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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 말하다

되어감의 운명, 되어봄의 신비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2. 9. 1. 20:30

되어감의 운명, 되어봄의 신비 
자야, 귀촌을 이야기하다: 25번째 이야기(끝)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낮이면 종종, 앞산에서 울어대는 고즈넉한 뻐꾸기 소리를 들으며 선잠이 들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잠든 기억은 없어도 아득한 꿈 저 너머에서 해일처럼 몰려오는 매미 소리에 깨어 일어나기 일쑤다.
 
그때마다 채 잠이 가시지 않은 혼몽한 눈을 들어 마당을 내다보면, 뭔가 더 깊고 청아해진 햇살이 거기 있다. 그리고 농익은 포도 향에 취해 비틀거리는 벌들과, 허공에 어지러이 금을 그어대는 잠자리들. 이 모든 것이 내게 가을이 오고 있다고 말해 주는 것만 같다. 여름은 아직 한창이어서, 잠시 동안의 낮잠에도 베갯잇이 흥건히 젖어 있건만.
 
되어감, 형상 있는 것들의 운명
 
위의 문장을 써놓고는 게으름에 잠시 미뤄두었다가 다시 글을 이으려 하니, 어느새 계절의 걸음이 눈에 띄게 빨라진 걸 느끼겠다. 하긴, 그때는 입추를 갓 넘긴 시기였고 지금은 이미 처서가 지나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더욱이 이곳은 도시에서보다 반 보 정도는 더 빠르게 자연의 변화가 감지되는 시골 마을이 아닌가.
 
파랗기만 하던 논이 이삭 팬 벼들로 점점 누렇게 물들어 가고, 집집마다 마당에선 붉은 고추가 매운 내를 풍기며 말라가는 요즘, 사람들은 텃밭에 심었던 옥수수며 고추며 가지 대를 뽑고 그 자리에 잘 삭은 퇴비를 두둑하게 깔아주느라 바쁘다. 아마도 구월 중순께면 검붉은 그 흙을 뚫고 무 싹이 올라오겠지. 지금 한창 장에 나오고 있는 검지만한 김장배추 모종도 그때쯤은 어른 손바닥만큼 자라 무성해져 있으리라.
 
그러고 보면 여름이 아무리 더워도, 그래서 많은 이들이 어서 빨리 이 여름이 가기를 고대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알아서 가을이 되어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는 가을이 너무 좋아서 이대로 영원히 머물렀으면 하고 바랄 테지만, 그 또한 언젠가는 겨울이 되어간다.
 
형상을 띠고 나타난 탓에 외견상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곳 지구에서는, 사실 모든 것이 무언가로 '되어가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운명을 다른 말로 '변화'라고 하면 적당하려나?
 
우리 인간도 예외는 아니어서, 엄마의 몸을 빌려 이 세상에 오는 순간부터 변화무쌍한 되어감의 운명을 경험하기 마련이다. 가장 일반적으로는 아기가 되었다가 소년 소녀가 되었다가 어른이 되는 과정을 거치며, 이 중 누구는 엄마가 되고 누구는 아빠가 된다. 또 누군가는 독신주의자가 되고 여성주의자가 되며, 채식주의자가 되기도 한다. 직업으로 치면 축구선수가 되는 이도 있고 회사원이나 예술가가 되어 살아가는 이도 있겠다.
 
어디 이뿐인가. 인생의 어느 시기에 백수가 되고 이혼녀가 되고 명퇴자가 되는 이도 많다. 또한 사장이 되었다가 바로 다음 순간에 노숙자가 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암환자가 되어 오늘내일 하던 사람이 기적적으로 병을 고친 후 남의 몸을 돌보는 치유자가 되기도 한다.
 
바란 대로 되지는 않는다
 
어느 평범한, 그러나 나름의 독자적인 역사와 개성을 지닌 남자와 여자의 몸을 빌려 그들의 여섯 번째 딸로 지구라는 행성에 나타난 나 또한, 무수히 많은 되어감의 과정을 밟아 왔다. 지나치게 방어적이고 내성적이던 어린아이 시절과 혼자만의 공간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던 중고등학생 시절을 거쳐, 혼돈과 방황으로 점철된 20~30대를 보내기까지. 그러는 동안 내내 도심 언저리 가난한 주택가를 떠돌며 이런저런 일들을 하다가, 이제 겨우 시골 마을에 정착 비슷한 것을 한 귀촌인이 되기까지.
 
이 과정을 거치면서 내가 느낀 것은 이름과 직업과 거주지와 성격과 외형적인 특성이 나 자체는 아니듯, 내가 경험하는 모든 되어감과 변화가 나의 본질은 또한 아니라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살아가든 그와 상관없이 변함없는 나는 여전히 존재하니까. 하지만 형상을 지니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한, 다시 말해 누군가의 자녀가 되어 이 지구에 온 이상 우리 모두는 결코 되어감의 운명을 피할 수 없음을, 삶은 명백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 운명을 짐짝처럼 짊어지고 무겁게 살아가는 한편, 그로부터 벗어나 가벼워지길 간절히 꿈꾸는 것은 아닐까.
 
내 변변찮은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거기엔 특별한 비법이라 할 만한 게 없는 것 같다. 다만 누구나 똑같은 되어감의 경로를 밟지는 않으며, 누구도 자기 자신이 언제 무엇이 되어갈지 정확히 알 수는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한다. 때로는 내가 결코 바란 적이 없는 것이 되어 있는 반면,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죽어라 바라도 최소한 이번 생에서는 될 수 없는 게 또한 있다는 사실을 기꺼이 수용하면, 무수히 많은 되어감 중 어느 하나, 혹은 특정한 몇몇에 집착하거나 욕심을 내는 일은 좀 줄어들 테니까.
 
마찬가지로 세상이 떠받드는 일등, 성공한 사람, 잘난 사람이 되어가는 것에만 인생의 초점을 맞추는 대신, 자신이 경험하는 각각의 되어감에 내재한 아름다움과 선의(善意)를 배우는 법에 눈뜬다면, 무엇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쉽게 절망에 빠지거나 무기력해지지도 않을 것이다.
 
경계와 분리 없는 의식의 확장 

▲생각 아닌 직관으로 온전히 그것과 하나가 되어보는 것을 통해 의식이 무한히 확장되는 것을 경험한다. ©자야
 
<잠수복과 나비>라는 책을 쓴 저자면서, 이 책의 내용을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 <잠수종과 나비>의 주인공인 '장 도미니크 보비'는 한때 잘 나가는 패션잡지 편집장이었으나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전신이 마비된 채로 겨우 살아난다. 한마디로 인생의 어느 시기에 성공가도를 달리는 편집장이 되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왼쪽 눈꺼풀 하나밖에 움직일 수 없는 중증환자가 된 셈이다.
 
그가 엄청난 고통 속에서 단지 눈을 깜빡이는 것만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마침내 책까지 펴내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무척 감동적이지만, 내가 여기서 얘기하고 싶은 것은 그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영화를 보면서 뇌졸중에 마비된 그의 육체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육체가, 나아가 그에 갇힌 의식까지도 어둡고 깊은 바다 속으로 침잠하는 잠수종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육체라는 형상을 지님으로 해서 우리의 의식 또한 자신과 남을 분리하고 인간과 자연을 구분 짓고 신과의 연결성을 차단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면 왜 안 그렇겠는가.
 
삶에서 고통을 겪는 모든 순간에는 바로 이 잠수종에 갇힌 듯 제한되고 고립된 의식이 있음을, 적어도 인생의 어느 한 시기에는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때 내가 만난 한 선생님은 '되어보기'라는 훈련법을 알려 주셨다. 이는 생각이 아닌 직관으로 '그것'이 되어봄으로써 나와 나 아닌 것이라 여겨지는 대상 사이의 경계와 분리를 허무는 훈련으로, 방법은 무척 단순하다. 눈에 띄는 무엇이든 순간적으로 그것과 하나가 되어 느껴보는 게 전부다.
 
올 여름, 그 선생님이 이끄는 수련에 오랜만에 다시 한 번 참여할 기회를 얻은 나는, 수련이 진행되는 사나흘 동안 좀 더 밀도 있게 주변의 모든 것을 대상으로 되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하늘과 구름과 들꽃과 돌멩이와 물방울과 빨랫줄과… 그리고 알 수 없는 인연으로 소중한 경험을 함께 나누게 된 사람들 하나하나와.
 
기존에 입력된 정보에 의해 작동하는 내 생각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그것이 되어본다는 것이 처음부터 쉬웠을 리 없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경계와 분리는 조금씩 희미해지고, 동시에 그 너머 무한히 확장된 세계가 펼쳐졌다. 놀랍게도 그 세계에서는 내 육체가 무엇이 되어가든 아무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근본적인 차원에서는 어떤 것도 될 수 있지만 아무것도 될 필요가 없음이, 일체가 사랑이고 빛이고 자유임이 가슴 깊이 느껴졌다고 할까.
 
최근 들어 부쩍 '시골에서 40대 중반의 여자가 되어 늙어간다'는 관념에 짓눌리곤 하던 나는, 덕분에 수련 후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일상에 복귀할 수 있었다. 육체를 지니고 살아가는 동안은 또 다시 되어감의 운명에 휘둘려 무거운 관념의 세계로 빠지거나 경계와 분리의 틀 안에 스스로를 가둘 수 있음을 물론 모르지 않으나, 그게 많이 두렵지는 않다.
 
더는 움직일 수 없는 육체에 갇힌 상태에서 의식만은 어디든 날아갈 수 있는 나비가 되어봄으로써 존재의 자유로운 비상을 시도했던 장 도미니크 보비만큼은 아니어도, 나 역시 확장되고 일치된 세계를 경험했으니. 아주 미약하다 해도 결코 잊을 수는 없는 그런 경험들이 길이 되어 나를 지속적으로 이끌어갈 테니.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길 위에서 되어감에 집착하지 않되 내가 왜 지금 그것이 되어 있는지를 확연하게 배울 수 있을 것이니….
 
(이것으로 13개월간 연재해 온 자야의 귀촌 이야기를 중단하고자 합니다. 이 글을 씀으로써 저 스스로는 귀촌을 선택했던 첫 마음을 기억하고 보다 큰 삶의 목적을 성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개인 사정상 좀 더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를 들려드리지 못한 점은 아쉽게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부족한 글 읽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그리고 기회를 주신 일다에게 다시 한 번 고마움과 사랑을 전합니다. -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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