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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는 사람들

코스타리카에서 먹은 딸기의 맛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0. 4. 9. 14:34

공숙영의 Out of Costa Rica (8)* 코스타리카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필자 공숙영은 현지에서 마주친 다양한 인상과 풍경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코스타리카 시장에서 산 딸기 © 공숙영

“딸기가 딸기 맛을 지니고 있듯이 삶은 행복이란 말을 지니고 있다.”- 알랭
 
코스타리카에서 제가 살던 동네에서는 마을 한가운데 성당 바로 옆에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과일과 야채를 파는 장이 서곤 했습니다.
 
과일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부지런히 매주 토요일 장에 가서 과일을 사는 게 즐거운 일상이었던 반면 그다지 부지런하지 못한 저는 아주 가끔 그 친구들을 따라갔습니다.
 
과일의 여왕, 딸기
 
장에 가면 우리나라에서는 못 보거나 흔히 보기 어려운 과일들이 많았지만 수레 가득 향내를 풍기는 새빨간 딸기를 볼 때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그 앞에 서서 딸기를 구경하거나 사오곤 했습니다.
 
딸기는 참 특별하고 사랑스럽습니다. 맛과 촉감과 향기, 모양과 색깔, 모든 면에 있어서 딸기는 독보적인 존재감을 갖고 있습니다.
 
<추억은 방울방울>이라는 일본 만화영화에 “과일의 왕은 바나나”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가족들이 모여 파인애플을 조심스레 시식하고 나서는 역시 뭐니뭐니해도 바나나가 최고라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과일의 여왕은 딸기라고 저는 말할 겁니다. 다른 어떤 과일이 여왕이 될 수 있겠습니까. (아, 갑자기 사과가 떠오르긴 합니다만.)
 
지난 달 어느 날에는 대형 슈퍼마켓에 갔다가 과일 코너에서 딸기 모종 파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서 키워볼까 잠깐을 망설이다가 별로 자신이 없어 그냥 돌아왔지만 한동안 집에서 딸기를 키워 꽃도 보고 열매도 따는 광경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가장 최근에 흙에 심긴 딸기와 딸기꽃을 본 것은 작년 1월 코스타리카의 수도 산호세 시내에서였습니다. 시골 딸기밭이 아니라 도시 한복판에서 말입니다.
 
이스라엘 대사관 가는 길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에 항의하는 집회 장면 (2009년 1월 산호세, 코스타리카)

그날은 학교 친구들과 함께 주 코스타리카 이스라엘 대사관을 찾아가는 중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침공에 항의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릴 거라는 소식을 듣고 나선 길이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그날 시위에 함께 한 학생들 모두 코스타리카 사람이 아닌 외국인들이었는데 이스라엘 대사관 가는 길을 못 찾아 한참을 헤맸습니다.
 
길 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보아도 답을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긴 코스타리카에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코스타리카 현지인이라도 특별히 볼일이 없다면 이스라엘 대사관의 위치를 알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더운 날씨에 계속 헤매면서 오래 걷느라고 나중에는 좀 지쳤습니다. 우리는 이미 다들 어느 정도 흥분하고 들뜬 상태였던 것입니다.
 
결국 일행 중 한 명이 이스라엘 대사관에 전화를 해 보러 간 사이, 우리는 다리도 쉴 겸 앉아서 기다리려고 그늘을 찾았습니다. 저는 그날 짝꿍처럼 둘이 다니게 된 한 친구와 같이 움직였습니다.
 
그러다가 아담하고 깨끗한 건물 하나를 보았습니다. 카페 같기도 했고 사무실 같기도 했는데 확실한 것은 그 건물의 담벼락 위에 꾸며놓은 화단에 딸기가 심겨져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코스타리카에서 본 딸기의 풍경
 
푸르다 못해 검푸른 잎과 줄기, 선명한 분홍빛 꽃, 붉은 색을 띠려면 한참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은 통통한 열매 - 한낮의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물기라곤 전혀 없이 그러나 팽팽한 긴장감 같은 생명감 속에 잎과 줄기와 꽃과 열매가 막 뒤섞여 있는 그것은 분명 딸기였습니다.
 
“야, 딸기다!”우리 둘이는 재빨리 딸기 앞으로 뛰어갔습니다. 더위도 잊고 지금 우리가 어딜 가는 중인지도 잊은 것처럼 말입니다.
 
물끄러미 딸기를 쳐다보다가 문득 짝꿍은 딸기 열매 중에서 작지만 좀 발그레해진 것 하나를 따 먹었습니다. 딸기밭에 놀러온 소녀처럼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지만 생뚱맞고 엉뚱한 짓이기도 하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안에서 지켜본 듯 그 건물에서 곧 누가 나와 딸기를 따먹지 말라고 제지하자, 짝꿍은 얼른 사과의 말을 했습니다. “미안합니다.” 그 뒤에 더 붙은 말이 있었는데, 임자가 없는 줄 알았다고 했나, 너무 예쁘고 맛있게 보여서 그랬다고 했나,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 사이 이스라엘 대사관에 전화 걸러 갔던 친구가 드디어 돌아왔고, 우리는 다시 이스라엘 대사관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정반대방향으로 한참을 또 가야 했지만 잠깐의 휴식 뒤에 원기를 되찾은 우리 일행은 다시 씩씩하고 쾌활해졌습니다.
 
성모 마리아의 과일, 딸기
 

이스라엘 대사관 가는 길에 본 딸기꽃 ©딸기 따먹은 친구

딸기에 대해 찾아보면 정확한 유래와 출처는 알 수 없지만 기독교에서 딸기는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는 과실이었다고 나옵니다.

 
딸기를 아주 좋아한 성모 마리아는 자라나는 딸기를 전부 자신의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입이나 손에 딸기 즙을 묻힌 상태로 천국에 오는 사람은 신성한 과실인 딸기를 훔쳐 먹은 것으로 간주하여 지옥으로 보낸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하니 재미있고도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딸기 따 먹은 그 친구, 가톨릭 신자인데 흔적이 안 남도록 손과 입을 깨끗하게 씻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편 아이들이 천국으로 초대받으면 지상으로 돌아올 때 머리에 딸기꼭지가 생기면서 딸기 모양으로 변한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그 장면을 그려 보면 좀 기이하지만 참 귀엽기도 합니다. 집에서 기다리던 부모들은 아이들이 꼭지 달린 딸기로 변해서 돌아왔으니 얼마나 놀랬겠습니까.
 
그래서인지 유럽에서는 - 추측컨대 아마도 가톨릭 축일 같은 때에 - 아이들이 딸기를 성모 마리아께 바치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딸기의 맛
 
산호세 시내 한복판에서 자란 그 딸기의 맛은 어땠을까요. 달콤했을까요, 새콤했을까요. 딸기니까 딸기 맛이 나겠지만 그 맛이 궁금해집니다. 딸기를 따먹은 그 친구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도.
 
어린 시절 딸기를 하얀 설탕에 찍어 먹던 때가 있었습니다. 맛을 떠나 빨간 딸기에 하얀 설탕이 묻으면 보기에도 예뻤지만 언젠가부터 하얀 설탕은 추방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요즈음 딸기를 설탕에 찍어 먹는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이제는 그냥 먹거나 우유나 연유, 크림 같은 유제품과 먹는 게 딸기를 먹는 일반적인 방식이 된 것 같습니다.
 
실은 어릴 때와 달리 요새는 딸기를 먹어도 아주 맛있다는 느낌이 크게 없어서 아쉽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딸기의 맛이 변한 건지 제 입맛이 변한 건지 정확히 이유는 알 수가 없습니다.
 
여전히 저에게 과일의 여왕은 딸기(또 사과도 떠오릅니다만)라서 볼 때마다 맘이 설레지만, 딸기를 입에 넣으면 짜릿하고 알싸하게 오던 새콤달콤한 느낌을 이제는 잘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딸기와 초콜릿
 

초콜릿 바른 딸기 파는 광경(콜롬비아) ©출처: www.flickr.com

딸기가 아무리 좋아도 그 맛만으로는 부족하고 보다 강력한 게 절실히 필요할 때는 제대로 세게 ‘달콤쌉싸름한’ 초콜릿을 같이 먹으면 연금술적 효과가 나타납니다.

 
중남미에서는 딸기나 사과 같은 과일에 통째로 설탕시럽이나 초콜릿을 두껍게 입혀서 가게에서 팔았는데, 특히 초콜릿 입힌 딸기는 “Fresas con Chocolate" - 스페인어로 딸기는 ”Fresa“입니다 - 라고 해서 인기가 높습니다. 유럽과 미국에서도 초콜릿 입힌 딸기는 널리 사랑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코스타리카에서 먹은 딸기 초콜릿 케이크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옆집 친구의 생일파티에 나온 그 케이크는 동네 빵집에서 만들었는데, 만듦새가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초콜릿을 우직하게 바르고 딸기를 깜찍하게 올려서는 시럽을 듬뿍 뿌린 덕에 엄청나게 달았지만 딸기와 초콜릿과 시럽의 조화가 매우 훌륭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제과점에서 초콜릿 입힌 딸기나 딸기 초콜릿 케이크를 사 먹으려면 비용이 많이 드니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을 적극 고려해 볼 만합니다.
 
시중에 파는 초콜릿을 사서 녹여 딸기를 찍어먹고, 롤케이크나 카스테라에 초콜릿 녹인 것을 두껍게 발라 딸기와 같이 먹으면, 전문가만이 낼 수 있는 정교한 풍미는 못 따라가도 갑자기 미친 듯이 단 것을 먹고 싶을 때 순간의 만족을 어느 정도 보장합니다.
 
봄의 전령사, 딸기
 
원래 우리나라의 딸기는 봄 과일이었지만 비닐하우스 농사 덕에 이젠 겨울에도 딸기를 맛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편찮으신 부모 드리려고 한겨울 추위에 딸기를 구하러 가는 효자 이야기는 그야말로 옛날이야기가 된 셈입니다.
 
그래도 ‘봄의 전령사’ 딸기는 삼사월에 제격입니다. 요새 같다면 봄이라기보다는 봄과 겨울 사이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릴 삼월이 가고 사월이 와서 봄다운 봄이 되면 딸기는 더욱 화사해보일 것입니다.
 
햇빛 가득한 날 봄바람이 날개처럼 가벼워진 봄옷을 들썩일 때 비닐하우스가 아니라 어딘가 땅바닥에서 흙 묻은 딸기가 검붉게 익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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