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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씨는 18살이다. 15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여 돈을 모아 현재는 컴퓨터 학원과 검정고시 학원을 다니며 공부하고 있다. 다양한 곳에서 오랜 기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본 만큼, 갖가지 사건들도 많이 겪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할 때는 시간당 2천500원에 하루 6시간씩 일했다.

정희씨가 받을 수 있는 시간당 최저 임금은 작년 기준 3천480원이었다. 법적으로 최저 임금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냐는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저 임금이 얼마라는 건, 알바(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나서 알았는데요. 안 줘도 어쩌겠어요. 돈이 급하니까.”

최저임금제, 알고는 있지만 받아본 적은 없어

정희씨는 현재 밀린 월급을 받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문제는 부모님의 동의서를 받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면 쉽게 해결될 수 있다. 정희씨에게 계약서를 작성했는지 물어보았다. “제일 처음 알바를 했던 곳에서 부모님 동의서 받아오라고 해서, 엄마 도장을 몰래 갖다 썼거든요. 그런데 그걸 쓰라고 하는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어요. 아무 말 없으면 그냥 일하는 거죠.”

문제가 생긴 일터에서는 근로계약서 등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오히려 마음 편하게 일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근로계약서나 부모님 동의서가 우리를 보호해주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인터넷에서는 ‘부모님 동의서 어떻게 위조해요?’라는 글 엄청 많이 올라와 있어요.”

최저 임금제를 준수하고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의무화되어 있지만, 십대들조차 이런 규정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많은 십대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목적은 부족한 용돈을 충당하기 위한 것이니만큼, 부모님 몰래 일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17살 미선(가명)씨 또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올해 초 학교를 그만둔 미선씨는 “아이들(연예인) 쫓아다니거나, 친구들과 노래방 가고, 맛있는 것 먹으려고 돈을 벌지요”라고 답했다. 친구들도 대부분 같은 이유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고 한다. 그런 미선씨에게 부모님 동의서를 받는 일은 가끔 곤욕스럽다. “아르바이트가 한두 개여야죠. 친구들 중에서도 부모님 동의서에 몰래 도장 찍는 애들이 많아요.”

십대들이 일하는 곳은 의외로 다양하다. 패스트푸드점이나 PC방 뿐 아니라 고깃집, 주유소, 유통업 등 많은 곳에서 십대들을 고용하고 있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낮은 시급을 주면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인력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십대들 스스로도 성인보다 낮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최저 임금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에도 별다른 불만을 갖지 않는 경우도 있다. 미선씨는 최저 임금제를 지키는 곳에서 일을 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최저 임금 지키면서 돈 주는 데에서는 어차피 일 못해요. 경쟁률도 높고, 한두 달 일하다가 그만 두려는 우리는 잘 안 쓰죠. 아르바이트 찾는 친구들을 보면 고만고만한 조건에서 50원 더 많은 시급을 주는 곳으로 찾아가요. 우리야 당연하게 낮은 시급이라고 생각하고.”

십대들의 일은 '일'이 아닌가

19살인 혜정(가명)씨는 사람들이 십대들의 아르바이트 목적을 불순하게 여기고 안 좋게 보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말한다. “(돈 벌어서) 놀려고 아르바이트 하는 건 맞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돈을 적게 주거나 막 부려먹으면 속상하죠.”


일하는 십대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십대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을 것이라는 통념은 십대들로 하여금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가치를 느낄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십대들에게 주어지는 일은 단순노동에 가깝고, 특히 십대 여성들에게 주어진 일의 상당부분은 고객을 상대하는 감정노동 서비스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십대들의 노동력을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 많다’는 이야기는 다 한 번씩 들어요. 저도 일하면서 ‘돈만 아니면 이런 일은 하지도 않을 거다’라고 속으로 욕하고요”라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고용하는 사람도, 일하는 사람도, 십대들의 노동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십대들이 꼽은 아르바이트 문제의 핵심이다.

청소년 인권활동가인 18살 희영씨는 “만약 우리가 어른들처럼 동등하게 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준다면, 더 많은 시급을 받겠지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노는 아이들이 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필요한 돈을 직접 벌어서 논다’고 생각한다면, ‘니들이 뭔데!’라는 말을 들을 필요도 없을 거예요”라고 덧붙였다.

공부만 하고 일은 하지 마라?

서울 모 인문계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아람씨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학교방침도 이러한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학생은 공부를 하라고 하는데, 모두가 다 공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용돈을 벌어보려고 일을 시작했는데, 선생님이 이것을 알고 야단을 치시더라고요.”

어려운 집안 환경 때문에 일을 하는 경우가 아니면, 아르바이트를 하는 십대들에게 주위 성인들이 격려를 해주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아람씨는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싶어요. 상투적인 말이지만”이라고 말했다.

한편으로 십대들이 노동의 가치에 대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나 여유를 갖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공업고등학교에 재직 중인 이성주 교사는 “해외의 사례를 보면, 어릴 때부터 직업의 가치에 대한 교육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운을 뗀 뒤,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지 못하는 것은 현재 중등 교육의 주 목적이 ‘대학 진학’이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일하는 십대들에 대한 지원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십대들은 알음알음으로 아르바이트를 구한다. 더구나 일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의 아르바이트는 단지 돈을 버는 경험에서 끝나버린다. 최저 임금제나 근로 계약서 작성과 같이 일하는 십대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에 대해 간간히 언급이 되고 있지만, 별로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십대들이 말하는 노동시장의 현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야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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