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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한 달 앞둔 아시아나케이오 해고노동자 김하경 씨 인터뷰

 

“정년이라는 게 육체적으로 수고했으니까 이제 편안한 삶을 누려라 그런 뜻인 거 같고, 즐기면서 노후를 준비하고… 그동안 못했던 취미생활도 하고 그런 목적이니까, 참 좋았겠죠. 그런데 아쉽게도 이렇게 해고가 돼서 정년을 맞이하는 건 슬프죠.”

 

정년의 의미에 대해 아시아나케이오 해고자 김하경 씨가 말했다. 그녀는 아시아나항공기를 청소하던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애써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듯 ‘정년’에 대해 밝은 얼굴로 말하던 그녀가 ‘해고’라는 말 앞에서 씁쓸한 감정을 감추지 못한다. 

 

▲ 작년 12월 28일, 아시아나케이오 해고자들의 원직 복직을 요구하며 김포국제공항에서 출발해 서울 도심 곳곳을 행진한 ‘해넘이 행진’ 중에 발언하는 김하경 씨. (사진: 명숙) 


정년, 거리에서 맞고 싶지 않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하던 2020년 5월 11일, 회사는 ‘무기한 무급휴직’을 반대하던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만 해고했다. 해고를 피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기에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그리고 법원에서도 ‘부당해고’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회사는 이에 불복하고 강제이행금만 낸 채 아직도 해고자들을 복직시키지 않고 있다.

 

하경 씨는 3월 30일이면 정년이다. 복직을 촉구하는 농성을 벌인지 벌써 햇수로 2년이 넘었다. 해고 상태로 정년을 맞이할 상황에 놓였다.

 

“언제까지 슬퍼할 수만은 없는 일이고, 정년은 제2의 삶을 살게끔 하는 원동력이 분명히 어딘가에 있을 거예요. 열심히 내 자신한테 수고했다, 그동안 열심히 했다고 마음에 다짐을 해보고 그런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 그래 어느덧 이렇게 많이 됐구나 하면서 씁쓸하죠. 즐거워야 할 정년이 슬픈 거죠. 허허.”

 

요즘 아시아나케이오 해고자들은 종로 아시아나항공 본사 앞에서 아침, 점심, 저녁 선전전을 한다. 고용계약을 맺은 곳은 아시아나케이오지만 원청은 아시아나항공이다. 전 아시아나항공 박삼구 회장이 있는 금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회사 중 하나가 바로 아시아나케이오다. 다단계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을 비롯한 노동조건은 원청의 결정이 큰 영향을 미치기에, 원청을 상대로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정년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날도 우리는 종로에서 아침 선전전을 마치고 농성천막이 있는 고용노동청 쪽으로 왔다. 반드시 정년 전에 복직을 해야 하는데…. 물이 끓어올라 증기로 퍼지듯 그녀의 씁쓸한 마음이 목을 타고 흘러나와 천막을 채웠다. 마침 농성장 안 난로 위 주전자 안 물도 끓고 있었다. 

 

손가락이 굽은 줄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일했는데…

 

“해고돼서 회사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정년을 맞이하는 그런 현실은 슬픈 거죠. 한 달이 됐든, 일주일이 됐든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하다가 패스(사원증) 차고 정년을 맞이하면 좋겠어요. 내 손으로 패스 반납하고 나오고 싶어요. 우리가 싸워서, 끝까지 싸워서 회사에 돌아갔다는 자부심이 생기잖아. 복직을 해서, 내 발로 들어가서 정년을 맞이했다고 보여주고 싶어요. 진짜로 그럴 수만 있으면 진짜 하고 싶어요.”

 

‘진짜’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하며 답하는 하경 씨의 얼굴은 복직된 날을 상상하듯 밝아지기도 하고 목소리 톤도 높아졌다. 그러다가도 말끝 무렵에는 숨을 고르더니 이내 눈에 무언가 고인다. 복직이 될 날과 해고싸움을 해 온 날들이 마음속에 오가는 듯, 그 복잡한 감정이 눈물로 고여 반짝인다.

 

▲ 작년 12월 15일 서울고용노동청 앞 아시아나케이오 해고노동자 원직 복직을 위한 수요문화제를 준비 중인 김하경. (사진: 명숙)

 

하경 씨는 2013년 3월에 아시아나케이오에 입사했다. 평소 산을 좋아하던 그녀가 산행에서 만난 언니에게서 소개 받은 직장이다. 시장에서 자영업을 하다가 사실상 큰 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두 번째라 더 신이 났다. 출퇴근 시간이 분명한 일이 좋았다. 항공기 안에서 정리정돈 하고 청소하고 의자와 물품을 세팅하면서 힘든 줄도 몰랐다. 처음 하는 일이지만 딸리고 싶지 않아 곁눈질하며 무조건 열심히 일했다. 하경 씨가 하도 일을 잘해서, 주변 사람들이 다른 항공사에서 일하던 경력직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짧은 시간에 기내 화장실 청소나 흘린 음식을 치우고 의자에 다시 비닐을 씌우는 일은 허리를 굽히고 해야 하는 일이라 고되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했어요. 특근 다 하고. 손가락이 그렇게 굽은 줄도 모르고 말야. (동료) 언니들이 칭찬했어. 결근 한번 안 하고 병가 한번 안 낼 정도였죠. 뼈가 휘도록 했는데, 민주노총 조합원이라는 하나만으로 해고됐으니 내가 얼마나 억울하고 속이 상하겠어. 내가 해고되고 누가 상사한테 물었대요. ‘걔는 말없이 일 잘하는데 왜 해고 했냐’고. 고맙지.”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그녀는 일을 마치고 나면 동료들과 모여서 회식도 하고, 연장근무가 없는 날은 마음 맞는 이들끼리 놀러 다녔다. 해고된 이후 회사 동료들을 만나기 어렵게 됐다. 그녀는 동료들과 웃고 떠들던 날이 더 그립다.

 

이행강제금만 내고 버티는 회사, 650일 넘는 거리농성

 

2020년 전 세계적으로 항공업계는 펜데믹으로 어려움에 처했다. 기업을 살린다며 정부는 수조 원을 지원했다.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지 않도록 고용유지지원금을 줄 수 있도록 했다. 그해 3월 16일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청소 및 수하물 관리 회사인 아시아나케이오와 노동자들은  70% 유급 휴직을 합의했다. 그러나 회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고용유지지원금 제도도 사용하지 않은 채, 희망퇴직과 무기한 무급휴직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정리해고하겠다고 번복했다.

 

무조건 ‘무기한 무급휴직서’에 사인하라고 했다. 언제까지 휴직을 하고 언제 다시 고용할지 정하지 않은 무기한 무급휴직에 동의하라는 건,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사실상 해고와 다를 바 없다. 원청이든 하청이든 아무도 고용의무를 지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 부당함에 맞서서 끝까지 무기한 무급휴직을 받아들이지 않은 노동자 6명은 결국 2020년 5월 11일 정리해고를 당했다. 회사가 10%만 내면 임금의 90%를 정부가 보전하는 제도가 있었지만 회사는 신청하지 않았다.

 

“사실 사인하는 건 내 권리죠. 사인하면 인정하는 거잖아요. 생각해봐요. 돈도 안 받는 무기한 무급인데 어떻게 사인해. 회사가 안 불러줄 수도 있잖아. 나는 동의할 수 없어서 서명하지 않았어요.”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무기한 무급휴직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하경 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2년 전 처음 해고되고 종로에 농성장을 깔던 날 만났을 때도 하경 씨는 억울하다며 똑같은 말을 했다. 그러나 해고가 이렇게 길어질지는 몰랐다. 지방노동위원회에서 판결이 나면 끝나는 줄 알았다.

 

“애들한테도 그렇게 말했어요. 지노위 판결 끝나면 복직될 거라고. 회사가 강제이행금만 내고 복직을 안 시킬 줄 몰랐지. 돈으로 버티는 거예요. 우리가 나가떨어질 때까지. 이렇게 길어질 줄 알았으면 싸움을 시작하지 못했을 거예요.”

 

회사가 해고 회피 노력도 하지 않고 해고를 단행했기에, 2020년 7월 지방노동위원회와 12월 중앙노동위원회 그리고 2021년 법원에서도 ‘부당해고’라고 판단했다. 돈이 없어 해고할 수밖에 없다던 회사는 대형로펌 김앤장 변호사들을 선임해 행정소송을 진행했고, 행정법원의 판결이 나자 불복하고 상고했다. 노동위원회 판정을 불복하면서 낸 이행강제금만 1억 원이고, 특별근로감독에서 부과한 1억3천만 원까지 합하면 2억이 넘는다. 최저임금을 받는 해고 노동자들에게 해고 기간 동안 지불할 임금보다 더 많은 비용이다. 게다가 대형로펌의 변호사 3명의 수임료까지 감안하면 돈 때문에 해고한 것이 아니라는 게 분명해진다. 해고자들이 ‘민주노조를 탄압하기 위한 해고’라고 말하는 이유다. 회사는 돈과 시간으로 노동자들을 괴롭히고 있다.

 

▲ 지난 1월 19일, 비정규직 대행진 집회에서 피켓을 든 김하경 씨의 모습.   (사진: 명숙)

 

코로나19로 인한 위중증 환자가 줄어들면서 국내 항공기의 운항 횟수는 늘어나고 있다. 제주도나 강원도 등 국내여행을 하는 사람도 늘고, 출장도 늘었다. 항공기를 청소할 일손이 부족하다. 더구나 코로나 시기에 청소는 방역의 필수다. 아시아나케이오는 신규 인력을 뽑으면서도 정작 해고자들은 복직시키지 않고 있다.

 

복직 투쟁은 하경 씨의 인생에 ‘수많은 첫 경험’을 안겨주었다. 2020년 5월 15일 종로 본사 앞에 농성천막을 쳤다. 농성장 밖에 써 붙인 날짜는 해고된 날이 시작점이 아니라 농성일이 시작점이다. 농성천막을 깔던 날부터 새는 이유는 아마도 투쟁의 의미를 더 새기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처음 본 시민들에게 매일 억울한 해고를 호소했다. 노동청 점거, 50리길 걷기, 오체투지, 단식농성 등 안 해본 게 없다. 처음 사람들 앞에서 발언도 했고, 기자들과 인터뷰도 했다. 농성일이 길어질수록 그녀의 말도 길어져 갔다. 분노와 억울함의 크기에 비례한 것이리라.

 

난생처음 경찰서에 끌려갔던 날도 잊을 수 없다. 2021년 정년을 앞두고 단식하던 동료가 서울고용노동청장을 만나겠다고 사무실에 들어갔고, 하경 씨는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고용노동청은 공공장소인 데다가 그녀는 복도에 있었지만, 경찰은 업무실 안에 있는 노동자들을 연행하면서 하경 씨도 체포했다. 경찰이나 노동청 직원에게 욕 한 번 하지 않았는데도 경찰들에게 붙들려 간 것이다. 불법연행이었다. 억울했다. 땅을 기며 오체투지할 때의 서러움보다 컸다.

 

연대라는 희망, 김진숙 동지처럼 우리도 복직되겠지?

 

그렇다고 투쟁이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하경 씨는 아침저녁으로 선전전할 때 틀어놓은 음악에 따라 몸도 흔들고 같이 노래도 따라 부른다.

 

“문화제를 할 때나 선전전을 할 때 함께 박수 쳐주는 연대동지들이 있어서 힘이 돼요. 내가 힘들어했을 때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는 사람들 때문에 솔직히 힘이 나요. 그 말 한마디가 정말로 가슴을 뭉클하게 해요. 나중에 만약에 복직이 되면 나도 꼭 이렇게 연대하며 다녀야겠다고 생각해요. 내가 이렇게 받았으니까, 또 그리고 이제 나는 또 받는 만큼 또 나누고 싶어요.”

 

하경 씨가 투쟁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법원의 판결도 손쉽게 무시하는 회사에 맞설 힘을 주는 것도 연대하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농성투쟁 650일이 되던 날, 한진중공업 해고자 김진숙 동지의 복직 소식이 들려왔다.

 

“김진숙 동지가 복직됐다니까 그나마 다행이다 싶고. 우리도 복직되겠지?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지요. 이때까지 싸운 게 아깝잖아.”

 

한동안 정년을 생각하면 가슴이 조여 온다며 힘들어하던 그녀의 얼굴이 김진숙 복직 소식에 밝아졌다. 사실 아시아나케이오 해고자들을 복직시키는 절차는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다. 회사가 복직통지서 하나만 쓰면 된다. 그 한 장을 쓰게 만드는 건 연대의 힘이라는 것이, 김진숙 씨의 복직을 통해 다시금 증명되었다. ‘노동이 사라진 대선’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는 해고노동자들에게 응원을 보태야 하지 않을까. 하경 씨가 단 일주일이라도, 아니 단 하루라도 일터에서 정년을 맞이할 수 있는 시간을 함께 만들기를 고대해본다.

 

[필자 소개]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의 상임활동가로 여성, 장애인, 비정규직 등 우리 사회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삶에 관심이 있다. 페미니즘으로 다시 쓰는 인권선언을 기초했으며, 공저로 『밀양을 살다』, 『금요일에 돌아오렴』, 『재난을 묻다』가 있다.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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