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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1. 1. 12. 15:18

[일다]의 책 소개 <학교엔 귀신이 산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가 극장에 걸린 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이 영화가 던진 강렬한 인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개봉 당시에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평단과 열혈관객이 지속적으로 지지해 왔으며 국외영화제들에 잇따라 초청된 바 있다. 이 영화는 '여고'에 '귀신'이 출현하는 공포영화라는 점에서 전작을 잇지만 그 공포가 출현하는 과정을 독특한 소재에서 추출함으로써 독보적인 영화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즉 10대 소녀들의 비극적인 사랑에서 공포를 끄집어냄으로써 생경하고 독특한 영화가 된 것이다.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에서 펴낸 ‘영화와 시선’ 시리즈 제 7권 <학교엔 귀신이 산다>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를 논한 영화평 묶음이다. 이 영화평들은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가 재현한 레즈비언 섹슈얼리티의 문제, 경계를 흐리는 매체적 특성 등 각기 다른 지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학적인 글인 만큼 난해한 이론적 수사를 남발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만,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의 독특한 특성들을 고려할 때 영화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최신 담론들을 소개했다는 점에서 읽을 만하다.

김정아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가 장르적 관습을 운용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는데, 이 영화가 교실 아이들로 대변되는 코미디의 세계와 효신으로 대변되는 오컬트(occult, 초자연적 사건이나 악령을 소재로 다루는 공포영화의 한 장르)의 세계로 나누어진다고 분석한다. 국어시간에 연안과 효신이 낭송하는 자작시는 두 세계의 성격을 확연하게 드러낸다. 연안의 시는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로써, 교사가 묵인할 정도의 가벼운 일탈이다. "우리가 사복을 입는 이유는 교복이 일본의 잔재이기 때문이고, 우리가 미팅을 하는 이유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정신 때문이고…" 반면에 효신의 시는 교실의 명랑한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진지한 암송이다. "아무도 없다 아무도 있다 그러나 없다 아닌가 있나 없는 것 같아…"

영화는 코미디와 오컬트의 세계가 차례로 현실과 대면하는 데 실패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코미디의 세계가 풍부하고 압도적인 현실들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교실은 부당한 권위에 대해 무력한 비웃음과 자조의 선을 넘지 않으며 외설을 넘어서는 성애, 맹목적 동감을 넘어서는 우정을 상상하려 하지 않는다. 때문에 교실은 효신과 시은의 키스에 야유를 보내며, 효신의 죽음마저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다.

신체검사 날, 갑자기 터진 비명소리는 효신의 죽음과 함께 공포 어린 오컬트의 세계가 출현함을 알린다. 오컬트는 나의 행동과 의지가 무의미할 때,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문제가 되었을 때 나타나는 세계로, 효신의 죽음을 기꺼이 포괄할 수 있다. 민아는 주문을 외우듯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교환일기를 통해 효신의 오컬트적인 세계 속으로 빠져든다. 그러나 효신은 죽었고, 효신과 시은의 옥상 신은 이미 과거 시제일 뿐이기에, 오컬트적 세계 역시 한계를 지닌다.

조은선과 김선아는 영화의 레즈비언 섹슈얼리티에 초점을 맞춘다. 조은선은 비디오 카메라라는 매체적 특성과 효신의 레즈비언 섹슈얼리티가 유사하다고 평가한다. 비디오카메라의 디지털 이미지는 컴퓨터 프로그램 조작을 통해 무의 상태에서도 어떤 이미지를 생산하기에, 사진처럼 어떤 진리나 진실을 찍어낼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효신의 상황은 그 무엇도 확실하지 않다. 효신과 시은의 관계는 과연 어떠했는지, 효신이 공형석 선생의 아이를 정말로 임신했는지, 효신이 왜 자살했는지는 모호한 풍문만이 남고,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단지 둘의 교환일기에서 넘쳐나는 미로 같은 기호들이 효신의 '진실'을 암시할 뿐이다. 이는 사회의 지배적 질서 안에 효신의 성 정체성이 확실하게 기입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비디오 카메라는 효신이 살아있을 때는 모호한 효신 자신의 상황을 찍으며, 효신이 죽은 뒤에는 학교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비추는, 누구의 시선인지 알 수 없는 불안한 화면으로 남는다.

한편 김선아는 기존의 한국 영화에서 여성의 동성애적 행위는 섹스를 통한 이성애의 결합 이전에 유혹이나 희롱 혹은 재미의 차원에서 끝났다는 점을 지적하며 레즈비언 섹슈얼리티에 관해 전통이 없는 빈곤한 상태에서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가 어떻게 대중영화적 타협을 거쳐 레즈비언 섹슈얼리티를 재현하는지를 고찰한다.

김선아는 효신이 중얼거린 '진실이 있다 혹은 없다'라는 시의 '진실'이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레즈비언 성 정체성을 함의한다고 전제하는데, 임신했다는 소문과 레즈비언이라는 풍문을 오가는 효신의 몸, 그리고 효신을 상실한 슬픔을 말하지 못하는 시은의 상황이 그 근거가 된다. 이들의 정체성은 사춘기 시절의 동성애는 시간이 지나면 이성애 사회로 편입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불안하고 유동적인 것으로 인식될 뿐이다.

또한 효신을 잃은 데서 비롯한 시은의 외상은 효신에 대한 기억과 그녀 자신의 환상들을 자꾸 화면으로 불러옴으로써 과거에서 미래로 향하는 일반적인 서사를 해체한다. 김선아는 이 같은 시간의 해체와 더불어 교환일기의 과잉된 기호들, 죽은 새와 같은 갑작스레 나타나는 상징적 이미지들, 십자가나 교회 종과 함께 나타나는 효신의 숭고한 이미지는 사회적으로 인정 받지 못하는 레즈비언 정체성을 그리는 데 적절하나 자칫하면 지나친 숭고함이나 신화화로 빠져들어 또다시 레즈비언에 대한 판타지로 빠질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책 말미에 실린 두 감독과의 인터뷰는 작가의 의도를 바탕으로,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각을 제시한다. 물론 작가의 의도가 영화를 보는 데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한다고 볼 필요는 없지만,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서로에게만 몰두하려고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어려운 '미숙하고 열만 많았던 시기의, 평생에 또 있을까 싶은 그런 사랑'을 그린 영화로 보기에 충분하다. 이 영화를 동성애와 성장의 코드로만 읽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인터뷰어 임재서는 남성적 지배질서가 우세한 사회에서 성장통을 겪었던 젊은 감독들이 10대 여성의 불안함과 자기 자신들의 고유한 통증을 잘 접합했기에 오히려 여성들을 잘 다룬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았겠는가, 라는 추측을 던진다.

많은 남성감독들의 영화가 여성들의 표피적인 이미지를 차용해서 결국 자기중심적인, 자기 세계에 갇힌 이야기를 만드는 데 그친다. 반면 이들 두 감독의 영화는 '효신의 죽음'과 같은 이유를 알 수 없는 현실들을 충분히 존중하면서, 성장통과 같은 자신의 고통을 바탕으로 그 생경한 현실들을 담으려고 몰두했기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평단의 칭찬을 그렇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눈에 띄게 남겨준 건 5년의 실업이다"라는 감독의 말은, 그 같은 영화를 만들려는 시도가 영화 판에서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아이러니하게 보여준다. 이들이 다시 메가폰을 잡을 때,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와는 또 다른 차원의 10대 영화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김윤은미)  * 일다 즐겨찾기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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