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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현대미술 전시보다도 더 ‘현대미술’적인
[일다] www.ildaro.com 총파업 전시 <도시를 멈추고 거리로 나가자> 
 
늦었다. 벌써 10분이 지났다. 떠났으면 어떡하나 걱정하며 부리나케 버스에서 내려 홍대 정문으로 갔다. 총파업 전시 오프닝 퍼레이드를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나는 급한 마음에 신호등까지 무시할 뻔했다. 다행이다. 아직 퍼레이드를 시작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한편으로는 실망이다. 피켓을 든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SNS를 통해 '잡년행동'이 총파업 전시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바로 ‘6월 9일 토요일 오후 1시 총파업 퍼레이드‘를 메모했다. 5월 1일 메이데이 총파업 집회에 참석하지 못한데다가 '잡년행동'의 행보에 관심이 많은 나는 솔직히 전시보다는 퍼레이드가 더 궁금했다. 지난 여름, 뜨거운 더위를 차갑게 식혀주기보다 더욱 끈적이게 했던 비 마냥, '잡년행동'의 도발은 주류 언론에 의해 정말 ‘잡년’들처럼 매도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해 ‘잡년행진’에 참여했었기에 현장의 상황과 보도가 만들어낸 여론의 차이를 너무나 잘 아는 터였다.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퍼레이드의 좋은 점은 길에서 춤출 수 있다는 것”

▲ 총파업 퍼레이드에서 댄스타임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 이충열 
 
홍대 정문 앞에는 홍익대 청소·경비 노동자분들의 농성 천막과 피켓이 있었고, 이 농성을 지지하는 것 같은 리본들도 매달려 있었다. 그 옆에는 알록달록 예쁜 작업복(?)을 입고는 스피커를 실은 리어카 앞에서 중얼중얼 랩을 하는 분이 계셨다. 리어카의 칠판에는 ‘구루부 구루마’라고 쓰여 있다. ‘한받’이라는 분이었다. 경찰 한 분이 와서 ‘한받’에게 시끄럽다고 했다. ‘한받’은 길을 건널 것처럼 횡단보도 앞으로 자리를 이동해야 했다. 주변에 삼성의 횡포를 고발하는 피켓을 든 대여섯 분과 북이나 꽹과리를 든 두세 분이 계셨지만, 신호등을 기다리는 사람들만 너무 많아 퍼레이드를 할 수 있을까 싶었다.
 
혹시나 몰라서 사진으로 기록하며 주변을 살피는데, 작년에 있었던 잡년행진 때 본 분이 계셨다. 사진을 찍는 것에 양해를 구하며 몇 마디 주고받는데, “퍼레이드의 좋은 점은 길에서 춤 출 수 있다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렇다. 한국 사회에서는 춤추고 싶을 때 춤을 출 수 없다. 노래하고 싶을 때도 아무데서나 노래할 수 없다. 춤이나 노래처럼 즉흥적으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을 참고 참았다가 클럽이나 나이트, 노래방 등 정해진 장소에서 과시하고 소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퍼레이드는 무엇인가를 주장하기에 앞서, 자유 그 자체를 주장하고 누릴 수 있는 것이겠구나! 얼마 전 참여했던 ‘퀴어 퍼레이드’ 생각이 났다. 다양한 여럿이 함께 모여 각자를 마음껏 표현하니, 개개인이 받아왔던 눈총 따위는 문제될 것이 없었다. 정말 자유롭고 신났던 그 때의 경험! 그 경험을 떠올리니 이번 퍼레이드의 규모에 더욱 실망하게 되었다.
 
자유로운 집회를 방해하는 이들, 그러나…
 
피켓들이 조금 더 늘어나 시위의 느낌을 줄 때 쯤, ‘한받’의 디제잉에 맞춰 어떤 아저씨가 춤을 추시다가 피켓을 든 참가자들에게 다가와서는 끌어안으려는 듯한 동작을 했다. 사람들이 놀라서 피하자 그는 웃으면서 지나간다. “무서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피켓을 든 이들은 젊은 여성들이었다. 기분이 상한다. 잡년행진에서 나오신 분의 피켓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I'm not your sex toy."(난 너의 성적인 장난감이 아니야) 하지만 이런 일이 종종 있었던 듯 큰 동요는 없다, 왠지 더 슬프다.
 
한시 반. 드디어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가져오신 모든 악기를 연주해 주세요.”라면서 ‘한받’의 디제잉과 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댄스음악과 북, 꽹과리의 연주가 조화롭다. 일단 퍼레이드를 시작하고 나니, 지나치는 행인들만 같아 보였던 이들도 함께 했다. 어디서인가 점점 사람들이 모여 제법 시위의 느낌을 만들어냈다. “도시를 멈추고 거리로 나가자!”는 구호도 외치고, 가끔씩 멈춰서 춤을 추기도 했다. ‘한받’의 “정치정치정치정치......”하는 랩은 정말 재미있었다.
 
홍대 정문에서 놀이터 옆길을 지나 전시가 열리는 서교실험예술센터 앞으로 왔다. 다시 큰 길 쪽으로 퍼레이드를 나가려는데 반대편에서 순찰차가 온다. 공교롭게도 서교실험예술센터는 홍익지구대 바로 옆에 있었던 것이다. ‘구루마’를 필두로 한 퍼레이드 참여자들과 순찰차가 대치(?)하는 상황이 되었다. 십여 초 후, 결국 순찰자가 옆으로 비켜서 지나갔다. 그 짧은 순간이 어찌나 통쾌하던지, 이 시대의 자유롭고 다양한 집회 문화가 고압적이고 획일적인 기존의 문화들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예언의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총파업 이후의 고민 담긴 <총파업 전시>

▲ 지하 전시장에 설치된 '잡년행진'의 전시물. 총파업집회 때 '잡년행동'의 퍼포먼스를 선정적으로 보도한 사진 아래 인터넷 댓글들을 캡션처럼 덧붙였다.  ©이충열  
 
홍대전철역 쪽 큰길까지 총 한 시간가량 진행된 퍼레이드가 끝나자, 참여했던 사람들이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전시장 1층에는 지난 5월 1일 총파업집회 때 사용했던 플랫카드와 집회 현장을 담은 사진, 영상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총파업에 참여한 시민들이 직접 만든 포스터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기발하고 재미있는 것들도 많았다.
 
1층 전시실에 총파업 집회의 현장을 담았다면, 지하 전시실에는 그 후의 고민들이나 움직임이 보였다.
 
먼저, 이곳에 오게 한 '잡년행진'의 전시를 보았다. 지난 총파업집회 때 ‘젠더 수행 파업’, ‘강요된 꾸미기 노동 파업’, ‘몰인격적 성적 대상화 거부’라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온 그들은 풀 메이크업, 원더브라, 킬힐로 등장해서 메이크업을 문질러 지우고, 브래지어와 구두를 벗어던지고는 맨발로 춤을 추고, 브래지어로 만든 줄로 줄넘기를 하는 등의 퍼포먼스를 했다.
 
조선닷컴에는 그날 바로 “여성운동단체 '잡년행동' 퍼포먼스에 '남성'들 분노”라는 글과 함께 참가자들을 대상화한 사진들을 올렸다. 대상화를 거부하는 퍼포먼스를 선정적으로 촬영해서 더 대상화한 것이다. 댓글도 심각했다. 얼굴을 대놓고는 할 수 없을 말들이 적힌 댓글들에 '잡년행동'의 입장을 표명하는 댓글을 달자 ‘잡년’이라는 단어를 썼다는 이유로 댓글들은 삭제 당했다.
 
이에 '잡년행동'에서는 주류 언론에 실린 자신들의 사진 아래에 실제로 달렸던 끔찍한 리플을 캡션처럼 설치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잡년행동' 내부에서 촬영한 사진 아래 '잡년행동'의 댓글을 삭제하고 남긴 “관리자가 (비속어/비하)사유로 100자평을 삭제하였습니다.”이라는 안내글을 캡션처럼 설치해서 주류 언론 혹은 가부장제 시선이 원하는 대로만 보고, 다른 의견은 묵살하는 태도와 현실을 보여주었다.
 
이분법과 엘리트주의,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다
 
'두물머리밭전위원회'의 움직임은 미술작업을 하는 나에게도 큰 자극이 되었다. ‘넝마공작소’는 두물머리를 떠난 주민들이 남긴 집기들을 이용해 트로피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것은 두물머리 경작 금지에 반대하는 투쟁을 함께 해 준 “외부세력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자신들을 도움만 받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투쟁의 주체로서 세우는 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게다가 만들어진 트로피는 조형적으로도 흥미롭고 훌륭했다! 

▲ 두물머리를 떠난 주민들이 남긴 집기들을 이용해 만든 트로피. 두물머리 경작 금지에 반대하는 투쟁을 함께 해 준 “외부세력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만들어진 이 트로피들은 조형적으로도 흥미로웠다.     ©이충열  
 
두물머리 개발에 반대하는 3691명의 참여자가 작성한 탄원서에서 문장을 조합하여 만든  ‘두물머리 경작금지 탄원서’도 인상적이었다. 주민들을 대변하는 ‘지식인’이 작성한 ‘탄원서’가 아니라, 두물머리 주민들과 두물머리를 지키려는 일반 사람들이 직접 참여했다는 것. 어떤 대표자가 사람들의 의견들을 듣고 자신의 판단으로 편집하고 정리하여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완결된 글을 만든 것이 아니라, 어린이·노인 할 것 없이 한명 한명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탄원서라는 것이 좋았다. 손으로 쓴 글씨나 각자가 선택한 글씨체까지도 그대로 살려 ‘글’이라는 것이 내용만 담은 유리그릇이 아니라, 그 그릇을 통해서도 느껴지는 감정과 어조까지 전달하는 섬세함이 훌륭하다.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는 무엇이든 이분법으로만 구분하여 생각하는 것이 많아서 무언가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에 있어서도 ‘내부’와 ‘외부’를 반드시 따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떤 단체나 지역에 어려움이 생겼을 때 그것이 자신과 ‘직접‘ 연결된 일이 아니라면 그에 대한 입장 갖기를 기피하는 것 같다. 게다가 직접 연결되지 않은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펼치거나 주장하면 ’외부세력의 개입‘으로 불온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또, 예전의 엘리트주의적 운동의 방식이 남아 있어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문제에 직면한 사람들을 일깨워주고 이끌어주는 ‘권력관계’가 생기기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당사자들은 운동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이끌어주는 데로 따라가는 수동적인 입장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두물머리밭전위원회'의 전시는 현재 일어나는 운동의 방식이 과거처럼 일방적인 계몽과 선동이 아니라 소통과 공감을 바탕으로 한, 서로 지지하고 연대하는 관계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반가웠다. 

▲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 내놓은 오줌병.     © 두물머리 경작 금지에 반대하는 투쟁을 함께 해 준 “외부세력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전시장 중앙에 놓인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이 내놓은 오줌병도 재미있었다. 오줌을 병에 담아 밀봉하면 색이 점점 갈색으로 변하는데, 이것이 잘 보이도록 병을 배열해서 놓았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밀봉한 오줌을 액비료로 바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하니 놀라웠다.
 
'수유너머'에서 만든 삼성의 범죄지도나 '나눔문화대학생모임'의 <삼성바로 세우기 운동>, '기본소득네트워크'의 <일하지 않는 자도 먹을 권리가 있다>는 주장도 흥미로웠다. 이 밖에도 인권에 대한 주장과 실천을 어떻게 이어나갈지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과정들이 많이 보였다.
 
현대미술의 시작이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리려는 시도’라고 배웠다. 총파업전시는 어떤 현대미술 전시보다도 더 ‘현대미술’적인 것 같아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이충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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