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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주민은 핵발전소를 거부합니다!
<박혜령의 숲에서 보낸 편지> 3. 영덕주민들의 반핵 운동 

2010년 12월 중순, 영덕군청의 홈페이지에 한 주민이 영덕 핵발전소 유치를 위해 영덕군수가 의회에 동의를 구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의회에서는 주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유치신청 동의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하고, 이것을 근거로 2010년 12월 31일 영덕군수는 핵발전소 유치신청서를 제출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후쿠시마에서는 이에 경고하기라도 하듯이 대참사가 일어났고, 영덕 또한 그 충격에서 한참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평소 국가나 핵발전론자들은 원자력발전소에서 사고가 날 가능성은 거의 0%이며, 사고가 나도 모든 상황에 대한 대처가 가능한 안전한 에너지라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의 상황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수습은커녕 방사능 오염으로 인한 안타까운 소식들이 날마다 이어지고 있었다. 앞으로 핵발전소를 껴안고 살아가게 될지 모르는 영덕주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술렁이게 되었다.

그러나 사석에서도 이 중요한 지역의 문제를 말할 수 없었다. 지난 10여 년간 3차례의 핵폐기장 반대의 경험이 남긴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고 우리에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세 차례의 핵폐기장 반대운동이 지역에 남긴 상처
 


 < 영덕 핵폐기장 반대운동의 역사 >
 
수차례에 걸친 영덕군 내 핵폐기장 유치 반대운동의 선봉에 서서 핵폐기장 건설을 무산시킨 사람들 다수가 시위로 인해 재판장에 서고, 거금의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식당을 운영하던 주민들 몇몇은 불매 종용으로 식당을 폐업하고 고향을 떠났다.
 
다수의 젊은이들이 고향을 찾아 새로운 지역사회를 꿈꾸었지만, 몇 차례 핵폐기장 반대에 동참하고는 다시 도시로 떠나버렸다. 지역발전에 저해되었다는 오명을 떠안은 채.
 
농사를 짓던 농민은 각종 인허가를 이것저것 핑계로 내주지 않아 몇 년을 골치를 앓았다. 또 다른 농민은 농사를 아예 접어야 했고, 현재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더러는 지역에서 날품도 끼워주지 않아 전국을 떠돌며 일용직에 떠돌이 생활을 이어왔다.
 
그 외 대다수는 지역발전을 저해한 반역으로 몰려, 지역 사회에서 배척당한 채 이름도 내세우지 못하고 권력에 굴복했다. 찬성 측에 선 몇 사람은 거액의 지원 사업을 받아 지역유지로 부상하기도 했다. 우리는 그저 우연의 일이라고 믿는다.
 
현재 영덕군수는 당시의 핵폐기장을 추진하던 그 군수이며, 영덕의 유명한 옥계계곡을 수몰하여 달산댐을 추진 중이고, 천혜의 수자원 영덕 앞바다에 핵발전소를 유치할 계획이다. 또한 10년이 넘게 시도된 핵폐기장도 언젠가 곧 들어올 거라는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소문은 끝이 없다. 얼마 전 포항에 유치하려다가 시민들의 반대로 무산된 화력발전소도 이참에 영덕에 짓자는 의견으로, 지역의 단체에서 유치를 추진한다는 소문이다. 이 모든 소문과 이야기는 주민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일부의 단체이거나 영덕군청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다.
 
핵발전소 반대 투쟁을 막아버린 것은 누구인가 
 
▲ 2003년 영덕 핵폐기장 반대집회에서 주민들이 삭발식을 진행하고 있다.    

 
2011년 6월, 영덕의 주민들과 나는 힘겹게 영덕 핵발전소 유치백지화 투쟁위원회 발족식을 준비하게 되었다. 모든 회의는 비밀리에 진행되었지만 그 와중에 미행과 협박 전화도 있었다. 이전에 영덕주민들이 겪었던 부당한 현실은 2011년에 그대로 재현되거나 더 심각한 상황으로 드러났다.
 
이 행사를 위해 플래카드를 제작하던 지역의 광고물품 제작사가 행사전날 갑자기 울먹이며 전화했다. 추가의 광고물을 제작해 줄 수 없다고 한다. 플래카드를 제작했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앞으로 살기가 조금 피곤할거라는 말을 했다며, 지역에서 밥벌이가 끊겨 이곳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한숨이 계속되었다. 지금도 광고물 제작은 불가능하며 현수막을 거는 것도 불가능하다.
 
신문 삽지를 위해 신문지국을 찾았다. 지국에서는 삽지를 해서 군청에 발각되면 바로 가게를 닫아야 한다며 거절했다. 지난 핵폐기장때 나섰다가 밥줄이 끊길 뻔했단다. 삽지 서비스를 두고 1시간이 넘는 실랑이를 했다. 결국 1개 신문지국은 거절당하고, 1개 지국은 군청에는 넣지 않는 조건으로 겨우 수락하였다.
 
포스터는 군청에서 ‘불법부착물’이라며 직접 철거하였고, 행사장에서는 군청직원이 주민을 가장해 사진을 찍어 신원을 파악했다. 그나마 용기 낸 주민들은 서둘러 행사장을 떠났다. 남아 있는 주민들은 수건과 모자 그리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핵발전소 반대 강연회 행사장을 지켰다. 반대대책위 발족식 집회에서는 주민들이 아예 본 대열에 서지 못했으며, 주위에서 서성이며 최소한의 양심을 지켜야 했다.
 
주민들의 서명을 받는 것도 거의 불가능했다. 혹시 자신들의 신원이 군청에 알려지면 보복 당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작용했다. 지난 2005년 실제 살생부가 있다는 소문이 돌아 당시의 민심은 흉흉함을 넘어 공포에 질려있었다. 이 이야기는 텔레비전 사극의 에피소드가 아니다. 실제 2005년부터 2012년 현재까지 영덕 주민들이 국가와 정부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에 대해 느끼는 공포와 억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길을 지나다니면 대부분의 얼굴을 알 정도로 좁은 시골지역은, 조금 과장된 표현으로 누구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 것도 알 정도로 아직은 옛 정서와 습관이 남아있다. 이런 지역 사회에서 말 한마디는 확성기 없이도 전 지역에 퍼지게 된다. 오늘 내가 던진 한마디가 저녁이면 전 영덕에 퍼진다고 할 정도이니 사석에서도 말 한마디 편히 할 수 없다.
 
2011년 12월 23일 신규핵발전소 후보지 선정 발표가 있던 날, 우리 집에는 여러 통의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건 이는 침통한 목소리로 지역주민임을 밝히며 미안하고 부끄럽다는 고백을 털어놓았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격분했고, 더 이상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고 숨죽여 자신의 울분을 토해내고 있었다.
 
마음이 말한다. 정신이 소리친다. 이들을 감싸 안고 어루만지고 격려하고 그러나 채찍질도 해야 한다고. 나는 한참을 소리 내어 울었다.
 
그들에게도 시대의 양심이 있고 무엇이 잘못인지도 알며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이에 저항해야 한다는 윤리가 있다. 도대체 누가 무엇이 이들을 자신의 양심의 소리에 귀 닫고 입 닫게 하였을까? 누가 이들을 자신들의 판단과 결정을 말조차 할 수 없는 바보로 만들고 있는가 말이다.
 
‘인구 적고 학력 낮고 서울에서 먼’곳이 적지? 
 

▲ 2012년 확정될 신규핵발전소 예정부지 해안마을 전경     
  
정부에서는 신규 원전의 후보지로 적지인 곳의 조건으로 ‘인구가 적고 학력 수준이 낮으며 서울에서 먼 곳’을 꼽고 있다. 핵발전소같이 위험한 건물을 지어야 한다면, 부지의 안정성 등이 최우선 조건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 한국의 기본 입장은 이런 조건의 장소에 원자력발전소를 짓는 것이 효율적이고 적합하다고 믿는다. 국가의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고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까지도 져야하는 중요한 문제를 비상식과 비과학적 논리로 접근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게다가 1년간 진행한 후보 부지의 선정 과정에서 영덕군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구체적인 증거로 밝히지도 못할 여론조사의 수치만을 들어 51%가 찬성이라고 밝히고 있다. 영덕군수는 절반을 겨우 넘긴 자신들의 여론조사 결과를 주민 대다수가 찬성이라고 둔갑시켜 거짓을 말한다.

그간 단 한 차례도 공청회나 토론회 등의 여론수렴과정과 절차가 없었으며, 앞으로도 주민 의견 수렴이나 투표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군수가 공언한다. 게다가 한수원과 군수가 지난 1년간 진행한 후보지 선정의 내용에 대해서도, 지역주민들은 언론을 통해 알고 있는 내용이 전부이다.
 
‘적은 인구에 학력수준이 낮고 서울에서 먼’ 이곳에도 사람이 살고, 그들의 인생이 있고, 존중받아 마땅한 국민의 권리와 인권이란 것이 있다. 그리고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것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천부적 권리’가 아닌가? 부디 주민들의 대부분이 찬성한다는 등의 언론보도로 주민들의 의견을 묵살하거나 차단하지 않기를 바란다.
 
권력 앞에서 힘없는 약자일 수밖에 없는 이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그래서 아름다운 동해안 영덕을 지키며 그들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지지와 지원이 필요하다.
 
이들에게 많은 이웃이 있고, 이 짐을 나의 것으로 받아 나누어지겠다는 응원과 참여가 있다는 것을, 핵발전소의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는 도시 사람들이 보여주기를 바란다. 모든 국민들이 나의 일로 이 문제를 받아들여 더 이상 영덕과 삼척의 주민들에게만 핵발전소라는 짐을 지우는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우리가 아니기를 간곡히 바란다.
 
우리는 말하고 싶다. 핵발전소 없는 청정영덕을 지키고 싶다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용감하게 싸워서 지켜 냈다라고!

박혜령 / 대안언론 <일다> 즐겨찾기!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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