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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 대하여: 그 길에서 내가 주운 건…
며칠 전부터 날씨가 너무 덥다. 잠시만 나갔다 들어와도 몸은 땀으로 흠뻑 젖는다. 입추가 지나, 그제야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된 듯하다. ‘프랑스 남부 여름 날씨가 꼭 이랬는데….’ 나는 머리까지 지끈지끈 아프게 하는 더위를 견디며, 옛날 그 일을 생각했다.
유학을 막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프랑스에 도착해 마음 편하게 도와달랄 사람 하나 없이 생활하게 된지 꼭 보름만의 일이다. 남의 도움 없이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하기가 겁나 쩔쩔매면서도, 안면만 있는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손 벌리는 건 더 견딜 수가 없어 괴로웠다.
그날은 여러 날째 미루고 있던 의료보험 가입을 자랑스럽게도 혼자 성사시키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자신감이 충만해지면서, 이제 혼자서 다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우쭐해졌다. 이렇게 즐거운 날을 혼자서라도 축하해야겠다고 슈퍼를 들른 것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소매치기에 대한 불안으로 신용카드를 안 가지고 다닌 것이 문제였을까? 그도 아니면, 짧은 불어실력이 염려스러워, 집에서 수표를 써서 필요한 것만 가지고 다녔던 것이 문제였을까?
나는 약 2만원 가량의 현금이 있을 뿐이었다. 그걸 들고 슈퍼로 향했다. ‘우선 이런 기분 좋은 날은 포도주를 마셔야겠다. 이 나라 사람들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포도주를 한 병 샀다. 그리고 슈퍼에 간 김에 생수도 2병을 샀다. 혼자 있을수록 건강도 신경 써야겠다며, 우유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게다가 왜 쌀도 사고 싶어졌는지 모르겠다. 쌀을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는 한국식 불안증이 발동해, 집에 쌀이 여러 봉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두 봉지를 더 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천도복숭아도 큰 것으로 2개를 골랐다. 그렇게 주머니 속에 있던 돈을 거의 다 쓰고 즐겁게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가방은 이미 너무 무거웠고, 7월의 남불 햇살이 뜨겁게 내리 꽂히고 있는 인도 위에 그냥 털썩 주저앉아 버스를 기다리기로 했다. ‘사람들이 참 없구나’ 하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주저앉아 있는 나를 보고, 한 사람이 지나가면서 “#$%&%^*@#%&!” 한다.
나는 그를 보고 상냥한 표정으로 씨익 웃어 보였다. 그 사람은 좀 이상한 눈빛으로 한번 더 나를 돌아보고 지나갔다. 그리고 좀더 있는데, 또 한 사람이 내게 또 뭐라고 말한다. “@#$%&^$##@&$!”
나는 또 전과 같이 그렇게 웃어 보였다. 그 역시 한번 더 뒤돌아보고 나를 지나갔다. 이상한 느낌이다.
나는 고개를 깊숙이 땅에 쥐어박고, 그들이 한 말들을 천천히 되뇌며 더듬어 보았다.
“일-리-아-- 윈느--그레--브. 그-레-브. 그레브! 앗! 파-업! ‘파업 중’이라고! 그럼, 버스가 오지 않는단 말!”
나는 이미 택시를 탈 돈도 없었지만, 그보다도 산 물건들이 더욱 암담했다. 포도주가 유리병 무게를 빼고도 1리터였고, 1kg 쌀이 두 봉지, 1.5리터 물 두 병, 우유 1리터, 그리고 복숭아 두 개. 그걸 다 들고, 걸-어-서-가-야-한-다!
생각을 해봐야 했다. 나는 우선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씻지도 않은 천도복숭아를 하나 우적우적 먹으며 생각을 좀 해보기로 했다. 으음, 천도복숭아는 언제나 정말 맛있다. 그 큰 복숭아 하나를 다 먹고, 나는 한국말로 “죽기야 하려고!” 소리 내어 말하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건 일부가 든 배낭을 어깨에 메고, 양손에 또 봉지들을 나눠 쥐고, 터벅터벅 버스가 다니는 길을 더듬어 집을 향해 걸었다. 시내에서 내가 살던 집까지는 버스로만도 20분이 넘게 걸렸다. 물이라도 마시면서 갈 수 있어 덜 원망스러웠지만, 나머지 짐들은 딱 버리고 싶었다. 장을 보지만 않았어도 택시를 탈 수 있었을 것이고, 아니 짐만 없었어도 걷기가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후에 지름길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길도 몰라 그저 버스노선을 따라 차박차박 걸었다.
나는 곧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들이 한없이 양 볼로 쏟아져 내렸다. 그렇지만, 두 손에 들려있는 짐들 때문에 머리를 쓸어 올릴 수조차 없었다. 그렇게 한 3분의2 가량을 지나고 있었다. 딱 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머리를 묶으면 그나마 조금 낫지 않을까 싶어, 겹으로 담은 비닐봉지라도 어떻게 이용해 묶어볼 요량으로 길을 멈추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에 붙어 있는 머리카락들을 쓸어 쥐면서 고개를 숙였는데!
고개를 숙인 바로! 바로, 그 자리에 노란 고무밴드가 하나 놓여 있는 것이었다. 분명 고무줄이었다.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조심스럽게 그걸 주워들었다. 그것으로 머리를 묶으며,‘세상에는 정말 죽으란 법은 없구나!’ 했다. 그리고 다시 남은 복숭아를 우적우적 먹어 치우고는 남은 길을 씩씩하게 걸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 고무밴드가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막다른 길에서 ‘이젠 끝이구나!’ 하며 털썩 주저앉은 그 자리에,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희망은 늘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 그것은 주저앉은 바로 그곳만을 떨치고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하다. 그래도 우리가 길을 계속 갈 수 있는 건, 그곳에서 주운 작은 희망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정인진 /일다 www.ildaro.com
[필자의 다른 글보기] 아직, 꿈꾸어도 늦지 않다 | 내게도 용감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 꼴찌면 어때!
며칠 전부터 날씨가 너무 덥다. 잠시만 나갔다 들어와도 몸은 땀으로 흠뻑 젖는다. 입추가 지나, 그제야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된 듯하다. ‘프랑스 남부 여름 날씨가 꼭 이랬는데….’ 나는 머리까지 지끈지끈 아프게 하는 더위를 견디며, 옛날 그 일을 생각했다.
"희망을 꿈꾸다" -박상은의 그림/ 일다 www.ildaro.com
그날은 여러 날째 미루고 있던 의료보험 가입을 자랑스럽게도 혼자 성사시키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자신감이 충만해지면서, 이제 혼자서 다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우쭐해졌다. 이렇게 즐거운 날을 혼자서라도 축하해야겠다고 슈퍼를 들른 것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소매치기에 대한 불안으로 신용카드를 안 가지고 다닌 것이 문제였을까? 그도 아니면, 짧은 불어실력이 염려스러워, 집에서 수표를 써서 필요한 것만 가지고 다녔던 것이 문제였을까?
나는 약 2만원 가량의 현금이 있을 뿐이었다. 그걸 들고 슈퍼로 향했다. ‘우선 이런 기분 좋은 날은 포도주를 마셔야겠다. 이 나라 사람들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포도주를 한 병 샀다. 그리고 슈퍼에 간 김에 생수도 2병을 샀다. 혼자 있을수록 건강도 신경 써야겠다며, 우유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게다가 왜 쌀도 사고 싶어졌는지 모르겠다. 쌀을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는 한국식 불안증이 발동해, 집에 쌀이 여러 봉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두 봉지를 더 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천도복숭아도 큰 것으로 2개를 골랐다. 그렇게 주머니 속에 있던 돈을 거의 다 쓰고 즐겁게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가방은 이미 너무 무거웠고, 7월의 남불 햇살이 뜨겁게 내리 꽂히고 있는 인도 위에 그냥 털썩 주저앉아 버스를 기다리기로 했다. ‘사람들이 참 없구나’ 하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주저앉아 있는 나를 보고, 한 사람이 지나가면서 “#$%&%^*@#%&!” 한다.
나는 그를 보고 상냥한 표정으로 씨익 웃어 보였다. 그 사람은 좀 이상한 눈빛으로 한번 더 나를 돌아보고 지나갔다. 그리고 좀더 있는데, 또 한 사람이 내게 또 뭐라고 말한다. “@#$%&^$##@&$!”
나는 또 전과 같이 그렇게 웃어 보였다. 그 역시 한번 더 뒤돌아보고 나를 지나갔다. 이상한 느낌이다.
나는 고개를 깊숙이 땅에 쥐어박고, 그들이 한 말들을 천천히 되뇌며 더듬어 보았다.
“일-리-아-- 윈느--그레--브. 그-레-브. 그레브! 앗! 파-업! ‘파업 중’이라고! 그럼, 버스가 오지 않는단 말!”
나는 이미 택시를 탈 돈도 없었지만, 그보다도 산 물건들이 더욱 암담했다. 포도주가 유리병 무게를 빼고도 1리터였고, 1kg 쌀이 두 봉지, 1.5리터 물 두 병, 우유 1리터, 그리고 복숭아 두 개. 그걸 다 들고, 걸-어-서-가-야-한-다!
생각을 해봐야 했다. 나는 우선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씻지도 않은 천도복숭아를 하나 우적우적 먹으며 생각을 좀 해보기로 했다. 으음, 천도복숭아는 언제나 정말 맛있다. 그 큰 복숭아 하나를 다 먹고, 나는 한국말로 “죽기야 하려고!” 소리 내어 말하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건 일부가 든 배낭을 어깨에 메고, 양손에 또 봉지들을 나눠 쥐고, 터벅터벅 버스가 다니는 길을 더듬어 집을 향해 걸었다. 시내에서 내가 살던 집까지는 버스로만도 20분이 넘게 걸렸다. 물이라도 마시면서 갈 수 있어 덜 원망스러웠지만, 나머지 짐들은 딱 버리고 싶었다. 장을 보지만 않았어도 택시를 탈 수 있었을 것이고, 아니 짐만 없었어도 걷기가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후에 지름길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길도 몰라 그저 버스노선을 따라 차박차박 걸었다.
나는 곧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들이 한없이 양 볼로 쏟아져 내렸다. 그렇지만, 두 손에 들려있는 짐들 때문에 머리를 쓸어 올릴 수조차 없었다. 그렇게 한 3분의2 가량을 지나고 있었다. 딱 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머리를 묶으면 그나마 조금 낫지 않을까 싶어, 겹으로 담은 비닐봉지라도 어떻게 이용해 묶어볼 요량으로 길을 멈추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에 붙어 있는 머리카락들을 쓸어 쥐면서 고개를 숙였는데!
고개를 숙인 바로! 바로, 그 자리에 노란 고무밴드가 하나 놓여 있는 것이었다. 분명 고무줄이었다.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조심스럽게 그걸 주워들었다. 그것으로 머리를 묶으며,‘세상에는 정말 죽으란 법은 없구나!’ 했다. 그리고 다시 남은 복숭아를 우적우적 먹어 치우고는 남은 길을 씩씩하게 걸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 고무밴드가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막다른 길에서 ‘이젠 끝이구나!’ 하며 털썩 주저앉은 그 자리에,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희망은 늘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 그것은 주저앉은 바로 그곳만을 떨치고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하다. 그래도 우리가 길을 계속 갈 수 있는 건, 그곳에서 주운 작은 희망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정인진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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