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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십대여성들의 손을 잡아줄 것인가
벗어나고 싶어도 성매매를 중단하지 못하는 이유 
 
- ‘청소년 성매매’ 현실을 들여다보는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조금 다른 아이들, 조금 다른 이야기>(이후, 2011)의 저자 김고연주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가 성매매 경험이 있는 십대여성들과 만나온 이야기를 5회에 걸쳐 기고하였습니다. <일다> www.ildaro.com
 
사회적 배제로 인한 폐쇄적 인간관계
 
내가 만난 아이들은 ‘조건’(청소년 성매매) 경험을 담담하게 얘기하면서도, 너무 하기 싫다고 입을 모았다. 사회적 낙인, 가족과의 관계 단절, 학업 중단, 진상 고객의 폭행, 포주의 착취, 성병 감염, 경찰 적발 등의 위험 요소뿐 아니라, 아저씨들과 원치 않는 성관계를 하는 것 자체가 싫다고 했다.
 
하지만 ‘조건’이 싫다고 하면서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조건을 계속 했고, 중단했다가도 재유입 됐다. 표면적인 이유는 간단했다.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계가 해결돼도, 또는 성매매로 많은 돈을 벌어도, 아이들은 ‘조건’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이는 성매매의 원인을 단순이 ‘돈벌이’에서만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성매매의 피상적인 이유는 ‘돈’이지만, 단지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벌려는” 아이들의 습성이 문제라는 시각은 주로 특정 계급과 성별에 속한 사람들이 성매매의 피해자가 되는 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 많은 연구들이 밝히고 있듯이, 성매매에 유입되고 성매매를 지속하는 데에는 다양한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나는 아이들을 만나면서 그 많은 원인들 중에서도 ‘인간관계’에 주목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가출을 해서 성매매에 유입되기까지, 그리고 성매매를 중단하기까지 자신의 여정을 설명할 때면 늘 가족이나 친구, 연인 또는 선생님 등으로 이루어진 관계가 중요하게 등장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일차적이고 핵심적인 인간관계망은 가족이지만, 결코 그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십대 여성은 사회의 일원으로 더 풍성한 인간관계를 꾸리고, 그로부터 더 다양한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십대 여성에 대한 돌봄의 책임을 온전히 가족에게만 전가하는 우리 사회는, 일단 가족에서 유리된 십대 여성들에게 어떠한 안전장치도 제공해 주지 않는다.
 
사회 안전망이 부재하기 때문에 십대 여성들은 가출과 동시에 가족, 또래, 교사, 이웃 등 의미 있는 타인들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사회적으로 고립된다. 결국 가출한 십대 여성들이 신체적 안전과 심리적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처지가 비슷한 또래집단뿐이다. 사회에서 고립된 또래 무리도 다른 자원이 없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절도, 갈취, 성매매 등의 방법으로 생계를 해결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아이들은 무리에 소속되기 위해 이러한 행위에 동참하게 된다.
 
이처럼 십대 여성들이 어울리고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인적 자원의 특성은 폐쇄적이고 폭력적이다. 이 인적 자원이 새로운 관계로 대체되지 않는다면, 십대 여성들 개인의 노력으로는 성매매를 중단하기 쉽지 않다.
 
‘그 놈의 정 때문에’
 

은호와 해빈이의 사례는 폐쇄적인 인간 관계가 성매매를 지속하고 성매매에 재유입되는 데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 준다.
 
은호(22세)는 어머니가 집을 나간 뒤, 정신지체가 있는 아버지와 살다가 중학생 때 가출을 해 ‘조건’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16살 때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조건’을 중단했다. 어머니와 사실혼 관계였던 새아버지가 사고사한 뒤, 은호는 자립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2008년 12월에 집을 나와 서울에 올라왔다. 그러나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6년 만에 ‘조건’을 다시 하게 되었다.
 
성인이 되었고 고졸 학력이 있는 은호가 성매매를 다시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통신사에 지고 있는 빚 수백만 원 때문이었다. 은호는 가출했을 당시 친구 세 명에게 자기 명의로 핸드폰을 개통해 주었다. 은호 자신도 ‘조건’으로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는 처지였지만, 친구들이 ‘불쌍하고 걱정되어’ 도움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친구들은 나중에 갚겠다거나 통장을 바꾸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핸드폰 요금은 시간이 흐르면서 은호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은호는 핸드폰 요금을 갚으려고 ‘조건’을 시작했지만 전혀 돈을 모으지 못했다. 남자 친구, 즉 동거남이 은호가 ‘조건’을 한다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소위 ‘기둥서방’으로 변해 은호의 수입을 갈취했기 때문이다. 은호는 동거남이 자신에게 해가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관계를 지속했다. 더욱이 은호는 남자친구와 이러한 관계를 맺은 것이 처음이 아니었고, 매번 “그 놈의 정” 때문에 헤어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해빈(19세)이는 초등학교 6학년인 열세 살 때 동네에서 처음 보는 대학생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그러나 평소에도 폭력을 행사하던 어머니에게 ‘맞을까 봐’ 말을 못했고, 자신이 가해자를 따라간 게 잘못이었다고 생각했다. 해빈이는 가출 후 순결을 잃은 자신을 ‘더럽다’고 생각해 바로 ‘조건’을 시작했고, 곧 아는 오빠의 권유로 업소에 들어가 성매매를 지속했다.
 
그 과정에서 해빈이는 낙태를 하고, 평생 나을 수 없는 성병에 걸리고, 갖은 인격 모독에 지쳐 시설의 도움으로 업소를 빠져 나와 쉼터에 입소했다. 해빈이는 업소에서 겪은 경험들을 이야기하며 치를 떨었지만, 쉼터를 나가자 다시 업소(티켓다방)로 들어갔다. 몇 달 만에 알코올 중독 증세를 보이며 다시 쉼터로 돌아온 해빈이에게, 나는 왜 업소에 다시 들어갔냐고 물었다. 해빈이는 당장 갈 데가 없었을 뿐 아니라 해빈이를 오라고 했던 포주가 해빈이가 바라는 조건, 곧 일하면서 검정고시 준비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물론 포주는 전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오히려 해빈이는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더 삼엄한 감시를 당했다. 또한 매일 반복되는 언니들의 울음소리를 들어야 했고, 자살 시도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빈이는 몇 달 후 쉼터를 나가게 되자 다시 룸으로 들어갔다. 친구가 룸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관계를 복원하는 일
 
이처럼 한정되고 폐쇄적인 관계 안에 있는 십대 여성들은 인간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신뢰, 의무감, 소속감, 애정 등, 기본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 감정적으로 취약해진다. 조금만 관심을 보이고 잘 해주면 쉽게 마음을 열고 정을 붙이고, 자신을 떠날까 봐 두려워 무리한 요구도 거절하지 못한다.
 
십대 여성들은 자신을 이용해 이득을 보려는 사람들과 자신을 소중히 하는 진정한 관계를 헷갈려 하고, 그 관계가 자신에게 해가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한다. 또한 해빈이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새로운 네트워크에 접속했다 하더라도 기존의 인간관계가 단절되지 않으면 과거로 회귀하곤 한다. 특히 새로운 사람들과 감정적 친밀함이 어느 정도 구축됐다 하더라도, 해빈이처럼 당장 갈 곳이 없을 때는 아는 사람이 없는 다른 시설보다 친구가 있는 업소를 찾게 된다.
 
이는 십대 여성들이 성매매를 하면서 자신감과 더불어 타인에 대한 믿음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성매매가 아닌 일을 해본 적이 없어서 성취와 인정의 경험이 없고, 학업도 중단되어 최소한의 학벌도 없는 이들은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 자체를 어려워한다. 또한 지속적으로 인격 모독을 당했기 때문에, 자신이 신뢰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자신에게 편견을 지니고 있거나 낙인을 찍을 것이라는 불신이 강하다.
 
결과적으로 자신과 타인에 대한 믿음 회복이 관건이지만, 이는 결코 십대 여성 혼자만의 몫이 아니다. 이것은 사회에서 배제되고 고립되어 온 십대 여성들의 사회적 관계가 복원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부모들은 십대 여성이 성매매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관계를 끊기도 하고, 어떤 학교에서는 이전 학교에서 자퇴를 했다는 이유로 편입을 거부하기도 한다. 또한 고용주들은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악용해 임금을 체불하고 성희롱을 일삼는다. 더욱이 특수한 경제 체제에 있으면서 돈을 모을 수 없거나 모을 필요가 없었던 소비 습관과 밤낮이 바뀐 생활 습관을 바꾸기도 쉽지 않다.
 
‘보통’의 십대 되기, 내면의 힘 기르기
 
십대 여성들이 성매매에 유입되기 전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면, 십대 여성들이 성매매를 중단하고 ‘보통’의 십대가 되기란 매우 어렵다. 더욱이 성매매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십대 여성을 둘러싼 환경은 성매매에 유입되기 전보다 더 악화되기 마련이므로, 십대 여성들은 더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보통의 십대에게는 평범한 것들이 이들에게는 엄청난 노력과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것이 된다. 십대 여성들에게 무엇보다 ‘내면의 힘’이 필요한 이유다. 여기서 ‘내면의 힘’이란 십대 여성들이 반복되는 시행착오를 실패가 아니라 당연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면서, 지난한 시간을 견딜 수 있는 힘을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힘은 이들을 믿고 지지해 주는 존재가 있을 때 생겨난다.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폐쇄적인 관계망 안에 있을 때는 성매매의 폭력성과 자기학대적인 면을 애써 무시하며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던 아이들도, 타인과의 관계 속에 위치하는 순간 성매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칭찬과 격려를 받으면서 아이들은 실패의 경험을 성공의 경험으로 전환하고, 나아가 타인에게도 인정을 받게 된다. 타인의 인정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한 아이들은 조심스럽게 사회로 발을 내디디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하면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너를 사랑해!”라는 말을 들을 때 또래, 성구매 남성, 포주에게서 벗어나 자신을 아끼고 존중해 주는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너는 소중해!”라는 말을 들을 때, ‘조건’으로 버는 돈의 액수가 아니라 그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을 팔아야 하는 과정을 생각하게 된다. “너를 믿어!”라는 말을 들을 때, 자신의 실수나 실패가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과 미래를 바라보게 된다.
 
십대들의 노력보다 사회 성원의 성찰이 먼저
 
여기서 문제는 이러한 얘기를 해줄 사람, 곧 십대 여성들에게 손을 내밀어 줄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십대 여성에 대한 돌봄의 책임을 방기해 왔다. 십대 여성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은 부재하고, 개별 가정 또는 소수의 사회복지시설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미성년자는 판단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보호해야 한다”라는 미성년자 보호 담론이 그나마 ‘돌봄’이라고 행해지고 있는 사회적 안전망의 전부다. 이러한 보호 담론은 십대 여성들의 성애화가 노골화되고 십대 성폭력과 성매매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에서는 그저 무책임한 면피용의 구호에 그칠 뿐이다. 소수의 복지 시설과 허울뿐인 미성년자 보호 담론으로는 십대 여성들의 성매매 유입을 예방하고 성매매 경험이 있는 십대 여성들을 사회에 통합시키기 역부족이다.
 
먼저 십대 여성들의 필요와 욕구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의 부족한 자원을 메워 주려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성매매를 바라보는 사회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그러려면 십대 여성들의 개인적인 노력 이전에, 사회 성원의 자기 성찰이 먼저 이뤄질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의 현실을 고려할 때 이는 혁신적인 변화를 요하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지금까지 5회에 걸쳐 연재를 하며 청소년 성매매의 현실을 되도록 가감 없이 담아 보려고 노력했다. 아이들의 다종다양한 사연을 풀어 놓자면 짧은 지면으로는 어림이 없을 거라 짐작했지만, 그러다 보니 내 의욕만 앞섰던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그저 청소년 성매매가 ‘한 물 간 이슈’가 아니라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김고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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