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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딸과 느릿느릿 아시아여행> 네팔① 카트만두 
 
*풍경보다는 사람을, 사진 찍기보다는 이야기하기를, 많이 돌아다니기보다는 한 곳에 오래 머물기를 선택한 어느 엄마와 세 딸의 아시아 여행기입니다. 11개월 간 이어진 여행, 그 길목 길목에서 만났던 평범하고도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 산악국가 네팔의 국기. 네모 형태가 아닌 유일한 국기이기도 하다.   © EnCyber.com    
   

 
말레이시아에서 비행기를 탄지 스물 두 시간 만에 네팔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제일 싼 비행기 표를 구했는데, 그 대가가 유난히 혹독하였다.
 
저가항공 두 개를 연결해 타느라 밤 열두 시가 넘어 방글라데시 다카공항에 떨어졌다. 나라마다 국제선 공항에는 잠시 경유하는 자들을 위한 공간이 있게 마련인데, 규모가 작은 다카공항에는 복도에 의자 몇 개 놓여 있는 것이 전부였다. 우리가 갈아 탈 비행기는 그날 오후 한시 도착 예정이었으므로 우리는 플라스틱 의자에 기대어 꼼짝없이 열두 시간을 버텨야 했다.
 
허리 꼬부려 잠깐 새우잠을 자고 일어나 갈아탈 비행기 표를 찾으러 갔다. 인터넷으로 예약한 탓에 표를 공항에서 발급받아야 했다. 그런데 우리가 예약한 항공사 창구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크고 널찍한 다른 항공사 창구에는 안팎으로 사람들이 북적북적한데, 구석에 잘 보이지도 않게 겨우 간판 하나 내건 우리 쪽 창구에는 아무리 기다려도 직원은커녕 우리 같은 승객 하나 오가질 않는다. 탑승 시각은 째깍째깍 다가오고, 더 앉아 기다릴 수만은 없어 공항 사무실로 뛰어갔다. 표 값이 유독 싸더니만 그 사이 파산이라도 한 건가 싶어 마음이 졸아들었다.
 
기다려 보라는 말만 계속하는 공항 관계자에게 사정 얘기를 자꾸 시끄럽게 해댔더니 혀를 차며 어딘가로 전화를 넣었다. 그 뒤로 다시 이십 여분이 흐르고 나서야 항공사 직원이 나타났다. 탑승시각이 채 한 시간도 남지 않았다. 표를 달라고 하자 표는 사무실에서만 발급할 수 있다며 여권을 전부 내놓으란다. 따라 가겠다니까 사무실이 입국장 밖에 있어서 방글라데시 비자가 없는 우리는 갈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여권만 냉큼 줘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여권을 절대 몸에서 떨어뜨리지 말라는 충고를 숱하게 들어왔고, 한국 여권 하나가 암시장에서 백 달러에 거래된다는 뜬소문이 심심찮게 떠돌곤 했다. 여권만 줄 수는 없다고, 늦게 나타나서 이런 법이 어디 있냐고, 소리를 높여 봐도 항공사 직원은 눈도 꿈쩍 않은 채 표를 줄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 사이 탑승시각은 삼십 분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결국 될 대로 되란 심정으로 여권을 내주었다. 이러나저러나 비행기 놓치는 건 마찬가지였고, 그럴 바에야 모험이라도 해보자 싶었다. 여권 네 개를 챙겨 유유히 사라지는 직원의 뒷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카메라가 앞으로 돌면 쓰윽 회심의 미소를 날리며 여권을 안주머니에 밀어 넣는 여행객 전문 사기꾼이 있을 것만 같았다. 혹시나 진짜 직원이 뒤늦게 나타나는 건 아닐까 싶어 두리번거렸지만 복도에는 우리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그 직원은 탑승시각 오 분 전에 표를 쥐고 뛰어 들어왔다. 사무실이 국내선 쪽에 있어 시간이 좀 걸렸다며 숨을 몰아쉬면서 미안하다 했다. 하지만 정작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은 건 나였다. 나는 기다리는 내내 직원이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이제 국제미아가 되었으며, 탑승시각이 지나면 곧장 공항 사무실로 가서 방글라데시 한국 대사관으로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 사람을 줄기차게 의심하였던 걸까. 방글라데시 다카공항이 아니라 일본 나리타공항이었더라도 같은 결론을 내렸을까. 낙후된 시스템이 주는 불편함과 부도덕함을 혼동했던 것은 아닐까. 나는 고맙다는 말을 스무 번 쯤 하고 나서 후다닥 탑승구로 뛰어갔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비행기 문이 쿵 하고 닫혔다.
 
세상을 품은 히말라야 기운도 자본의 욕망을 잠재우지 못하고
 

© by dave watts. www.bestpicturegallery.com

카트만두 타멜 거리를 빼곡하게 채운 가게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Kathmandu)는 번잡한 도시였다. 공항 앞에는 미터요금의 서너 배를 부르는 바가지 택시기사들이 아우성쳤고, 시내로 들어오자 장사꾼들과 차들과 먼지들이 앞 다투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세상을 발아래 품은 히말라야의 고고한 기운도 이제 막 눈 뜬 자본의 욕망을 잠재우지는 못하였다. 도시는 어디서나 그저 도시일 뿐이다.
 
트래킹 하러 네팔에 온 우리들은 히말라야 아랫동네인 포카라(Pokhara)로 곧장 움직일 생각이었다. 그런데 다음 여행지인 인도의 비자가 문제였다. 2008년 11월 뭄바이 테러 이후로 비자 받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고 했다. 아무래도 인도 비자를 미리 챙기는 것이 낫겠다 싶어 눈 딱 감고 카트만두에 주저앉기로 한다.
 
여행자들이 모여드는 곳 타멜(Thamel)에 방을 구했다. 인도 대사관까지 걸어서 갈 수 있다기에 잘됐다 하였는데, 길이 좁고 거리가 미로처럼 이어져있어 좀 전에 지나온 곳으로 되돌아가는 일도 쉽지 않다. 게다가 손님을 부르는 릭샤왈라(ricksawwala, 릭샤를 모는 사람)들이 가는 곳마다 걸음을 막아서고, 가게에 펼쳐놓은 바나나며 빵들도 여행자들 곁에서 콧대가 세져 비싸기 이를 데 없다. 동네구경도 할 겸 물어물어 아래쪽 큰 시장까지 내려가 먹을거리들을 좀 샀다.  
      
날이 밝자마자 아이들과 인도 대사관으로 향했다. 게스트하우스 청년이 그려준 지도를 들고 타멜 골목을 빠져나와 걷기 시작한다. 이른 아침 한가로운 길가에 힌두 수행자 사두(sadhu)들이 나타났다. 알록달록한 옷에 흰 수염 펄럭대는 할아버지 사두들은 손에 깡통 하나씩을 들고 있다. 먼저 지나가시라고 한쪽으로 비켜서는데 갑자기 할아버지 한 분이 자기 이마의 띠까를 가리키며 나에게도 해주겠다는 몸짓을 한다.
 
힌두 문화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띠까(tika)는 이마 한가운데에 칠하는 붉은 점으로 축복이 함께함을 의미한다. 대체로 어른이 아랫사람에게 손수 붉은 물감을 발라주는데, 어떤 이들은 붉은 쌀알까지 같이 뭉쳐 종일 이마에 붙이고 다니기도 한다. 
 
▲ 네팔 거리에서 흔히 마주치게 되는 힌두 수행자 '사두(sadhu))'들  ©  birdsbyrandjack.com  

그러고 보니 네팔의 큰 명절인 더샤인(Dashain)이 다음 주로 다가와 있었다. 명절 즈음하여 여행자들에게 띠까를 발라주고 보시를 받는 모양이었다. 할아버지들의 외양이 범상치 않은지라 아이들은 어느 새 슬금슬금 저 앞으로 도망가 있다. 나는 어쩔까 잠시 망설이다가 사두들의 축복에 힘입어 인도 비자를 쉽게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오케이 하였다. 곧이어 내 이마에도 붉은 물감이 칠해지고 꽃잎 몇 장이 머리 위로 흩날렸다. 나는 고맙다고 한 뒤 네팔 돈을 조금 꺼내 공손히 드렸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짐짓 높아진다. “노, 노, 헌드레드 달러~!” 백 달러라고? 피식 웃음이 났다. 여행자들을 호구로 여기는 건 장사치들만이 아니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네팔 돈을 조금 더 꺼낸 뒤 이게 전부라고, 받기 싫으면 그냥 가겠다고 했다. 한참 툴툴대고 난 뒤 할아버지들은 결국 돈을 받아 옷 안쪽에 찔러 넣었다.
           
아이들이 내 이마를 보며 낄낄댄다. 어디 잘못 부딪쳐 피가 나는 거 같단다. 그런데 길 가던 네팔 사람들이 내 이마의 띠까를 보며 반가운 얼굴을 한다.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환하게 웃는 이들도 있다. 문턱 넘어 네팔 안으로 쑥 들어선 것처럼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축복이 따로 없다.
 
하지만 할아버지들의 축복은 거기까지였다. 6개월까지 머물 수 있는 인도 비자를 신청했는데, 일주일을 기다려 받은 비자는 3개월짜리였다. 테러사건 뒤로는 장기 비자를 잘 안준다더니 역시나 그랬다. 넉넉하게 잡았던 일정들이 졸지에 꼬이게 생겼다.
 
그렇게 네팔 최대의 명절 더샤인(Dashain)이 시작되었고, 너도나도 명절 쇠러 고향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도시가 헐렁해졌다. 우리도 더 이상 카트만두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 고향집 어머니 뵈러가듯 그리운 히말라야에게로 달려갈 시간이었다. (진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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