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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 말하다/이경신의 죽음연습

추억하고, 기억되는 시간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09. 10. 28. 14:05
‘2009일다 교류모임’ 참가하다 
 
모닥불이 타오르고, 어둠은 조금씩 짙어져 갔다. 남은 사람들은 불가에 모여 앉아 느긋하게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불 속에서 막 끄집어 낸,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와 감자, 그 구수하고 달콤한 맛과 냄새가 선선한 가을 저녁에 온기를 더해 주었다.

 
이야기 사이사이, 난 말을 잃곤 했다. 마른 나무 가지를 타닥탁탁 태워가며, 몸을 쉴새 없이 키웠다 줄였다 분주한 불길, 그리고 바람 따라 마구 하늘로 날아오르는 작은 불똥들 때문이었다. 불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동안, 어느새 잊고 있던 기억들이 의식의 표면 위로 하나하나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모닥불 앞에서 꼬리를 무는 기억들
 
“수학여행 이후 모닥불은 처음인 것 같은데…” 그렇다. 언제였나. 고등학교 수학여행 마지막 날 저녁, ‘캠프파이어’를 했다. 그 모닥불 주변에 모여 가장행렬을 했던 기억도 난다. 그때 난 빗자루를 타고 마귀할멈 분장을 한 채 즐거워했었다. 처음 본 모닥불은 또 얼마나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지! 지루하고 답답했던 고교시절, 행복했던 몇 안 되는 기억 중 하나다.
 
우리가 모닥불에 시선을 빼앗긴 순간에도, 편집장은 뜰 한 켠에 쌓아놓은 나무더미 속에서 태우기에 적당한 마른 가지들을 끌어내려, 불 피우기에 여념이 없다. 그걸 보다 보니, 생애 처음, 방 군불을 때던 일도 떠올랐다.
 
대학입학 직전 겨울, 친구와 둘이서 강원도여행을 하던 중이었다.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우리가 직접 장작을 날라 불을 지펴야 했다. 연기도 많이 나고 불도 잘 붙지 않아,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한겨울 밤 냉방에서 떤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우리는 분명 불 때기에 성공했던 것 같다.
 
이번엔 사람들이 너도나도 나무 가지와 낙엽을 주워와 불 속으로 던져 넣기 시작한다. 그때마다 잦아든 불길이 다시 활활 타 올라, 주변이 잠깐 동안 환해지곤 했다. 그 순간 벽난로에서 이글거리는 장작불로 생각이 옮아갔다.
 
십 년도 더 넘은 어느 해, 남프랑스의 친구 집에서 크리스마스 방학을 보냈을 때였다. 허술한 집안은 한기로 으스스했지만, 벽난로 이외의 다른 난방시설은 없었다. 프랑스 친구는 나를 벽난로의 장작불 앞에 앉혀놓고 타로 점을 봐주겠다고 했다. 벽난로도, 타로 점도 내게는 생소하기만 했다. 그날, 크리스마스 밤은 내게 참으로 신비로운 느낌으로 남아 있다.
 
현재 속에서 변형되어 살아나는 과거
 

Enjoy Satie 음반(작곡: Erik Satie ) 재킷

짧은 시간이었지만, 과거의 여러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했다. 평소 과거를 추억하거나 회상하는 일이 드문 내게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모닥불의 빛과 움직임이 그처럼 한꺼번에 내 과거를 되살려 놓은 것이다.

 
그런데 현재시간 속에서 생명을 얻어 과거가 생각으로 들어온 순간, 선택되고 변형되고 윤색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사실 마귀할멈 분장을 한 날이 캠프파이어 날이었는지, 군불을 때기 위해 장작을 져 날랐는지, 타로 점을 본 날이 정말 크리스마스 날이었는지, 기억의 세부내용이 정확한지 자신이 없다. 게다가 다른 친구들은 캠프파이어 날 어떤 분장을 했는지, 군불을 때기 위해 우리가 어떤 고생을 했는지, 타로 점 이외에 또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아무런 기억이 없다.
 
하지만 진실규명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일부 기억의 변형이나 망각을 크게 문제 삼을 것까진 없겠다. 기억이 현재 이 순간 내 속에서 그렇게 부활했다는 사실이 중요할 따름이다. 실제로 우리는 똑같은 날의 기억을 서로 다르게 이야기할 때가 있지 않은가!
 
이날 모닥불 앞에서 떠올린 기억들은 모두 내 과거 속에서 나온 것이지만, 사람들과 어울려 모닥불을 피우며 모임을 하고 있는 바로 그 현재시간 속에서 가능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서늘한 공기, 따스한 불빛과 불의 온기, 그리고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행복감과 같은 공통된 부분들을 갖고 있는 과거의 일들이 현재의 경험과 맞물린 것이다. 그래서 아련한 기억들이 차례차례 변주되듯 되살아난 것인지도 모른다. 그 공통점 이외의 세세한 이야기들이 그 순간 뭐 그리 중요할까?
 
이같은 추억은 분명하고 정확한 논리적 서술이라기보다 공백을 잔뜩 품어 상상의 여지까지 남겨놓는, 다소 자유로운 생각 같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의 내 정서와 맞닿아 현재의 경험을 또 다른 식으로 반복하도록 해서, 그 정서적 경험을 증폭시켜주는 풍성한 내적 체험이 된다. 비록 추억이 진리에 대한 사색보다 여유롭다고는 해도, 진실을 담고 있는 만큼, 거짓과 왜곡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적인 추억을 넘어
 
어느덧 해는 기울고, 모닥불을 제외한 주위가 서늘한 어둠 속에 잠겼다. 불을 돌보느라 오가는 사람들을 무심히 지켜보던 나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마른 가지 하나를 주워 들고 불 속에 힘껏 던져 넣었다. 확 불길이 일어나고, 주위에 어슬렁거리던 고양이는 탁탁하는 장작의 비명에 잠시 몸을 움츠렸다.
 
이 시간도 이제 과거로 밀려나 숨죽여 있다, 언젠가 현재의 부름을 받고 달려나올 것이다. 그때는 그 부름에 어울리게 일부는 계속 잊혀질 테고, 일부는 약간 달라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같이 모였던 사람들 중 어떤 이는 또렷이, 또 다른 이는 흐릿하게 떠오르기도 할 테고, 아니면 영영 잊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정성껏 준비된 음식, <일다>의 역사, 각자의 소개와 담소를 나누었던 강당에서의 시간은 무의식 속으로 가라앉고, 모닥불을 지폈던 기억만, 그 따뜻했던 불빛만 의식의 작은 흔적으로 남으려나…. 아니, 어쩌면 사적인 추억을 넘어 집단의 기억으로 ‘모닥불의 전설’로 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경신의 철학하는 일상] 일다 www.ildaro.com
 
*함께 듣자. 에릭 사티(Erik Satie) <녹턴>(Nocturnes) I, II, III (1919).

[철학하는 일상] 행복과 가난의 관계 | 일, 놀이, 휴식의 경계 넘나들며 |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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