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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는 방학이었다. 우리는 여름과 겨울, 한 주씩 방학을 하고 있다. 이번 휴가는 집에서 한가하게 책을 읽으며 보냈다. 밀쳐놓았던 것들도 마저 보고, 또 불현듯 생각난 것들을 두서없이 펼쳐보기도 하며…. 아이들과 왁자하니 보내는 시간도 활기차서 좋지만, 가끔씩은 이런 고요함도 좋다.
 
그 가운데 하나는 ‘칼릴 지브란’의 단상을 책 머리에 인용하면서 시작하고 있었다.
 
<너는 그들(아이들)에게 사랑은 줄 수 있으되, 너의 생각은 주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 자신의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너는 그들의 육체에는 집을 줄 수 있으나, 그들의 영혼에는 집을 주어서는 안 되느니라. 그들의 영혼은 네가 찾아갈 수도 없는 정말 꿈결에도 찾아갈 수 없는 내일의 집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해봐서 알아” 자기 판단을 주입하는 어른들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인, 법조인 여성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녀는 당시 5학년인 아이를 자신의 판단대로 이끌고 싶을 때는 이렇게 말한다고 했다.
 
“엄마가 해봐서 알아. 엄마가 한 대로 하면 성공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너한테 이렇게 하라는 거야! 그 길을 잘 알고 있는데, 네가 왜 실수를 해가며 가려고 하니?”
 
항상 자기주장이 세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던 아이도 이 말 앞에서는 대꾸를 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그녀의 표정 속에는 자부심이 넘쳐흘렀다.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느 지점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꼭 집어 말할 수가 없었다. 그저 찜찜하니,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되뇌일 뿐이었다.
 
또 지금은 중학생이 된 현정이는 나와 공부를 하던 때부터 치아교정을 시작했다. 치아교정을 앞두고 현정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선생님, 엄마가 저 이빨 교정해준데요.”
“네 이가 어때서?”
 
당시 현정이의 이는 조금 비뚤거리긴 해도 기능상 문제가 있지도, 보기 흉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현정아, 이 때문에 불편한 게 있어? 불편하지도 않은데 예쁘게 보이려고 이를 교정하는 건 선생님은 반대야. 교정하는 중에 이가 약해지고 썩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또 굉장히 아파 밥도 잘 못 먹는다더라. 게다가 네 이는 밉지도 않아!”
 
“저도 하고 싶지 않은데요, 엄마가 그랬어요. 지금은 하고 싶지 않을지 몰라도 네가 크면 분명히 후회할 거라고.”
 
나는 거기서 더 말을 잇지 못했다. 현정이가 잘 생각해서 결정할 일이라고 말하고는, 그 이야기를 더이상 화제 삼지 않았다. 물론, 현정이는 이를 교정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크면 후회할 거’란 말이 아이의 판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듯했다.
 
우린 20세기 가치관으로 살지만, 아이들은 ‘미래의 집’에 산다
 

일다-천정연의 일러스트

칼릴 지브란의 이 글을 읽으면서 난 그들을 떠올렸고, 혼돈 속에 빠져있던 생각이 좀더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른이 되어 만난 세상은 어렸을 적 한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로 가득 차, 난 많이 당황했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세상이 바뀐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 왜 우리 식의 가치관과 판단으로 아이들을 이끌려는 걸까?
 
어른들 중에는 어줍지 않은 가치관과 판단을 아이들에 심어주려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배우고 똑똑하고 성공한 부모일수록 더하다. 물론, 앞의 아이는 성공한 엄마의 조언을 귀담아 듣지 않아 그의 부모만큼 사회적으로 출세하지 못할 수도 있다. 또 현정이는 어른이 되어 치아 교정하지 않은 걸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판단에 따라 행동하며 인생의 문제를 스스로 선택해 나간다면, 더 창의적이고 상상력 넘치는 자기세계를 만들어 갈 수도 있지 않을까?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세상을 풍부하게 만나게 될 것이고, 시행착오를 거듭해가며 창의적인 문제해결력을 기르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능력과 판단을 믿는 자긍심 넘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 어른들은 20세기의 가치관으로 산다. 결국, 어른들의 판단과 생각을 아이들에게 권유하는 이런 태도는, 그들에게 20세기 식의 낡은 세상을 보는 방식과 가치관을 심어줄 뿐이다. 만약, ‘어른들의 말을 듣길 정말 잘했어’ 라고 생각하는 어른이 된다면, 과연 그가 새로운 세상을 열어젖히는 일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이런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올랐지만, 여전히 아주 명쾌하게 정리할 수는 없었다. 좀더 고민을 이끌어 가야 할 것 같다. 좋은 책은, 길을 잃고 헤맬 때 구체적인 길을 가르쳐주기보다는 방향만을 일러주는 나침반과 더 닮았다. 그 방향을 향해 나아가면서 길을 찾는 건 순전히 내 몫이다. 이번 휴가는 정말 좋았다. (※ 교육일기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정인진/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교육일기 컬럼보기] 새로운 생각은 이미 아이들 속에 있다 | 아이들의 유머가 담긴 동화패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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