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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6년간 납∙벤젠 노출, 산재가 아니라고? 
 
인부 두 명이 로프에 매달려 건물 창문을 닦고 있었다. 인도를 걷던 친구와 나는 그 장면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올려다보기에도 목이 아플 만큼 건물은 높았다. 친구는 창문을 닦다가 떨어져 죽거나 다치는 사람들 수가 적지 않을 거라 했다.
  
▲ 고통스러운 백혈병 투병 끝에 지난 3월 31일 박지연씨는 결국 사망했다. 사진은 박지연씨의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강남삼성본관 앞에서는 진행된 1인시위와 기자회견 모습.  ©사진출처: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다음카페' samsunglabor')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저 높은 곳에 올라가 죽는 사람이 생겨야 하는 걸까? 기계가 대신 할 수는 없는 걸까? 내 말에 친구는 물었다.
 
“그런 기계도 만들 수 있나?”
“반도체도 만드는 나라에서 설마 유리창 닦는 기계 하나 못 만들까? 돈이 안 되니까 안 만드는 거겠지. 애꿎은 사람만 죽이고.”
 
그 대화가 있은 지 얼마 후,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던 중 백혈병에 걸린 박지연(23)씨가 오랜 투병 생활 끝에 목숨을 잃었다. 첨단 기술 반도체 회사에서 나온 (알려진 바로) 8번째 백혈병 사망자였다. 그 후 한 달도 되지 않은 4월 12일,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근무한 후 뇌종양 판정을 받은 한혜경(33)씨가 근로복지공단의 산재불승인에 맞서 심사청구를 제기했다.
 
거듭된 수술로 혼자 일어설 수도, 앉을 수도 없게 돼

 
8월 초 주말, 한혜경씨를 만나러 춘천으로 갔다. 춘천은 혜경씨가 어릴 때부터 자란 고향이다. 삼성전자 기흥공장에 근무하던 6년을 제외하고 그녀는 이곳을 떠나본 적이 없다. 그러나 혜경씨는 이제 춘천 어느 곳도 혼자 몸으로 다닐 수 없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일어설 수도 앉을 수도 걸을 수도 없다.
 
‘반올림’ 회원들의 방문으로 오랜만에 이뤄진 외출이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삼성반도체에서 일어나는 산업재해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려나가는 모임이다.
 
혜경씨와 반올림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자 목에 기브스를 한 여성이 눈에 들어온다. 혜경씨다. 뇌종양 제거 수술을 한 후 혜경씨는 언어, 보행, 시력 모두 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얼마 전에는 경추에 인공 뼈를 이식하는 목 디스크 수술을 받기도 했다. 거듭된 수술로 고달팠을 몸은 비쩍 말랐다.
 
수술 후 시력을 거의 잃은 데다 사물이 4개로 보이는 복시까지 겪고 있다. 복시현상 때문에 한쪽 알을 부옇게 막아 놓은 안경 뒤로 혜경씨가 눈을 찡긋거린다. 나도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반올림 사람들이 건배를 한다. 혜경씨도 건배를 위해 술잔을 받아든다. 술잔을 쥔 두 손이 바들거린다. 그녀의 어머니가 재빨리 손을 붙든다. 어머니가 집어준 음식을 받아먹는 혜경씨, 앉아있는 것을 제외하고 그녀가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혜경씨는 잘 웃는다. 사람들에게 곧잘 농담도 건다. 목소리가 높고 뚝뚝 끊긴다. 장난을 치며 "나는 뵈는 게 없어"라고 하는데, 그 말이 가슴에 와서 박힌다.
 
입사 3년째부터 생리가 멈춰
  
▲'반올림' 회원들의 방문으로 오랜만에 외출한 한혜경씨와 혜경씨의 어머니. 혜경씨는 뇌종양으로 투병중이다. © 사진출처: '반올림'     

 
혜경씨는 1995년 삼성전자반도체 사업부 기흥공장에 입사했다. 고등학교를 채 졸업하기도 전이었다. 6년 동안 혜경씨는 LCD를 제조하는 모듈 공정에서 일했다. 솔더크림을 회로기판 표면에 바르는 일이 주 업무였다. 작업장에는 늘 화학약품 냄새가 지독했다.
 
4조 3교대가 원칙이었지만 사실상 2교대 근무를 했고, 야간근무를 하는 날도 많았다. 늘 피곤했다. 기본급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삼성이라는 대기업에 다닌다는 자부심과 연말에 1000%까지 나오는 보너스는 매력적이었다.
 
입사 3년째부터 혜경씨는 생리를 하지 않았다.
 
“얘가 생리가 안 나온다는 거예요. ‘너 왜 그러니?’ 라고 물으면, 혜경이는 ‘엄마, 우리 회사에서 생리 안 하는 건 병도 아니야. 다들 그래.’ 그러고 말아요. 병원 가면 한동안은 괜찮아지니까. 어느 날은 얘가 집에 왔는데, 얼굴 전체에 뭐가 잔뜩 나서 울긋불긋해요. 그래서 ‘너 대체 뭘 만드니?’ 물었더니 브라운관 화면, LCD를 만든대요. 그래서 우리는 전자파 때문에 그런가 보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힘들면 그만 다니고 엄마 식당 일 도우며 있자’ 그랬어요.”
 
혜경씨가 6년 동안 만진 솔더크림에는 납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 납은 대표적인 발암물질이며, 고농도의 납에 노출되면 뇌에 이상증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얇은 비닐장갑 하나를 낄 뿐이라 피부에 크림이 묻는 일도 빈번했다. 그러나 혜경씨는 솔더크림에 납 성분이 포함되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오직 혜경씨가 받은 교육은 몸에 솔더 크림이 묻었을 때는 유기용제 IPA로 닦으라는 것이었다. 유기용제 또한 발암물질인 벤젠 성분이 들어 있다. 삼성 반도체를 그만둔 지 4년 후, 2005년 10월 혜경씨는 소뇌부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혜경씨가 몸을 비튼다. 옆 사람이 목을 감싼 기브스를 풀어보니, 뾰족한 부위가 혜경씨의 목을 찌르고 있었다.
 
“그걸 말 안하고 참고 있었어? 애가 둔한 구석이 있어.”
 
어머니 김시녀씨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기브스를 바로 해준다. 그러나 표정이 굳는다. 제 스스로는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딸을 보는 그녀의 착잡한 심정이 얼굴에 드러난다.
 
김시녀씨는 딸의 수술을 몇 번이나 지켜보았다. 어디 하나 쉬운 수술이 없었다. 첫 뇌종양 제거 수술을 한 혜경씨의 상태는 암담했다. 식물인간이 될 위험 때문에 종양도 다 제거하지 못했다. 수술 직후, 그녀는 밥을 먹다가도 까무러쳤다. 그때 그녀의 나이 겨우 26살이었다.
 
공개되지 않은 곳에서 일했던 딸
 
혜경씨의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양팔을 사람들한테 내맡긴 채 부축을 받음에도,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혜경씨의 몸이 진동을 하듯 떤다. 계단이 나오자 김시녀씨는 망설임 없이 딸을 업는다. 어머니보다 한 뼘이나 더 큰 딸이다.
 
거실 탁자에 혜경씨 사진이 있다. 남동생 졸업식 때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 그녀는 화장을 곱게 하고 있다. 어머니는 민낯에 부스스한 머리를 동여맨 혜경씨의 얼굴을 매만지며 말한다.
 
“얘가 화장을 잘하고 다녔어. 밖에 나갈 때는 립스틱이라도 꼭 바르고 나갔고.”
 
김시녀씨는 옛일을 회상하듯 덧붙인다.
 
“애가 착했어. 저보다 늘 내 걱정부터 하고.”
 
삼성 기흥공장에 다니던 때, 그녀는 월급의 대부분을 어머니에게 보냈다. 어린 나이부터 착실히 돈을 모으는 딸은 어머니의 자랑이었다. 삼성전자 사원 부모들을 회사에 초청한 행사에서 김시녀씨는 시설이 좋은 기숙사를 보고 안심했다. 딸이 좋은 회사에 다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삼성은 부모들에게 공장 안을 보여주지 않았다. 공개되지 않은 그곳에서 일한 딸은 병에 걸려 돌아왔다.
 
납과 벤젠 노출된 작업환경,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아니다’
 
혜경씨와 인터뷰를 할 기회를 얻었다. 오랜만에 외출로 피곤할 텐데도, 또박또박 대답을 해준다. 그러나 지난해 5월 근로복지공단이 혜경씨의 뇌종양을 산재로 인정하지 않은 이야기가 나오자, 언성이 높아진다.
 
“나 바보 아니에요. 그 사람들, 당연히 산잰데. 당연히 내가 받아야 하는 돈인데……. 이건 말이 안 돼요. 내가 이게 뭐예요. 화나요. 그 사람들, 삼성 사람들 내 앞에 있으면 때리고 싶어요.”
 
6년 동안 주 6일 납과 벤젠 등을 옆에 두고, 냄새를 맡고, 때로는 맨손으로 만지며 일을 했는데 그것이 병의 원인이 아니라고 한다. 근로복지공단은 “뇌종양의 발병 원인이 피재자의 작업환경과 관련성이 있다는 근거가 없다”며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돈 벌면 뭐하고 싶으셨어요?”
“엄마랑 그 돈 가지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어요.”
 
▲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한혜경씨. 혜경씨는 "엄마랑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열심히 일했다고 말한다.   

 
혜경씨는 이혼한 어머니와 현재 단 둘이 살고 있다. 이번에는 내가 울컥한다. 혜경씨와 비슷한 처지의 가정에서 자란 나로서는 저 말이 단지 소박한 소원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 사회에서 여자 혼자 몸으로 자식을 키우며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옆에서 지켜본 혜경씨의 간절함이었을 것이다. 그 간절함이 삼성이라는 회사에서 그녀가 일한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자신이 어머니에게 짐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한다. 인터뷰를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혜경씨가 힘들어 한다. 결국 자리에 눕는다.
 
"정신은 멀쩡한데, 몸은 자기 마음대로 안 되니 저도 얼마나 힘들겠어요. 쟤는 눈물도 나오지 않아요.”
 
어머니가 자리에 누운 혜경씨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뇌종양 제거 수술 과정에서 눈물을 나오게 하는 신경을 잘라냈다. 눈물이 아니라면 혜경씨는 가슴에 쌓인 슬픔을 어떻게 표현할까. 그야 눈물 따위로 표현될 억울함이 아니다. 인터뷰 내내 나온 “억울해요”라는 말이 귓가에 남는다. 어머니에게 묻는다.
 
“어떻게 산재일 거라 생각하셨어요?”
“쟤가 쓰러져서 병원에 갔는데, 뇌종양이라면서 의사가 물었어요. 무슨 일을 했냐고. 깊이를 보니 7,8년짜리래요. 그때만 해도 몰랐는데, 재활치료 받던 곳 선생님이 혜경이가 반도체 회사에서 일했다는 걸 알고 ‘반올림’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알려줬어요. 자기들도 너무 젊은 애가 뇌종양에 걸려오니까 이상했나 봐요.”
 
김시녀씨는 반올림 인터넷 카페에 “앞이 캄캄하네요……무슨 살길이 없을까요”라는 말로 끝을 맺는 글을 올렸다.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가 춘천으로 내려왔다.
 
“이종란 노무사가 내려와서 다른 피해자들 이야기를 하는데, 혜경이가 ‘엄마, 나도 그 솔더크림 만졌어. 냄새도 종일 났고.’ 이러는 거예요. 말이 안 나왔어요. ‘너 그걸 왜 엄마한테 얘길 안 했어?’ 라고 하니까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야’ 그래요. 몰랐데요. 아무런 이야기도 교육도 없었다는 거예요. 내가 그걸 알면 회사를 계속 다니게 했겠냐고요.”
 
혜경씨에게는 얇은 비닐장갑과 천 마스크, 방진복이 주어졌다. 일이 몰리면 땀이 나 마스크를 벗기도 했으며, 방진복에는 사람의 몸에서 나는 먼지나 오염원이 기계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 기능만이 있었다. 기계에서 나온 방사선이나 유해물질이 사람 몸에 스며드는 것을 막아주지 못했다. 환기시설도 가까이에 없었다. 오히려 천청 위에 달린 환기시설은 기계에서 나오는 유해물질을 사람을 거쳐 지나가게 했다.
 
제대로 된 안전 교육도 없었다. 혜경씨는 자신이 다루는 물질이 무슨 성분인지도 몰랐다. 그저 만지지 마라, 들은 얘기는 고작 그거였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코피가 나고, 생리가 멈추고, 유산을 했다. 그래도 일이 많아 몸이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삼성에 취직을 한 그/녀들이었다. 학교에서도 삼성에서도 이들에게 산재에 대한 교육을 하지 않았다. 아무도 이들에게 말해주지 않았기에 이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 사람들은 양심을 팔았어”

 
“너무 많은 걸 잃었지.” 
김시녀씨는 나직이 말한다.
 
“쟤라고 눈이 없겠어요. 지 또래들 꾸미고 다니는 거 보면 쟤 속은 어떻겠어요? 한창 꾸밀 땐데…….”
쏟아져 나오려는 말을 그녀는 삼킨다. 안쓰럽고 미안한 딸, 뭐든 해주고 싶지만 현실은 가혹하다.
 
“얘가 잠도 못자고 아파하는 거예요. 병원에 갔더니, 목뼈가 무너져 내린다고 수술을 받아야 한데요. 그런데 수술비가 어디 있어요. 그래서 일단 약물치료를 했어요. 더 이상 수술을 할 수가 없었어요. 수술을 하고 좋아진다면야 하겠지만, 그 큰 수술을 또 하면 쟤가 무슨 꼴이 될지도 모르고. 그런데 얘가 너무 아파하는 거예요. 병원에서는 수술을 안 하면 어깨가 뒤틀리고, 다리에 마비가 온데요. 예전에 내가 그랬어요. ‘혜경아, 엄마가 다른 건 못해도 너 고통스럽지는 않게 해 줄게.’ 그래서 수술을 받았어요.”
 
▲ 반도체공장 노동자의 직업병 인정을 요구하며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반올림' ©사진출처: '반올림' 

 
수술비만 몇 백만 원이 들었다. 김시녀씨는 혜경씨를 혼자 둘 수 없어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다. 저소득층 가정에 지원되는 정부 보조금도 이번에는 절차상의 문제로 지급되지 않았다.
 
“좀 마음 편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게 삼성이란 회사에서 산재를 인정해줬으면 좋겠어요. 일하다 병에 걸린 것도 억울한데, 치료라도 제대로 받을 수 있게 해 줬으면 좋겠어요.”
 
잠에서 깬 혜경씨가 어머니 곁에 앉는다. 어머니가 소곤거린다.
 
“재는 잠도 깊이 못 들어요. 늘 잠꼬대를 하고. 오늘도 인터뷰 한 거 다 잠꼬대 할 거예요. 의사 말로는 제대로 잠드는 시간이 10분도 안 된데요. 그러니 늘 피곤해 하는 거죠.”
 
모녀는 이야기를 나눈다. 산재 불승인에 대한 이야기다.
 
“어떻게 아니라고 할 수 있어? 다 아는데 그 사람들 왜 몰라?”
“혜경아, 그 사람들은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야. 그 사람들도 다 알아. 다 알지만, 그 사람들은 양심을 팔았어. 그래서 그래.”
 
김시녀씨는 말하는 내내 혜경씨의 머리와 어깨, 무릎을 쓰다듬는다.
 
회사는 우리 몸뚱이에 관심이 없다
 
춘천을 다녀온 후, 엄마 생신이라 가족들이 모였다. 나는 엄마에게 한혜경씨와 어머니 김시녀씨를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엄마, 삼성 반도체 다니다 백혈병 걸린 사람들 알지? 이 사람이야. 이 사람은 뇌종양에 걸렸어. 지금은 우리 둘 다 건강하지만, 왠지 이 사진 우리 둘 같지 않아?”
 
불시에 찾아온 병, 사회는 그 병의 원인도 결과도 책임져주지 않는다. 병, 사고, 온갖 위험이 난자한 사이로 오직 몸뚱이만이 벌이의 수단인 노동자들이 위태롭게 걸어간다. 그들의 꿈은 잘 사는 것, 내 가족과 잘 사는 거다.
 
가진 게 몸뚱이 밖에 없어, 그걸로 일을 해 돈을 벌고 집을 사고 배를 채우고 자식을 낳고 살겠다는데, 정작 회사는 우리의 몸뚱이에 관심이 없다. ‘아차’ 하면 손가락이 날아가고, 참고 견디면 과로가 오고, 때로는 유독물질이 뇌와 혈구를 건드린다.
 
어느 인쇄 노동자에게 독일에서 수입한 기계를 한국에서 다시 개조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개조는 안전장치를 떼어내는 거였다. 속도를 더 높이기 위해서라고 했다. 안전장치를 떼어낸 결과,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인쇄물이 만들어지고, 노동자의 손목이 더 쉽게 잘려나간다.
 
이미 건강을 잃어버린 딸을 가진 김시녀씨가 나를 붙잡고 말한다.
 
“우리 애 같은 애들이 또 나오면 안 되잖아요. 적어도 제대로 된 교육을 하고. 무얼 쓰고 있는 지를 말해줘야 되잖아요. 그렇게 바뀌어야 하잖아요.”
 
삼성 반도체가 한 분기에 3조원에 육박하는 이익을 올리며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기사가 눈에 띈다. 관련한 기사를 쓴 언론 중 일부는 한혜경씨의 이야기를 한 번도 다루지 않았다. 돈이 없어도, 내세울 게 없어도 사람은 모두 평등하고 목숨은 귀하다는 것을 알아주는 이가 적은 이 사회에서, 나는 한혜경씨와 김시녀씨의 사진을 오랫동안 바라본다. 그리고 삼성을 생각한다. (희정/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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