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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남과 북, 분단의 경계를 넘은 사람들
소설 <오래된 약속>의 윤정은 작가 인터뷰 
 
‎7년간 동료로 함께 활동해온 윤정은 기자(38)가 첫 소설 <오래된 약속>(양철북)을 펴냈다. 1997년 최초의 북한식량난민 집단망명신청 사건을 다룬 실화소설이자, 스물 넷의 나이로 생사가 오가는 국경지대에서 낯선 북한사람들과 동행했던 경험을 토대로 쓴 자전적 소설이기도 하다.
 
중국의 탈북자 북송을 둘러싸고 논쟁이 불붙은 지금, 남북갈등만큼이나 좌우 이념대립으로 남남갈등도 심각한 남한 사회에서 출간된 <오래된 약속>은 시대의 화두를 던지는 소설이다. 너무나 정치화된 이름 ‘탈북자’의 존재를, 서로 다른 체제에서 살아온 인간과 인간의 만남으로 드러냄으로써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안내하기 때문이다.

▲ <오래된 약속>을 펴낸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 윤정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이기에, 작가가 15년간이나 마음 속에 간직해왔던 이야기가 빛을 보기까지 과정은 쉽지 않았다. 과연 이 소설이 한국사회에 얼마나 이해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다고 한다.


그런데 <오래된 약속>이 출간된 지 두 달이 지난 지금,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것이다’, ‘일반 시민들은 무관심할 것이다’ 라는 우려를 깨고, 많은 독자들이 박수와 공감을 보내고 있다. 작가가 소속된 <일다>에도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남한사람들이 꼭 읽어야만 하는 책’이라고 호평하며 작가를 찾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북한, 북한주민, 식량난, 탈북자, 남과 북의 동행…. 이 무거운 주제를 다룬 소설이 한국독자들에게 먼 이야기가 아닌 가까운 이야기로, 흡인력 있게 다가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윤정은 작가와 함께 소설 <오래된 약속>에 관한 대화를 나누어보자.
 
-소설은 1부가 북한 무산역을 배경으로 한 만금의 이야기이고, 2부는 중국 베이징의 한 아파트에서 북한 식량난민들과 남한사람들이 동거하는 내용, 3부에서는 13인의 탈북자가 또다시 중국 국경을 넘어 제3국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그렸다. <오래된 약속>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다가, 2부부터 작가인 ‘아영’이 직접 소설 속에 등장하며, 3부에서는 1인칭으로 시점이 바뀌는 독특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저널리스트인데, 북한식량난민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소설’이라는 장르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북한식량난민의 존재를 한 인간으로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탈북자’라는 정치적 딱지가 아니고, 나와 같은 사람으로서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소설을 택했다. 기사로도 이 주제를 다루어왔지만, 기사는 사회 문제나 이슈에 초점을 맞추는 장르이다. 소설은 보다 인간의 입체적인 면을 보여줄 수 있어 인간의 삶에 집중하고, 그 인간이 어떤 시대와 맞물려 겪게 되는 삶과 경험을 보여줄 수 있다.
 
문학공부를 별도로 하거나 등단을 하지는 않았지만, 저널리스트 활동을 오래하다 보니 다양한 사회적 상황 속에서의 개인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 있었다. 다른 사회에서는 르뽀 소설, 문학 저널리즘이라는 장르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저널리스트들이 소설을 쓰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내게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소설의 1부인 “발”을 완성한 것이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오래된 약속>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가 무엇인가.
 
“만금의 이야기인 <발>을 썼을 때는 북한사람들이 겪고 있는 식량난을 알리고 싶다는 목적 밖에 없었다. 남한사람들에게 왜 이들이 강을 건너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발>을 써서 지인들에게 보여줬을 때, 내가 바란 만큼의 이해를 해주는 이가 없었다. 이념적으로 읽고, 북한 체제를 비난하는 도구로 쓰일 수 있겠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래서 ‘아, 지금은 이해될 수 없나 보다’ 하고, 묻어두게 되었다. 언젠가는, 누군가는 읽어주겠지. 단 한 명이라도. 이렇게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것이 [여성주의 저널 일다]와 만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처음으로 나의 이야기를 이해해준 곳이었다. 2005년부터 [일다]에서 일하게 되면서, <발>을 10회에 걸쳐 기사로 개제했다. 이후 출판사 몇 군데서 연락이 왔는데, 2부와 3부인 ‘남과 북의 동행’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용기가 없었다. ‘아름다운 동행’이 아니라 ‘아팠던 동행’을 했기에, 드러내기 꺼려졌던 것이다. 완벽하지 못한, 내 마음에서 저버리고 싶었던 사람들과 함께 한 동행이라고, 나는 스스로를 판단하고 있었고 정죄하고 있었다.”
 
-탈북자의 존재는 국내 진보-보수 이념 갈등에 이용당하는 양상을 많이 보인다. 한국사회가 <오래된 약속>을 이해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며 오랜 시간 기다렸는데, 결국 소설로 펴냈다는 것은 이 글이 읽힐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라고 보아도 될지.
 
“자신은 없었다. 다만, 이제는 말해야지 않나, 드러내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 서로 간의 차이에 대해, 아직도 해소되지 않는 한국전쟁의 후유증에 관해, 그리고 분단이 우리 속에 어떻게 스며 있는지를 우리가 이해하고 알아가는 것이 남한사람들에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읽히지 않더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디까지 읽힐 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었다.”
 
-책이 나온 이후에 기대 이상으로 많은 호평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주위 반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소설 <오래된 약속> (양철북, 2012) 

“소설을 낼 때 불안불안하면서도 기대되는 게 있었다. 그런데 기대 이상으로 이 소설을 진정으로 읽어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메시지를 읽어주고 격려해주는 분들이 많아서, 정말 예상 밖이었다. 누가 이 책의 독자가 될지 진짜 궁금했다. 대부분은 세상의 따뜻한 변화를 바라고, 남북한 관계의 변화를 바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인 것 같다.
 
기존의 냉전구도에서 북한과 탈북자를 바라보고 진보-보수 논쟁을 붙이는 것은 어쩌면 일부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정치인들과 언론인들, 보수운동과 진보운동 안에서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보수 쪽에서는 탈북자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그 때문에 진보 쪽에서는 뜨거운 감자를 피한 세월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탈북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 변화가 있는 것 같다.”
 
-이제 소설 속으로 들어가보자. 주인공 만금은 탈북자들 중에서도 좀 특별한 인물로 보인다. 만금을 주인공으로 삼게 된 이유를 설명해달라. 
 
“만금뿐 아니라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북한에 있을 때 저마다의 사회적 위치와 계급, 삶들이 다 특수하고 다양한 사연이 있다. 유독 만금을 주인공으로 한 이유는, 자식들을 북에 두고 온 여성이라는 점과, 노동자로서의 ‘역사를 미는 주체’라는 자부심이 강한 사람이었다는 점, 그런 면들이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또 굉장히 근면하고 성실한 품성을 지녔고, 당시 같은 방을 쓰다 보니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면서 감정이입도 많이 되었다. 그녀가 가진 슬픔, 고통에 많이 공감하게 되었다.
 
만금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 소설도 없었을 것이다. 북한여성 만금의 이야기를 꼭 남한사람들에게 대신해주고 싶었다. 만금이 왜 강을 건널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리고 싶어서 1부 만금의 이야기를 쓴 것이다. 2부, 3부 또한 여러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치이는 만금의 처지가 안타까웠고, 그래서 만금의 시선을 보여주고 싶었다.”
 
-2부부터는 ‘남과 북의 동행’이라는 말에는 다 담기지 못하는, 북한사람과 남한사람들 간의 본격적인 갈등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특히 소설에서는 북한사람들 내부의 갈등을 보여줌으로써 ‘차이’를 드러내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남한사람들 머리 속에 북한사람들의 대한 이미지는 하나뿐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탈북자들 또한 북한 사회에 있을 때 계급과 사회적 위치가 각자 다르다. 그들이 북한 내부에서 만났더라면, 어떤 사안을 두고 서로 의견을 달리하는 부분이 있었을 테고 이해관계도 달랐을 것이다. 게다가 북한 국경을 넘어 중국 땅에서 만난 탈북자들 마음 속에는 모두가 ‘조국을 배신했다’는 자책감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다.
 
김민규는 아버지가 국군포로이다 보니 북한에서 살아남기 위해 누구보다 체제순응적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조학수는 중국 땅에 와 남한의 잡지책이나 신문을 보면서 자신이 북한체제에 갇혀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남한사회에 동화되기를 원한다. 이것이 김민규의 눈에는 ‘남조선 애새끼덜 놀음에 빠진’ 머저리 같은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다. 물론 김민규 역시 남한에 가서 버젓이 살고 싶은 욕망도 있지만, 한편으로 죄책감 사이에서 분열을 겪게 된다.”
 
-문제의 그 김민규란 인물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중에 아영이 폭발하게 되는 장면도 나오는데, 남북한 사람들의 갈등은 남한사람인 독자의 입장에서 북한사람들의 문화와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는 면들로 비춰지기도 한다.
 
“탈북자들은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죽음의 공포 속에서, 밀폐된 공간에 숨어 지내며 어디로 가게 될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불안한 심리 중 하나는 조국을 배신했다는 죄책감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당시 탈북자의 대부분 경우가, 인간적 욕망과 분단이 만들어낸 이념적인 이분법 안에서 갈등했다. 그것이 밖으로 투사되면 싸움이 일어나고, 안으로 투사되면 자신을 해치고 자해하는 방식으로 드러났다.
 
김민규는 조국의 배신자라는 껍데기를 벗고, 새로운 영웅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배신감을 씻기 위한 행동, 국군포로의 아들로서 남한에 당당하게 등장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남한사람들이 특별대우를 해주지 않으니까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그로서는 남한사회에 친화적 태도를 보이는 조학수라는 인물도 못마땅하고, 남한사람들이 자신을 영웅시 해줘야 하는데 안 해주니까 미웠던 것이다.”
 
-목숨을 걸고 북한사람들을 도와주러 중국으로 간 남한사람들에게, 고마움은커녕 끊임없이 의심하고 심지어 죽이려고까지 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 끔찍한 일이다. 더구나 당시 탈북자들과 한 아파트에서 살았던 남한여성들은 모두 20대의 나이였는데, 아무리 귀한 뜻을 품었다 하더라도 견디기 힘든 과정이었을 것 같다. 독자들은 남한 활동가들이 어떻게 그렇게 참을 수 있느냐는 의견도 내놓던데.

▲ 2012년 5월 18일 전북여성연구회 주최, 전북대학교에서 열린 "남과 북의 동행 [오래된 약속] 윤정은 작가와의 만남" 
 
“물론 참은 것도 있지만, ‘나영’이라는 캐릭터는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음식에 ‘복수혈전’이라는 이름을 붙인다든지, 그런 식으로 조금씩 푸는 계기들은 있었던 것 같다. 음식을 같이 나눠먹는다는 게 참 큰 일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었다.
 
남한사람들은 책임감 때문에 감정을 다 드러낼 수 없었다. 우리와 그들은 위치가 달랐다. 북한사람들은 한국사람들의 정체를 알 수가 없어 의심했던 것이다. 북한에서는 NGO 개념도 없고, 자신들을 그저 순수하게 돕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경계의 눈초리, 의심을 거둘 수가 없어서 일으키는 갈등이었던 것이다. 반면 남한사람들은 북한사람들이 누구인지 정체를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갈등을 일으킬 이유가 없었고, 단지 그들로부터 충격을 받을 뿐이었다. 우리로선 계속 설명을 하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었다.”
 
-아영은 언니들과는 달리 감정을 표출한다. 나는 윤정은 작가가 당시의 경험을 얼마나 깊이 마음 속에 묻어두고 있었는지 알기 때문에, 소설을 보고서는 별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큰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는지 의아했다. 15년의 시간이 흘러 바라본 아영은 어떤 모습인가? 그리고 당시의 경험은 어떻게 재해석되었는가?
 
“처음에는 정말 갈 곳 없고 돌아갈 곳도 없이 떠도는, 불법체류자 신분인 그들을 돕고 싶어 갔다. 그런데 정말 가진 것 없는, 돈 한 푼 없는 난민에게 내가 휘둘렀다는 생각, 감정을 참지 못하고 그들을 따돌리고 싶고 마음에서 저버리고 싶었던 아영에 대해, 남한사람으로서 죄책감이 들었다. 그들보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으로서의 죄책감 말이다.
 
그러다 서서히 아영을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 생겼다. 스물 네 살의 아영, 그들과 같이 불안하고 도망자의 신분이었던 아영의 심정에 대해서. 시간이 많이 지나니까 아영이 나의 분신이라고 생각되기 보다는, 따로 떼어놓고 보게 되었다.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 그 때 보았던 북한사람들에 대해서도 거리감이 많이 생기니까, 내 머리에 하나의 이야기로 남아있게 되었다. 그래서 드러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내가 아니라 남한사람 아영, 김민규도 북한사람 김민규, 이렇게 개인으로 볼 수 있을 만큼 시간이 지난 것이다.”
 
-활동가들 모두 끝까지 북한사람들과 동행했지만, 당시 29살인 가영의 행동은 놀랄만큼 기민하고 그 사랑은 성자와도 같은 느낌을 주어 가슴 먹먹해지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가영은 모두를 다 책임져야 하는 위치였다.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무사히 제3국으로 인도해야 하는 책임감이 막중했다. 반면 아영은 언니들을 따라가는 위치였고, 그러니까 투정도 부릴 수 있었다. 함께 가기로 약속했으면 끝까지 간다는 것, 그것이 가영의 약속이었고 그 약속을 지켰다.
 
실제로 가영은 성자 같은 면이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배고픈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단식도 많이 했다. ‘우리는 돌아갈 곳이 있잖니, 그러니 돌아갈 곳 없는 사람들의 처지를 어떻게 이해하겠니?’ 라고 하면서, 북한사람들을 100%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 자책했고, 끊임없이 이해하기를 꿈꿨던 사람이다.”
 
-1부 끝에서, 만금은 당신들은 왜 우리를 도와주는 거냐고 묻는다. 여기에 대한 답변을 작가후기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이 이 소설이 주는 메시지라고 보아도 될지.
 
“북한식량난민이라고 하면, 한국사람들은 ‘우리가 왜 그들을 도와주어야 되느냐’ 라는 질문이 자동적으로 따라 온다. 일부에서는 대북 퍼주기 라고 비난하고, 일부는 적을 먹여 살릴 일이 있냐고 반문한다. ‘북한’이라는 단어를 빼면, 우리는 이웃나라에서 이렇게 굶주림에 죽어가는 어린이와 노인들, 여성들의 처참한 상황을 알게 된다면 도와주자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다. ‘북한’이라는 단어만 빼면 말이다.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난민을 도와주자고 한다면 사람들은 선뜻 모금에 참여하지만 죽어가는 북한어린이를 돕자고 하면 왜? 라고 묻는다. 소설에서는 만금이 묻는 거지만, 나는 한국사회에 북한 사람들을 왜 도와주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 소설을 통해 답하고 싶었다. 그 답은 ‘북한’이라는 단어만 빼면 쉽게 찾을 수 있는 답이다. 그런데 ‘북한’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어려워 진다.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북한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체제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소설의 제목만 보고 연애소설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 독자들이 많다. ‘오래된 약속’의 의미는 무엇인가?
 
“3부에서, 연변 농촌마을에서 만난 탈북여성 춘희가 등장한다. 남한사람과 북한사람이 처음 만나면 서로 경계하기 마련인데, ‘통일’이라는 단어에서 두 사람의 끊어진 이야기가 이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남북한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서로 동의하고 있는 것, 오래 전에, 지금도 서로간 입버릇처럼 하는 약속. 그것이 이 소설의 제목이다.
 
이 소설 속 주인공들, 남한사람들 일영, 이영, 삼영, 가영, 나영, 다영에게 ‘오래된 약속’은 북한사람들과 끝까지 함께 하는 것, 동행하는 것이 오래된 약속일 것이다.”
 
-소설 이후의 이야기를 해보자. 일명 ‘핑퐁난민사건’(탈북자들이 제3국으로 넘어가 한국대사관에 망명신청을 했지만, 남한 정부는 이들을 다시 국경지대로 쫓아냈다. 북한식량난민들이 이 국경 저 국경을 왔다 갔다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고, 결국 제3의 경로로 대부분이 남한으로 왔다. 아영을 비롯한 남한 활동가들은 돌아와서 어떻게 지냈는지? 그 지독하고 특별하며 비밀스러운 경험들을 안고서.

▲ 2012년 5월 15일 <일다> "인터뷰 강좌"에서 강의 중인 윤정은 기자  ©일다 
 
“이 사람들은 들어오긴 했지만 북한식량난민을 대하는 한국정부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탈북자들의 대사관 난입 사건, 제3국으로 떠돌아다니는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다. 더 이상 힘은 없고, 절망적이었다. 큰 병을 앓은 사람도 있고, 모두들 오랫동안 후유증을 앓았다. 북한사람들 이야기가 나오면 막막하고 답답한 심정이었다. 우리가 손 델 수 없는 거대한 분단과 식량난, 한 개인으로서는 해석할 수 없는 거대한 이념적 테제 같은 것이 느껴지니까 항상 무기력감이 있었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 이후 서서히 달라지는 남북한 정세를 보면서, 남북이 서로 교류하게 되고, 북한식량난민들에 대해서도 달라질 모습을 기대했다. 대북지원 사업도 조금 이루어지고, 새터민이 2만 명일 만큼 변화도 있었다. 그렇지만 식량난 때문에 국경을 넘는 북한난민들의 현실은 10년, 15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만금과는 지금도 계속 친구로 지내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 만금은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탈북자 중에서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자신이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밝히는 사람은 드물다. 스스로 탈북자임을 알리는 경우는 북한 체제를 비난하는 정치 선전이나, 남한의 보수층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만금은 정치 선전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북한에서 온 사람으로서 주눅 들지 않으며,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이다. 그만큼 남한 사회에서 잘 정착한 경우에 해당한다.
 
만금은 ‘또 다른 탈북자’의 존재를 드러내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 사람이면서 남한에서 살아가는 ‘경계인’으로서 정체성을 드러내는 사람이다. 또한 자기 식으로 남북한을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만금과 격의 없는 친구이면서도, 한편으로 그녀가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저널리스트로서 굉장히 의미가 있었다.”
 
-북한은 김정은 체제가 시작되었고, 한국사회에선 다시 중국 탈북자 북송 문제가 쟁점화되었다. 북한과 ‘탈북자’를 바라보는 남한사람들의 마음은 복잡하다. 어떤 제안을 하고 싶은가.
 
“언제나 탈북자 문제는 정치적으로 뜨거운 감자이다. ‘탈북자 인권’이라는 호소하는 가운데도 벌써 이념과 정치가 들어가 있다. 우리의 시선이 이미 그렇게 이분법적인 이념 안에 고정되어 있다. 그래서 보수가 말하든 진보가 말하든 회의적이다. 또 정부가 말하는 탈북자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과 조치에도 진정성이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이념을 떠나, 한반도에서 평화롭게 삶을 살아가고 싶은 거주자의 입장에서, 주민의 입장에서, 북한의 식량난과 탈북자의 인권 문제를 말하고 싶다. 분단이라는 구조 안에서 그 동안 개인은 없었다. 남한 체제, 북한 체제 밖에 없다. 전쟁의 위협이 제거되기를 바라며 안전하게 살아가고 싶은 주민으로서의 권리, 그리고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거주자로서 북한 문제를 보았으면 좋겠다.”
 
통일은 체제나 이념이 아닌 ‘동행’임을 알게해준 책
 
<오래된 약속>을 읽으며 분단의 해소와 통일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체제로서의 통일, 이념으로서의 통일, 거창한 담론으로서의 통일이 아니라, ‘남과 북의 오래된 약속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통일은 집권세력 혹은 권력자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겉으로는 어떤 일시적 사건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상 통일은 남과 북의 관계 맺기 과정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남과 북이 어떻게 만날 것인가는, 암묵적인 우리의 오래된 약속을 기억하며, 서로를 알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때 외면하지 않고 주고받으며, 갈등과 화해의 시간을 거쳐 함께 동행해가는 남과 북의 사람들에게 달렸다.
 
소설 속 가영, 일영, 아영 등을 통해서, 그리고 만금을 통해서 ‘오래된 약속’을 이루는 힘이 우리 스스로에게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인간의 다른 인간에 대한 사랑이 어디에까지 미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람들, 지금도 이름 없이 국경을 오가며 생사가 걸린 사람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 이들의 세계는 이미 분단을 넘었다.
 
북한에 대한 이데올로기나 편견을 내려놓고 마음 속에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경계를 넘어, 북한주민과 탈북자들의 삶과 만나기를 원하는 사람들 손에 이 작품이 들려지길 바란다.  (조이여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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