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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수화기를 들자마자 상냥하게 새해인사부터 전한 사람은 준영이 어머니였다. 우리는 서로 덕담을 나누며 새해인사를 했다. 해가 바뀌는 지점에서 이렇게 전화로라도 빼놓지 않고 인사를 전하는 사람은 준영이 어머니가 유일하다. 그도 그럴 것이, 준영이는 올해로 4년 차를 맞는다. 그 사이 해가 바뀐 것만도 네 번이니, 준영이 어머니와의 인연도 그 시간과 함께 깊어가고 있었다.
 
“선생님! 그런데 교사가 열을 가르쳤는데, 학생이 그 열을 다 기억 못한다면, 그것이 문제인가요?”
 
준영이 어머니는 근황을 전하다 말고 갑자기 화제를 바꿨다.
 
“열이요? 한번에 열을 가르쳤다고 열을 알면, 그건 정말 대단하지요. 그러나 만약, 열중 하나라도 기억하는 학생이 있다면, 그것만도 훌륭한 일이지요. 그것조차 쉬운 게 아니거든요.”
 
이 말을 하는 내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훌륭한 교육자는 아니다. 그래서 이건 내 교육관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는 못한다. 그저 늘 이런 마음이기를 소망할 뿐이다.
 
그녀는 준영이의 러시아 출신 플룻 선생님에 대해 말을 꺼냈다. 그 선생님은 자기가 가르친 것을 학생이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할 경우, 매우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고 한다. 철학공부와 음악공부는 분명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그 선생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나 역시 심한 절망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열중 하나라도 기억하는 학생, 그것도 쉬운 건 아니다
 

한 예로, 몇 해 전 함께 공부하고 있던 은수가 학교에서 다른 친구를 ‘왕따’ 시킨 사건이 있었다. 한두 달도 아니고 2년 넘게 나와 공부를 해오고 있던 터라, 충격이 더 컸다. ‘왕따’가 얼마나 나쁜 행동인지 여러 차례 공부도 했고, 그때마다 은수는 반듯한 생각을 발표했기 때문에,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당시, 은수 어머니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뭐 하러 아이들과 이런 공부를 할까 하는 심한 좌절감에 빠져, 이 일을 시작한 처음으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좋은 가치관과 태도에 대해 많이 생각해본들, 실천은커녕 배운 것이 무색하게 행동하는 아이 앞에서, 헛수고하는 나를 보는 것이 괴로웠다. 그렇지만 엄밀하게 따져보면, 이런 마음 역시 훌륭하지 못한 교사의 조급증의 한 표현에 지나지 않다는 걸 떠올렸다.
 
단 몇 차례 공부로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지 않았던가? 영영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이들 가운데 배운 걸 기억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늘 되뇌지 않았던가? 게다가 그것이 당장이 아니더라도,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어서야 배운 걸 기억하는 이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주문처럼 중얼거리지 않았던가?
 
무엇보다 내가 이런 마음을 내면화한 교육자가 된다면, 내 인생에조차 이 일은 큰 가치가 있겠다는 생각을 해냈다. 물론, 나는 이런 마음을 영영 내면화시키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추구하고 바랄 수는 있을 것 같다.
 
얼마나 이 일을 오래 할지는 모르겠다. 다만 아이들과 철학공부를 하는 것이 꼭 그들을 위해서만은 아니라는 것, 그들에 대한 교육적인 마음가짐이 꼭 봉사의 마음은 아니라는 걸 생각하면서 이 일을 한다. 가르치는 일, 그건 나를 성장시키고 깨우치는 길이기도 하다는 걸 항상 잊지 말아야겠다.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일다는 어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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