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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 말하다

9살에 겪은 성폭력, 내게 '선택'이 있었을까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2. 5. 19. 08:30

첫 번째 강간에 대한 기억
<꽃을 던지고 싶다> 5. 선택이 있었을까 
 
[성폭력 피해생존자의 기록, “꽃을 던지고 싶다”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서울로 올라온 초등학교 2학년, 방한 칸 마련하지 못한 우리 가족은 엄마가 운영하는 식당의 의자에서 밤에 잠을 청해야 하는 생활을 하였다.
 
공업사의 식당에 의자를 붙이고 잠자리를 청해야 하는 가난함 속에서, 학교가 파하면 나는 저녁 때까지 자동차 공업사 내의 수리를 기다리는 차 안에서 숙제도 하고 잠도 자고 놀기도 했다.
 
그런 일상 속에서 식당 앞의 유원지에 가서 강을 바라보는 것은 즐거운 일 중 하나였다. 식당을 자주 찾는 손님 중 한 사람이었던 그 남자가 유원지를 데려다 달라는 말에, 나는 4월의 싱그러운 강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앞장서게 되었다. 낮이어서 인지 뚝섬유원지는 유독 그날따라 한가로워 보였다.
 
강을 바라보고 앉아 있던 9살의 나에게 그 남자는 다가와 앉았다. 그 남자는 나에게 재미있는 놀이를 하자고 제안했다. 기분이 좋아지는 놀이라고 했다.
 
그 남자는 나를 끌어당기더니 가슴이라고 할 것도 없는 가슴을 혀로 빨기 시작했다.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별로라고 이야기를 한 것 같다. 다시 나에게 입에다 혀를 집어넣고 핥기 시작했다.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불쾌함이 밀려 왔다. 그 남자를 밀어내려고 애를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그 남자는 나에게 질문을 했다.
 
“어디가 더 기분이 좋아, 가슴이야 혀야?”
 
생생한 기억. 어디가 더 좋을 수가 있었을까? 그 상황에서 어느 것이 더 좋을 수가 있었을까?
 
“둘 다 별로예요.”
 
그 남자는 나에게 선택을 하라고 했다. 어디가 더 좋은지를, 어른이 묻는 말에 대답을 잘 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나에게 주어진 선택은 둘 중 하나였다. 그 외의 선택은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차라리 가슴 쪽이 낫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어른들의 말의 순종하라고 배우긴 했어도 싫다는 말을, 안 된다는 말을 해도 된다는 사실은 배운 적이 없었다. 그때는 성폭력 예방교육도 없었고, ‘no’라고 말하는 법을 알지도 못했다.
 
설령 내가 ‘no’라고 말을 했다면 그 상황이 달라졌을까? 겨우 9살이었던 내가 ‘no’라고 말을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행동을 멈추고 사과를 했을까? 아이들에게 ‘no’라고 말을 하라는 것이 더 큰 위험을 만들지는 않는 것일까? 과거를 되돌릴 수 없기에 나는 그때 ‘no’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 선택이 어던 결과를 가져올지도 지금은 알 수 없다.
 
나의 기분이나 대답과 상관없이 순간적으로 난 눕혀졌고 치마 속으로 그 남자의 손이 들어왔다. 커다란 통증이 일어났고, 난 비명이 났으나 곧 그 사람의 혀가 그마저도 차단시켰다. 구역질이 났으며 구역질을 하는 입 속으로 그 남자의 커다란 성기가 들어왔다.
 
눈물이 나는 고통이 한동안 가해졌고 난 죽을 것처럼 아팠다. 조금 후에 눈을 뜨니 아무도 없었고, 난 무서운 꿈을 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도 선명한 통증과 토사물만이 악몽이 아님을 알게 해줬다.
 
한참을 아파서 걷을 수가 없었으며, 나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벤치로 기어가 한참을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지 알기엔 난 너무 어린 나이였고, 그냥 그 남자가 나를 아프게 했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저녁이 다 되어 가게로 갔으나 아직도 멍자국이 남아 있는 엄마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에게 일어났던 일이 무엇인지 어떻게 불러야 할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할 정도로 어린 나이였지만, 분명하게 느꼈던 것은 비밀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일 이 일이 들키기라도 하면 나는 비난 받거나 더러운 사람으로 낙인 될 거라는 두려움이 있었고, 무엇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 나를 보호해줄 어른이 존재하지 않았다. (너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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