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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에게 최소한 보장해야 할 것들
[여성주의 저널 일다] 아야
평소 몸의 변화에 대해 민감한 편인 나는 지난 여름, 질 주위가 가렵고 따가워져서 산부인과에 가서 검진을 받아보기로 했다.
여름철에는 고온 다습한 날씨로 몸에 면역력이 떨어지기 쉽고, 그래서 피부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특히 여성들은 질염(성인 여성의 75%가 경험한다고 함)으로 고생하기 쉽다. 그러나 질염의 경우는 사회통념상 감기처럼 증상이나 치료법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쉽게 이야기나누기 어렵고, 설사 질염으로 의심되는 증상이 나타나도 산부인과에 찾아가기를 꺼리게 된다.
다음은 산부인과 두 곳을 방문하면서 겪은 일화다.
며칠 동안 질이 가렵고 따가웠는데, 그러다 말겠지 하다가 어느 날은 잠을 못 이룰 정도가 되어서 손거울로 질 주위를 살펴보았다. 질 주위는 빨갛게 부었고, 자세히 살펴보니 평소와 다른 모습이라고 느껴져서 산부인과에 가보기로 했다.
다음 날 근처 산부인과를 찾아갔는데, 진료를 받으며 괜히 이런 곳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의사이기 때문에 20대 미혼여성인 나를 더 잘 배려해 줄 거라고 기대했지만, 막상 그 의사에게선 배려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런 의사에게 더 이상 진료를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구하기 시작했다. 또 인터넷을 뒤져서 내가 질염을 앓고 있다는 사실과, 어떻게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더불어 편안하게 진료 받을 곳을 찾아보았다.
두 번째로 간 병원에서는 우선 진료를 받기 전에 상담실에서 간호사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렇게 간호사와 먼저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나는 다른 병원에서 잘 설명해 주지 않아서 이 곳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아마도 의사와 바로 대면했다면 그런 얘기는 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만난 의사도 진료 전후로 얘기 나눌 때는 온화한 표정으로 내 긴장을 풀어주었고, 진료할 때는 조심스럽게 대해주었다.
의사는 요즘처럼 습한 날씨나 (다른 질병들처럼) 몸의 면역력이 떨어지면 질염이 쉽게 생길 수 있는데,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안심시켜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 한 번 더 진료를 받는 것으로 질염 증상이 완화되었는데, 의사는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떻게 해야 질염을 예방할 수 있는지, 또 질염이 생길 수도 있지만 지금처럼 진료 받으면 괜찮을 거라는 등의 얘기를 해주었다.
평소 자신의 몸에 관심을 가지고 용기를 내어 산부인과에 방문을 한다고 하더라도, 의사나 간호사가 환자를 배려해 주지 않거나 환자의 알 권리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면, 몸에 이상 증상을 느껴도 다시 병원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의사들은 섣불리 자가진단 하지 말고 병원에 방문하여 전문가인 의사에게 진찰을 받으라고 한다. 그러나 정작 5분도 채 안 걸리는 진료시간 동안 환자 개개인에게 질환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줄 수 있는지, 과연 적절한 처방을 내릴 수 있는지도 의문스럽다.
이러한 문제제기를 하면 의사들은 시스템을 탓하며 어쩔 수 없다고 답변하곤 한다. 그러나 전문가 집단으로서 의사들 스스로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닐까. 일반 시민을 상대로 진행하는 질병에 대한 계몽적 캠페인만큼이나 의사와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도 함께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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