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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출범 5년 만에 지방의회 진출 성과 

※글쓴이 박강성주씨는 여성주의 국제관계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뜻하지 않은 기회에 스웨덴에 있게 되어, 현재 영화 <렛미인>의 겨울날씨 속에 일상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일다)

 
두 사람이 격렬하게 말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때 다가오는 어떤 이. 말다툼을 벌이는 이들의 옆에 서 그들에게 뭔가를 말한다. 하지만 알아듣기 힘든 소리에 의아해하는 사람들. 그리고 다가오는 또 다른 사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지만, 바로 옆 사람과 승리의 표시를 그려 보이며 즐거워한다. 바로…… 여성주의 정당이기 때문에.
 
‘느낌표’ 있는 여성주의 정당
 
▲ 정당 표식 중 하나. 여성주의 정당 (Feministiskt Initiativ, FI)의 약자 중 I를 !로 바꾸어 쓰고 있다.  *출처: F! 홈페이지 www.feministisktinitiativ.se

 
2010년 9월, 스웨덴 총선을 앞두고 나온 여성주의 정당)의 홍보영상의 내용이다. 참고로 스웨덴 여성주의 정당의 이름을 줄여 쓰면 FI가 되는데, 여기에서 I를 느낌표로 대신해 정식 약자를 F!로 쓰고 있다. 영상에 나온 대로 말이 필요 없는, ‘느낌표’ 있는 정당이라는 의미다.
 
이 내용은 (내가 이해하고 있는) 스웨덴 맥락에서의 여성주의 정당을 압축적으로 잘 그려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말다툼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좌/우 정치세력을 상징한다. 이는 2005년 여성주의 정당이 만들어진 배경과 관련이 있는데, 좌/우 세력으로 나눠질 수 있는 스웨덴의 주요 7개 정당들로는 여성주의 의제/정치가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이다(스웨덴 사민당이 좌를, 중도당이 우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고, 녹색당은 조금 다른 경우라고 하겠다). 참고로 당시 여성주의 정당의 창당을 주도했던 이는 스웨덴 ‘좌파당’을 이끌었던 구드룬 쉬만이다.
 
논쟁 중인 이들에게 다가왔던 사람은, 인종/극우주의 성격의 스웨덴 민주당을 가리킨다. 이 당은 총선을 앞두고 일찌감치 의회진출의 가능성이 높은 걸로 예상됐고, 그 어느 당의 과반수 확보도 어려운 상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 이야기됐다. 참고로 30대 초반의 이미 아케슨이 대표로 있는 스웨덴 민주당은 이번에 의석을 확보해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이는 여성주의 정당을 의미한다. 곧, 기존 정당에 대한 불신과 실망감이 스웨덴 민주당 같은 극우세력의 지지가 아닌, 바로 자신의 당의 지지로 이어져 여성주의 정당의 의회진출을 이루게 해달라는 것이다. 요약하면, 스웨덴 정치에서의 좌/우 경계를 문제 삼고 의회에 진출해 여성주의 정치를 적극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느낌표 있는 정치, 여성주의 정치를 추구하는 당이 스웨덴 여성주의 정당이다.
 
현지어를 못하는 상황에서 정보를 접하는 데 한계가 있긴 하지만, 당에 대한 대략의 그림을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2005년 4월에 만들어진 이 정당은, 출발 자체는 여성주의 정치를 위한 연합모임의 성격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구드룬 쉬만이 주도했고, 이어서 회원들과의 토론/투표를 거쳐 정식 당으로 거듭나게 된다. 현재 두 명의 대변인(구드룬 쉬만, 스티나 순드베리)이 대표 체제를 대신하고 있지만, 카리스마 있는 정치인으로 좌파당의 대표를 지녔던 쉬만이 실질적인 당대표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얘기된다.
 
2005년 출범 당시 많은 주목을 받았고, 조사에 따르면 선거에서 최대 10%를 얻게 될 것이라고 예상됐다고 한다. 하지만 2006년 9월 실제 총선에서는 0.68%의 저조한 기록을 보였다(의석을 확보할 수 있는 최저선은 4%). 그 뒤 2009년 유럽연합 의회 선거(2.2%), 2010년 스웨덴 총선(0.4%)에 계속 나섰지만 의석을 확보하지는 못 했다. 하지만, 2010년 스웨덴 남부의 어느 지역(Simrishamn)에서 8.9%의 지지율을 보이며 제3당을 차지했다. 그리하여 현재 그 지방의회에서 쉬만을 포함한 4명의 의원이 활동하고 있는 상태다.
 
여성주의 정치 실현의 노력
 
▲ 2005년 정당 출범 기자회견. *사진 출처: F!홈페이지.     

 
홍보자료에 따르면, 당은 무엇보다 여성주의 이슈와 관심을 제1의 정치의제로 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에 함께할 잠재적인 지지자를 가부장적 질서의 해체를 바라는 여성들과 여기에 함께할 남성들로 보고 있다. 그리고 가부장제는 인종, 이성애 중심주의, 계급 등과 결합해 작동하고 있다며 차별의 구조를 문제화한다.
 
그렇다고 모든 여성들이 모든 것에 동의하리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여성들은 각기 다른 관심사와 희망사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바로 가부장적 권력구조에 의해 여성들의 삶과 선택, 기회들이 제한되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스웨덴 사회에서의 성폭력, 임금차별 등이다. FI는 스웨덴의 거의 모든 정당들이 자신들을 여성주의 정당이라 말하고 있지만 여성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특히 각 정당 안에서 여성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여성들 관련 사안은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음을 강조한다. 이것이 여성주의 정당이 필요한 이유다.
 
구체적으로 선거와 관련된 자료를 보면, 2006년의 경우 여성이 남성에 비해 월평균 4300 크로나(당시 기준으로 약 56만원) 정도 적게 받는 것으로 되어 있고, 출산휴가의 81%가 여성들에 의한 것으로 나타나 심각한 불균형을 보였다. 그리고 46%의 여성들이 일생동안 남성에 의한 다양한 형태의 폭력에 고통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밤거리에서의 강간, 성소수자들에 대한 증오범죄가 증가하고 있는 상태였다.
 
2009년 유럽연합 의회 선거를 앞두고 발표한 자료에서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유럽에서의 가장 심각한 ‘안보’ 문제로 의제화하고 있다. 그리고 유럽연합과 관련해 ‘낙태할 수 있는 권리’를 인권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 조직 안에서의 성비 불균형, 회원국가들의 군사주의 문제 등을 의제로 삼았다. 가장 최근인 2010년 선거에서는 (2006년과 마찬가지로) 성평등한 임금제도 추진, 출산휴가 관련 개인별 할당제도, 피해자의 입증책임을 완화시키는 취지의 강간 관련법 개정 등을 주요의제로 내세웠다.
 
여성주의 정당 지지자들의 고민과 응원
 
▲ F!에서 참여한 성소수자 관련 행사. *사진 출처: F!홈페이지  

 
기숙사에 들어온 첫날, 짐을 풀어놓고 여기저기 둘러보던 중 어느 부엌에서 지지자의 것으로 보이는 여성주의 정당의 홍보물을 발견했다.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는데, 그만큼 열성적인 지지자들이 곳곳에 있다는 뜻일 것이다(다른 정당의 홍보물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언제나 옷에 정당의 배지를 달고 다니는 현지인 친구를 봐도 그렇다. 그런데 이 친구는 이번 선거에서 다른 당에 투표를 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중도보수당이 이끄는 연립정권이 다시 집권하는 것을 막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중앙의회 차원에서는 사민당/좌파당/녹색당의 ‘적녹 연합세력’을 찍었고, 지방의회 차원에서는 여성주의 정당을 찍었다고 한다.
 
선거를 앞두고 녹색당 성향의 세 명의 여성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다시 말해, 여성주의 정당을 심정적으로 지지하지만 이번 총선의 최대 관심거리였던 정권교체가 전략적으로 우선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참고로, 프레드릭 라인펠트 총리가 이끈 보수 연합세력이 모나 살린 사민당 대표가 이끈 적녹 연합세력을 이겼다. 이로써 사민당이 아닌 다른 세력이 두 번 연속 집권하게 되었는데 이는 스웨덴 현대사에서 처음이라고 한다. 한편 적녹 세력이 선거에서 이겼다면 스웨덴의 첫 여성 총리-모나 살린-가 탄생했을 것이다).
 
또 최근 대화를 나눈 이를 포함한 몇몇 사람은 여성주의 정당은 여성주의만을 다루는 ‘한 가지 이슈 정당’이라서 어려울 거라는 이야기도 했다(여성주의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 중 하나가 아닐까). 이런 점들을 생각했을 때 여성주의 정당의 중앙의회 진출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스웨덴 여성주의 정당은 ‘스웨덴은 이미 성평등이 이루어진 곳이다’는 ‘스웨덴 신화’를 비롯해 지명도와 재정, 언론보도 등 여러 가지 도전적인 환경에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작년 선거기간을 돌아보면, 내가 있는 지역의 선거광고만 보더라도 다른 당에 비해 10분의 1 정도 분량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지지와 도움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 중 ‘유명인’을 꼽아보자면 영화배우 제인 폰다,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이브 엔슬러, 그룹 아바에서 활동했던 베니 안데르손이 지지를 선언하거나 기부를 했다. 지방의회 진출은 이런 과정에서 이루어낸 스웨덴 여성주의자들의 (제도권 정치에서의) 첫 성과인 셈이다. 당원은 아니지만 온 마음으로 당을 응원한다는 친구의 말처럼, 여성주의 정당의 느낌표 정치가 더욱 힘을 발휘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박강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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