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본 재난영화 속의 두 장면이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터져 나오는 용암이 불비로 쏟아져 내리는 가운데 희열로 가득 차 죽음을 맞는 광인과, 거대한 산도 거침없이 집어삼키는, 무시무시한 해일이 밀려오는 중에도 담담히 생을 접는 노승. 두 사람은 다가오는 죽음을 피하려 하지 않았다. 한 사람은 도취되어, 또 다른 사람은 초월한 듯 죽음을 받아들인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나의 죽음 우리는 누구나 죽는다.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이는 없다. 다만 실감하지 못하며 조금이라도 그 시간을 뒤로 미루길 바랄 따름이다. 생명체인 이상 그 생명을 보전하려는 욕구는 지극히 자연스럽다. 하지만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다른 점 가운데 하나는 바로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는..
하루 동안 장마비가 엄청 쏟아져 내렸다. 밖에서 비가 오건, 바람이 불건, 안에서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니 난 컴퓨터를 켰다. 그 순간, 퍽! 퍽! 귀를 날카롭게 건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에서 나는 소리지?’ 하며 잠시 두리번거리다 타는 냄새와 합선되는 소리에 전기스위치를 껐다. 하지만, 12살이 넘은 모니터는 결국 사용불능 상태가 되었다. 쉼 없는, 크고 작은 변화로 이뤄진 일상의 흐름 평소 컴퓨터로 일하는지라, 모니터가 망가지면서 내 일상의 리듬에 균열이 생겼다. 당장 컴퓨터로 해야 할 일들이 중단되었다. 사실, 필기구로 해도 되는 일이지만 워낙 컴퓨터에 의존해 있었던 모양이다. 일의 리듬이 깨어지니 의욕이 감퇴되고 컴퓨터가 필요하지 않는 일까지도 손을 대기가 싫어졌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