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일다> 장애여성, 숨은 그림 찾기(2) 드라마 <신기생뎐> 
 
“장애여성, 숨은 그림 찾기” 연재는 다섯 명의 장애여성들이 다양한 ‘매체 읽기’를 통해 비장애인, 남성 중심의 주류 시각으로는 놓칠 수 있는 시선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현대판 기생 이야기를 보며
 

 ©  SBS 주말특별기획드라마 <신기생뎐> 

 
주말 TV에서 한복을 입고 나온 드라마 여주인공이 노래를 하고 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노래길래 기억을 되새겨보니 내 활동보조인의 휴대폰 컬러링이다. 트로트를 발라드처럼 불러서 느낌은 많이 달랐지만 같은 노래였다. ‘요즘 세상에 기생이라니’ 참 특이하다며 보는데, 주위에서 막장 드라마를 보냐고 은근히 눈치를 준다. <신기생뎐>이라는 드라마를 처음 보게 됐을 때 일이다.
 
단철수는 주워온 업둥이를 성인이 될 때까지 친딸처럼 키우다 재혼을 한다. 평소 부드러운 성격으로 딸 사란과 사이 좋게 살던 그는, 재혼한 아내의 교묘한 이간질로 딸과 사이가 멀어진다. 급기야 아내의 딸에 대한 구박과 폭로(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기생이 되어 키워준 은혜를 갚으라는 강요도 모르쇠 일관한다. 결국 그는 딸 사란이 기생이 되어 기생집에 들어가는 것을 방관한다.
 
드라마는 이런 이유로 여주인공이 현대판 기생이 되어 벌어지는 이야기다.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나오는 드라마를 보고 있자니, 생각나는 동서양 고전문학 작품들이 몇 있었다. 느낌은 다르지만 비슷한 해석이 가능할 것 같아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딸의 생살여탈권을 쥔 고전문학 속 아버지들
 
<장화홍련전>이라고 하면, 보통 계모의 간계로 억울하게 죽은 자매의 이야기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계모의 간계보다 더 놀라운 것이 있는데, 바로 아버지 배좌수다.
 
어느 날 밤 맏딸 장화가 낙태했다는 것을 안 배좌수는 묻지도 않고 아들에게 장화를 데려가 죽이라고 한다.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배좌수는 후처와 그 사이에서 낳은 아들 삼형제에게는 관심 없고, 오직 장화와 홍련 자매만 금지옥엽 예뻐했다. 그런 아버지가 사건을 조사해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즉각 딸의 죽음을 명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족들의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까지 움켜진 가장의 ‘명예살인’이 아니고 뭔가.
 
1598년 완성돼 1600년에 초연한 셰익스피어의 <헛소동>은 유쾌하고 발랄한 희곡이다. 성주의 딸과 사랑에 빠져 약혼한 클라우디오 백작은 약혼녀 히어로의 정절을 의심해, 감히 자기에게 “썩어빠진 오렌지를 주었다”고 화내며 그녀를 떠나버린다. 아버지 레오나토는 결백하다는 딸의 호소도 듣지 않은 채, 노발대발하며 딸의 가슴을 찌를 단검을 찾을 뿐이다. 물론 이 모든 게 헛소동으로 끝나고 해피엔딩이 되지만, 아버지 레오나토가 딸에게 던지는 분노에 찬 말들은 끔찍하기 짝이 없다.
 
향기로운 고전문학의 세계에서 만난, 가부장제의 수장인 아버지의 모습은 진정한 막장이다.
 
운에 맡겨지는 장애여성들의 미래
 
개인적으로 운 좋은 이야기를 하나 해보겠다. 십대 때 나의 아버지에게도 딸의 미래를 결정지을 수 있는 선택의 순간이 온 적이 있다.
 
체력이 버티지 못해서 진학을 하는 대신, 집에서 독서와 음악과 그림에 빠져 사는 걸 보다 못한 동네 신부님이 오랫동안 아버지를 설득했다. 시설로 보내어 자기 앞가림은 하고 살게 하라고. 결국 버티지 못한 아버지는 신부님과 함께 나를 데리고 2시간여를 달려 장애인시설을 견학하고 왔다.
 
그 후로 동네에는 내가 곧 시설에 간다는 소문이 났다. 다니던 교회 고등부에서는 송별회를 하네 그러고 있는데, 우리 집은 평소와 똑같았다. 어느 날 시설 입소 날짜를 정하자며 신부님이 찾아왔다. 아버지는 “애가 가기 싫다고 해서 안 되겠다”고 돌려 말하며 거절했다.
 
부모님은 처음부터 나를 시설로 보낼 생각이 없었다. 단지 주위에서 말이 많아지자, 한번쯤 치러야 할 절차겠거니 하셨던 거다. 혹자는 내가 운이 좋아 민주적인 아버지를 만났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분명히 민주적인 분이었고 나는 운 좋게 그런 아버지의 딸로 태어났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운’에 딸들의 미래가 맡겨지는 사회는 정말 비참하다.
 
다시 드라마 <신기생뎐>으로 돌아가보자. 그 옛날 장화의 아버지가 그랬고, 머나먼 타국의 히어로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단사란의 아버지도 가부장의 속성에 따라 딸의 인생을 자기 손 안에 쥐어진 소유물인 듯 쥐락펴략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인간 내면의 오장육부를 드러내듯 품위와 내숭을 버리고(반대로 노골적으로 품위와 내숭을 떨어대기도 하고) 개연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그러면서 막장드라마라는 온갖 욕을 먹으면서도 승승장구 시청률을 올렸다.
 
“드라마가 앞뒤가 안 맞잖아, 앞 뒤가…” 하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도 앞뒤가 딱딱 맞지 않을 때가 더 많고, 개연성도 별로 없다. 있지도 않은 품위를 지키겠다며 그렇지 않은 척할 때가 많을 뿐이다.
 
질문에 답하겠다. 막장드라마를 왜 보냐고? 장애여성의 삶이 너무 많은 순간순간 막장이라서. 또 다른 막장을 보면서 실소를 터뜨린다. 현실이 막장인데 드라마라고 막장은 안 된다는 법이 어디 있나. (다비다)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   2024/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