고요. 이런 식으로 이슈가 맞아떨어졌어요.”
 
‘성인지적 관점 없이 여성건강 문제 말할 수 없다’
 
민우회 여성건강팀은 이제 ‘몸’과 ‘정신’을 함께 이야기하는 2013년을 준비하고 있다. ‘성형’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고.
 
“내년에는 ‘내 몸’, ‘내 몸의 시간’, ‘나와 몸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담은 ‘여성의 몸’과 관련한 사업을 계획하고 있어요. 또 ‘정신적, 심리적 건강 강좌’도 기획 중이고요.”
 
여성건강 이슈는 의학적인 전문성만으로는 충분히 비판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남성용 경구 피임약이 개발된 지 오래이나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 여성에게만 피임을 강요하는 것과 같은 이상한 현실을 의학용어로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보건·의학이 풀어낼 수 없는 건강이슈를 성인지적 관점에서 뒤집어보고, 날카롭게 찌르며, 지속적으로 정책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민우회 여성건강팀의 활동에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박은지)

* <혹시, 산부인과 가봤어?>는 민우회에 요청하면 받을 수 있다. 재인쇄를 위한 후원금(배송비 포함) 5000원을 받고 있다.  [문의] 서울특별시 마포구 성산동 249-10번지 시민공간 <나루> 3층 / 전화: 02-737-5763 / 이메일: minwoo@womenlink.or.kr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독립언론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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