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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윤하의 <딸을 만나러 가는 길> 네번째 이야기 
 
며칠 전, 마음에 드는 한 웹 사이트를 발견하고는 난 망설이지 않고 회원가입을 클릭했다. 그리고 요구하는 문항들에 꼼꼼하게 체크를 해 나가다, 결혼여부를 묻는 질문 앞에서는 늘 그렇듯 뭘 쓸지 잠시 주저했다. 미혼, 기혼, 나는 그것 가운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이혼’이기 때문이다.
 
18년 전, 이혼할 당시 내 나이는 스물일곱 살이었다. 난 정말 어리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혼했다고 말하는 것이 너무 수치스러웠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사람으로부터 ‘결혼은 했냐’고 질문 받을 때마다 “아직요”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가끔은 “나이도 제법 되는데, 결혼해야죠!”하며 덧붙이는 사람한테는, “아직, 결혼 생각은 없어요”라고 더 거짓말을 늘어놓곤 했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는다는 말이 맞다. 이렇게 말해놓고 나면, 결혼은커녕 아이조차 낳아본 적 없는 미혼인 양 굴어야 했다. 그것은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마치 혼자 길을 걷다가 돌부리에 채어 넘어졌을 때, 아파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벌떡 일어나 주위에서 이런 내 꼴을 본 사람이 없는지가 더욱 마음에 걸려, 두리번거리는 듯한 감정에 사로잡히곤 했다.
 
이혼 후 오랫동안, 난 처음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미혼인 것처럼 행동하다가 관계가 좀 더 형성되어 계속 볼 사람으로 받아들이면, 그때서야 마치 고백을 하듯 이혼사실을 말하곤 했다. 거짓말을 하는 것도 마음이 편하지 않은데, 이혼사실을 엄청난 고백처럼 말해야 하는 상황도 마음은 아주 불편하고 괴로웠다.
 
내가 왜 당당하게 이혼했다는 말을 할 수 없는지 안타깝기만 했다.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정말 이혼하길 잘했다고 늘 생각하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이혼은 콤플렉스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깨닫자, 더욱 모멸감으로 괴로웠다. 사람들에게 내 상황을 당당하고 꾸밈없이 말하고 싶었다. 그것이 사실이니까. 사실을 사실대로 말할 수 없게 하는 현실은 누가 만든 것도 아닌데, 강요받고 있다는 느낌을 거둘 수가 없었다.
 
나는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이혼했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 꼬박 3년이 걸렸다. 그것은 용기를 내야했고, 담담함을 가장해야 했고, 무엇보다 비참함을 느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내가 좋았다.
 
나는 그 직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생활을 하면서 놀란 것은 프랑스인들에게 이혼은 그저 자기의 상황을 설명하는 한 표현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우리 지도교수님은 수업 중에 남편의 얘기를 하게 될 때마다, “내 둘째 남편은~”이라고 현재 남편을 지칭했다. 나는 꼭 둘째남편이라고 하면서까지 재혼사실을 밝힐 필요가 있을까? 어이없어했지만, 그것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 했다.
 
좀 더 살면서 알게 된 것은, 프랑스 사람들은 호칭이 뒤죽박죽되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재혼한 가정의 경우, 모든 사람들은 새아버지, 새어머니, 이복동생, 이복형님, 등의 호칭으로 자기와 관계된 가족들을 지칭했다. 그것을 불편해하거나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대화할 때도 항상 이런 호칭에 맞춰 가족들을 거론한다.
 
또 서류에 결혼여부를 표시하는 항목은 ‘비혼/기혼/이혼/사별’로 구분되어 있어, 선택하기 쉬웠다. 결혼여부는 그저 어떤 사람의 상황을 설명하는 한 요소일 뿐, 그 이상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 있을 때보다 ‘이혼했다’고 말하는 것이 힘들지 않았고, 점점 진심으로 담담해져갔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누구에게든 ‘이혼했다’고 잘 말한다. 그것이 힘들지도 않다. 그럴 때마다 간혹 당황해하는 사람은 상대방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이혼했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하지만, 그날처럼 웹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하거나 서류에 자기 신상 정보를 기입할 때마다 ‘미혼/기혼’, 단 두 종류의 선택 상황 앞에서는 잠깐씩 당황스러움을 느낀다.
 
늦게야 깨달았지만, 사실을 사실대로 말할 수 없도록 강요받고 있다는 느낌은 틀린 것은 아니었다. 이런 식의 구분이 이혼한, 또는 사별한 사람들에게 자기 상황을 말하지 못하도록 강요한다. ‘미혼’도 엄격하게 말하면, ‘비혼’이 적당한 표현이겠지만, 그것은 차치하고라도 이러한 구분은 이혼이나 사별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표현할 기회를 아예 차단하고 있다.
 
이런 태도의 밑바닥에 이혼이나 사별을 말해서는 안 되는, 꼭꼭 숨겨야 하는 무엇이라는 생각이 깔려있는 것은 아닐까? (윤하)  *일다 즐겨찾기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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