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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성 충전

내가 스페인 와인에 빠진 이유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2. 9. 16. 07:30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여라의 와이너리>(winery) 10. 내가 스페인 와인에 빠진 이유① 

 
작년 늦여름 이 와인칼럼을 기획하면서 여행을 모티브로 삼았고, 스페인에 대해서는 특별히 두 꼭지를 넣기로 마음먹었다. 스페인에 다시 가길 늘 꿈꾸고 있긴 했지만 기획한 글을 막상 쓰게 된 시점에 스페인에 있게 되리라고 상상도 못했다. 비스듬히 다가온 기회의 뒤꿈치에 와락 달려들었다. 런던에 있는 동안 프랑스 와인지역으로 여행 가려고 파리로 가는 기차표를 찾고 있었는데 스페인으로 가는 훨씬 싼 비행기 표를 발견해버렸다!
 
스페인, 나의 스페인!

▲ 가슴에 새긴 리오하(Rioja)의 모습     © 여라
 
원래의 계획을 버려야 했지만 ‘나의 스페인’에 간다니 앞뒤 깊이 생각지도 않고 바로 마드리드 행 비행기 표를 질렀다. 이번 여행에선 처음 가보는 지역을 가기로 했고, 마침 성수기 전이어서 한가하고 여행비용도 비교적 저렴했다.
 
주어진 딱 1주일 여행기간 동안 무리하지 않으려고 이동거리를 짧게 잡았다. 지난번 여행에서 한쪽만 갔던 리오하(Rioja) 와인지역의 다른 쪽도 가고, 궁금했던 리베라 델 두에로(Ribera del Duero) 와인지역도 가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취향을 아는 남들이 ‘강추’했던 살라망카(Salamanca)에도 갈 수 있었다. 이번 여행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이전 글에서 스페인에 대한 나의 로망을 밝힌 적이 있다. 내가 어른이 되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캘리포니아는 도시와 길, 사람들 이름에 스페인이 역사의 잔재로 남아 일상 속에 들어와 있다. 그러니 스페인에 대한 친근한 느낌도 생겼겠지만, 그렇다고 캘리포니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스페인에 로망을 갖는 것은 아니다.
 
처음엔 숱한 라디오 채널에서 듣는 스페인말로 된 노래들이 우리 가요와 느낌이 비슷해 좋았고, 집근처 타파스(마치 우리 밥상에 반찬처럼 작은 접시에 내주는 사소한 안주) 집에 드나들며 먹게 된 스페인식 음식이 좋았고-나는 복도 많아라, 동네에 있는 스페인 와인(+음식/부엌도구) 전문점에 뻑하면 드나들며 알게 되는 그들의 와인 세계가 좋았다.
 
그리고 스페인에 가면 잘 놀겠다는 일념에 스페인어를 두 학기 배웠다. 페루에서 오신 교수님이 수업시간마다 다양한 라틴 노래와 춤까지 추게 했는데도 열심히 했다. 그러고 배운 스페인어를 드디어 스페인 현지에 가서 더듬더듬하며 돌아다니는데, 평소의 나답지 않게 질문도 마구 던지고, 모르는 사람이 내게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떠들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몰랐던 나를 끄집어내는 스페인이 좋은 건 아닐까 싶다.
 
신세계와 구세계가 공존하는 스페인 와인
 
전 세계에서 와인을 생산하는 지역은 대개 적도 남북으로 위도 30도와 50도 사이에 존재한다. 포도를 생산하는데 적합한 기후 때문이다. 처음에 그리스, 이탈리아 등 지중해 연안을 중심으로 시작한 와인생산은 로마제국의 세력 확장에 따라 유럽 전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다시 유럽 국가들이 식민지에 그리스도교 포교 등을 위해 현지에서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이른바 ‘신세계’(new world) 와인의 시작이다.
 
이 개념은 상대적으로 유럽을 ‘구세계’(old world)로 이해하게 만든다. 역사적인 이유로 생겨난 이 구분은 지금도 유효하지만, 서로 다른 와인스타일로 확실히 구별되던 과거에 비해선 이 둘을 가르는 선이 더 이상 그리 선명하지는 않다.
 
구세계는 오랜 기간 이어져온 포도경작과 와인제조 경험을 기반으로 토양과 지형에 대한 연구도 잘 되어있어 가장 적합한 포도종을 키우고 현지 전통음식과 어울리는 와인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반면, 아직도 어느 정도는 미지의 세계인 신세계는 말 그대로 알 수 없는 일이 다분히 남아있다. 과학적인 연구와 현대적인 시설로 세월의 간극을 따라잡고 있고, 여전히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
 
특이하게도 이 두 가지 세계가 애매하게 공존하고 있는 곳도 있다. 예를 들면, 구세계이면서도 새로운 시도와 투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스페인과 신세계이면서도 긴 와인역사를 지닌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스페인와인은 와인종주국이라 불리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비해서 역사가 결코 짧지 않지만 생산되는 와인 대부분이 자국 내에서 소비되어 외국에서 스페인와인을 접하고 평가받을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한다. 영국이 사랑하는 스페인의 쉐리 와인을 제외하곤 말이다. 그러다가 유럽의 다른 와인지역이 19세기 말 대대적인 병충해피해를 받고 와인생산이 어려워졌을 때, 스페인은 지리적으로는 피레네산맥으로 막혀있어서 그 영향을 뒤늦게야 받았다. 특히 프랑스 지역의 와인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넘어온 그곳 와인제조업자들의 기술을 전수받으면서 프랑스 국경과 가까운 리오하와 카탈루냐(Cataluña) 지역 와인이 급격한 발전을 한다.
 
주요 와인 산지, 바르셀로나와 빌바오의 매력

▲빌바오 시를 가로지르는 강변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
 
스페인으로 여행하는 많은 이들이 가장 인상 깊은 곳으로 꼽는 도시는 바르셀로나다. 그곳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빤한 표현이 그냥 저절로 나온다. 단순히 건축가라고만 하기에는 무색한 가우디의 건물들을 비롯하여 모데르니스타 건축양식이 가득한 바르셀로나는 말 그대로 조상 잘 둔 덕에 대대로 흥하고 있는 것 같다.
 
스페인 내 다른 지역과는 달리 반골기질이 줄줄(?) 흘러넘치는 카탈루냐 지방의 수도인 바르셀로나는 어린 시절 피카소를 키워준 땅이면서, 또한 스페인의 주요 와인생산지역으로도 유명하다. 리오하 와인지역과 함께 스페인 최고와인지역으로 꼽히는 프리오라트(Priorat)도 바르셀로나 외곽에 있고, 스페인 재래품종 포도를 사용해서 전통방식(나중에 시판될 와인병이 스파클링와인의 기포를 만드는 두 번째 발효통이 되는)으로 만들어지는 까바(Cava)로 유명한 페네데스(Penedes) 역시 이 지역에 있다.
 
그나마 유명관광지라 영어도 곧잘 통하던 바르셀로나에서 바스크지역(바스크 언어를 사용하는 고유의 바스크 민족이 전통적으로 살아온 지역. 스페인 국경과 프랑스 국경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보니 바스크 민족과 스페인,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많은 분쟁을 겪어왔다)인 빌바오(스페인어: Bilbao, 바스크어: Bilbo 빌보)에 가니 그제야 여기 ‘외국’이구나, 하는 느낌이 확 왔다. 우중충한 공업도시를 문화도시로 변신시키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운 구겐하임 미술관이 빌바오에 있다. 그리고 바스크 지역의 슬픈 현대사를 안고 있는 게르니카, 스페인을 세계음식지도에 당당히 올린 아름다운 해변도시 산세바스티안, 리오하 와인지역도 빌바오에서 쉽게 갈 수 있다.
 
내가 처음 리오하 지역에 갔을 땐 마침 포도수확이 한창인 계절이었다. 덕분에 동네에 들어서면 포도주 만드는 냄새가 물씬 풍겼고, 단풍이 들어가는 포도밭도 잊을 수 없는 장면으로 마음속에 새겼다. 유명하고 큰 와이너리들도 많지만, 마을로 들어가 걸어 다니다 보면 골목골목 주택가에 자그마한 와이너리도 많다. 작업이 바쁘지 않을 땐 ‘친절한’ 스페인 남성들이 자기네 와이너리 구경도 시켜주고 제조과정 중인 와인 맛도 보게 해주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스페인 와인을 많이 마시다 스페인에 가서인지, 참으로 이상하게도 처음 스페인에 갔을 때에 낯설다는 느낌은 없었다. 왜인지 이 땅에서 난 와인이 이미 내 몸속에 흐르고 있는 피가 되었다는 착각이랄까. 물론, 말이 시원하게 안통하고, 가끔 문화차이로 당황스러울 때에는 그런 착각이 여지없이 깨졌지만 말이다. 그래도 재작년 스페인 여행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길을 나설 수 있고, 즐길 수 있고, 무엇보다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매일매일 감사드리는 여행이어서 각별했다. 아마도 오랜 캘리포니아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이사 오기 전이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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